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가 조금씩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빗소리 속에서 사념의 벌레들이 시간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의 밀도는 그대로였다. 빗소리 속에서는 시간이 미래로 흐르지 않고 과거로 흐른다. 과거로 흘러서 추억을 소급한다.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언젠가 소요가 내게 들려주었던 천지교감강우설(天地交感降雨設)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흔히 우림 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온갖 초목이 울창하고 사막 지역에는 비가 적게 내리기 때문에 소수의 초목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 반대가 아닐까요. 우림 지역에는 온갖 초목이 울창하기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고 사막 지역에는 소수의 초목밖에 자라지 않기 때문에 비가 적게 내리는 것은 아닐까요."
하늘이 비를 내려보냈을 때 그 지역에 기쁨을 느끼는 생명체들이 많은가 적은가에 따라 강우량도 적절하게 조절된다는 지론이었다. 기쁨을 느끼는 생명체들이 많으면 강우량도 증가하고 기쁨을 느끼는 생명체들이 적으면 강우량도 감소된다는 설명이었다. 고대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은 대부분 사막현상을 드러내 보이는데 이는 인간이 자연을 보살피는 일에는 주력하지 않고 이용하는 일에만 주력해서 수많은 생명체들을 급속히 감소시켜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인간의 가슴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인간의 가슴도 소망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가슴이 있고 소망의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지는 가슴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소망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가슴에는 축복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소망의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진 가슴에는 축복의 비가 인색하게 내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간의 모습과 자연의 모습은 대체로 일치한다. 사막국가들의 전설이나 신화나 동화에는 모반과 약탈과 사기와 절도가 성행한다. 사막국가에서는 자연이 척박하기 때문에 인간의 가슴도 척박해서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요의 지론은 정반대였다. 인간의 가슴이 척박해졌기 때문에 자연이 척박해졌다는 것이었다.-144,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