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 유경찬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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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1998년이었던가.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었을 때,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구의원 출마자가 없었다. 투표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뒤늦게 단일 후보로 나온 분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나중에 그분의 이력을 듣고 경악했었다. 초등학교 졸업에 무직이있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출마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분을 보며 정치라는 것이 참 재밌으면서도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 구의원의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분과 친분과 생겨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다. 구의원이라는 직함을 보고 사람들이 몰여들기 시작하더니, 구의원이라는 직함으로 대출을 받아 사업장을 열고, 사무실도 차렸다는 것이다. 명절 때면 사무실에 선물도 꽤 쌓인다고 했다. 가까운 재래시장의 상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지지 세력도 생겼다고 했다. 가장 하부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구의원’이라는 직함에도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것을 보고 왜 다들 정치에 목을 매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우리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차우셰스쿠와 엘레나가 휘둘렀던 철권 정치를 알지 못했을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아니 내가 살아온 동시에 지구의 한 귀퉁이에서 무지막지한 정치적 촌극과 잔인한 독재가 벌어졌었는데, 나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 <차우셰스쿠, 악마의 손에 키스를>은 공산주의자의 탈을 쓴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일대기를 통해 그가 어떻게 장기간의 독재체제와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차우셰스쿠, 그와 루마니아 역사를 몰랐던 것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과 대치 중이고, 독재 권력의 탄압정치를 경험한 바 있는 우리에게, 루마니아의 역사는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차우셰스쿠>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 맞다면, 정말 끔찍하다. 

터무니 없고 어처구니 없는 촌극이 따로 없다. 철학도 없고, 정치적 신념도 없고, 성찰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도력도 없는 지도자. 공식적인 교육은 초등학교에서 끝이 나고, 원래 책을 가까이 하는 공산당원도 아니여서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이해도 형편 없던 상태에서 오직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리를 줄줄 외우는 것이 전부였단다. 게다가, 무지와 경망스러운 행동은 물론, 현실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채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 정도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혔던 정치가 차우셰스쿠. 이런 사람이 어떻게 공산당 서기장을 거쳐, 4선 대통령이 될 정도로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을까. 적개심 가득 찬 군중들의 야유 속에 아내 엘레나와 함께 서둘러 진행된 재판에서 즉결처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오래도록 지도자로 군림했었다는 사실에 어떤 절망과 뒤늦은 분노를 느낀다.

독재가 차우셰스쿠가 연마한 것이라고는 오직 정치적 권모와 술수였다. "공산당 내의 권력투쟁을 보면서 차우셰스쿠는 정치적인 술수를 연마했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마키아벨리적 수법에도 능하게 되었다"(187). 변절과 충성심의 경계에 선 천박한 정치권력이 조직 폭력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런 터무니 없는 독재가 가능했던 이면에는 복합적인 기제가 서로 맞물려 있다. 루마니아 공산당 안의 혼합적 요인이라는 특별한 정치 상황과 라이벌 그룹의 형성, 음모, 원색적 민족주의의 작동, 그리고 여기에 체포, 희생양, 비밀경찰, 뒷조사, 숙청, 추방, 우상화, 탄압, 고문과 협박, 특별 감시, 국유화, 통제경제, 집단농장 등과 같은 전형적인 독재권력의 공포정치가 더해졌다. 또하나 안타까운 사실은 전쟁 기간 중 처음에는 독일에게, 다음에는 소련군에게 철저히 약탈당했던 루마니아의 국가적 트라우마가 루마니아 국민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심지어 소련 내부에서조차 차우셰스쿠 시대의 루마니아처럼 강압체제가 횡행했던 곳은 없다. 루마니아 비밀경찰은 루마니아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318). 

비밀경찰의 위협과 협박에 순종적인 자세를 보인 루마니아에는 무명의 반체제 투사들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특이한 기질에 넘쳐나는 정보원, 상호 불신의 분위기, 차우셰스쿠 정권의 독특한 면까지 곁들여지자 저항 기미의 싹은 뿌리 내리지 못했다. 사회적 불만 억제에 모든 역량이 동원됐고, 자식인들의 활동에 관한 한 최소한의 노력으로도 그런 성과는 쉽사리 거둘 수 있었다. 루마니아의 지식인들과 민초들 사이의 역사적으로 오래된 상호 불신은 비밀경찰의 역할을 수월하게 만들었다"(278).

이러한 정치 분위기일 때, 반드시 나타나는 무리가 있다. 바로 권력에 편승하여 자기의 이를 챙기는 천박한 기회주의자이다. 국가의 주요 직책에는 말 잘 듣는 사람, 체제에 충성심을 보이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은 고속 승진의 대가를 누린다. 

여기에 언론까지 합세를 하면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다. 차우셰스쿠 역시 그러한 기민함을 보였는데, 그는 특별히 자기의 위상에 도움이 되는 닉슨이나 브란트 수상 같은 사람들만 환대하고, 외국 저명인사들에 대한 융숭한 대접으로 해외에서 그의 지명도를 높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반드시 유명한 언론인들을 대동하게 마련이었고, 언론인들 또한 당시 루마니아 상황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32). 서방 세계도 루마니아의 정치 상황과 차우셰스쿠라는 독재자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는 즉결처분되었다. 그러나 암울했던 독재의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다. "그의 수하였던 수많은 공산당 비밀 정보원들은 여전히 권력의 상층부에 포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에드워드 베르가 루마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혁명’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표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루마니아 혁명이 미완의 혁명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지도자는 가고, 국민들은 남았다. 영도자는 사라졌지만 그 체제나 기구, 또 통치 방식에 대항해서 투쟁했던 사람들이 없애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잔재들은 놀랍게도 아무 탈 없이 잘 가동되고 있다"(11). "권력자가 바뀌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을 계속 곱씹어본다.

<차우셰스쿠>를 읽으며 생각해본다. 역시 약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연합과 연대라는 것을 말이다. 부패한 절대 권력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 그것은 약자들의 ’연대’가 아닐까. 지식인들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냉소적 태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보았다. 그리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철지난 문화처럼 촌스럽기 그지 없는 교훈이 가슴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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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블랙홀 - 자기 회복을 위한 희망의 심리학
가야마 리카 지음, 양수현 옮김, 김은영 감수 / 알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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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에 구멍이 뚫린 느낌, 
병과 건강, 이상과 정상 사이에서!



만성적 공허감. 마음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느낌에 익숙하다.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못 견디게 시린 날이 있고, 또 그럭저럭 견딜만 한 날이 있을 뿐이지, 그 구멍을 메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 마음에 뚫린 구멍도 나는 그 어쩔 수 없는 고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의 블랙홀>을 읽으면서 그것은 실존적 고독과는 구별되는 일종의 병리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는 생각이 일반화 되어 있다. 현대인은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다소 극단적인 진단이 통용되기도 한다. 때문에 주변 누군가로부터 "살기 괴롭다", ’힘들다"는 호소를 들어도 우리는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러려니 한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마음의 블랙홀>의 저자 가야마 리카는 ’진단’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환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존의 정신의학 개념과 용어로 설명하고 치료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정신의학의 기본인 ’병, ’이상’과 ’건강’, ’정신’의 구별은 이제 거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살기 괴롭다’, ’힘들다’고 호소하는 젊은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10). 

저자는 병과 건강, 이상과 정상 사이에 있어야 할 간극이 어느새 한없이 낮아졌다고 말한다. 이상과 정상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마음의 블랙홀>은 병이지만 병이라 할 수 없고, 병은 아니지만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을 포착해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에 구멍이 뚫린 느낌’, ’무언가 소중한 것이 결여된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도처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학교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도 있고, 작가나 뮤지션 등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도 있다. 즉, 문제는 객관적인 상황에 관계없이 "살기 힘들다", "허무하다",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고 호소한다는 데 있다(36-37). 

<마음의 블랙홀>은 특별히 이런 느낌을 호소하는 젊은층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과 느낌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을 진단하기 위해 기존의 정신의학 개념과 구별되는 세 갈래 길을 제시한다. 그 세 갈래란 ’충족되지 않는 나, 상처받기 쉬운 나’, ’몇 명의 나, 진짜 나’, ’마지막 보루로서의 몸’이다(11). 이것은 이 책의 목차이기도 하다. <마음의 블랙홀>은 현대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압박과 그 괴로움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정상과 이상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진달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괴로움의 실체, 그 괴로운 삶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마음의 블랙홀>은 그 처방을 고민하는 단계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상황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인데, 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러한 느낌은 인간이 가진 실존적인 고독과 어떤 차별을 가지는가? 왜 우리의 마음은 이렇듯 조각나고 있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주관적인 느낌, 다시 말해 나의 내면이 느끼는 부정적 생각을 조금은 객관화시키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스스로 객관화해보고,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부정적인 느낌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메울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또 하나, 그러한 고통을 사람들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것이 다 그래",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넌 살만 해 보이는 데 뭘" 등의 반응이 실제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절망이 될지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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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별장의 쥐
왕이메이 글, 천웨이 외 그림, 황선영 옮김 / 하늘파란상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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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립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을 가졌습니까? 내가 어릴 적, 선생님 한 분이 신장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어린 자녀가 좀더 자랄 때까지, 딱 10년만 더 살고 싶다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의 늙으신 부모님은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겠다고 울며 고집했지만, 그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리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줄 마지막 한 사람은 부모님이 아닐까 합니다.

'자녀 교육'이라는 키워드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릴 때 고생을 시키야 한다'는 주제의 글을 찾아보기 위해 검색을 했는데, 가장 먼저 검색되는 글들은 모두 '자녀 교육 때문에 부모의 고생이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시키느라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새삼 깨달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힘들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어린아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서 스트레스성 탈모 증상도 나타난다는 보도를 듣고 경악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매고 축쳐진 채 걸어가는 초등학생들이 가엽습니다. 폭력적인 청소년들이 가엽습니다. 높은 이상을 잃어버린 채 현실에 매몰되는 청년들이 가엽습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부모님들의 극성스러움이 자녀를 자꾸 몰아세우는 것 같습니다. 힘들 때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이 그립습니다. 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립습니다. 인적 자원이다, 인재 양성이다, 시끄러운 사회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무한경쟁 세계로 내몰고 있는 사회를 살아내기가 버겁습니다. 하루하루 지쳐갈 뿐입니다. <장미 별장의 쥐>라는 얇은 동화책을 읽고 나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면, 당신도 외로운 겁니다.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이 그리운 겁니다. 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리운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보다 먼저 '교훈'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훈을 담은 이야기인가,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심어줄 것인가 하고 말이죠. <장미 별장의 쥐>는 교훈적인 측면에서 여느 동화와는 구별되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화책에 흔히 등장하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말하지도 않고, 따뜻한 이야기지만 해피앤딩도 아닙니다.

홀로 도시 밖 작은 별장에서 사는 장미 할머니와, 떠돌이 쥐 쌀톨이, 그리고 늙은 고양이 뚱이가 주인공입니다. 어느 해 겨울, 쌀톨이라는 쥐 한 마리가 장미 할머니를 찾아와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쌀톨이는 지하창고에 틀어박혀서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쌀톨이가 죽었는 줄 알고 땅에 묻어주려 했습니다. 그때 쌀톨이가 눈을 반짝 떴습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장미 할머니를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늙은 고양이 뚱이는 쥐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쓸모 없는 고양이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장미 할머니는 그런 뚱이가 심술을 부려도 나무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어두운 밤에 가장 무서운 것은 외로움"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장미 할머니는 심술을 부리다 다친 뚱이를 가만히 안고 별장으로 돌아와 다친 발에 붕대를 감아 주었습니다. 

장미 할머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쌀톨이와 뚱이에게 잘 해주려고 극성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무조건 쌀톨이와 뚱이를 오냐 오냐 하지도 않았습니다. 쌀톨이에게는 "우리 집 울타리와 대나무 발을 갉아 먹지만 않는다면 여기 살아도 좋단다"라고 최소한의 규칙을 정했고, 뚱이가 찾아왔을 때는 쌀톨이와 싸울까봐 선뜻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의 집을 쌀을 몰래 가져다 쌓아놓는 쌀톨이를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함께 겨울을 보낼 친구가 생긴 것을 기뻐했습니다. 쓸모 없는 고양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양이 뚱이도 똑같이 대해주었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은 무엇일까요?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좋아했던 쌀톨이는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할머니에게 감동해서 할머니를 위해 술을 끊었습니다. 장미 별장을 떠나서도 늘 할머니를 그리워했습니다. 달팽와 새, 강아지는 상처가 아문 뒤 장미 별장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쌀톨이는 다시 별장을 찾아왔고 뚱이는 장미 별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쌀톨이와 뚱이가 장미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미 별장에 나란히 앉아 긴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은 아름다워서 더 슬펐습니다. 장미 할머니와의 긴긴 이별을 슬퍼하는 쌀톨이와 뚱이처럼,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함께 울고 싶습니다. 힘들 때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의 각박한 삶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할머니가 쌀톨이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그때처럼, 쌀톨이도 할머니를 위해 울고 있습니다. 한 번을 살더라도, 한 번을 사랑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는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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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네 방향 Dear 그림책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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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방향의 시간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인생극장!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이라는데 심오하기 그지 없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수준이 높아 보입니다. 빨리 크고 싶은데 시간이 더디게만 흘러간다고 느끼는 어린이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는데 시간이 저 혼자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저에게는 시간의 잔혹함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시청 광장의 시계탑 속에 자리잡은 ’시간’이 600년 동안 그 땅에서 나고 자라고 죽어간 인생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무서웠어요. 끊임없이 피고 자라고 시드는 꽃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렇게 피었다가 지고, 피었다가 지고, 피었다가 지는 인생들처럼, 언젠가는 나도 이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사라지고 잊혀지겠지요.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어쩐지 오싹해집니다.









"유렵의 한쪽, 어느 오래된 도시 한가운데 
사방으로 시각을 알려 주는 시계탑이 서 있어요. 
여섯 시, 아홉 시, 한 시, 다섯 시, 여덟 시, 열두 시, 
시계가 알려 주는 똑같은 시각에 
동, 서, 남, 북,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걱정을 하고 어떤 일에 즐거워할까요? 
백 년 전, 이백 년 전, 삼백 년 전, 사백 년 전, 
서로 다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커다란 금빛 시계를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요." (뒷 표지)


시내 한가운데 네모반듯한 광장에는 시계판 네 개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네모난 시계탑이 있습니다. 광장의 동서남북으로 서 잇는 집들마다 시계를 바라보는 창문이 있어요. 첫 번째 창문은 동쪽 집에 나 있는데, 그 창문이 있는 방은 부엌입니다. 두 번째 창문은 남쪽 집에 나 있는데, 그 창문이 있는 방은 누군가의 작업실입니다. 세 번째 창문은 서쪽 집에 나 있는데, 아이들 방이 들여다 보여요. 네 번째 창문은 북쪽 집에 나 있는데, 그 창문 안쪽에는 항상 거실이 있었어요(14).

몇백 년 동안, 날마다 광장에서는 인생극장이 펄쳐져 왔어요. 이 책은 광장의 시계가 정각을 알릴 때, 시계판이 보이는 네 집에서 각각 어떤 드라마가 펼쳐지는지 보여주는 책이에요. 100년에 한 번씩, 다른 시대, 다른 계절에 각각 그 네 개의 창문을 통해 어떤 인생극장이 펄쳐지고 있는지 구경해보아요(15).

그런데 왜 이 책은 왜 네 개의 창문, 즉 네 개의 방향으로 인생을 관찰할까요? 네 개의 창문은 세상의 네 방향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종교적인 축제와 관련해서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동쪽의 부엌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존을,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일을 하고 있는 남쪽의 작업실은 발명과 관련된 문화를, 가족들의 관계와 아이들의 꿈을 보여주는 서쪽의 아이들의 방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세대와 인간의 삶(꿈, 사랑, 걱정, 슬픔 등)을, 북쪽의 거실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아이들 방과 비슷한데, 이곳에서는 이웃관의 관계와 한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60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펼쳐진 인생극장이 한 눈에 보고나니, ’이런 것이 인생이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의 네 방향>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걱정을 하고, 같은 일에 즐거워하는 인간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세월 따라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변한다 해도 근본적인 인간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지금 우리 우리 인생도 "몇 세기 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된, 그리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질 연극 속으로"(79) 들어와 있는 겁니다.

<시간의 네 방향>은 갓 태어난 아기가 시간이 지나면 증조할아버지 되고, 다시 백 년이 지나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고, 또 백 년이 지나면 그들을 기억하던 아이들도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덤덤하게 알려주네요. 슬프지만 나도 이제 그러한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 도시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살다가는 인생, 서로 사랑하며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요. 사랑만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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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14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새로운 상상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가
최근에 출간 되었습니다.
 
똥 싸는 집 - 세계의 화장실 이야기
안나 마리아 뫼링 글, 김준형 옮김, 헬무트 칼레트 그림 / 해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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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화장실 이야기


여행을 떠나지 전에 여행지에 관한 정보 중, 내가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바로 ’화장실’ 문화이다. 음식이 안 맞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화장실 환경이 안 맞는 것은 내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매년 해외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팀들의 보고를 들을 때마다 내가 받는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바로 ’화장실 문화’였다. 실제로, 중국의 한 시골 마을로 선교 여행을 갔을 때, 칸막이가 없는 재례식 화장실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배설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보고 경악하여 혼자 도망쳤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제목도 원색적인 <똥 싸는 집>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화장실의 형태를 소개해주며 그에 얽힌 짥막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새롭게 배우는 것도 있고, 끔찍해 보이는 화장실도 있고 다양한 화장실 형태가 전체적으로 무척 흥미로웠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며 살고 있는 것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먼저 WC의 정확한 뜻이다. 흔히 화장실을 표시할 때 ’WC’라는 약자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수세식 화장실(Water Closet)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세식이 아닌 화장실 문에 WC라고 표시하는 것은 오기인 것이다. 참고로, 나는 WC라고 쓰여 있는 재례식 화장실을 본 적이 있다. 또 하나, 지금처럼 물로 씻어내는 비데나 휴지가 계발되지 전에, 돌멩이로 밑을 닦았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다. 아프지 않았을까? 잘못하면 피가 날 것 같은데 말이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는 그렇게 생활하고 있지만, 애완 동물들이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배설을 하는 것처럼 인간들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배설을 하며 ’똥’(오줌 포함)과 아주 가까이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이힐이 거리의 똥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이야기처럼, 숲이나 자연에서 볼일을 해결할 수 있는 시골에서보다 오히려 로마를 비롯한 파리나 독일의 도시가 똥과 오줌 냄새로 진동을 했다고 한다. 큰 도시에서는 양동이랑 기다린 천을 들고 다니는 화장실-아줌마랑 화장실-아저씨가 있어 급한 사람들에게는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니, 생각할수록 굉장히 우스꽝스럽다. 

그런데 가장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는, 1855년 파리에 처음 길거리에 공중 화장실이 생겼는데, 모두 신사용(85개)이고 19년이 지나서야 숙녀용이 딱 한 개 생겼다는 기록이다. 또 "여자들은 이틀에 한 번 똥을 싼다고 학자들이 발표를 한 적이 있어서"(46), 여자 화장실을 별로 짓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화가 난다. 똥을 싸는 일에도 차별을 받아야 하다니!!! 죄수들이 노 젓는 배에서는 쇠고랑을 채워 놓아서 그냥 앉은 자리에서 똥과 오줌을 쌌다(18)는 이야기도 씁쓸하다. 뛰어난 이성으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간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다!

독일 저자의 책인데 창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임금님의 ’매화틀’이나 그 집안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었다는 다양한 모양의 ’요강’ 이야기 등 우리나라의 화장실 이야기가 꽤 상세하다. 아마도 번역 과정에서 첨가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독특한 화장실 자체도 재밌지만, 특별히 더 이 책이 재밌게 느껴지는 것은 ’번역’의 힘인 것 같다. 어린이의 눈높이를 억지로 맞춘 책이 아니라, 동심을 가진 번역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옮긴이가 누구인지 관심 있게 찾아봤는데, 소개글이 참 독특하다. 옮긴이의 소개글을 읽으며 감명받기는 또 처음이다.

이 책을 읽고 어린이날 선물로 주려 했는데, 그냥 내가 가지려고 한다. 은근히 소장 욕심이 생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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