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 해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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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승리.

 
도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명제를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책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산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성공한' 도시 생활을 동경하면서도, 도시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를 비판하며 도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양면적 태도를 취해왔다. 성공을 위해 도시로 몰려들기도 하고, 부자들은 도시에서의 성공을 만끽하기 위해 도시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빈과 부를 동시에 양산하는, 양날의 칼같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도시'가 과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일까?

"전 세계 학자들과 언론이 극찬한 화제의 책"이며,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책을 비판하기가 겁이 나지만, 게다가 단 한 권의 책을 단 한 번 읽고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이 책은 전형적인 개발주의자적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생태적 환경가치가 훼손되더라도 여가편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제지상주의적 정책으로 욕을 많이 '먹고' 계시는 우리의 최고 통치자처럼 말이다. (물론, 최고의 지성답게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도 환경 문제를 비롯해 도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며, 정책적 대안까지 제시하는 바이다.)

'도시'라고 하면 아마 가장 먼저 '혼잡'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쥐'를 밀집된 공간 안에 모아놓으면 쥐가 난폭해진다는 실험 결과를 들은 적이 있다. 도시의 혼잡한 이미지는 내게 높은 밀도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도시의 승리>에서 저자는 도시의 혼잡성을 '협력'이라는 단어로 대치해 놓는다. "도시는 특히 인류의 가장 중요한 창조물인 지식의 공동 생산이라는 협력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방갈로와 런던의 혼잡한 공간에서 아이디어들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원할하게 흐르고 있으며, 사람들은 인재들 주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높은 물가를 기꺼이 감당하려고 한다", "도시는 인류를 가장 밝게 빛나게 만들어주는 협력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많이 배운다"(435). 논리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도시에 몰려 있는 금융자본과 그래서 형성된 노동시장 자체를 성공의 '기회'로 여기는 저자의 논리가 나는 못마땅하다. 비유컨대, 강남에 모여사는 부자들이 많은 세금을 투자해 강남을 '살기 좋은 동네'로 가꾸어가고, 범죄를 줄이기 위해 경찰 배치를 늘리고, 자본을 집중화해 노동시장을 형성한다면, 아직 성공하지 못한 비강남인, 비도시인은 강남에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 경비, 종업원 등의 일자리가 많다고 기뻐해야 할까. 강남에서 노동임금자로 일하며 살기 좋게 가꾸어놓은 강남의 공원, 편의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품격의 삶인가 즐거워 해야 할까. 강남에 집중된 교육 인프라가 대단하다고 우러를 일인가. 우리나라 국민은 개발이 집중된 강남을 세계에 자랑하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곳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박수하며 환영해야 할까. 성공한 도시인이 되지 못한 루저의 비딱한 시선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뉴요커들이 다른 지역의 미국인들에 비해 심장병과 암에 걸릴 확률이 미국 전체 평균에 비해서 더 낮다는 '흥미로운' 통계와, 숲에 사는 사람들은 숲을 태우며 살기 때문에 콘크리트에 사는 것이 훨씬 더 친환경적이라는 '기막힌' 해석이 읽는 즐거움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도시의 승리>는 새로운 지식이라기보다, 의식의 전환을 주장하는 쪽이 더 가까운 책이라고 본다. 똑같은 문제를 놓고도 단점에 집중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것이 아니라, 극대화된 장점에 집중하는식의 의식의 전환. 적어도 "도시화는 번영과 행복의 열쇠다"라는 그의 명제에 대해 도대체 행복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지 정도는 되묻고 싶어진다. 행복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라는 딴지를 걸고 싶기 때문이다. 편안(편리)의 추구가 평안이라는 행복까지 보장하는지 다시 물어야 하고, 다시 점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에는 이상을 가장한 헛소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도시를 진단하고 도시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의 방향 제안은 새겨들어야 할 소리도 많다. 이 글 자체가 무식한 독자의 헛소리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최고의 지성에게 미리 사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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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8-0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고 갑니다.

ㅇㅇ 2015-08-25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고 나서 뭔가 껄끄럽기는 했는데 님의 글을 읽으니 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느낌`에서 끝나는데 그 느낌을 글로 깔끔하게 전하는 능력이 부럽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charlie 2016-07-1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유익한 서평 잘 읽고갑니다. 저자가 말한 도시의 다양성(양적측면의..)이 과연 개인과 나아가 도시 전체로의 발전(질적측면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개인의 영위와 평안(?)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생활양식이라고 볼 수 있는 도시생활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러한 태도가 도시를 `찬양`하는 축에 속하는 것인지도 의문이구요. 서평을 읽고 오히려 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김유진 2016-07-28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근린녹지면적과 실제 통계의 에너지 소비량은 다른거 아닐까 싶어요. 보기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것 같은 고밀도 단지가 실제론 출근길을 단축시켜주니까요.

글쎄요. 2017-08-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이네요.
반도체가 압축할수록 전기 사용량이 적어지고 발라지고 효율이 높아지듯이 인류는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발전하것이죠. 인간이기에 할수있는 멋진 일 아닌가 싶습니다. 개발이 나쁜거라는 환경론자들은 진정한 환경 보호가 무엇인지 좀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도 함게 하는것입니다.
괴학적으로 봐야지 감성적으로만 보면 미신이 되는것입니다.
 
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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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하게 질주하는 건 용서 못해", 자극 없는 삶을 비틀다.

(내 기억 속에서) 킬러에 대한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최초의 시도는 영화 '레옹'이었다. 그것은 심상치 않은 역발상이었고, 슬픈 충격이었다. 우린(친구들) 울어버렸다. 끝에 주인공이 죽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킬러'를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우유를 마시고 화초를 키우며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랑으로 소녀를 지켜주는 킬러와 그 소녀를 해치려 하는 악당 형사. 그 묘한 아이러니가 선인과 악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틀었다.

이사카 코타로, 그의 작품에서도 선인과 악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비틀린다. 이사카 코타로는 '킬러'를 사랑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킬러에게 동정심을 갖게 만들며,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킬러가 끝까지 살아남기를 응원하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좀처럼 '악당'이 없다. 그런데 <마리아비틀>에서는 좀 다르다. 킬러들과 대결구도를 이루는 꼬마 '악당'이 등장한다. 영화 '레옹'의 구도처럼, '유쾌한' 킬러들과 '죽이고 싶은' 중딩이 한 자리에 모여 한바탕 대결을 벌인다.

이사카 코타로, 그의 작품은 철저히 '재미'로 읽는 책이다. 인생은 자극이 있어야 제맛이다(267). 이사카 코타로는 온화하게 질주하는 건 용서 못하겠다 듯, 킬러들을 불러 모으고 피가 튀는 광란의 열차에 독자를 태운다. 목적도 없이 막연하게 살아가지 말고, 크게 짖어보기라도 하자는 듯(109).

 
"시속 2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열차에 모두 모였다."

이야기의 배경은 '하야테'(도쿄 역과 신아오모리 역을 잇는 동일본여객철도의 신칸센 노선, 일본어로 '질풍'이라는 뜻). 이 열차에 킬러들의 광시곡이 울린다. 

첫 등장인물은 아들 와타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칸센 열차에 올라탄 '기무라'. 그는 전직 킬러였지만, 알콜 중독자가 되어 지금은 경비일을 하며 아들을 키우고 있다. 다음은, 살인 청부업자 '레몬과 밀감'.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하는 B협 타입의 레몬과 소설을 좋아하고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의 A형 밀감은 마치 부부처럼 티격태격 하면서도 쌍둥이처럼 팀워크를 이룬다. 하는 일마다 꼬이는 '나나오'는 불운을 몰고 다니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킬러. 악의가 가득 찬 중학생 '오우지'는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지 모르는 괴물 같은 악당. 

기무라, 과일(레몬과 밀감), 무당벌레(나나오), 왕자(오우지)가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진 채 열차에서 만나 서로 얽혀든다. 이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마치 기묘한 분위기의 '나팔꽃'이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중간중간 등장하며 이야기를 완성한다. 

 
작가는 이 책의 제목을 왜 <마리아비틀>이라고 했을까?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무당벌레가 손가락 끝까지 다 올라가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손가락 끄트머리에 도착한 벌레는 숨을 훅 빨아들이는 것처럼 뜸을 들이고, 그런 후에는 날개를 활짝 펼치며 손가락에서 날아갔다"(298). 마리아비틀, 즉 무당벌레는 궁지에 몰리면 머리가 휙휙 날아간다고 말한다. 궁지에 몰릴 때 오히려 집중력이 발휘되고, 반사 신경이 반응하여 놀라운 순발력이 발휘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시, '해리 포터' 이야기를 해야겠다. 해리 포터는 이모네 집에서 갖은 구박과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마법사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그 집에서 완전히 떠날 수 없었다. 방학 때마다 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끔찍히도 싫었던 해리 포터는 왜 자신이 그곳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덤블도어는 그것이 해리 포터를 지키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엄마를 닮은 이모가 있는 집, 엄마의 사랑이 방어막이 되어주는 집, 그것은 해리 포터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마리아비틀>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궁지에 몰릴 때 날아오르는 무당벌레는, 지독한 불운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엄청난 행운이었으며, 엄청난 행운이라고 기뻐했던 일이 사실은 지독한 불운을 낳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우산을 들고 나가면 해가 뜨고, 세차를 하면 비가 오고, 기름을 가득 채우고 나면 기름값이 내려가는 억세게 운이 없는 사나이 '나나오.' 그러나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했던 그의 불운이 사실은 그의 목숨을 살리는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이야기의 끝이 결국은 우리를 웃게 만든다. 무시무시한 킬러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갖고 놀만큼 영약하면서도 사악한 '왕자', 이 죽이고 싶을 만큼 잔혹한 악당이 겨우 중학생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경악케 한다. 그러나 그를 따라다닌 기막힌 행운이 결국 그를 응징했을 때, (정상적인 감정은 아닌 것 같지만) 속이 다 후련했다.

아사카 코타로의 전작 <그래스호퍼>를 읽은 독자라면, 학원 강사 '스즈키', '밀치기', '말벌'의 등장이 반가울 것이다. 아사카 코타로는 많은 킬러들 중에서도 확실히 '밀치기'를 아낀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무슨 암호처럼 들리겠지만) 기묘한 분위기의 '나팔꽃'은 무당벌레를 날아오르게 하는 디딤돌 같은 미친 존재감을 자랑한다. ('나팔꽃'이라는 그의 이름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마리아비틀>은 선인과 악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틀고, 자극 없는 일상을 비틀고, 행운과 불운을 비튼다. 이 쾌속 열차는 한 번 올라타면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 철저히 재미를 지향하는 오락 소설이지만, 성찰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교훈적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라고 묻는 '왕자'에게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하나 고민하게 되고, 너무 빨리 지나가 놓칠 수도 있는 이런 묵직한 교훈이 여기 저기 숨어 있기도 하다. "학살이든 전쟁이든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법 개정이든, 그 대부분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저항했을 텐데" 하는 식이다"(273). 한 가지,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대결에 집중하지 않고, 킬러들의 사연을 들려주느라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것이 아쉽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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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신 역사스페셜 우리 인물, 세계와 通하다 KBS 新역사스페셜 2
KBS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 가디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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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역사가 되는가? 무엇이 역사로 남는가?

이 책은 이런 물음을 묻게 해주었다. 그리고 개인의 한 걸음이, 나의 삶의 한 자락이 역사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곧 역사임을 깨닫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우리 인물, 세계와 통하다>는 실제로 한 무관의 일기가 어떻게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게 되었는지, 그 가치를 조명해 보여준다(2장 개인의 삶, 역사를 기록하다 - 조선 무관 노상추의 68년간의 일기).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말이다. 

 

"돌아온 역사스페셜은 우리 선조들의 위대함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삶 자체를 알고자 했고, 우리 역사의 독자성뿐 아니라 다양성에도 주목하고자 했다. 그래서 생활사와 교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5).

<우리 인물, 역사와 통하다>는 TV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것을 책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볼거리도 많고(사진 자료), 한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며 고증의 절차를 밟아나가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특히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좋았다.

예를 들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견줄 수 있는 19세기 백과사전이 우리에게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임원의 <임원경제지>이다. 그런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현재 100명이 넘는 편집자와 4,000명이 넘는 필자가 공동집필하는 책이며,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에도 계몽주의자들이 공동 집필한 저서였다. <임원경제지>는 농업, 건축, 의학, 과학, 수학, 천문학, 생물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19세기 조선의 지식들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총 113권에 달하는 이 방대한 지식을 서유구 혼자 썼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물, 역사와 통하다>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 해답을 추적해나간다. 

이외에도 이렇게 모아진 19세기의 정보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사실을 들려주며, <백과사전>의 출간이 지니는 의미까지 조명해준다. 서양에서 출간된 백과사전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고, 결국은 사회 전체를 완전히 바꿔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지식혁명이었다. 전문가들만이 독점했던 정보(지식)가 비로소 대중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건축가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우리의 <임원경제지>가 <브리태니커>와 같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대목이 <임원경제지>의 역사적 가치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성찰하여 교훈을 얻어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한다.

생활사와 교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힌 <우리 인물, 세계와 통하다>는 역사의 주류에서 빗겨나 있는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선 최초의 필리핀어 통역사가 누구였는지, 2004년 중국에서 발견된 '부여태비의 묘'에 숨겨진 백제 이야기, 독일 수도원에 잠들어 있던 조선 산수화의 정수 겸재 정선의 화첩이 어떻게 8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조선 무관이 쓴 일기가 말해주는 당시의 생활상, 피고는 스스로 노예라고 우기고 원고는 그가 양인이라고 우기는 노비재판이 왜 있었는지, 조상을 욕한 죄로 동가식서가숙 했던 방랑 시인으로 알려진 김삿갓이 어떻게 오늘날 슈퍼 스타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오해의 진실은 무엇인지, 이 밖에도 신라 장군 이사부, 국모의 원수를 갚은 고영근,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광복회를 이끈 박상진,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에 올라 이순신의 최후를 함께한 일본군 출신 손문욱이라는 인물은 누구인지, 알려진 위인이 아니라 감추어진 역사와 인물을 만나게 해준다. <우리 인물, 역사와 통하다>는 "역사가 사건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역사의 올바른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 결과는 심각하다. 역사는 투쟁의 기록이지만 이 기록은 공존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반성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5).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하고, 옛 이야기를 듣는가? 그 안에 오늘을 비쳐주는 거울이 있고, 내일을 열어가는 교훈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 인물, 역사와 통하다>는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촘촘하게 엮어나간 우리네 역사를 만나는 뜻깊은 시간이었고, 나의 뿌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역사로 남을 나의 오늘을 더욱 소중하게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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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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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에게 빠져들다!

 
그는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없다. 그의 방은 매우 작았지만 동, 서, 남 삼면에 창이 있어 동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었다. 그가 웃으면 집안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 평생을 독서로 일관했던 사람, 만약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배부르지도 않고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평화롭다면 무엇을 할까 물으면 책을 아니 읽을 수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 문장에 꾸미지 않는 진정을 담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 사람, 인간의 도리 중 가장 당연한 일이 바로 배우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 스스로를 세상 물정 모르고 책만 보는 바보로 여겼던 사람, 한 겨울 칼바람에 <한서>를 이불 삼고 <논어>을 병풍 삼아 살았던 사람, 이 사람의 이름은 이덕무이다.

무너질 듯한 집은 비바람을 가리지 못할 정도였고 변변치 않은 음식조차 자주 때를 걸렀지만, 책만 있으면 행복했던 이 남자에게 자꾸만 빠져든다. 우리는 왜 이 '책에 미친 바보'를 좋아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것에는 병이라고 할만큼 광적이고, 생활면에서는 무능한 가장이라 할만큼 무책임한 면도 없지 않다. 요즘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다면 한심하게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에 미친 바보>는 이덕무의 글을 직접 읽어볼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과 쓰는 글이 달라 '번역'의 작업을 거쳤지만, 그와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듯한 생생함이 있다. 그가 쓴 '자화상'에서는 자신을 과장하지도 비하하지도 않는 솔직한 마음을 엿볼 수 있고,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서는 이덕무의 독서법을 배울 수 있다. 그가 아주 체계적으로 책을 읽었음을 알 수 있다. '문장과 학풍에 대하여'에서는 문장에 꾸미지 않는 진정을 담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 그의 문학관 고증적인 학문적 성향을 읽을 수 있고, '벗, 그리고 벗들과의 대화'에서는 그가 보낸 편지글을 통해 부럽기만 한 깊은 우정과 함께 이덕무의 소소한 일상과 개구진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세 번이나 단 것을 먹으면서도 단 것을 무척 좋아하는 자신에게는 하나도 주지 않은 박제가를 나무라 달라고 '이서구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는 한참을 웃었다(157-158). '군자와 선비의 도리'에서는 이덕무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엿볼 수 있다. 그가 왜 소설 배척론자로 알려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고, '사랑하는 누이를 보내며' 쓴 글에는 애절한 슬픔이 담겨 있다. '자연과 벗을 삼아'에서는 이덕무의 산문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멋드러진 에세이를 통해 그의 소박한 일상에 다가갈 수 있다.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가 소설을 배척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는데, 그렇다고 그가 모든 소설을 배척한 것은 아니다. 이덕무가 배척한 소설은 <삼국지연의> 같은 부류이다. "이것은 음탕함과 도둑질을 가르치고, 인륜과 교화를 해치는 매체이니 왕정에서는 엄격히 금지되어야 하네. 그런 고로 우리가 매우 싫어하고 깊이 배척하는 것"(169)이라고 이유를 밝힌다. 좀더 구체적인 의견은 이렇다. "소설에는 세 가지 미혹된 것이 있다. 헛것을 내세우고, 빈것을 억지로 맞추려 하고, 귀신을 말하고 꿈을 말했으니, 지은 사람이 첫 번째 미혹된 것이다. 허왕된 것을 감싸고 천한 것을 고취시켰으니, 논평한 사람이 두 번째 미혹된 것이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경전을 등한시했으니, 탐독하는 사람이 세 번째 미혹된 것이다. (...) 더욱 심한 자는 음란하고 더러운 일을 늘어놓고 말도 안 되는 설을 부연하여 독자들을 기쁘게 하는 데만 힘쓰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189). 요즘으로 치면 자극적이기만 한 상업적 소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에 미친 바보>는 '이덕무'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더 재밌을 책이다. 옮긴이의 해설이 붙어있긴 하지만, 그의 글을 바탕으로 이덕무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조명해보는 일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도 지인을 통해 '이덕무'라는 사람의 매력에 먼저 끌리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큰 흥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책에 미친 바보>를 읽는 내내, 해가 드는 쪽으로 몸을 돌려가며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덕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책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을 사랑하고 맑고 진실한 선비의 마음으로 청렴하게 일생을 보낸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책을 읽는 것마저 경쟁이 되고, 자랑이 되고, 욕심이 되어버린 세상이라 그의 순수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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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조각 창비청소년문학 37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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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세계, 아이들의 세계, 그리고 우리의 세계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만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어른들은 잃어버린 아이들만의 세계도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 세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어른들의 세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아이들의 세계가 결정된다. 그 견고한 지배력은 주로 '가족'과 '학교'라는 체제를 통해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부모(양육자)의 문제 행동을 찾아낸다. 아이들의 세계에 문제가 있다면 어른들의 세계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소설이 담아내는 한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사라진 조각>을 통해 우리는 어들의 세계가 어떻게 아이들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세계에 상처를 입히는 어른들,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해야 하는 여린 나무 같은 우리 청소년들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무엇보다 '내 아이'를 보호하려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의 세계는 물론, 하나로 합쳐지는 우리의 세계를 어떤 진흙탕으로 만들어놓고 있는지 그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게 만든다.

주인공 '신유라'는 '미운새끼오리'를 닮았다. 외모든 성적에서든 유라를 좌절시키는 오빠 신상연, 어쩐지 무관심한 아버지, 늘 냉기가 도는 엄마 사이에서 유라는 꼭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겉도는 미운새끼오리이다. 미정이, 그리고 수지와 어울려 다니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는 점에서 학교에서도 미운새끼오리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지금 유라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마음대로 유학 보내버리려는 엄마이다. 그 때문에 가출도 생각하고 있지만,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유학도 가기 싫고 가출한 자신도 없는 자신의 어정쩡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치 못한 사고로 뚝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버리고, 그것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유라는 뜻밖의 자신과 만난다. <사라진 조각>은 한 조각, 한 조각의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이야기가 전개된다. 퍼즐이 모두 제자리를 찾기까지 이야기의 조각은 의문부호를 가진 미스테리가 된다. 엄마는 왜 그렇게 유라에게 냉정한 걸까? 왜 유라를 유학 보내려 하는 걸까? 아빠는 어딜 다녀온 걸까? 모범생이기만 했던 유라의 오빠 신상연은 하룻밤 외박 후 왜 갑자기 '일과성 기억 상실증'에 걸렸는가? 학교와 어른들에 의해 덮혀버린 집단 성폭행의 진실은 무엇인가? 오빠 신상연이 책 속에 감추고 있던 편지는 무슨 내용인가? 도서관에서 대출된 사진작가 '나비'의 <시선>을 내다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자꾸 집으로 전화해 오빠 신상연을 찾는 낯선 남자(미리내 요양원)의 정체는 무엇인가?

 
"심재호를 제물로 바치고 대단하신 분들은 좋은 음식점에서 축배라도 들었던가 보다. 학교 체면을 세워 줄 우수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한 결정을 하신 교장 선생님과 자식의 미래를 위해 흠집을 덮어주려는 이기적인 부모들의 결론. 진실을 함구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증오심이 일었다"(113).

학교와 가해자들의 부모는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집단 성폭행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덮어버리려 한다. 문제가 드러났을 때도, 전학과 유학이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사건으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으려 한다. 그러나 그 진실이, 그 상처가 그렇게 덮어질 수 있을까? 어른들이 진실을 덮어버리려 할수록 아이들은 그 덮인 진실을 파해치려 하고, 어른들이 상처를 외면할수록 아이들의 상처는 더 곯아갈 뿐이다. 어른들의 편의주이식 외면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더 지독한 상처가 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상처이자 기억이다"(뒷 표지 中에서).

이야기 퍼즐이 하나로 완성되고 감추어진 모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유라는 드디어 '사라진 조각'을 발견한다. 어떤 부분만 뭉텅 사라져버린 기억의 한 조각, 그 사라진 한 조각 때문에 뒤죽박죽 되어버린 세계. 그런데 그 '사라진 조각'은 바로 유라 자신이었다. '나비의 아픈 한 조각'(185). '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집단 성폭행의 한 가운데에 그 '사라진 조각'이 있었다는 것은 반전 아닌 반전이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유라 자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유라의 '출생의 비밀'에 있다. 유라가 출생의 비밀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 세계의 일이다. 그러나 어른들 세계의 일이라고 해서 유라가 외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엄마는 인정할 수 없었고, 오빠는 감당하기 힘겨워 한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유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를 폭발시키는 건 엄마 자체다. 우리 사이가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는 거라면.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관계라도 엄마와 딸이어야 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144).

"내게는 가자는 말도 없이 앞서 가는 엄마"를 유라는 뒤좇아가 말을 건넨다. "내 코가 살짝 휘어진 게 싫어. 이쪽 눈엔 쌍꺼풀도 더 필요한 것 같고, 이거 다 완벽하게 수술해 줘. 그럼 엄마, 용서해 줄지도 몰라"(185). 유라는 알았을까. 자신이 엄마에게 상처입은 것만큼 엄마도 상처받았다는 것을. 엄마에게 자신은 상처의 한 조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유라는 비로소 엄마를 용서한다. 그렇게 상처입은 엄마와 딸은 화해를 한다.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맞는 조각에 가닿기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모서리에 다치고 누군가를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아픈 상처, 사라진 기억까지 포함했을 때 비로소 내가 완성된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다"는 작가의 말이 이 장면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상담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을 한다. 진짜 상담이 필요한 학생은 '간단히' 전학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자신은 정작 할 일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고. <사라진 조각>은 상처를 '간단히' 처리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귀차니즘이 얼마나 큰 이기심인지 보여준다. 엄마를 보듬어 안은 유라처럼, 청소년에게 어른들의 세계까지 끌어안으라고 하기가 미안하다. 그러나 그 '어쩔 수 없음'이 또 '나'인 것을 어찌하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라진 한 조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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