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조각 창비청소년문학 37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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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세계, 아이들의 세계, 그리고 우리의 세계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만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어른들은 잃어버린 아이들만의 세계도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 세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어른들의 세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아이들의 세계가 결정된다. 그 견고한 지배력은 주로 '가족'과 '학교'라는 체제를 통해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부모(양육자)의 문제 행동을 찾아낸다. 아이들의 세계에 문제가 있다면 어른들의 세계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소설이 담아내는 한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사라진 조각>을 통해 우리는 어들의 세계가 어떻게 아이들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세계에 상처를 입히는 어른들,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해야 하는 여린 나무 같은 우리 청소년들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무엇보다 '내 아이'를 보호하려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의 세계는 물론, 하나로 합쳐지는 우리의 세계를 어떤 진흙탕으로 만들어놓고 있는지 그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게 만든다.

주인공 '신유라'는 '미운새끼오리'를 닮았다. 외모든 성적에서든 유라를 좌절시키는 오빠 신상연, 어쩐지 무관심한 아버지, 늘 냉기가 도는 엄마 사이에서 유라는 꼭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겉도는 미운새끼오리이다. 미정이, 그리고 수지와 어울려 다니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는 점에서 학교에서도 미운새끼오리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지금 유라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마음대로 유학 보내버리려는 엄마이다. 그 때문에 가출도 생각하고 있지만,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유학도 가기 싫고 가출한 자신도 없는 자신의 어정쩡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치 못한 사고로 뚝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버리고, 그것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유라는 뜻밖의 자신과 만난다. <사라진 조각>은 한 조각, 한 조각의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이야기가 전개된다. 퍼즐이 모두 제자리를 찾기까지 이야기의 조각은 의문부호를 가진 미스테리가 된다. 엄마는 왜 그렇게 유라에게 냉정한 걸까? 왜 유라를 유학 보내려 하는 걸까? 아빠는 어딜 다녀온 걸까? 모범생이기만 했던 유라의 오빠 신상연은 하룻밤 외박 후 왜 갑자기 '일과성 기억 상실증'에 걸렸는가? 학교와 어른들에 의해 덮혀버린 집단 성폭행의 진실은 무엇인가? 오빠 신상연이 책 속에 감추고 있던 편지는 무슨 내용인가? 도서관에서 대출된 사진작가 '나비'의 <시선>을 내다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자꾸 집으로 전화해 오빠 신상연을 찾는 낯선 남자(미리내 요양원)의 정체는 무엇인가?

 
"심재호를 제물로 바치고 대단하신 분들은 좋은 음식점에서 축배라도 들었던가 보다. 학교 체면을 세워 줄 우수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한 결정을 하신 교장 선생님과 자식의 미래를 위해 흠집을 덮어주려는 이기적인 부모들의 결론. 진실을 함구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증오심이 일었다"(113).

학교와 가해자들의 부모는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집단 성폭행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덮어버리려 한다. 문제가 드러났을 때도, 전학과 유학이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사건으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으려 한다. 그러나 그 진실이, 그 상처가 그렇게 덮어질 수 있을까? 어른들이 진실을 덮어버리려 할수록 아이들은 그 덮인 진실을 파해치려 하고, 어른들이 상처를 외면할수록 아이들의 상처는 더 곯아갈 뿐이다. 어른들의 편의주이식 외면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더 지독한 상처가 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상처이자 기억이다"(뒷 표지 中에서).

이야기 퍼즐이 하나로 완성되고 감추어진 모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유라는 드디어 '사라진 조각'을 발견한다. 어떤 부분만 뭉텅 사라져버린 기억의 한 조각, 그 사라진 한 조각 때문에 뒤죽박죽 되어버린 세계. 그런데 그 '사라진 조각'은 바로 유라 자신이었다. '나비의 아픈 한 조각'(185). '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집단 성폭행의 한 가운데에 그 '사라진 조각'이 있었다는 것은 반전 아닌 반전이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유라 자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유라의 '출생의 비밀'에 있다. 유라가 출생의 비밀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 세계의 일이다. 그러나 어른들 세계의 일이라고 해서 유라가 외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엄마는 인정할 수 없었고, 오빠는 감당하기 힘겨워 한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유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를 폭발시키는 건 엄마 자체다. 우리 사이가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는 거라면.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관계라도 엄마와 딸이어야 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144).

"내게는 가자는 말도 없이 앞서 가는 엄마"를 유라는 뒤좇아가 말을 건넨다. "내 코가 살짝 휘어진 게 싫어. 이쪽 눈엔 쌍꺼풀도 더 필요한 것 같고, 이거 다 완벽하게 수술해 줘. 그럼 엄마, 용서해 줄지도 몰라"(185). 유라는 알았을까. 자신이 엄마에게 상처입은 것만큼 엄마도 상처받았다는 것을. 엄마에게 자신은 상처의 한 조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유라는 비로소 엄마를 용서한다. 그렇게 상처입은 엄마와 딸은 화해를 한다.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맞는 조각에 가닿기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모서리에 다치고 누군가를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아픈 상처, 사라진 기억까지 포함했을 때 비로소 내가 완성된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다"는 작가의 말이 이 장면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상담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을 한다. 진짜 상담이 필요한 학생은 '간단히' 전학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자신은 정작 할 일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고. <사라진 조각>은 상처를 '간단히' 처리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귀차니즘이 얼마나 큰 이기심인지 보여준다. 엄마를 보듬어 안은 유라처럼, 청소년에게 어른들의 세계까지 끌어안으라고 하기가 미안하다. 그러나 그 '어쩔 수 없음'이 또 '나'인 것을 어찌하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라진 한 조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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