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
찰스 H. 스펄전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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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간구할 것인가.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이 자주 들려주시는 기도에 관한 일화가 있다. 새벽기도회 시간마다 예배당 가장 앞자리에 앉아 몇 시간씩 기도를 하고 가시는 권사님 한 분이 계셨다고 한다. 목사님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기도를 하시는 권사님을 뵈며,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실까 궁금하여 옆으로 살짝 다가가 들어보셨다. 한참을 옆에 서 있었는데 권사님은 한 가지 말만 계속 되풀이 하며 기도를 하고 계셨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이것이 몇 시간씩 기도하시는 권사님의 기도 내용 전부였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오직 신앙 하나로 국가적으로 몹시도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내신 권사님, 우리의 할머니와 같고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그 권사님의 기도가 마음을 울린다. 권사님의 짧은 한마디의 기도가 기도의 해답처럼 와닿았다. 이것 저것 하나님께 아뢰고 싶은 소원을 가득 안고 기도의 자리에 앉았다가 이내 입이 다물어졌다. "그저 그저 감사"밖에 달리 더 드릴 기도가 무엇이 있겠는가 싶어서이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더니, 나의 기도가 딱 그렇다. 주일학교 공과 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순서를 좇아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 선생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뒤, 나의 소원을 아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끝낸다. 그러나 이것은 평안할 때의 이야기이다. 간절하고 다급한 일이 있거나, 견딜 수 없이 아프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만 부른 채 아무말 못하고 울다가 일어서는 때도 많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요, 능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호흡하고, 주님의 능력을 공급받으려면 기도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성경은 아무리 간절히 아뢰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기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기도가 있다고 분명히 말씀한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기도가 있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기도했느냐,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믿음의 자세로, 무엇을 구하는가이다.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는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떠한 믿음의 자세로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그 가르침에는 책의 제목처럼 지경을 넓히는 ’야베스의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는 ’다윗의 기도’, 기도 응답을 가르쳐주는 ’솔로몬의 기도’, ’축복을 누리는 효과적인 기도’, ’하나님을 붙잡는 영혼의 기도’, ’평안을 만끽하는 참된 기도’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이 수록되어 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성경의 기도를 모범으로 하여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간구해야 하는지 우리의 기도 내용을 점검하고 수정하도록 도와준다. 

무엇을 위하여 기도할 것인가? 무엇을 구할 것인가? 한가지 두려운 사실은 이것이다. "생각한 대로 기도의 응답을 얻었다고 해서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늘 간절히 기도하고 나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응답을 받는 게 오히려 위험한 일을 간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p. 37). 스펄전 목사님은 오히려 지금 마음이 찢어져서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게 더 큰 축복일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니 "허구적인 축복이나 추상적이고 형싱적인 축복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도록 그 방식을 하나님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p. 41).

기도는 우리가 구하는 바를 얻어내는 통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믿음의 뿌리를 굳건하게 해주는 ’닻’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찰스 스펄전의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기쁨과 기대함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께서 진정으로 내게 복을 주옵소서"(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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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움 Ilium - 신들의 산 올림포스를 공습하라!
댄 시먼즈 지음, 유인선 옮김 / 베가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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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움>의 작가 댄 시먼즈는 천재 작가가 아니라면, 광기에 휩싸인 것이 분명하다! 
그의 이야기는 문학적 상상력 그 이상이다.
 

요즘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는 개연성도 없고, 현실성도 없다. 자극적인 소재와 설득력이 없는 비상식적 캐릭터가 마구 얽혀서 억지설정에 비약적인 스토리로 멜로 드라마였다가, 미스터리 드라마였다가, 공포 드라마였다가, 그야말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정체불명의 이야기가 되어 '막장'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닮고 싶은, 그래서 흉내 내어 보는 작가가 바로 <일리움>의 댄 시먼즈와 같은 작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댄 시먼즈는 천재 작가가 아니라면, 광기에 휩싸인 것이 분명하다! <일리움>은 거장과 막장의 차이를 알게 해준다. 그의 이야기는 문학적 상상력, 그 이상이다! 어설피 흉내 내려 했다가는 막장의 늪으로 빨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댄 시먼즈의 <일리움>은 유럽인의 정신과 사상의 원류가 되는 그리스 최대 최고의 민족 대서사시라는 호머의 <일리아드>를 기본 틀로 삼았다고 한다. 그 틀 안에서 신화와 초현대 과학의 지식이 어우러지고, 과거와 미래가 교통하며, 신과 죽은 자와 상상에 의해 탄생한 존재들이 만나, 신화를 재해석하고, 고전문학 작품들을 녹여내며, 미래 사회에 대한 판타지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모험이 펼쳐진다. 

<일리움>은 도전 정신을 가지고 읽게 된다. 일단은 B5 사이즈로 1000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 완독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다. 방대한 분량 다음으로 넘어야 할 장벽은 등장 인물에 대한 이해이다. 퀴즈 프로에서 "다음 중 등장 인물이 가장 많은 문학작품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나온다면, 나는 무조건 <일리움>이라고 대답하려 한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존재가 이 안에 존재한다. 게다가,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줄거리를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소설은 또 처음이다. 일단 일리아드의 영웅들이 있고,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이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신들이 있고, 그 신들이 죽음에서 데려와 임무를 부여한 21세기 일리아드 학자로 살았던 토머스 호켄베리가 있고, 그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40세기 과학이 있고, 인공지능 기계종족이 있다. 

독자인 나에게 <일리움>의 '현재'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이 현재이며, 또는 과거이거나 미래이다. 미래에서 과거를 다시 쓰면, 그것은 미래 이야기인가, 과거 이야기인가, 현재 이야기인가? 오천 년이라는 시간과 태양계 전체를 넘나드는 <일리움>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살고 있는 3차원 세계의 독자들에게는 처음부터 이해불가한 영역에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후속편이라고 하는 <올림포스>까지 읽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일리움 평원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 속에 미래의 전망이 담겨 있는 듯하다. '생존'이 아니라 '모험'을 시도하는 영웅이 어떠한 세상을 열어가게 될지는 <올림포스>에서 확인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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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의 종말 - 인간은 똑똑한 기계를 원하지 않는다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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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인류는 오늘날의 인류보다 더 인간적일 것이다(p. 288).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인간이 되겠다는 목적 하나로 ’은하철도 999’를 타고 온갖 위험을 무릎쓰며 우주 여행을 했던 철이. 그러나 드디어 기계인간의 몸을 주는 별에 도착한 주인공 철이는 결국 기계인간이 되지 않기로 선택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인간보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 남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늦어도 10년 후면 인조인간 로봇이 노인 수발을 책임지고 집안 정리뿐 아니라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도 할 것이라고 공언한다"(p. 83). 인류는 아직 ’은하철도 999’를 타고 기계인간의 몸으로 만들어주는 ’프로메슘 별’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은하철도 999’의 작가처럼 <테크놀로지의 종말>을 쓴 유럽 최고의 미래 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인류는 결국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 남기를 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 사회는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더불어 ’자동화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자동으로 안마를 해주는 기계에서부터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마다 조금씩 더 업그레이드 되는 ’무인 자동화 시스템’을 자랑하고, ’전격 Z작전’의 키트처럼 운전이 필요 없는 전자동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연구와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 애완용 로봇은 물론,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신해줄 인조인간의 발명까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명체도 기계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인간 사회도 더욱 발전하고 있다고 ’믿으며’, 미래 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상할 때, 최첨단 기기들로 가득찬 세상을 이상적이고 발전된 라이프스타일로 자연스레 떠올린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본질과 의미를 통찰하는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테크놀로지의 종말>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이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그는 "기술의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 상실이다"(p. 38)고 단언한다. 과연 그러한가? 화상전화를 통한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선진 문화에서 통신은 결코 가까움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리 유지에 봉사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화상 전화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훼방꾼이다"(p. 50). 

진화생물학과 사회생물학을 넘나들며 기술의 진보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 저자는 <테크놀로지의 종말>을 예고한다. 저자는 우리가 기대하는 완벽한 전자동화의 테크놀로지 세계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마디로 말한다. 테크놀로지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는 저절로 다가오는 필연적인 미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행동과 타협의 결과이며 소망, 꿈, 희망, 보상, 두려움의 결과다. 따라서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소외시키지도 파괴하지도 않으며 인간성을 없애지도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 본질로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테크놀로지의 종말>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미래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예측하는 거시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기술과 상품의 통찰은 이 책이 경영서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저자는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미래는 사람의 선택을 막거나 지배하는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따르는 기술의 세상"이라고 말한다. 전자 북(BOOK)의 발전이 종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종이 책의 발전을 가져올 것인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따르는 기술의 세상"에 대한 통찰은,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적용하는 산업계와 경영진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설정해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된 기술을 목격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르지만, 날마다 쏟아져나오는 최첨단 기기를 볼 때마다 다음 세대를 향한 부러움과 함께 두려움도 느낀다. 새로운 기기의 사용법을 익혀야 할 때마다, 아무리 그 사용법이 간편화되고 이용이 쉬워진다고 해도 언젠가 기계로부터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인류는 오늘날의 인류보다 더 인간적일 것이다"(p. 288)는 저자의 예측에 안심이 되는 측면도 있다.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이기를 선택했던 철이 처럼, <테크놀로지의 종말>을 읽으며 완벽함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소망, 꿈, 희망, 두려움, 한계를 간직한 소박한 ’인간성’이 살아있는 미래 사회에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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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서라 -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
존 맥아더 지음, 김애정 엮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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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적에 맞서는 법


언젠가 기독교 안티 카페에 들어가 게시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부모님을 둔 어느 학생의 글이었는데, 이렇게 토로하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일요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낮잠을 자고 있는 저에게 ’마귀’라고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자식을 ’마귀’라고 부르는 부모가 제정신입니까?" 이 게시글 밑으로 많은 회원의 위로와 격려의 덧글이 이어지면서, 기독교 신앙인들에 대한 욕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성경적 진리에 대한 오해 또는 이해의 부족으로 신앙인들의 언행에 실수나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기독교 신앙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되는지 보았다. 신앙생활을 하는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오해를 불러일으켜 결국 구원에서 멀어지게 되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가 바로 ’영적 전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속한 일이기 때문에, 더욱 성경의 가르침을 바로 알고 바르게 분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확한 용어 사용과 성경적 대응을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하겠다. 성경은 ’악한 영’이 실재함을 말한다. 그런데 <굳게 서라>의 저자 존 맥아더 목사님이 C.S. 루이스의 말을 빌려 설명한 것처럼, 악한 영들에 대해 인간이 빠질 수 있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하나는, 악한 영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믿는데 지나치게 건강하지 못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 무관심도 잘못이지만,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두려워하는 것도 잘못이다.

<굳게 서라>는 탁월한 성경 해석가라는 존 맥아더 목사님의 명성 그대로, 영적 전쟁에 관한 전반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전하여 준다. 성경적 근거와 권위 있는 해석들, 그리고 사례까지 제시하며 체계적이고 세부적으로 연구한 구체적이고 선명한 가르침이라 더욱 신뢰가 갔다. 사탄의 정체와 활동 등에서부터 신자들의 구체적인 대응 방법까지 세밀하게 다루어진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설명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경우이든 바울의 지시는 확실히 오늘날 영적 전쟁 운동에서 하고 있는 일들과는 다르다. 그는 사탄으로부터 사람들을 데려오기보다 오히려 교회가 때때로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는 축사 사역의 한 형태이다"(p. 63). 솔직히 이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전체적인 맥락과 문맥 안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번역서이기 때문에 원서를 읽어봐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교회가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문장은 상징을 포함한 표현이 아니라 문자적인 표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굳게 서라>는 삶의 현장에서 소위 말하는 ’귀신 들림’ 현상을 직접, 간접적으로 목격하게 되는 사역자에게 굉장히 실제적인 도전과 중요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특별히 악한 영들과 대적하는 ’전투 기도’, 즉 꾸짖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는 날카로운 성찰은 영적 전쟁의 현장에 있는 사역자들이 반드시 진지하고 심각하게 검토하고 수용해서 축귀 사역에 수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영적 전쟁은 전체적인 통찰 안에서 세부적인 적용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니, 교회의 지도자 그룹이 먼저 책을 정독한 후에 부록을 활용하여 함께 스터디를 하면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성경의 진리와 함께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믿는 자들을 단단히 무장해주는 <굳게 서라>는 지엽적인 영적 전투가 아니라, 신앙인들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싸워야 할 싸움을 가르쳐주며, 그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이끌어준다. 모든 신앙인의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십자가의 병사로서 우리의 의무는 다만 고난을 견디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전투에서 굳게 서는 것이다"(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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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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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명의 오만함과 탐욕의 잔혹성, 그리고 짓밟히는 약자의 삶을 읽다.


<리틀 비>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두 명이다. 나아지리아 난민 소녀인 ’리틀 비’와 영국의 한 잡지사의 잘 나가는 편집장인 ’새라’, 이렇게 두 명의 화자가 서로 한 번씩 번갈아가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니콜 기드먼 주연의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새라’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었는데, 나이지리아 소녀인 ’리틀 비’의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영국과 나이지리아, 둘 다 먼 이국 땅의 사람들이지만, ’새라’는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가까운 이웃으로, ’리틀 비’는 전혀 낯선 타인으로 다가왔다.

"그날, 그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 거였어."

도대체 2년 전, 그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국의 이민자 수용소에서 시작되는 <리틀 비>의 이야기는 전체의 그림을 맞춰가는 조각 퍼즐처럼, 이야기의 윤곽을 서서히 드러낸다. 도대체 2년 전 그날에 리틀 비와 새라, 그리고 그녀의 남편 앤드루 사이에 무슨 일이 일었던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앤드루는 리틀 비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전화를 받고 느닷없이 자살을 해버린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새라는 한쪽 손가락이 잘린 것일까?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궁금증이 더해갔다.

잘못 놓인 물건처럼 영국 땅에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놓여진 ’리틀 비’, 그녀가 덤덤하게 들려주는 사연은 잔혹했다. 유전에 대한 이권 타툼으로 그녀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짓밟혀 버렸다. 리틀 비와 그녀의 언니는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사냥개들과 추격자들에게 쫓긴다. 먼 옛날 이야기 같은 이들 자매의 삶에 갑자기 새라와 앤드루가 끼어들게 된 것은 그들이 나이지리아 해변으로 휴가를 와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리틀 비 자매가 추격자들에게 막 잡혀 죽기 일보직전인 그 순간에, 새라와 앤드루는 호텔에서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배트맨 옷을 입고 배트맨 놀이에 열중인 아들 찰리, 멋진 칼럼니스트인 남편, 매달 잡지에 어떤 기사를 실을 것인지 하는 고민, 그리고 남편이 아닌 로렌스와 나누는 은밀한 사생활. 어느 날, 앤드루에게 걸려온 리틀 비의 전화 한 통, 그리고 앤드루의 장례식에 갑자기 나타난 리틀 비로 인해 새라의 모든 일상이 한 순간 흐트러지면서 새라는 지독한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어느 날, 리틀 비의 삶에 끼어들었던 석유 전쟁은 어떠한가? 마을 전체를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살인이 자행되고, 리틀 비는 집을 잃고, 부모를 잃고, 이름을 잃고, 너무도 잔혹하게 언니를 잃고, 일상을 잃고, 꿈을 잃고, 삶을 잃어버렸다. 새라의 것이 ’혼란’이라면, 리틀 비의 것은 ’잔혹함’이다. 새라의 삶에 끼어든 리틀 비의 존재가 거추장스러운 혹이라면, 리틀 비의 삶에 끼어든 석유 전쟁은 암덩어리보다 더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침입자이다. 

’난민’이 되어 영국 땅으로 도망쳐 온 리틀 비, 그러나 문명의 오만함은 리틀 비를 이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그 오만한 사람들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불의 혀바닥이 리틀 비를 핥고 지나가 난민이 되었는데도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 귀찮아 하고, 무관심하고, 쫓아내고, 없애버리려는 사람은 있어도, 누구도 보호해주고 옹호해줄 자가 없는 리틀 비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새라에게 기대해보지만, 마지막 리틀 비의 웃음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앤드루를 자살로 몰고간 것은 리틀 비의 존재인가, 앤드루의 양심인가?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 맴돌면서 <리틀 비>는 내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 리틀 비의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의 오만함을 비웃는 촌철살인으로 읽히는 것은, 내게도 존재하는 양심이 진정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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