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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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창밖에서 낯선 여자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서러운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나는 낯선 여자의 울음소리가 불편해진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차라리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소리라면 "시끄럽다"고 소리라도 쳐서 그만 두게 하겠는데. 왜 우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동안 누군가에게 몹쓸 짓을 당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모르는 척 하고 내 할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우아한 거짓말>은 김려령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면서도 희망을 품게 해주었던 <완득이>의 매력에 끌려 바로 그 다음 작품을 집어 들었다. 역시 <완득이>에서처럼 톡톡 튀는 대사가 압권이다. 그러나 어째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참으로 느닷없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우아한 거짓말>은 예상치 못했던 한 여학생의 느닷없는 '자살' 앞에 독자를 세우고, 그 소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되짚어보게 한다. 자살한 '천지'를 돌아오게 할 순 없지만, 책임져야 할 사람은 찾아내야 한다고. 독자는 퍼즐이 맞춰지듯 하나씩 제자리에 끼워지는 '사실' 안에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배심원'이 된다. 

<우아한 거짓말>을 통해 작가가 제기하는 현상은 '청소년 자살' 문제이다. 창밖에서 서럽게 울던 낯선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자살하는 청소년의 문제는 그렇게 내 삶 '밖'에 존재하는 현상이었는데, '천지'의 자살은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구경꾼으로 살아가는 나의 무관심에 죄책감이 들게 했다. '천지'를 떠나보낸 뒤에야 비로소 아파했던 '천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를 뒤늦게 추척하는 엄마와 언니 '민지'는 지난 날의 흔적을 파헤치며 '관계자'들을 하나씩 밝혀낸다.  

'천지'가 각각 선물한 '다섯 개의 봉인 실'은 '관계자'들을 한 명씩 소환한다. 천지는 단짝을 가장한 친구 김화연에게 교묘한 괴롭힘을 당했었고(화연이의 엄마는 화연이가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둠으로써 동조했고), 친구이면서 친구가 아닌 미란이는 그런 천지를 멍청하게 생각했고, 언니 만지는 자기 방식대로 반응하며 천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고, 천지의 엄마는 천지의 문제를 가볍게 생각했다. 작가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그들을 엮어내며 한 사람씩 심판대 앞에 세운다. 그리고 그들의 '우아한 거짓말' 속에 또와리를 틀고 있는 징그러운 진실, 잔인하고 무자비하고 역겨운 위선과 교활하고 비열한 이중성. 그 죄가 밝혀진다. 

미란이의 죄. "천지는 멍청한 게 아니라 착한 거야. 착한 애는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꼭 가지고 놀려는 것들이 생겨서 문제지. 자기 맘에 들면 착한 거고, 안 들면 멍청한 건가?"(195)
 

화연이 엄마의 죄(그리고 곧 화연이의 죄).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에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210) 

그리고 화연이의 죄. "너 말 참 우아하게 한다. 불쌍해서 못 했다고? 말은 못 하면서 행동은 어떻게 했니? 천지가 떠날 정도로 지독하게? 그냥 조금 더 가지고 놀고 싶었어요, 그게 네 진심 아냐?"(220)  

천지보다 더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천지를 '우아하게' 돕고자 했던 미란이, 딸의 숨겨진 의도를 알면서도 모른 척 '우아하게' 자장면 한 그릇을 내밀며 천지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화연이의 엄마, 그리고 친구인 척 가장하여 '우아하게' 천지를 괴롭했던 화연이, 그 '우아함'이 사람을 잡았다. 그 더럽고 냄새나고 역겨운 '우아함'이 폭력보다 더 잔인하게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만든다는 것을 천지는 죽음으로 알렸다. 누구 하나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일이라면 천지가 끝내야 했다. 손 내미는 천지에게 무심했고, 천지의 경고조차 무시했던 '관계자'들은 더 이상 자신을 변호할 말이 없다. 

천지의 엄마와 언니 만지는 사랑하는 천지를 잃어버린 것으로 충분한 형벌을 받았으니 석방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기억과 후회의 짐을 지고 살아가리라. 

그러나 <우아한 거짓말>을 통해 김려령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천지가 자신에게 남긴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다섯 번째"라고 믿는다. '죽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끝내버린 '천지'가 바로 이 사건의 마지막 관계자이면서, 용서할 기회도 용서받을 기회도 잃어버린 가장 나쁜 관계자이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여, 아무리 힘겹더라도 부디, 살아주기를.  

만지와 화연이 찾아내지 못한 '마지막 털실 뭉치'를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 "잘 지내니?"라는 그저 진심어린 한마디 안부의 말이 자살하려는 '천지'를 지켜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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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는 작은 습관
진희정 지음 / 토네이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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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국은 사소한 습관이다. 습관 형성에 걸리는 기간은 66일! 지금 그 씨앗을 심으라!


몇 해 전에 취미로 ’드럼’을 배운 적이 있다. 연주 실력은 물론 기본기가 탄탄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프로에게 특별 강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여서 이미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실력자들까지 모여들었다. 드럼 스틱조차 처음 잡아보는 완전한 초보는 나 하나였다. 그런데 모두를 놀라게 한 사실은 완전한 초보였던 내가 강습을 마치는 최종 테스트에 1등으로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경력자들은 잘못된 습관을 수정하느라 애를 먹는 동안, 처음부터 기초를 배웠던 나는 훨씬 빨리 진도를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습관이 잘못 자리잡게 되면, 반드시 한계에 부딪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실력이 향상될 수 없다는 선생님의 경고가 매서웠기 때문에 이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완전한 기초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그러나 한 번 습관으로 자리잡은 연주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습관’이 가진 위력에 대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도, 막상 원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에 성공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습관이란 오랫동안 되풀이 하는 과정에서 익혀진 행동 방식이기 때문에, 그만큼 길들이기도 어렵고, 또 한 번 길들여진 습관을 수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습관을 방치하고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인생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습관을 형성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반복하는 행위이고, 그러한 반복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습관’의 씨앗을 심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에는 아무런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 잘해야 현상 유지 정도이고, 요행이나 바라며 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명을 바꾸는 작은 습관>은 "작은 습관 하나가 운명까지 바꾼다"는 진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진 연구결과들은 ’습관’의 무서운 위력을 보여주고, 성공한 사람의 실제적인 사례들은 엄청난 동기 부여의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과학적이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내 운명을 바꾸는 ’사소한 습관’ 전략 5단계>은 이렇다.

step 1. 먼저 자신의 뇌에게 강렬하게 말하라!
step 2. 소망을 움직일 구체적 자극을 찾아라!
step 3. 자극을 행동으로 옮겨라!
step 4. 반복하고 또 반복하라!
step 5. 성격으로 바뀐 습관을 마음껏 만끽하라.


우선, 씨감자를 땅에 심듯이 ’원인’을 품어야 한다. 사소한 습관을 기르는 첫 번째 과제는 강렬한 소망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강렬한 소망이 싹을 틔울 구체적인 자극을 찾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가장 힘든 것은 처음 한 번이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반복’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모두가 시작은 하지만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반복’의 과정에서 실패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반복은 가장 어렵고 지루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과정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쭉 뻗은 사선이 아니라 ’계단식’이다(50). 이 과정에서 그만 두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달콤한 성공의 열매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운명을 바꾸는 작은 습관>은 농부에게 씨앗을 나누어주듯, 독자들에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네 개의 씨앗’(생각의 습관, 행동의 씨앗, 습관의 씨앗, 성격의 씨앗)을 나누어준다. 네 개의 씨앗은 단계별로 적용 가능한 지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책들과 차별되는 이 책만의 매력이 있는데, ’습관의 씨앗’에서 제시해주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훔쳐라’이다.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분석하여 그것을 아홉 가지 ’훔칠 습관’으로 정리해냈다. 흥미롭게 읽으면서, 정말 훔치고 싶을 만큼 자극도 받았다. 무엇보다 끌렸던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은 바로 ’독서’ 습관이었다. 워런 버핏,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모두 유명한 독서광인 것이 흥미롭다.

이밖에도 ’훔칠 습관’으로 메모와 글쓰기, 예의, 소통, 포용, 시간관리, 인맥관리, 마인드컨트롤(자기 최면) 등이 소개되고 있다. 어찌 보면 정말 사소한 습관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소함’이 이 책의 포인트이다. 날지 못하는 새는 살 수 있어도 걷지 못하는 새는 살 수 없다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걷는 연습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높은 창공으로 비상하려는 무모만 날갯짓만 열심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창한 꿈을 꾸느라 사소한 습관을 놓쳐버리는 동안 기회와 시간은 저만치 달아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동기부여의 힘이 강한 이 책 자체가 ’운명을 바꾸는’ 생각의 씨앗, 행동의 씨앗, 습관의 씨앗, 성격의 씨앗의 되어줄 것이다. 시작만 하고 끝을 보지 못하는 영어교재, 계획만 원대한 채 계속 쌓여가는 책들, 작심하고 장만했으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운동 기구들이 나를 심난하게 하지만, 이 책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어 계속해서 ’자극’을 받으려 한다. 이 책이 ’반복’의 지루함을 견디게 해줄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주문을 외워본다.

"성취 공식은 ’재능 더하기 연습’이다. 문제는 심리학자들이 재능 있는 이들의 경력을 관찰하면 할수록 타고난 재능의 역할은 줄어들고 연습의 역할은 커진다는 데 있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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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박서양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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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가 된 남자, 박서양!


역사적으로 볼 때, ’평등’이란 이념을 한 번도 제대로 실현해보지 못한 인간 사회가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다. 나면서부터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을 구분 짓던 ’미개한’ 신분제도가 많은 부분 폐지되고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고 하지만, ’평등 사회’를 대표하는 국가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신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어느 사회이든 차별적인 계급이 있고, 구별되는 계층이 있다. 인간의 존엄과 존재의 평등을 부르짖는 사회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신분은 존재의 ’가치’를 차별하고, ’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대접받아 마땅한 사람’과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을 나누는 견고한 신분의 벽, 그것은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천한 자의 기회를 박탈하는 원초적인 사슬이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높은 신분’을 차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인지도 모르겠다. 밟지 않으면 밟힐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도 ’미개한’ 신분제도 안에 갇혀 살았었다. 그 넘지 못한 신분 벽 중에서도 가장 견고한 벽 안에 갇혀 모든 계급으로부터 짓밟히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천대받았기에 바닥의 인생을 바닥이 뭔지도 모르고 살게 되는 사람들, 바로 ’백정’이라 불렸던 사람들이다. 한국인 최초로 양의사가 된 한 남자의 일대기를 조명한 <제중원 박서양>에 특별히 더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바로 ’백정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인 최초의 양의사’가 ’백정’ 출신이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 인생의 험난함과 그가 일구어낸 투쟁의 치열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왕은 김옥균 등이 개화를 명목으로 일본군을 끌어들인 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깨닫게 될 때마다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28).

백정의 아들이었던 박서양이 조선인 최초의 양의사가 될 수 있었던 기회의 문은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수치와 모욕을 안겨주었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열렸다. 아니, 그렇게 큰 역사의 소용돌이가 아니었다면 백정에게 ’배움’의 길이 열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개혁하고자 했던 신분제의 폐지는 ’의식’의 개혁 없이 진행된 일부 계층의 ’반역’이었다. 의식의 개화가 없는 개혁은 ’박서양’으로 하여금 백정이면서도 백정이 아니고, 백정이 아니면서도 백정인 삶을 살게 했다. 


"너에게는 열린 환경이 필요할 뿐이니까"(256).

바닥에서 살면서도 바닥인지 모르고, 바닥에서 일어서 본 적이 없기에 항상 그것이 이 세상의 전부인 양 믿고 살았던 박서양에게 바닥이 아닌 다른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자신을 제중원에 버린 아버지와 그를 변화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선교사 ’알렌’이었다. 

그러나 ’서양 의학’은 박서양에게 환희인 동시에 혼란이었다(237). 한 번 찍힌 ’백정’이라는 낙인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전히 선명했으며, 어디를 가든 누구와 만나든 ’백정’이라는 꼬리표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번번이 그를 좌절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그것을 떼어내지 못한 박서양에게 ’서양 의학’이라는 기회 자체가 그를 완전히 파괴해버릴 수도 있을 만큼 잔인한 희망이었다. 

박서양에게 필요한 ’열린 환경’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서양은 조금만 달콤하고 화려한 것을 맛보게 해주는 사람에게는 그 즉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정도로 쉽게 마음을 주고 비굴해졌다"(256). 그는 ’외과 의술’을 익히기 위해서도 고군분투해야 했지만, 그보다 더 절실했던 과제, 더 치열했던 싸움은 스스로 자존감을 기르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는 스승을 잘 만났다. "기억해라. 의술을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의술을 행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 어떻게 의원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이 정말 어려운 거지. 자존감을 만들고, 자신감을 기르고, 의원으로 사는 법을 배워라"(256).


"사람의 욕심과 허영이 얼마나 괜찮은 일들을 많이 이루어내는지 보아왔으니까요"(319).


역경을 극복한 위인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역경’이 오히려 변화와 성공의 동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가 된 박서양은 그것에 하나의 교훈을더 보탠다. "욕심과 허영, 자기 존재에 대한 분노만 가진 삶은 괴롭고 고통스러우며 지금의 육손이처럼 온전한 자존감만을 가진 삶은 움직임을 갖지 못한다"(319).


"자네는 어느 쪽인가?"(322)


<제중원 박서양>의 작가 이윤우가 ’박서양’의 삶을 재조명하며 진짜 보여주고자 한 핵심은 그의 삶 후반부에 등장한다. 



박서양이 일본에서 의술을 익히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망해가는 조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약소국을 삼키려는 열강의 다툼, 그 틈바구니에서 제 잇속을 채우기에 급급한 기회주의자들이 득실대는 조국은 ’독특한 지위’를 가지게 된 백정에게 주목했고, 그의 정체성을 의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일본유학을 했으니 친일파라고 믿더군. 그러면서도 서양 의학을 배웠으니 정동파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자네나 홍재우 나리와 인연이 있으니 황제를 지키고 싶어 하는 근왕파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고"(322).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어 돌아온 ’백정’ 박서양은 ’이용 가치’가 높았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내 위치를 헷갈려 할 여러 이름들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다른 목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나를 써먹을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 같다"(293).

박서양이 본격적인 의술을 익힌 곳은 그의 과거에 관심이 없는, 그를 단지 한 사람의 의사로 대해준 ’일본’에서였다. 그는 8년여의 교육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에게 조국은 여전히 그를 의사가 아닌 백정으로 대우하는 나라였다. "내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내가 배우고, 또 행했던 모든 의술들이 잡을 수 없는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302). 

그는 왜 일본에서 편히 먹고살지 않았을까. 조국은 그를 버렸다. 태어날 때부터 버려진 인생이었다. 조국은 그를 차별했고 멸시했고 증오했다. 조국에서 백정 박서양은 행복해서는 안 되는 인간 짐승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조국으로, 그것도 국운이 다한 조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전에는 그를 짐승만도 못하게 여기던 자들이 이제는 그를 ’이용’하려 했다. 그는 누구의 손을 잡느냐에 따라 부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멸시하고 모욕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제중원 박서양>이 전하는 감동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가 된 한 남자의 ’성공’이 아니라, 바로 그의 ’선택’에 있다. 마치 미스터리 소설의 퍼즐처럼, 이야기의 막바지에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제자리에 맞춰지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박서양이라는 한 남자의 삶의 그림은 우리 역사가 남겨준 소중한 유산이다. <제중원 박서양>의 이야기는 같은 레퍼토리만 지겹게 반복되는 삼류 통속극처럼, 참으로 질기게 따라붙는 ’백정’의 고난사가 지루할 만큼 거듭 반복된다. 그러나 그런 ’백정’의 삶이었기에 그 마지막 ’반전’에 더욱 전율하게 된다. <제중원 박서양>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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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요리 상식 사전
윤혜신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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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들려주고 일러주는 우리 먹거리 이야기!

만일 이 책을 ’엄마’가 떠나고 나신 뒤에 읽었다면, 엄마가 뚝닥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상이 생각나 많이 울었을 것 같다.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은 엄마가 사랑하는 딸에게 남기는 편지 같은 책이다.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이 들려주는 ’먹거리 이야기’에는 ’엄마 윤혜신’의 삶과 추억과 철학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막 씻어낸 향긋한 채소처럼, 잘 익은 진한 장맛처럼, 정성으로 차려주신 생애 최고의 생일상처럼 신선하고 정갈하고 맛깔스럽고 푸짐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잔소리가 많다고 했던가. 엄마가 차례주신 밥상을 당연하게 받아먹을 줄만 아는 철부지 딸에게 이것저것 꼼꼼하고 살뜰하게 일러주시는 ’엄마의 목소리’는 다정하지만 단단하다. ’엄마’로부터 살림 비법을 전수받는 딸의 입장에서 어떤 책임감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는 ’살림’과 별 상관 없이 사는 사람이다.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느라 살림을 익힐 겨를도 없었지만, 집에서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애초에 배울 마음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명절에 한 번씩 엄마를 도와 음식을 만들 때마다, ’가족이 모두 모여 한 끼 배불리 먹자고 이 중노동을 꼭 해야만 하나’ 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음식 하나 만드는데 어쩌면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정말 중노동이 따로 없다. 

다른 요리에 비해 한식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고 들었다.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을 읽으면서 배운 것도, 음식 재료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각종 먹거리를 다듬고, 씻고, 다시 손질하고, 썰고, 익히고, 삭히고, 갈무리 하고, 상을 차리기까지 어느 한 과정도 생략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자신있게 요리할 줄도 모르면서 그동안 밥상에 앉아 이런 저런 투정을 부렸던 배은망덕을 깊이 반성했다.

’엄마 윤혜신’이 가르쳐주는 ’착한 요리’는 그대로 살아 숨쉬는 ’자연’ 그 자체이다. 자연이 간직한 신선하고 싱그러운 맛을 그대로 밥상으로 옮겨 놓는다. 똑똑한 머리로 각종 가공 식품들을 만들어내느라 자연의 맛을 망쳐버리고 몸을 상하게 하는 우리는 정말 얼마나 어리석은가. 

또 하나 해치우듯 끼니를 ’떼우는’ 우리에게 ’엄마 윤혜신’이 가르쳐주는 ’착한 요리’는 바로 정성과 사랑, 그리고 여유이다. ’가사 노동’을 능력없고 힘없는 ’여자’들이나 하는 일로 여겨온 역사와 투쟁하느라 아예 ’가사 노동’을 없어버리고 있는 가정들도 많은데,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을 읽으면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가사 노동의 가치와 가족이 함께 하는 밥상의 소중함이 수없이 되새겨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을 읽으며 '우리의 것'에 대해 후손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고 물려줄 것이 없는 못난 조상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긴장감이 느껴지도 했다.

이 책은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서 장금이가 발견한 엄마의 요리 비법서처럼 특별하고, 정답고, 소중한 ’엄마’의 유산이다. ’돌봄’와 ’치유’의 힘이 느껴지는 착한 밥상, 바로 내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의 위력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번잡스럽다는 이유로, 편리를 이유로, 우리 음식, 우리 밥상을 잃어버리고 유해한 가공식품에 길들여지고 있는 나의 몸과 생활이 실상은 얼마나 가난한 삶인지 생각할수록 안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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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성경 : 생활풍습 이야기 상(上) - 성경의 비밀을 푸는 생활풍습 이야기 열린다 성경
류모세 지음, 최명덕 감수 / 두란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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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가장 가까이에 두고 함께 읽는다.

2009년 기독출판협회에서 주관하는 ’신앙일반’ 부문 ’최우수상’에 빛나는 <열린다 성경>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책을 만났다. 5,6권은 성경의 ’생활풍습 이야기’ 상권과 하권이다. 나는 요즘 성경 본문을 연구할 때,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최우선순위로 참고하고 있다.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최우선순위로 펼쳐 보는 것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문화와 지리, 풍습에 대한 오해로 성경 말씀을 ’오역’할까 두려운 마음 때문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로서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처음 읽고 받았던 그 첫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성경 말씀 안에 담긴 풍성한 의미를 깨닫는 일이 꿀처럼 달았지만, 그보다 성경의 ’진의’를 곡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어떤 본문은 정반대로 해석을 해서 가르쳐온 것이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배경’적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충격 뒤로, 나는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성경 옆에 두고 성경과 함께 읽고 있다. 

정말로 오랜 세월 많은 신앙인과 또 학자들이 ’성경’을 연구해오고 있지만, 아무래도 성경은 인간이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말씀 안에 숨겨진 보석을 캐낼 때마다 온 영혼을 가득 채우는 환희와 감동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이 고귀한 보물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그러한 말씀의 보물을 찾아가는데 <열린다 성경> 시리즈는 그 어떤 책보다 가장 신뢰할 만한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만나게 된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특별히 <열린다 성경>을 통해 이스라엘의 문화와 지리, 풍습 등을 쉽고, 빠르고,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성경의 비밀을 푸는 생활풍습 이야기!

성경을 읽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에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적인 삶의 배경 안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록될 당시’의 상황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 이야기다.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역사’로 읽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이었을 뿐이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무의미하게, 또 때로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16)


특별히 <열린다 성경> 시리즈 5권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생활풍습’이다. 저자는 ’성서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동기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여기 상권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옷감을 만드는 재료에서부터 옷감의 세택과 세제, 옷의 종류, 옷에 나타난 사회적 권위 등 주로 ’옷’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어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고기잡는 방법(그물)과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 성서시대의 교육 방법과 아버지의 자녀 교육 방법까지 성경 안에 기록된 다양한 ’삶의 현장’을 여행하며,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성경말씀의 ’진의’를 생생하게 탐구한다.






성서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 말씀도 그냥 기록된 것이 없다!

’생활풍습 이야기’는 성경을 읽을 때,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주목하지 않고 그저 스쳐지나가게 되는 말씀 속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사야와 아하스가 왜 ’세탁자의 밭’에서 만났는지(사7:3), 다윗이 양털 깎는 축제를 벌인 나발에게 왜 분노했는지, "꺼져가는 심지"(마21:20)의 재료가 무엇인지 배우는 동안 성경말씀을 보는 눈이 환해지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사도 바울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루디아’가 ’자색 옷감’ 장수였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특별히 "루디아와의 만남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통해 바울의 여정을 유럽 쪽으로 틀게 하신 성령께서 친히 중재하신 ’특별한 만남’이었다"(46)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왜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댔을까?"를 읽으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그 믿음대로 나음을 입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안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큰 비밀이 숨어 있다. ’겉옷’의 의미와 그것을 만지는 행위에 담긴 의미도 새로웠지만, 가장 큰 감동을 느낀 부분은 바로 여기이다. 

기억하는가, 예수님이 혈루증을 앓는 여인에게 선포했던 이 말씀을! "예수꼐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딸아"라고 부르신 말씀 속에 크나큰 은혜가 들어있다.  

"여인은 허락도 없이 함부로 옷단 술을 만짐으로써 예수님의 권위를 손상시켰다. 1세기 당시의 랍비 문헌은 남의 옷단 술을 함부로 만질 경우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옷단 술을 만지고도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옷단 술 소유자의 자녀들이었다."(110)

이밖에도 왜 아들을 낳지 못하는 한나가 그렇게 불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요셉과 마리아가 어린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하룻길을 떠난 후에야 겨우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생활풍습 이야기’를 통해 모든 궁금증이 해결된다. 특별히 성서시대의 자녀 교육과 특별히 ’아버지 교육’에 담긴 풍습을 이해하게 되면서,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깊은 은혜를 마음에 새기며 생생하게 파고들었다.

<열린다 성경> 시리즈는 성경 공부를 위한 참고도서를 문의하는 성도들에게 일순위로 추천하고 있는 도서이다. <열린다 성경>은 생쌀처럼 읽히는 성경말씀을 찰지고 기름기 흐르는 ’밥’으로 만들어준다. <열린다 성경>과 함께 먹는 성경말씀의 밥이 아주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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