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그게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어도, 어스름한 저녁에 깨어나 지붕에 후득이는 빗소리를 들을 때처럼 마음이 간절하게 사무치는 때가 있다. 벽구석에 몸을 말아붙이고 앉아 손가락 하나로 아무렇게나 건반을 꾹꾹 눌러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래, 그러나 다시 멋쩍은 타인으로 돌아가 서로 건너편에 서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에 어른거리는 당신의 더운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불러도 서로 들리지 않는 멀찍한 거리에서 우리는 만난다. 가끔은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는 그 거리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며 또한 이렇게 모두가 타인이 아니다. 그래, 나는 자주 부싯돌 같은 마음을 꿈꾼다. 겨우 환해졌다가 이내 눈귀를 막고 단단한 어둠으로 스스로 돌아갈 줄 아는......
-'윤대녕- 신라의 푸른 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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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사랑의 결여 상태다.
우울증은 자신과 타인과 일과 생활에서 사랑이 사라져버린 삶이며, 그 무엇에서도 기쁨을 얻지 못하는 무의미함과 황페함으로 가득 찬 쓸쓸한 내면이다. 그리고 건강한 삶을 회복할 에너지를 상실한 상태를 뜻한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생활에 대한 무의미한 감정과 외로움이다. 그러므로 우울증 환자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프로작이나 리튬 같은 약이 아니라 황폐해진 내면을 다독거려줄 사랑이다.
그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누군가에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사실 굉장하다. 그들은 열렬하게 외롭지만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뜨겁게 사랑을 갈구하면서 동시에 사랑으로부터 맹렬하게 도망가는 것. 이 모순적인 삶을 그들은 견뎌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광대가 되어 살며, 어떤 사람은 광인이 되어 떠돈다.
-수상작가 인터뷰 '고요하고 낯선 화단中'-
 

했어야 했거나, 하지 말았어야 했거나 하는 말들이 매 순간 나를 몰아세웠다. 침묵과 거짓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입장과 형편의 행간에서 끝내 마음을 다물어 오해로만 끝날 수 밖에 없었던 숱한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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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리저리 쓰러질 듯 비스듬히 나아가면서도, 그러나 용케 넘어지지 않는다.
가냘픈 걸때에 목이 짜그라져라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도 꽃샘 하늘의 비밀한 편지를 반갑게 받아 들며 웃던 고 눈부신 계집애처럼.

#2.노여워 마셔요. 나는 당신 없이도 남은 삶을 견딜 만큼 강합니다. 하지만 삶의 미련을 떨치고 당신을 좇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만큼, 나는 사랑으로 더욱 강합니다. 슬퍼 마셔요. 사랑은 내 부박한 생에 누린 최고의 호사였습니다‥‥.

사랑하였다. 온 생애에 단 한 사람을. 또한 사랑하였다. 아프고 아름다운 땅을, 그곳에서 태어난 슬픈 운명을. 그러나 그것들이 어떻게 다른지는 말할 수 없다. 사랑의 경중도 따질 수 없다. 모든 사랑은 진정으로 닿아, 기어이 닮아 있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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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파란것은 바다가 다른 색은 다 흡수하지만 파란색만은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거 알아요? 노란 꽃도 마찬가지에요. 노란 꽃은 다른 모든 색은 다 받아들이지만 노란색만은 받아들이지 못해 노란 꽃이 된 거죠. 거부하는, 그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을 규정하는 거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알아볼 수 있었어요. 당신이 안간힘으로 거부하고 있는 당신의 상처를. 거부한 나머지 상처 그 자체가 되어버린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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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속도는 언제나 조금 빠르거나 조금 늦었다. 상대방을 향한 깊은 배려는 때때로 뚝배기 속에 들어간 숟가락처럼 충돌하기도 하고 이렇게 엇박자로 나가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생의 엇갈림 속에서, 그들은, 서성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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