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처럼 떠나다 - 청색시대를 찾아서
박정욱 지음 / 에르디아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까다께스의 이 장소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 때였다"(99).

 

 

나에게 완벽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가 있습니까?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존재를 뿌리까지 흔들며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아름다움, 그것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장소를 갖고 싶습니다. <피카소처럼 떠나다>의 저자는 고백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눈이 시리도록 보고 그 아름다움으로 인생을 채우며 살고 싶었다. 아주 소박한 꿈이었다. 그 아름다움이 내게 필요했다"고. 그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아름다움을 꿈꾸었고, 결국 까다께스라는 이국의 해안 마을에서 그 꿈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젊은 시절에 말입니다. 이보다 더 운 좋은 청춘이 있을까요?

 

까다께스는 "프랑스와 가까운 스페인 해안 도시"입니다. 까다께스는 "달리가 태어난 곳이자 청년 피카소가 철저하게 입체파로의 전향을 구상했던 해변 마을"인데, "이 해변 마을은 예술적 기운이 충만하다 못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곳"(45)이라고 합니다.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스페인 북부 까다께스 항구에서부터 바르셀로나, 시쩨 해변까지 해안선을 따라" 떠나는 여행입니다. 이 여행에서 저자가 찾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는 피카소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바르셀로나의 '네 마리 고양이 술집'이라고 밝힙니다. "그 술집에 앉아 피카소의 첫 작품인 목탄 데생 작품을 한번 보고 싶다"는 것이 여행의 이유이기도 합니다(프롤로그 中에서). 이 여행이 특별한 것은 그곳에 피카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피카소가 주인공이 아니지요. "한 마을에서 동시에 전 세계를 뒤흔든 두 명의 예술가가 탄생"(45)하게 한 청색의 까데스께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이고, 푸르게 젊었던 시절 완벽한 행복감을 맛보게 해준 그곳을 잊지 못하는 한 인생으로 인해 까데스께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누군가 그곳의 이름을 불러준 것이지요.

 

까다스께를 사랑한 한 여행자와 동행하며 우리는 피카소가 그린 여인의 몸과 유사한 덩굴을 만나고, 입체파 그림 속 풍경 같은 마을을 만나고, 피카소 그림 속에 배어 있는 청춘의 아픔을 만나고, 푸른 멍을 가진 피카소의 여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피카소 만큼 배경에 바다를 많이 그린 화가도 없다(24)고 하는데, 저자는 바다로 '내려가는 길'에서 고독을 향한 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이 피카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읽어내기도 합니다. "그의 근원에는 바다의 청색이 있었다. 청색시대의 고독은 그것이었다. (...) 그림 속에 담긴 의미는 고독 속으로 청색 속으로 바닷속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그 정신의 소용돌이에 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은 피카소에게 그림의 의미를 찾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거의 언제나 해변으로 가는 길을 서성거리고 있다"(24).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스페인의 해변 마을을 따라 떠난 여행이자만 정보를 주는 여행서적이 아닙니다. 피카소와 그의 그림 이야기도 있지만 예술기행도 아닙니다. 누가 묻는다면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감성 에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여행지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음을 모두 지우고, 내면에 흐르는 은밀한 의식을 따라 걷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시각적인 책입니다. 스페인 해안의 아름다운 청색에 매료되는 동안, 피카소, 달리, 피카소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마티스, 그리고 입체파에 대한 지식도 어부지리도 얻었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저자의 극찬이 이어질수록 강렬해지는 하나의 바람은 나에게도 이런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구였습니다.

 

삶의 목적이 '여행'에라도 있는 것처럼, 여행병을 앓고 있는 나를 돌아봅니다. 성수기도 아닌데, 휴가철도 아닌데, 여행을 다니는 많은 여행자들을 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막상 그렇게 바라던 여행지에 서서 '음소거'를 하고 내면을 들여다 본다면, 나의 내면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들릴까요? <피카소처럼 떠나다>는 여행의 의미에 대해, 아름다운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나의 까다께스를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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