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이후 진행된 급격한 사회변동은 떡의 역사마저 바꾸어 놓았다. 간식이자 별식거리 혹은 밥 대용식으로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던 떡은 서양에서 들어온 빵에 의해 점차 식단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지던 떡의 종류는 전문 업소에서 주로 생산되는 몇 가지로 축소되어 가는 형편이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러나 떡은 아직도 중요한 행사나 제사 등에는 빠지지 않고 오르는 필수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시루떡류의 경우 콩을 섞어 만든 콩버무리떡, 콩설기, 콩시루편, 쇠머리떡 등이 서민들이 즐겨 해먹던 떡이었다.

특히 인절미는 찰밥을 지어 쳐서 만드는 법과 찹쌀가루를 쪄 쳐서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 함께 이용되어 왔으나 근대 이후에는 간편한 후자 방법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조선요리제법」(1913년)의 증보판인「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52년)에는 송기개피와 세 가지 색의 개피떡을 한 데 붙인 셋붙이도 등장하였다. 절편을 송편 모양으로 빚어 다시 찐 재증병도 등장하였는데 지금은 사라진 매우 단명한 떡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43년)에서는 70여종의 다양한 떡이 소개되는데 토란을 말려서 가루내어 찌거나 송편으로 만드는 토련병, 백합뿌리를 섞어 찌는 백합떡,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만든 신선부귀병, 흔떡, 북떡, 석류, 수수거멀제비 등 특이한 이름의 떡들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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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류도 차수수전병에서 더덕전병, 토란병, 산약병, 서여향병, 유병, 권전병, 송풍병 등으로 재료의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음식디미방」(1670년경)에는 ‘젼화법’이라 하여 두견화(진달래), 장미꽃, 출단화의 꽃을 찰가루에 섞어 지져내는 떡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만드는 방법이 지금과 거의 같다. 그리고 주악이 전병류의 하나로 새로이 등장하였다.

처음에는 조악전이라 하여 ‘백미를 가지고 가루고 만들어 설탕물로 반죽하고 설탕가루로 속을 넣어 배가 약간 볼록하게 하여 향기로운 기름에 지져서 먹는(「수문사설), 1740년대)’것이었으나 이후 주재료가 찹쌀로 바뀌었다. 다만「규합총서」(1815년)에 ‘소를 넣어 만두과처럼 가를 틀어 살 잡아 빚어’만들라고 하였으니 현재와는 형태가 다소 달랐을 것이다.

‘빈자떡’은 기름에 지지는 떡으로 「음식디미방」에 비로소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의 빈자떡은 ‘녹두를 뉘없이 거피하여 되직하게 갈아서 번철에 기름을 부어 끓으면 조금씩 떠 놓아 거피한 팥을 꿀에 말아 소로 넣고, 또 그 위에 녹두 간 것을 덮어 빛이 유자빛같이 되게 자져야 한다’고 하여 현재의 형태와는 달리 순수한 떡에 보다 가까운 것이었다.

경단 및 단자류는 조선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떡의 종류이다. 경단류는 「요록」(1680년경)에 ‘경단병’으로 처음 등장하여 「음식방문」, 「시의전서」(1800년대 말)등 이후의 문헌에도 나타나고 있다. 경단병은 찹쌀가루로 떡을 만들어 삶아 익힌 뒤 꿀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청향을 바르고 그릇에 담아 다시 그 위에 꿀을 더한다고 하였다.

단자류는 「증보산림경제」에 ‘향애단자’로 기록된 것이 최초이다. 이후 밤단자, 대추단자, 승검초단자, 유자단자, 토란단자, 건시단자, 마단자, 귤병단자, 꿀단자 등 종류가 다양해졌다. 이 외에도 송편이 만들어져 추석에 즐겨 먹는 명절 음식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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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이 다양해지자 시루떡 또한 팥시루떡, 콩시루떡 외에 무시루떡, 꿀찰편, 청애 메시루떡, 녹두편, 거피팥녹두시루편, 깨찰편, 적복령편, 승검초편, 호박편, 두텁떡, 혼돈병 등이 나타났다.

이중 두텁떡은 찹쌀가루를 쪄서 유자청 등의 소를 박고 볶은 팥가루고물을 얹어 찐 것으로 조리법이 한층 발달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최고의 떡이다.

규합총서의 혼돈병은 찹쌀가루, 승검초가루, 후춧가루, 계핏가루, 건강, 꿀, 잣 등을 사용하여 두텁떡과 유사하게 조리한 것이다. 그러나「증보산림경제」(1776년)의 혼돈병은 이름만 같을 뿐 내용은 매우 다르다.

‘메밀가루를 꿀물에 타서 죽처럼 하여 질그릇 항아리에 넣어 입구를 단단히 봉하고 겨불 속에 묻는다.’고 하여 제법이나 재료가 다른 떡들과 구별되고 있다.

찌는 떡뿐만 아니라 치는 떡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인절미는 찹쌀을 쪄서 치는 단순한 형
태였으나 점차 쑥, 대추, 당귀잎을 넣고 쳐서 색다른 맛을 음미하게 되었다. 또한 조인절미라하여 처음부터 찹쌀에 기장조를 섞어 찌기도 하였다.

‘긴 다리같이 만든 떡(「동국세시기), 1849년)’이었던 흰떡은 ‘손가락 두께처럼 하여 한 치 너비에 닷푼 길이로 잘라(「음식방문), 연대미상)’만든 골무편이나 산병, 환병 등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절편은 쑥, 수리취, 송기 등을 첨가하고 떡살로 무늬를 박아 모양과 색을 더욱 아름답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은 개피떡이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흥미롭다.

「음식방문」(1800년대 중엽)의 개피떡은 ‘흰떡 치고 푸른 것은 쑥, 넣어 절편 쳐서 만들되 팥거피고물하여 소 넣어, 탕기 뚜껑 같은 것으로 떠내고’라고 하여 오늘날과 매우 유사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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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농업기술과 조리가공법의 발달로 전반적인 식생활 문화가 향상된 시기이다. 이에 따라 떡의 종류와 맛도 더 한층 다양해졌다. 특히 궁중과 반가를 중심으로 발달한 떡은 사치스럽기까지 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곡물을 쪄 익혀 만들던 것을 다른 곡물과의 배합 및 과실, 꽃, 야생초, 약재 등의 첨가로 빛깔, 모양, 맛에 변화를 주었다. 조선 후기의 각종 요리 관련서들에는 매우 다양한 떡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이러한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각 지역에 따라 특색 있는 떡이 소개되어 있는 것도 이채롭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관혼상제의 풍습이 일반화되어 각종 의례와 크고 작은 잔치, 무의 등에 떡이 필수적으로 쓰였다. 또 고려시대에 이어 명절식 및 시절식으로의 쓰임새도 증가하였다.

이때 주로 만들어진 설기떡류로는 기존의 백설기, 밤설기, 쑥설기, 감설기 외의 석탄병, 잡과점설기, 잡과꿀설기, 도해병, 꿀설기, 석이병, 괴엽병, 무떡, 송기떡, 승검초설기, 막우설기, 복령조화고, 상자병, 산삼병, 남방감저병, 감자병, 유고, 기단가오등이 등장하였다.

특히 기단가오와 유고는 이 시기에만 만들어졌던 떡이다. 기단가오는 메조가루에 삶은 대추, 콩, 팥을 섞어 무리로 찐 떡(「규합총서),1815년)으로, 차진 메조가 생산되는 북쪽 지방의 향토떡이기도 하다.

한편 유고는 참기름에 소금을 약간 넣어 쌀가루에 섞은 다음 잣과 대추를 잘게 썰어 고명으로 얹어 시루에 찐 것으로(「역주방문),1800년대 중엽)오늘날의 백편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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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와 더불어 몽고와의 잦은 교류도 고려인의 음식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밀가루에 술을 넣고 부풀려 채소로 만든 소와 팥소를 넣고 찐 증편류인 상화가 도입되었는데, 고려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증편의 시원인 이식과 비슷한 형태였다.

고려가요 중 「쌍화점」은 상화를 파는 전방이 따로 있었음을 말해주어 당시 고려인들이 상화를 꽤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떡의 종류도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떡이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일상식으로 자리잡아 나간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고려사」에는 광종이 걸인에게 떡으로 사주하였으며, 신돈이 떡을 부녀자에게 던져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상사일에 청애병을 해먹는다든지 유두일에 수단을 해먹는다는 기록은 떡이 절식음식으로 점차 자리잡아 갔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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