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온화하게 질주하는 건 용서 못해", 자극 없는 삶을 비틀다.

(내 기억 속에서) 킬러에 대한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최초의 시도는 영화 '레옹'이었다. 그것은 심상치 않은 역발상이었고, 슬픈 충격이었다. 우린(친구들) 울어버렸다. 끝에 주인공이 죽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킬러'를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우유를 마시고 화초를 키우며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랑으로 소녀를 지켜주는 킬러와 그 소녀를 해치려 하는 악당 형사. 그 묘한 아이러니가 선인과 악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틀었다.

이사카 코타로, 그의 작품에서도 선인과 악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비틀린다. 이사카 코타로는 '킬러'를 사랑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킬러에게 동정심을 갖게 만들며,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킬러가 끝까지 살아남기를 응원하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좀처럼 '악당'이 없다. 그런데 <마리아비틀>에서는 좀 다르다. 킬러들과 대결구도를 이루는 꼬마 '악당'이 등장한다. 영화 '레옹'의 구도처럼, '유쾌한' 킬러들과 '죽이고 싶은' 중딩이 한 자리에 모여 한바탕 대결을 벌인다.

이사카 코타로, 그의 작품은 철저히 '재미'로 읽는 책이다. 인생은 자극이 있어야 제맛이다(267). 이사카 코타로는 온화하게 질주하는 건 용서 못하겠다 듯, 킬러들을 불러 모으고 피가 튀는 광란의 열차에 독자를 태운다. 목적도 없이 막연하게 살아가지 말고, 크게 짖어보기라도 하자는 듯(109).

 
"시속 2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열차에 모두 모였다."

이야기의 배경은 '하야테'(도쿄 역과 신아오모리 역을 잇는 동일본여객철도의 신칸센 노선, 일본어로 '질풍'이라는 뜻). 이 열차에 킬러들의 광시곡이 울린다. 

첫 등장인물은 아들 와타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칸센 열차에 올라탄 '기무라'. 그는 전직 킬러였지만, 알콜 중독자가 되어 지금은 경비일을 하며 아들을 키우고 있다. 다음은, 살인 청부업자 '레몬과 밀감'.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하는 B협 타입의 레몬과 소설을 좋아하고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의 A형 밀감은 마치 부부처럼 티격태격 하면서도 쌍둥이처럼 팀워크를 이룬다. 하는 일마다 꼬이는 '나나오'는 불운을 몰고 다니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킬러. 악의가 가득 찬 중학생 '오우지'는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지 모르는 괴물 같은 악당. 

기무라, 과일(레몬과 밀감), 무당벌레(나나오), 왕자(오우지)가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진 채 열차에서 만나 서로 얽혀든다. 이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마치 기묘한 분위기의 '나팔꽃'이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중간중간 등장하며 이야기를 완성한다. 

 
작가는 이 책의 제목을 왜 <마리아비틀>이라고 했을까?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무당벌레가 손가락 끝까지 다 올라가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손가락 끄트머리에 도착한 벌레는 숨을 훅 빨아들이는 것처럼 뜸을 들이고, 그런 후에는 날개를 활짝 펼치며 손가락에서 날아갔다"(298). 마리아비틀, 즉 무당벌레는 궁지에 몰리면 머리가 휙휙 날아간다고 말한다. 궁지에 몰릴 때 오히려 집중력이 발휘되고, 반사 신경이 반응하여 놀라운 순발력이 발휘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시, '해리 포터' 이야기를 해야겠다. 해리 포터는 이모네 집에서 갖은 구박과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마법사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그 집에서 완전히 떠날 수 없었다. 방학 때마다 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끔찍히도 싫었던 해리 포터는 왜 자신이 그곳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덤블도어는 그것이 해리 포터를 지키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엄마를 닮은 이모가 있는 집, 엄마의 사랑이 방어막이 되어주는 집, 그것은 해리 포터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마리아비틀>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궁지에 몰릴 때 날아오르는 무당벌레는, 지독한 불운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엄청난 행운이었으며, 엄청난 행운이라고 기뻐했던 일이 사실은 지독한 불운을 낳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우산을 들고 나가면 해가 뜨고, 세차를 하면 비가 오고, 기름을 가득 채우고 나면 기름값이 내려가는 억세게 운이 없는 사나이 '나나오.' 그러나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했던 그의 불운이 사실은 그의 목숨을 살리는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이야기의 끝이 결국은 우리를 웃게 만든다. 무시무시한 킬러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갖고 놀만큼 영약하면서도 사악한 '왕자', 이 죽이고 싶을 만큼 잔혹한 악당이 겨우 중학생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경악케 한다. 그러나 그를 따라다닌 기막힌 행운이 결국 그를 응징했을 때, (정상적인 감정은 아닌 것 같지만) 속이 다 후련했다.

아사카 코타로의 전작 <그래스호퍼>를 읽은 독자라면, 학원 강사 '스즈키', '밀치기', '말벌'의 등장이 반가울 것이다. 아사카 코타로는 많은 킬러들 중에서도 확실히 '밀치기'를 아낀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무슨 암호처럼 들리겠지만) 기묘한 분위기의 '나팔꽃'은 무당벌레를 날아오르게 하는 디딤돌 같은 미친 존재감을 자랑한다. ('나팔꽃'이라는 그의 이름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마리아비틀>은 선인과 악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틀고, 자극 없는 일상을 비틀고, 행운과 불운을 비튼다. 이 쾌속 열차는 한 번 올라타면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 철저히 재미를 지향하는 오락 소설이지만, 성찰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교훈적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라고 묻는 '왕자'에게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하나 고민하게 되고, 너무 빨리 지나가 놓칠 수도 있는 이런 묵직한 교훈이 여기 저기 숨어 있기도 하다. "학살이든 전쟁이든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법 개정이든, 그 대부분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저항했을 텐데" 하는 식이다"(273). 한 가지,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대결에 집중하지 않고, 킬러들의 사연을 들려주느라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것이 아쉽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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