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제일 좋을까?"(169)

 

 

9시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 하게 한다. 십대 청소년들이 힘 없는 한 노숙자를 괴롭히다 결국 그를 죽게 만든 영상이 공개되었다. 언론은 노숙자를 불쌍한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고, 사회는 통제할 수 없는 청소년 문제로 들끓고 있다. '나'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급하게 나의 의견을 보태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자. 만일 그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 나의 아이라면? CCTV 화면이 흐릿하지만 분명히 그 화면 속의 아이가 내 자녀라면 어떨까? 그래도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나 의견에 변함이 없을까? 또한 내가 그 아이의 부모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제일 좋을까? 네덜란드의 국민작가라는 헤르만 코흐는 <디너>라는 작품을 통해 독자를 그 딜레마에 빠뜨린다.

 

<디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지는 형제 부부의 저녁 식사를 배경으로 한다. 아페리티프, 애피타이저, 메인요리, 디저트, 소화제, 팁이 그 목차이다. 차기 총리로 당선이 확실시 되는 형제 세르게와 그의 아내 바베테, 그리고 세르게의 동생 파울과 그의 아내 끌레르가 함께 디너를 위해 식탁에 앉아 있다. 정치인 형은 승승장구 중이고, '한때' 역사 교사였던 동생도 현재 무직이지만 나름대로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했던 인생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로서 그들이 처한 딜레마, 한순간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세르게와 남편을 어떻게 해서든 총리로 만들고 싶은 아내 바베테, 한 순간의 실수(?)로부터 아들을 지키고 싶은 파울과 끌레르의 긴장감은 메인요리가 나오도록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가벼운 애피타이저로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는 '메인요리'를 향해 갈수록 차츰 확대되다가, '디저트'에서 사건의 전말이 들어나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야기를 끝내는 '소화제' 역할을 하며, 사건 '그 후' 이야기를 팁으로 선이 끊어지듯 뚝! 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디너>는 독자로 하여금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주인공 부부가 처한 딜레마가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기 전까지 우리가 가진 편견과 위선을 여러 모양으로 노출시킨다. 예를 들면, 동성애를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아주 불건전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동성애를 변태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웃의 동성애자가 자신의 고양이를 다정하게 보살펴 줬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들에 대한 혐오를 잊어버린다. 그 동성애자들이 "만약 고양이한데 먹이를 주기는커녕 돌멩이를 던져 내쫓거나 독을 넣은 미끼를 발코니에 던져놓는 사람이었으면", 그들은 "금세 다시 역겨운 게이가 됐을 것이다"(99). 작가는 이런 식으로 우리의 편견과 위선을 꼬집고, 우리가 가진 얇팍한 윤리의식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세계2차대전으로 '희생'된 사람 중에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경우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안도할 수 있는 그런 인간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들 모두를 '희생자'로만 애도하는 태도라든지, <사건파일 XY>에 그 문제의 동영상이 방송되자 불량 청소년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넘쳐나고 있지만, "자기 멋대로 아무데나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을 방해해는 비정상적인 노숙자나 부랑아들에 대해서는 다들 침묵"하는 집단적인 분노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디너>는 사형집행과 사적 제재, 즉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밟기 전에 개인적으로 행하는 개인적 사형 집형"(303)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슬며시 풀어놓으며,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독자들을 경악시킨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라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사건을 그냥 덮어두려는 부모를 쉽게 정죄해서는 안 될 듯하다. 아들이 자신의 살을 계속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십분 이해해서라기보다, 사건을 지켜보는 군중의 '저속함'을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디너>는 여러 모로 예상을 뛰어넘는 소설이다. 요리책 같은 표지에서부터, 주제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이야기의 중반까지 '메인' 스토리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전개 방식, 느닷없이 터지는 음모까지 작가의 의도를 따라잡아 보려 할수록 계속 잘못 짚게 될지 모른다.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어도, 기억에 남을 만한 <디너>였던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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