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역사를 부치다
나이토 요스케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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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학으로 보는 역사

 

 

오늘(7/3) 여성그룹 소녀시대를 모델로 한 우표 '소녀시대 나만의 우표'가 8월 초 발매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하는 최초의 연예인 우표란다. 우정사업본부는 "글로벌 케이팝 열풍의 주역이자 전 세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소녀시대를 모델로 특별 제작했다"고 발매 취지를 밝혔다. 훗날 역사는 '소녀시대 나만의 우표'를 필터로 글로벌 케이팝 열풍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읽어내며 '한류'라는 독특한 문화 코드를 연구할지도 모르겠다.

 

<우표 역사를 부치다>는 '우편학'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나이토 요스케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의 취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과 격렬한 관계를 맺어온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이 세계의 제왕이 되어가는 과정과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들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되돌아본다. 그것도 한국 독자에게는 낯선 '우편학'이라는 방법을 이용해서 말이다"(9). 우편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생소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편지나 엽서에 붙은 우표와 찍힌 소인 등을 분석해 우표가 만들어지고 통용된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밝혀"내는 우편학이 존재한다. "우편학"이라는 이름은 우표 수집 및 연구라는 개념(philately)라는 개념을 필자가 번역해 정립한 단어라고 한다. 그동안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우취'라는 뜻의 단어로 번역해왔다. 저자가 '우편학'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것은 단순한 우표수집과 구분짓기 위해서이다.

 

"근대 이후 국민국가에서 우편 관련 업무는 기본적으로 정부 당국이 담당해왔다"(10). 우편학이 어엿한 학문으로 자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우표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발행을 하기 때문에, 우표에는 그 시대 정부와 정권의 정책, 이데올로기 등이 반영되어 있으며, 국가의 역사관 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표에 찍힌 소인을 통해 우편 서비스, 행정 상황 등을 알아볼 수도 있다. 몇 해 전인가, 우리나라가 독도를 주제를 우표를 발매하자, 일본에서 독도를 주제로 한 우표가 붙은 한국 우편물은 반송하겠다며 발행 중단을 요구하는 항의가 있었다고 들었다. <우표 역사를 부치다>는 단순한 우표 한 장이 정치, 경제, 문화, 생활상 등은 물론 우표 요금 수준, 디자인, 인쇄술 등을 통해 발행국의 경제적, 기술적 수준까지 엿볼 수 있는 훌륭한 미디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저자가 특별히 우편학을 통해 미국 제국주주의 역사를 재구성해내는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우편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는 점도 큰몫을 차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평화롭고 안정된 국가보다는" "정치나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나 지역일수록 당시 변화와 분쟁의 흔적이 우표에 선명하게 남"는다는 이유로 격렬한 변화나 분쟁이 있었던 국가(북한, 베트남, 이란, 쿠바, 소련, 필리핀, 일본, 이라크)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장해온 미국과의 역학관계를 재구성한다.

 

<우표 역사를 부치다>는 우리에게 생소한 우편학이지만 그렇다고 역사를 새롭게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표에 담긴 보다 깊은 역사적 의미를 캐내거나, 사회적 분위기를 읽어내고, 정치적 꼼수를 폭로하기도 한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했던 한 장의 우표 안에 참 많은 것이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우편학이 정말 소중하구나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역시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에서였다. 저자는 북한의 우표가 남침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힌다. 7월 10일에 북한이 서울 점령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를 보면, 서울의 정부청사에 걸린 북한 국기가 보인다(45). 저자는 이를 근거로 "전시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더구나 보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우표를 발행한 점으로 미루어 북한이 사전에 우표 발행을 준비했음을 말해준다"고 해석한다. 남침의 흔적은 이것만이 아니다. 1950년 북한에서 발행된 '해방 5주년' 기념우표도 그 증거 중 하나이다. "1950년 8월은 한국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해방 5주년' 기념행사를 열 수 없었다. 실제로 남한은 기념우표조차 발행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북한은 공식 기념일보다 2개월여 이른 6월 20일에 서둘러 '해방 5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광복 기념우표를 2개월이나 앞당겨 발행한 것이다. 이는 실제 광복 기념일에 해당하는 8월 15일에 광복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게 불가능하가거나 또는 어려울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증거다"(43). 지금도 북침을 주장하고 있는 북한이 우표를 통해 제스스로 남침의 증거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까 모르겠다. 6.25가 조선시대 전쟁이라고 답하는 초등학생도 많다고 하는데, 우편학을 통해 역사를 가르치는 것도 신선한 접근일 듯하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답변이 굉장히 한정적이라고 한다. 직업의 종류가 많지 않은 것은 그만큼 우리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이며, 또 상상력의 부재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생소한 우편학이라는 존재는 다시 또 우리의 경험부족과 부족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단적 증거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다양한 분야에 다양하게 도전하며 접근하는 모험심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편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살짝 엿봤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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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리얼 푸드 - 갓 구운 베이글처럼 고소한, 노릇한 오믈렛처럼 부드러운
박혜정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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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진짜 맛있는 이야기"

 

여행 경비를 줄어야 할 때, 미련 없이 삭감하게 되는 항목 중 하나가 저에게는 바로 밥값입니다. "여행" 하면 곧 "보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되는 제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하든 한 곳이라도 더 많이 보고 싶은 욕심이 언제나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을 이깁니다. 맛집만 골라 다니는 맛집 여행도 있고, 여행지의 먹거리도 여행을 즐기는 한 방법이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여행 경비가 넉넉할 때"라는 단서가 붙어야 가능한 즐거움입니다. 게다가 낯선 곳에서의 낯선 음식에 대한 모험심도 부족하여, 믿을 만한 음식(?)이 아니면 여행지의 낯선 먹거리에 대한 도전의식도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뉴욕 리얼 푸드>라는 여행책에 마음이 끌린 것은 그곳이 뉴욕이기 때문이며,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보고 말테야"를 외치고 있는 그곳에 정말 발을 디디게 되었을 때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뉴욕 리얼 푸드>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카페가 내 입맛에 조금도 맞지 않은 곳이라면, 말도 안 되게 비싼 데다 양도 적어 간에 기별도 안 간다면, 뭘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면, 더 최악의 경우 힘들어 죽겠는데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면?"(23) 저자의 표현대로 "그 순간 뉴욕 여행은 짜증 범벅"이 되고 말겠죠!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뉴욕 여행에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식탁만 소개하기로" 했고, 이런 기획 의도로 출간된 책이 바로 <뉴욕 리얼 푸드>입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거움으로 배부를 수 있는 진짜 뉴요커들의 식탁"

 

<뉴욕 리얼 푸드>는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먹어보고 쓴 뉴욕 푸드 체험기 같은 책입니다. "충분히 배부르고도 즐거울 수 있는 카페들에 주목하며", "너무 비싼, 그래서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는 레스토랑보다 부담 없는 식탁"이 기준입니다. 책을 보고 있으면 뉴욕의 맛집이란 맛집은 모두 가보고, 뉴욕의 먹거리란 먹거리는 죄다 먹어본 듯 그야말로 샅샅이 훑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일 년에 한 번, 한 나라에서 한 달 동안 홀로 살기"라는 자기와의 약속을 당차게 지키고 있는 그 기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녀의 글에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설레임과 행복감이 한가득입니다. 글을 읽다 보면 그 두근거림에 절로 전염이 되는 기분입니다. 책 제목이 <뉴욕 리얼 푸드>이지만 먹거리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뉴욕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 뉴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식사 에티켓은 물론, 뉴욕만의 매력을 퐁퐁 풍기는 뉴욕 풍경 스케치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뉴욕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책으로 뉴욕 풍경을 간단하게 리서치하며 여행 일정에 따라 꼭 가보고 싶은 카페(또는 레스토랑)를 미리 정해두어도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여행을 떠나보면 맛집 찾아서 들어가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데충 끼니를 떼울 생각이 아니라면, 천금 같은 경비와 시간도 아끼면서 가격대비 최고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국가 간의 경계도 희미해지는 글로벌 시대를 살다 보니, 뉴욕의 먹거리라고 해서 꼭 뉴욕에 가야만 먹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에도 세계화 바람이 거세고, 덕분에 뉴욕의 먹거리가 우리나라에 상륙해서 꽤 인기를 끌고 있는 메뉴도 많습니다. 게다가 입맛의 서구화 덕분에 재료도 조리법도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많아 거부감이 드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 저에게는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도 꼭 뉴욕에 가서 꼭 먹어보고 싶은 메뉴가 있습니다. 뉴욕 풍경을 배경으로 해서 말이죠. 저와 같이 게으른 독자에게는 '주제별' 맛집이 아니라, 지역별로 맛집을 소개해주었다면 여행 동선에 따라 카페와 메뉴를 미리 점찍어 두기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르기 전에, 그래서 이 책의 정보가 낡은 것이 되기 전에 뉴욕의 한 카페에 앉아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펼쳐놓고 메뉴를 고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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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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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제일 좋을까?"(169)

 

 

9시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 하게 한다. 십대 청소년들이 힘 없는 한 노숙자를 괴롭히다 결국 그를 죽게 만든 영상이 공개되었다. 언론은 노숙자를 불쌍한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고, 사회는 통제할 수 없는 청소년 문제로 들끓고 있다. '나'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급하게 나의 의견을 보태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자. 만일 그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 나의 아이라면? CCTV 화면이 흐릿하지만 분명히 그 화면 속의 아이가 내 자녀라면 어떨까? 그래도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나 의견에 변함이 없을까? 또한 내가 그 아이의 부모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제일 좋을까? 네덜란드의 국민작가라는 헤르만 코흐는 <디너>라는 작품을 통해 독자를 그 딜레마에 빠뜨린다.

 

<디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지는 형제 부부의 저녁 식사를 배경으로 한다. 아페리티프, 애피타이저, 메인요리, 디저트, 소화제, 팁이 그 목차이다. 차기 총리로 당선이 확실시 되는 형제 세르게와 그의 아내 바베테, 그리고 세르게의 동생 파울과 그의 아내 끌레르가 함께 디너를 위해 식탁에 앉아 있다. 정치인 형은 승승장구 중이고, '한때' 역사 교사였던 동생도 현재 무직이지만 나름대로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했던 인생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로서 그들이 처한 딜레마, 한순간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세르게와 남편을 어떻게 해서든 총리로 만들고 싶은 아내 바베테, 한 순간의 실수(?)로부터 아들을 지키고 싶은 파울과 끌레르의 긴장감은 메인요리가 나오도록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가벼운 애피타이저로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는 '메인요리'를 향해 갈수록 차츰 확대되다가, '디저트'에서 사건의 전말이 들어나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야기를 끝내는 '소화제' 역할을 하며, 사건 '그 후' 이야기를 팁으로 선이 끊어지듯 뚝! 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디너>는 독자로 하여금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주인공 부부가 처한 딜레마가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기 전까지 우리가 가진 편견과 위선을 여러 모양으로 노출시킨다. 예를 들면, 동성애를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아주 불건전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동성애를 변태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웃의 동성애자가 자신의 고양이를 다정하게 보살펴 줬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들에 대한 혐오를 잊어버린다. 그 동성애자들이 "만약 고양이한데 먹이를 주기는커녕 돌멩이를 던져 내쫓거나 독을 넣은 미끼를 발코니에 던져놓는 사람이었으면", 그들은 "금세 다시 역겨운 게이가 됐을 것이다"(99). 작가는 이런 식으로 우리의 편견과 위선을 꼬집고, 우리가 가진 얇팍한 윤리의식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세계2차대전으로 '희생'된 사람 중에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경우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안도할 수 있는 그런 인간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들 모두를 '희생자'로만 애도하는 태도라든지, <사건파일 XY>에 그 문제의 동영상이 방송되자 불량 청소년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넘쳐나고 있지만, "자기 멋대로 아무데나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을 방해해는 비정상적인 노숙자나 부랑아들에 대해서는 다들 침묵"하는 집단적인 분노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디너>는 사형집행과 사적 제재, 즉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밟기 전에 개인적으로 행하는 개인적 사형 집형"(303)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슬며시 풀어놓으며,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독자들을 경악시킨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라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사건을 그냥 덮어두려는 부모를 쉽게 정죄해서는 안 될 듯하다. 아들이 자신의 살을 계속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십분 이해해서라기보다, 사건을 지켜보는 군중의 '저속함'을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디너>는 여러 모로 예상을 뛰어넘는 소설이다. 요리책 같은 표지에서부터, 주제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이야기의 중반까지 '메인' 스토리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전개 방식, 느닷없이 터지는 음모까지 작가의 의도를 따라잡아 보려 할수록 계속 잘못 짚게 될지 모른다.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어도, 기억에 남을 만한 <디너>였던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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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처럼 떠나다 - 청색시대를 찾아서
박정욱 지음 / 에르디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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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까다께스의 이 장소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 때였다"(99).

 

 

나에게 완벽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가 있습니까?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존재를 뿌리까지 흔들며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아름다움, 그것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장소를 갖고 싶습니다. <피카소처럼 떠나다>의 저자는 고백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눈이 시리도록 보고 그 아름다움으로 인생을 채우며 살고 싶었다. 아주 소박한 꿈이었다. 그 아름다움이 내게 필요했다"고. 그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아름다움을 꿈꾸었고, 결국 까다께스라는 이국의 해안 마을에서 그 꿈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젊은 시절에 말입니다. 이보다 더 운 좋은 청춘이 있을까요?

 

까다께스는 "프랑스와 가까운 스페인 해안 도시"입니다. 까다께스는 "달리가 태어난 곳이자 청년 피카소가 철저하게 입체파로의 전향을 구상했던 해변 마을"인데, "이 해변 마을은 예술적 기운이 충만하다 못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곳"(45)이라고 합니다.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스페인 북부 까다께스 항구에서부터 바르셀로나, 시쩨 해변까지 해안선을 따라" 떠나는 여행입니다. 이 여행에서 저자가 찾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는 피카소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바르셀로나의 '네 마리 고양이 술집'이라고 밝힙니다. "그 술집에 앉아 피카소의 첫 작품인 목탄 데생 작품을 한번 보고 싶다"는 것이 여행의 이유이기도 합니다(프롤로그 中에서). 이 여행이 특별한 것은 그곳에 피카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피카소가 주인공이 아니지요. "한 마을에서 동시에 전 세계를 뒤흔든 두 명의 예술가가 탄생"(45)하게 한 청색의 까데스께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이고, 푸르게 젊었던 시절 완벽한 행복감을 맛보게 해준 그곳을 잊지 못하는 한 인생으로 인해 까데스께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누군가 그곳의 이름을 불러준 것이지요.

 

까다스께를 사랑한 한 여행자와 동행하며 우리는 피카소가 그린 여인의 몸과 유사한 덩굴을 만나고, 입체파 그림 속 풍경 같은 마을을 만나고, 피카소 그림 속에 배어 있는 청춘의 아픔을 만나고, 푸른 멍을 가진 피카소의 여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피카소 만큼 배경에 바다를 많이 그린 화가도 없다(24)고 하는데, 저자는 바다로 '내려가는 길'에서 고독을 향한 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이 피카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읽어내기도 합니다. "그의 근원에는 바다의 청색이 있었다. 청색시대의 고독은 그것이었다. (...) 그림 속에 담긴 의미는 고독 속으로 청색 속으로 바닷속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그 정신의 소용돌이에 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은 피카소에게 그림의 의미를 찾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거의 언제나 해변으로 가는 길을 서성거리고 있다"(24).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스페인의 해변 마을을 따라 떠난 여행이자만 정보를 주는 여행서적이 아닙니다. 피카소와 그의 그림 이야기도 있지만 예술기행도 아닙니다. 누가 묻는다면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감성 에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여행지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음을 모두 지우고, 내면에 흐르는 은밀한 의식을 따라 걷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시각적인 책입니다. 스페인 해안의 아름다운 청색에 매료되는 동안, 피카소, 달리, 피카소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마티스, 그리고 입체파에 대한 지식도 어부지리도 얻었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저자의 극찬이 이어질수록 강렬해지는 하나의 바람은 나에게도 이런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구였습니다.

 

삶의 목적이 '여행'에라도 있는 것처럼, 여행병을 앓고 있는 나를 돌아봅니다. 성수기도 아닌데, 휴가철도 아닌데, 여행을 다니는 많은 여행자들을 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막상 그렇게 바라던 여행지에 서서 '음소거'를 하고 내면을 들여다 본다면, 나의 내면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들릴까요?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여행의 의미에 대해, 아름다운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나의 까다께스를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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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 - 예수님이 선언하신 그리스도인의 4가지 지상 명령
스티븐 스콧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드폰테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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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서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는 책이다. 사명, 이것만큼 신앙인들에게 뜨거운 감자도 없을 것이다. 나만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명을 찾기에 게으르고, 사명을 알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사명을 따르는 삶을 두려워 하는 신자들이 많다. 일상에 떠밀리는 삶을 살다 보면 사명은 그야말로 추상적인 개념이 되어 저 높은 곳에 올려두고 잊어버리게 되는 물건이 되고 만다. "사명을 따르라", "사명을 따르는 삶이 행복하다"는 설교가 날마다 강대상에서 선포되어지지만, 그런 것은 특별한 열심이 있는 소수의 성도에게만 임하는 강력한 부르심으로 치부되고 우리는 그저 평범한 신앙인으로 남기를 몰래 소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 사명을 알고 싶은 강력한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전부 갈아엎고 남은 생을 전부 사명에 올인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벗어나기 어려운 타성에 젖어 있다. 사명 앞에 겁쟁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명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처럼 내가 소원하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며,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하는 신의 신부름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명을 찾기에 게으르고, 사명 앞에 겁을 내는가?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사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일'(직업)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명하면 구체적인 '일'(사역 또는 직업)을 떠올린다. 물론, 사명은 그런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보다 근본적인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우쳐준다.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의 저자 스티븐 스콧은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성경의 잠언을 연구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배운 미국의 기업가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라고 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6년간 아홉 군데의 집정에서 실직과 해고를 거듭했으나 세계적인 마케팅 그룹 아메리칸 텔레캐스트를 공동 설립해 포춘 500대 기업의 CEO가 되었다." 또 "2년에 걸쳐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225가지 주제로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정리하면, 그는 신학자나 목회자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을 연구하여 성공한 기업가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평신도 사역자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그가 성경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방식에는 신선함이 있다. 어떤 신학적 프리즘도 통과하지 않고, 순수하게 말씀을 읽어내려 하며 그렇게 읽어내는 말씀으로 오히려 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잘못된 가르침들을 꼬집어 내기도 한다. 순수하게 말씀을 읽어내려 한다고 해서 오로지 문자적인 해석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어보면, 특히 원어에 대한 연구가 깊고, 성경의 배경(문화적) 지식이 풍부하며, 귀납적 성경연구 방식에 정통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가 특별한 이유는, 그렇게 연구한 신약성경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완수하신 29개의 사명이 있음을 밝히며,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4가지 사명이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4가지 사명이 있음을 밝히며, 예수님의 27가지 사명을 통해 "예수님이 그 자신과 이 땅에서 행하신 일을 드러내는 방식"을 설명한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4가지 사명은 이것이다. 첫째,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져라. 둘째, 자신의 영적 성장에 힘쓰라. 셋째,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도우라. 넷째,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쳐라. 저자는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 네 가지 사명과 더불어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여러 활동과 목표를 추구하고 수행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가 주는 가장 큰 감동은 하나님과 우리를 친밀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는 우주의 하나님이 당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이다"(33). 저자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와 친밀해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시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벅차게 차오르는데, 그것보다 더 큰 감동은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더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의 확신이다!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일을 하든, 매순간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그동안 '사명'이라는 무거운 짐 밑에서 우리를 꺼내주는 선언과 같다. 오히려 어떤 '일'을 사명으로 알고 실행하려 했을 때보다, 더 구체적이고 도전적이다. 그것은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도달해야 할 목표이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방식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인다. 그리고 거기서 자유함을 맛본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곧 "불가능한 일(물위를 걷는 것)을 하고 싶은 소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맨 먼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주님의 명령이 필요했다. 베드로에게는 그의 믿음을 세워주고 발을 내딛게 하는 명령이 필요했던 것이다. (...) 예수님은 "오라"는 한마디로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다"(63). <사명을 찾으면 인생이 달라진다>에서 나는 '오라"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어떻게 사명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 길을 찾은 기분이다. 나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보내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자, 사명을 찾고 싶은 모든 성도들에게 이 책을 우선순위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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