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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별장의 쥐
왕이메이 글, 천웨이 외 그림, 황선영 옮김 / 하늘파란상상 / 2010년 4월
평점 :
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립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을 가졌습니까? 내가 어릴 적, 선생님 한 분이 신장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어린 자녀가 좀더 자랄 때까지, 딱 10년만 더 살고 싶다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의 늙으신 부모님은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겠다고 울며 고집했지만, 그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리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줄 마지막 한 사람은 부모님이 아닐까 합니다.
'자녀 교육'이라는 키워드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릴 때 고생을 시키야 한다'는 주제의 글을 찾아보기 위해 검색을 했는데, 가장 먼저 검색되는 글들은 모두 '자녀 교육 때문에 부모의 고생이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시키느라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새삼 깨달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힘들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어린아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서 스트레스성 탈모 증상도 나타난다는 보도를 듣고 경악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매고 축쳐진 채 걸어가는 초등학생들이 가엽습니다. 폭력적인 청소년들이 가엽습니다. 높은 이상을 잃어버린 채 현실에 매몰되는 청년들이 가엽습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부모님들의 극성스러움이 자녀를 자꾸 몰아세우는 것 같습니다. 힘들 때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이 그립습니다. 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립습니다. 인적 자원이다, 인재 양성이다, 시끄러운 사회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무한경쟁 세계로 내몰고 있는 사회를 살아내기가 버겁습니다. 하루하루 지쳐갈 뿐입니다. <장미 별장의 쥐>라는 얇은 동화책을 읽고 나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면, 당신도 외로운 겁니다.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이 그리운 겁니다. 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리운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보다 먼저 '교훈'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훈을 담은 이야기인가,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심어줄 것인가 하고 말이죠. <장미 별장의 쥐>는 교훈적인 측면에서 여느 동화와는 구별되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화책에 흔히 등장하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말하지도 않고, 따뜻한 이야기지만 해피앤딩도 아닙니다.
홀로 도시 밖 작은 별장에서 사는 장미 할머니와, 떠돌이 쥐 쌀톨이, 그리고 늙은 고양이 뚱이가 주인공입니다. 어느 해 겨울, 쌀톨이라는 쥐 한 마리가 장미 할머니를 찾아와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쌀톨이는 지하창고에 틀어박혀서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쌀톨이가 죽었는 줄 알고 땅에 묻어주려 했습니다. 그때 쌀톨이가 눈을 반짝 떴습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장미 할머니를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늙은 고양이 뚱이는 쥐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쓸모 없는 고양이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장미 할머니는 그런 뚱이가 심술을 부려도 나무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어두운 밤에 가장 무서운 것은 외로움"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장미 할머니는 심술을 부리다 다친 뚱이를 가만히 안고 별장으로 돌아와 다친 발에 붕대를 감아 주었습니다.
장미 할머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쌀톨이와 뚱이에게 잘 해주려고 극성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무조건 쌀톨이와 뚱이를 오냐 오냐 하지도 않았습니다. 쌀톨이에게는 "우리 집 울타리와 대나무 발을 갉아 먹지만 않는다면 여기 살아도 좋단다"라고 최소한의 규칙을 정했고, 뚱이가 찾아왔을 때는 쌀톨이와 싸울까봐 선뜻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의 집을 쌀을 몰래 가져다 쌓아놓는 쌀톨이를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함께 겨울을 보낼 친구가 생긴 것을 기뻐했습니다. 쓸모 없는 고양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양이 뚱이도 똑같이 대해주었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은 무엇일까요?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좋아했던 쌀톨이는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할머니에게 감동해서 할머니를 위해 술을 끊었습니다. 장미 별장을 떠나서도 늘 할머니를 그리워했습니다. 달팽와 새, 강아지는 상처가 아문 뒤 장미 별장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쌀톨이는 다시 별장을 찾아왔고 뚱이는 장미 별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쌀톨이와 뚱이가 장미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미 별장에 나란히 앉아 긴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은 아름다워서 더 슬펐습니다. 장미 할머니와의 긴긴 이별을 슬퍼하는 쌀톨이와 뚱이처럼,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함께 울고 싶습니다. 힘들 때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의 각박한 삶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할머니가 쌀톨이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그때처럼, 쌀톨이도 할머니를 위해 울고 있습니다. 한 번을 살더라도, 한 번을 사랑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는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