<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 이 책은 다석 류영모 평전이 아니라 신부님의 눈으로 바라 본 신앙인 류영모에 대한 이야기다. 각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다석의 신론, 다석의 그리스도론, 다석의 인간론에 대해 기술하고 있으며, 다석의 시편 해설과, 정양모 신부님 인생의 위대한 두 스승이라는 다석과 예수를 만나게 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나는 교회에 다닌다. 나는 신의 존재를 의심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믿음의 전제 조건이다. 나는 이 전제에 동의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신에 대한 관념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과학적 설명이나 논리로는 이해 불가한 놀라운 자연 현상과 내 안에 이는 수많은 고민과 알 수 없는 희노애락의 감정들, 그리고 살아가는 기쁨과 생의 행복을 생각하면 신의 존재를 마음으로부터 느낄 수 있고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신이 아니면 이 생동하는 감정의 놀라움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고로 나는 유신론자다. 나는 기독교인인가? '이 질문엔 대답하기가 어렵다.' '나는 교회를 다닌다.' 라고 했다. 그렇다. 말 그대로 다닐 뿐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안의 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는데 그렇다고 교회 밖에서 신을 찾는 것도 무용한 짓이라 여겨 그냥 다니고 있다.(신을 찾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교회는 내게 믿음의 대상이 아닌 생활의 공간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자기 모순적 종교생활에 지친 내게 다석 류영모의 종교관과 생활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다석의 신론을 살펴보니 신을 전지전능한 기독교적(유일신관) 하나님임을 인정하면서도 '없이 계신 아바'라는 동양철학적인 이해를 함께 했는데 유일신 곧 하나밖에 없는 것은 곧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는 '공(空) 사상'은 나의 어렴풋한 신관에 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석이 신과 우리의 관계를 유교식으로 '부자유친'이라 이해한다는 말에서 다석의 신에 대한 사랑과 신심을 느낄 수 있었다. 부자유친이라니... '하나님 아버지 '라는 말은 교회에서 흔히 외는 구절인데 내가 듣고 나도 불러본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영적일 호칭일 뿐 다석이 부르는 '아바 아바디'와 같은 친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죽는 순간까지 불렀다는 '아바디....' 어린 아이가 아빠를 부르듯 그리운 그 이름을 다석은 평생을 부르며 살아갔던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 그외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는 절대신이 같은 존재임을 이야기하는 종교 다원주의자 다석의 종교관은 내가 들어 본 어떤 신관보다 가슴 깊이 와 닿았고 나의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길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다석의 신관을 내 신관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의 첫 롤 모델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다석은 교회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은 종교인이었고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에 빠져 다른 종교인을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은 넓은 의미의 종교관을 수용한 신앙인이었다 '아바 아바디......'나의 그 분을 부르는 호칭에도 이만한 게 없다. '아바 아바디'라니, 아버지를 그리는 그 마음에 가슴이 아린다. 다석이 일생을 찾고 그리워한 '아바 아바디'를 진정으로 내 마음으로 깨닫고 간절히 그리고 싶은 마음만으로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