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 내려놓기 - 하버드대학원 교수 조세핀 김 어머니, 빵점 엄마 주견자 사모의 맡기는 교육
주견자 지음 / 두란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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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교육에는 그야말로 빵점인 엄마"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워낸 엄마들의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것이 신앙간증일 때는 거부감이 더 큽니다. 믿음의 부모들조차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한 것,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은 것을 성공적 자녀교육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기는 세태가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의 영웅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오셨고, 사셨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자녀 교육의 대한 간증이 잘못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영웅이 되라고 부추길 위험이 있습니다. 오로지 그것을 인생 목적으로 삼고 있는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제가 이 책을 읽고 많이 울었습니다. 이 책에도 성공한 자녀들이 등장합니다. 믿지 않는 가정도 부러워 할만한 성공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자녀의 성공을 자랑하는 책이 아닙니다. 자녀를 키우며 부모가, 특히 믿음의 어머니가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짜 싸워야 할 싸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허울 뿐인 신앙으로 오히려 자녀를 신앙 불구로 만들며 자녀에게 환멸을 심어주는 부모는 아닌지, 이 땅의 모든 믿음의 어머니들이 이 책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성경 사사기를 보면, 뒤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던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사사기 17:1-5). 이 이야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이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어머니의 실패, 신앙 교육의 실패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재밌는 것은 사사기가 이렇게 암울한 상황으로 끝나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다시 '두 어머니'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성경은 룻기이고, 룻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성경은 사무엘서입니다. 룻기는 믿음의 여인 룻을 통해 다윗이 나는 이야기이며, 사무엘서는 한나의 기도를 통해 사무엘이 태어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이스라엘의 부흥을 가져온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역사를 <엄마마음 내려놓기>에서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희망은 바로 믿음의 어머니라는 확신을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엄마마음 내려놓기>의 저자는 개척교회를 하며 삼남매를 교육한 사모님이십니다. 친구들의 3분의 1 가량이 목회자 자녀이기 때문에, 저는 목회자 자녀가 오히려 건강한 신앙으로 성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부모를 교회(성도)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자녀도 있고, 온통 목회자 자녀가 해서는 안 되는 것들 때문에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느끼는 자녀도 있습니다(이런 친구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죄에서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깨닫게 하는 무서운 율법이 됩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문화적인 괴리로 소통이 단절되어 고통을 겪는 가정이 많습니다. 성경적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한국적 상황에서 믿음의 어머니들이, 특히 목회자 자녀가 자녀를 교육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엄마마음 내려놓기>라는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희망과, 자녀교육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를 엄마가 되게 하셨다."

  

 

주견자 사모님은 누구보다 "엄마 됨"의 사명을 잘 알고 계셨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성공시키기 위해 교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개척교회를 섬기는 가난한 사모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이들에게 쏟는 시간이나 물질이 부족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한 시도 "믿음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주견자 사모님은 세상적으로는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빵점짜리 엄마, 무능한 엄마였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교육이론이나 문화에 대해 변변히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주견자 사모님이 어머니로서 올린 첫 기도는 이것이었습니다. "네, 주님, 주님이 주신 말씀과 지혜만으로 제게 주신 자녀를 키우겠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문화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을 가르치겠습니다. 그것이 엄마인 제게 주님이 주신 이 아이의 유일한 먹거리니까요"(28).    

 

주견자 사모님은 "유능한 엄마일수록 말씀은 뒤로 미루고 세상식 교육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데 빠르다"(7)고 지적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자녀 교육을 위한 각종 세미나와 공부법 강좌가 열풍입니다. 어머니들이 자리를 꽉꽉 채울 정도로 열심입니다. 교회에서 존경받는 성도들조차도 자녀의 신앙교육에 전부를 건 부모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자녀가 교회에 잘 출석하고, 특별한 말썽을 부리지 않으면 안심입니다.

 

"믿음의 어머니"라는 사명감, 정체성을 가진 주견자 사모님은 뚜렷한 자녀교육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의 나라를 자녀에게 가르치는 교사다. 엄마는 말씀의 풀을 씹어 풍성한 말씀의 젖을 자녀에게 먹일 거룩한 의무가 있다"(8). 세상 지식은 부족했지만 자녀와 성경공부 교재를 함께 만들며 창의력을 키워주는 지혜가 있었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말씀을 암송할 때는 특별한 용돈을 주어 말씀과 가까이하는 생활을 가르쳤으며, 무엇보다 예배 중심으로 살아가는 교육을 확실하게 시켰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 익혔던 신앙습관이 자녀의 인생에 놀랍게 역사하는 것을 보며, 신앙 교육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의 입을 통해 고백되는 생생한 간증을 읽으며 믿음의 자녀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아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개척교회의 사모라는 내 삶에 아이를 동참시킨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큰 감동과 자녀양육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준 것은 바로 "함께"의 힘이었습니다. 주견자 사모님은 "내 삶의 영역 안에서 태어나게 하신 아이니 이 아이를 위한 교육 현장은 곧 내 삶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32). 그리하여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를 할 때는 물론이고 심방을 가거나 거리전도를 할 때도 아이와 늘 함께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두고 함께 기도함으로, 부모가 겪는 일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지 않도록 했고, 직접 기도 응답을 체험하도록 교육했습니다. 특히 "두 평 남짓 되는 비좁은 공간에서 네 가족"이 함께 생활한 것이 자녀에게 귀한 성품을 가르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비좁은 방에 하루가 멀다 하고 성도들이 드나들며 문제를 나누면 어린 자녀들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함께 기도해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보다 가난하고 절박한 성도들의 아픔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초연했다. 철없는 아이들이지만 부모가 돈을 버는 대신 영혼을 구원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밤늦도록 성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해해 주었다"(52-53). 이렇게 자란 덕분에 세 자녀가 "치열하게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남밖에 모르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느라 모든 공간을 교회에 드리고 단칸방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 아이들은 자기 형제는 물론 남까지도 섬길 줄 아는 귀한 성품을 갖게 되었다. 그 귀한 성품을 선물로 주시려고 우리를 지독한 가난에 처하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56). 가난한 환경이었지만, 수억 원의 돈을 주고도 가르칠 수 없는 멋진 성품을 갖도록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

 

자녀가 부모의 고민을 알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부모님들은 놓치고 있는 듯합니다. <엄마마음 내려놓기>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자기 방이 생긴다. 삶이 여유로워지면서 아이들은 일찍부터 자기만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보니 같은 집에 살면서도 부모의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옆방에 있는 형제가 말 못할 고민으로 얼마나 괴로운지를 모른다"(55).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멋진 공부방,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잘 하는 일만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따로 따로의 공간에서 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은 지금, 하나님이 아닌 돈의 힘을 가르치고 있다."

 

 

<엄마마음 내려놓기>는 "흠잡을 데 없는 만점 부모"들이 "애들을 명문 대학에 넣으려고 완전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현실을 아파합니다. 상담전문가로 활동하는 주견자 사모님의 막내 아들은 공부 잘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 청소녀들에게 족쇄가 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고 가족 모임이나 여가 생활에도 참여하지 못해서 인간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을 봅니다. 혼자 있는 데 익숙한 아이들은 사람들이 다가오면 불편해 하고 심지어 어머니 외의 가족, 즉 교류가 적은 아버지나 형제들하고도 심각한 갈등을 겪는 것을 봅니다"(228).

 

모세라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태어나기 전, 사탄은 유아 살해라는 끔찍한 방법으로 모세의 출생을 막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도 똑같은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에도 사탄의 문화는 청소년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거목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입니다. 주견자 사모님은 세상의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빵점 짜리 엄마였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 것으로 자녀를 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이 없었기에 하나님의 공급하심, 무엇도 겁나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만나게 해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아이를 돈의 노예로 만들지 않고, 남다른 경쟁력을 가진 자녀로 키울 수 있는 비결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가 이 아이들을 책임져 주세요. 이 아이들은 아버지 자녀잖아요. 저한테 아이들만 맡기시고 돈은 안 주셨으니까 아이들 학비는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세요. 그래서 저 믿음 없는 청년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에게 어떻게 공급하시는지를 보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게 해주세요"(129).

 

자녀에게 이런 칭송을 듣는 어머니가 몇이나 될까요? "어머니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다른 부모들과 다른 차별되는 특징이지요. 어머니는 기도와 말씀이 삶의 모든 문제의 답이라는 사실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229). "제가 그 가르침대로 살아 보니까 세상 교육은 따라올 수 없는 기막힌 지혜의 길이더라고요. 그런 어머니가 늘 자랑스럽고 고마워요"(232).

 

<엄마마음 내려놓기>는 신앙교육 뿐만 아니라, 체벌과 훈육의 원칙, 자녀의 잘못된 버릇과 나쁜 행동을 고치는 지혜, 자녀와의 소통의 창구를 지키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자녀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회자 가정이 있다면, "목사 자녀라는 짐을 지우는 대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긍지를 심어주는" 믿음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고,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가슴 뭉클한 놀라운 간증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세상에 자녀들을 빼앗기고 신음하며 아파는 어머니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믿음의 어머니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며 중요한 것인지 다시 깨닫습니다. 자녀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 이루어주실 그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게 합니다. 모든 믿음의 어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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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뇌 - 뇌는 승리의 쾌감을 기억한다
이안 로버트슨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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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승자를 만들고 또 권력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인류 전체의 미래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서도 중요하다. (...) 권력과 성공의 이 물리적인 근원을 올바르게 인식할 때 우리는 권력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우리 주변의 권력을 보다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15).

 

 

평소 제 생활신조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다운 자질이나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탐하여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는 순간,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지를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그리하여 스스로에게도 자주 묻곤 합니다.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조직생활을 하며 꼴불견으로 보이는 사람 중 하나가 '높은 자리'에 앉는 순간 돌변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승진을 하고 나면 "사람이 변했다"는 수근거림이 많이 들려옵니다. 어줍잖은 권력(지위)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거만해지는 사람을 보고 실망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평가들이 우리의 선입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승자의 뇌>는 권력을 쥐게 되면 사람이 변한다는 속설(?)을 실험으로 증명해냈습니다. 일명 "쿠키 실험"이라고 하는 관찰 실험입니다(275-278). 쿠키 실험은 세 사람을 한 조로 만들어서 사회적 논쟁거리를 놓고 서로 토론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세 사람 중 한 사람을 무작위로 뽑아 '조장'으로 세웁니다. 조장은 조원들이 토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점수를 매기는 역할을 합니다. 조장은 조원들을 판단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토론이 끝난 다음 실행 진행자는 다섯 개의 쿠키가 담긴 접시를 가지고 와서 조원들 앞에 내려놓습니다. 세 사람이 각자 하나씩 쿠키를 먹고 나면 두 개의 쿠기가 남습니다. 여기서 "누가 네 번째 쿠기를 먹을까?"가 이 실험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상할 수 있는대로) 대부분의 경우에는 무작위로 선정된 조장이 그 네 번째 쿠키를 먹습니다. 그런데 이 쿠키 실험은 몇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더 보여줍니다.

 

조장으로 선택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쿠키를 더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뻔뻔해진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예절을 제대로 받지 않았거나, 성격이 칠칠치 못해서 나타나는 평소 습관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권력은 또한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주 잠깐 동안 권력의 맛만 살짝 봤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보다 이기적으로 바뀌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 무심해진다"(277).

 

 

 

"우리가 정말 바라지 않는 것은 지도자가 권력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는 승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위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를 위해서 승리하고자 하는 승자를 필요로 한다"(344).

 

 

<승자의 뇌>는 독자에게 미스터리한 질문을 던져주고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승자의 뇌>가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승자를 만드는 것은 것은 무엇일까? 승자는 태어날 때부터 성공을 보장받았을까, 행운과 환경 덕분에 성공했을까?

왜 어떤 사람들은 승리하려고 엄청난 노력과 열정을 쏟고 또 어떤 사람은 성공과 권력을 일부러 피하려 할까?

권력 혹은 권력 없음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왜 우리는 이처럼 간절하게 혹은 지독하게 승리를 원할까? 그리고 과연 무엇이 승자를 만들까?

 

<승자의 뇌>는 무엇이 승자를 만들고, 또 승자가 얻어낸 권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힙니다. 옮긴이는 이 책이 "심리학 및 뇌 과학 분야에서 그동안 진행되었던 수많은 실험 사례들을 동원해서 때로는 논문처럼 자세하게, 때로는 이야기꾼처럼 흥미진진하게, 또 때로는 유쾌한 대중강연자처럼 재미있게 조곤조곤 설명한다"(378)고 평가하는데,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실험사례들이 자세하게 설명되는 데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여 어려운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1장 '피카소 아들의 미스터리'입니다. 이 장에서 던지는 질문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승자 혹은 패자가 결정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피카소의 아들이 어째서 평생을 술주정뱅이로 살았는지 추적합니다. 이 질문은 신을 아버지로 둔 자녀의 끔찍한 저주, 다시 말해 "태양이나 신과 같은 아버지를 둔 자식"이 어째서 심리적 불구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답이기도 합니다. "성공을 힘들게 쟁취한 게 아니라 승자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믿음"이 사람을 타락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승자의 뇌>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 승자를 만드는가 하는 것보다, 권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있습니다. '승자 효과'(권력)가 사람들의 뇌를 훼손하고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권력이 사람의 뇌에 미치는 효과가 지구온난화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더 야망에 불타게, 더 공격적으로 그리고 더 집중하도록 만"들어 계속해서 승자가 될 수 있는 선순환을 가져옵니다(178). 그러나 자아 지향적인 P 권력욕이 통제되지 않으면, 독재자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권력은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부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부모가, 더 좋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상대를 경멸하는 배우자가 서로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듯이 말입니다.

 

<승자의 뇌>는 "인간의 뇌가 권력 때문에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목적의 수단,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을 사람이 아닌 사물로 바라보게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본인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원칙을 무시하는 위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승자의 뇌>는 '권력'이 인간 관계의 중심 요소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서 휘두르며 삽니다. 부모-자녀 간에도 그렇고, 의사와 환자의 사이에서도,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도,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도 권력 관계가 성립됩니다. <승자의 뇌>가 밝히는 권력의 속성은 사회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찰을 위한 중요한 틀을 제공합니다. 모두에게 1독을 권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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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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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아름답게 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218-219).

이 문장이 일으키는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마음이 빨려 들어간다. 도대체 어떻게 살면 이런 자기 선언을 할 수 있을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아름답게 사는 것이었다는!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정원"에 있다. 그는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꼭 정원을 만들고 가꿀 만큼" 평생 정원사의 일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는 직접 채소나 꽃들을 심고 화단에 비료를 주고 물을 주는 일을 사랑했다. 그에게 정원을 가꾸는 일은 고상한 취미도, 한가로운 놀음도 아니었다. 정원을 가꾼다는 행위는 고된 노동이었지만, 헤르만 헤세에게는 엄숙한 아름다움과 품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정원을 가꾸는데 열심을 내었지만 한가로이 즐길 줄 알았고, 식물을 지배하기 보다는 "가을의 타는 장작불의 푸른 연기 곁에서 꿈꾸는"(141) 일을 더욱 소망하는 정원사로 살았다.

 

헤르만 헤서는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 "그 선율은 신들에게 감사하며 땅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맛이 떫은 사과, 단맛 나는 포도, 속이 여문 밤송이를 노래하며, 골짜기에 감도는 파란색이나 붉은색, 황금색, 그리고 호숫가 계곡의 화창함, 멀고 높은 산들의 고요함을 찬미한다"(146). 그에게 정원을 가꾸는 일은 경건한 예배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존속해온 가장 소박하고 경건한 인간생활이기 때문이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근면과 노고로 가득 차 있으나 성급함이 없고 걱정 때위도 없는 생활이다. 그런 생활의 밑바탕에는 경건함이 있다. 대지, 물, 공기, 사계의 신성함에 대해 믿음이 있고 식물과 동물들이 지닌 생명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다"(146).

 

 

  

 

"매일 아침 나는 아틀리에의 창 아래로 양손을 뻗어 두세 개의 무화과나무 열매를 따서 먹는다"(142).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있으면 눈앞에 아름다운 수채화가 그려지는 듯하다. 대문호가 그려내는 자연의 경치가 "고요한 영원으로 빛나고" 있다.

 

봄은 그에게 찬사와 경탄의 계절이다. 달콤한 겨울잠에 빠져 있던 정원사에게 봄은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피로에 젖어 등이 아파 오도록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계절이지만, "길고 어두운 다섯 당 동안이나" 정원 없이 지내야 했던 정원사에게는 잡아 없애야 하는 애벌레, 풍뎅이, 거미줄 따위도 반갑기만 한가 보다. 정원사는 "즐거우면서도 수줍은 듯 풀숲에 빼꼼이 모습을 드러낸" 노란 꽃들을 보며 "생명에 대한 용기를 가진 꽃"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싹이 트며, 꽃이 피어나는 것"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본다(11-12). 즐거운 강낭콩, 발랄한 딸기를 기대하며 부지런히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정원사는 마치 에덴을 가꾸는 창조주가 된 기분에 젖는다. 물망초와 레세다 꽃으로 화려하게 가장자리를 다듬으며 꿈을 꾼다. "햇빛이 반짝이는 여름이 되면 그곳에 탁자를 갖다 놓고 앉아 우유가 조금 들어간 커피를 아끼지 않고 마셔야지"(17).

 

흥분과 기대로 한껏 들떴던 봄과 달리, 정원사에게 여름과 가을은 "생의 짧은 순환"을 깨닫게 해주는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는 "정원에서의 여름이 너무도 빠른 속도로 조급히 왔다가 지나가 버리는 것이 놀랍고 염려스럽다"(19). 생명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여름이지만 "겨우 몇 달밖에 주어지지 않은 여름의 짧은 시간 동안 화단 안에서는 여러 식물들의 삶이 지나가"는 것을 목도한다. 두세 달 새에 작고 어렸던 식물들이 늙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 질서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런 정원사에게, 순응하는 자연과 달리 덧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소유의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의 삶은 기이할 뿐이다.

 

정원사인 헤르만 헤세가 가장 사랑했던 계절은 딱 지금의 시기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의 모습. 늦여름의 "달콤한 성숙함이 돌연 갑자기 시들고 죽어버릴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정원사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모습으로 돌변한다.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냄새 맡고 싶다. 이 풍요로운 여름이 내 감각에 부여하는 모든 것을 맛보고 싶다"(105).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감수정으로 가득 채워진 휴식을 선사"하는 책이다. 헤르만 헤세는 "하루 중 한 한 번이라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거나 활기에 찬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156)고 말한다. 여행에세이로 유명한 일본의 후지와라 신야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외부라든가 풍경에 관심이 없다"고 통찰한 바 있다. 젊은 세대들도 외형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바다, 혹은 산을 찾지만, 그것은 삶의 터전이 아닌 일시적인 유희의 대상일 뿐이라고 일침했다. 자연이 거세된 터전에서 살아가면서 일부러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 잠시의 눈요기로 자연을 즐기는 것을 자랑 삼는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건조하고 가난한 것인가. 너무 많은 일에 너무 많이 혹사 당하고 있는 나의 눈에게, 자연과 교감하는 기쁨을 선물해주어야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계몽하고 세상을 가르치고

이념으로부터 역사를 만들어 내려는 그 열정, 저 격렬한 쾌락을 사람들은 자제해야 한다.

 

(...)

 

그러므로 우리는 겸허해지자.

될 수 있으면 충동으로 가득 찬 시대의 흐름에

저 영혼의 고요함으로 맞서자(204).

 

헤르만 헤세에게 정원을 가꾸는 일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었다. 전쟁과 공업에 대한 환멸, 값싼 낙관주의에 대한 거부이자, 온몸으로 보여준 저항이기도 했다. 헤세는 발전이라고 믿는 인간의 문명이 온갖 쓰레기 더미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근사한 자동차 전시장 뒤에 "창백한 얼굴에 보잘것없는 임금을 받는 수많은 광부와 질병, 그리고 황폐함"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았다. 끊임없이 새 것을 열망하게 하여 인간을 물건의 노예로 만드는 공업의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요즘 사람들은 칼이나 포크, 커프스단추나 모자, 산책용 지팡이, 우산 등을 시시때때로 바꾼다. 공업은 이 모든 물건을 유행의 노예로 만들어놓는 데 성공한 셈이다. 한때만을 생각하고 계산된 이런 유행 형태에서 태곳적 이래로 고수되어 온 도구들의 아름답고 생명력있고 정연한 진짜 형태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27).

 

헤세가 묘사하는 도시인들의 미친 삶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이곳 사람들은 놀랍게도 아침에 믿지기 않는 이른 시각에 일어나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갔으며,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켜고, 자주 목욕을 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대다수 사람들은 사업가이거나 그들에게 고용된 직원이었으며, 모두가 미쳐버릴 정도로 할 일이 많았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들은 사실 사업이 잘 안 되어서 할 일이 많았으며, 형편이 나아지게 하려고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혹사당하면서도 거의 모두가 물건들을 만들어내거나 그 물건들을 판매하였다. 그 물건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은데도, 오직 생산자와 상인에게 돌을 벌게 해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85).

 

돈과 기계에 매달린 인간, 일그러진 표정, 쇠약해진 영혼. 헤세는 이런 삶을 견딜 수 없었다. "무의미한 자원 전쟁, 무수한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도시와 시골의 아름다움과 쾌적함을 사라지게 하고, 또한 공장들이 악취를 풍기고 물을 오염시키고, 그뿐만 아니라 언어와 가치, 사고 체계와 신앙의 체계가 병들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119-120).

 

그런 헤세에게 정원을 가꾸는 일은 악취 나는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깨지기 쉬운 영혼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정원이 없었다면 이 대문호는 시들어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 땅은 식물이 자라는 땅이어야 한다는 것, 이 땅에 화려한 궁전 대신 눙부의 헛간을 세우는 것이 진정 인류의 축복이고 행복임을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진정한 기쁨을 잃어버린 채 쾌락에 노예로 사는 우리들을 자연으로 초대한다. 결국 쓰레기가 될 물건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유하느라 혹사 당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자연이 주는 휴식을 선물한다.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 속에서 영혼의 고요함을 되찾자고 속삭인다. 한때 그의 시 때문에 독일어를 공부하고 싶은 열망으로 불탔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가 남긴 어떤 대작보다 더 깊은 울림과 치유를 이 책에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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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 - 내 삶을 지배하는 모든 가치관의 혁명적 무너짐
제프 고인스 지음, 이지혜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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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위대한 목적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큰 뜻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33).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등떠밀려 스타트라인에 세워졌고 대학입시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뛰어야 한다. 대학입시의 또다른 이름은 직업경쟁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그렇게 염원하고 염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남보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대우 받으며 살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기회를 박탈 당하고, 한계 안에 갇혀버린다. 대입에 성공했다 해도 성적에 따라 학교가 정해지고, 전공이 정해지기 때문에 졸업과 함께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또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꿈을 꾸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현실(한계)에 맞추어져가는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교회에서 가장 많이 받는 상담 중에 하나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지만 '이건 아닌데' 하는 공허함에 시달리고, "뭔가 더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초조해지고, '인생이 이렇게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떤다. 세상의 모든 자기계발서들은 꿈을 꾸라고, 꿈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외치지만, 교회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부르신,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크게든, 작게든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태어났다"(254). 그런데 우리를 부르신 위대한 목적,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한 사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명을 따라 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해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많다. <난파>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이다. "진짜 소명을 발견하고 싶다면 무너져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당신을 무너진 삶으로 초대한다"(22).

 

 

살다 보면, 하루아침에 삶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고, 직장을 잃기도 하고, 사람에게 버려지기도 하고,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난파>에서 말하는 무너진 삶이란 이런 물리적인 무너짐이 아니다. 진짜 무너져야 할 것은 우리의 세계관(가치관)이라고 말한다. 저자 '제프 고인스'는 불로거이자 강연가로 유명한데,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는 선교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또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사람들의 고백 속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해 냈다. 자신들의 경험을 고백하며 "모두가 한결같이 흥미로운 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무너졌다"는 말이었다(37).

 

"무너졌다"는 말의 뜻은 "현 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을 의미한다(40). 저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을 무너뜨린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기 시작했고, 하나의 답을 얻었다. 인생이 무어지는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았고, 그것을 자기의 고통으로 느꼈으며, 자신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을 도움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만을 위하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관이 무너지고, 남을 위해 내 것을 희생(나눔)하는 기쁨과 행복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난파>에서 말하는 무너짐은 "변화"를 뜻한다. 세계관이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알게 되었다는 뜻"(40)이다.

 

 

 

 

"네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싶으면, 상처가 있는 곳을 찾아 거기서 시간을 보내야 해"(82).

 

 

세상은 우리에게 나를 주장하라고 가르친다. 나의 욕구, 나의 욕망, 나의 가치, 나의 만족에 집중하게 한다. 그러나 <난파>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할 때 우리의 소명을 발견할 수 있다"(82)고 단언한다. 나의 소명은 "나"에게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너"(다른 사람)에게서 찾아지는 것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너의 고통"에서 찾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명을 찾고 싶다면 상처가 있는 곳,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빈곤과 필요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50). 다른 사람들의 고통, 그 고통을 바라보는 나의 불편함이 바로 우리의 갈망에 대한 해답이요, 열쇠이다!

 

<난파>는 무너짐의 체험을 위해 여행을 권한다. 안전지대를 벗어나 세상의 고통과 마주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며, 나의 안락을 위해 쌓아왔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라고 외친다. 세상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삶의 목적이고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난파>는 세상의 고통을 내 것으로 껴안는 불편함이 소명임을 일깨운다. "소명은 어떤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내 느낌과 상관없이 옳은 일을 하는 불편함을 뜻했다"(121).

 

 

 

 

"진정한 소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소명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 그러다 보면 계속 미루는 습관이 생긴다 -이 아니라 헌신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다"(213).

 

 

<난파>는 달란트를 찾아주고, 달란트에 맞는 직업 찾는 법을 가르쳐주는 그런 책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큰 원리를 말하고 있다. <난파>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안락한 삶의 거품을 제거한다. 잠깐의 헌신으로 값싼 자기 만족 속에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며 사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한 번 무너지면 절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장기적인 변화의 길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 그의 말은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고,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다. 교회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물리적으로)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난파>는 "무너짐"이라는 충격적인 이미지를 통해, 세상의 원리와 반대로 사는 삶, 나눔과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집을 다시 짓도록 만든다.

 

특별히 이 책은 "열심 있는" 청년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저자는 무너짐의 경험을 위해 '단기 선교'를 권하면서도, "단기 헌신에 중독된 하위문화"를 경계한다(201). 현재 한국교회의 단기 선교의 주체는 주로 청년들이며, 선교 단체 등에서 훈련받으며 헌신을 다짐하는 청년들도 많다. 그런데 그런 청년들 중에는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생활 태도로 어른들의 걱정을 사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본다. 현실도피적인 열정으로 자기를 합리화하며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난파>는 우리의 무너짐이 어떻게 현실의 삶으로 이어지며, 그 속에서 헌신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난파>는 부록으로 <액션 가이드>북을 제공한다 <액션 가이드>는 우리가 읽고 깨달은 진리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되었다. 청년부 소그룹 모임 교재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처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는 말씀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교회 조직 안에서 일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 원하시는 자리에 있기 위해 매일 기도하며, 매순간 '구체적인' 모양을 알기 위해 씨름했다. 그런데 <난파>를 통해 두 번째 부르심의 음성을 들었다. <난파>를 읽으며 이 세상에 길들여지고 어느새 그것에 맞춰져 있는 나의 세계관이 다시 무너져 내림을 경험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나와 동일하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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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 : 입문 편 - 통계학이 최강의 학문이다 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 시리즈
니시우치 히로무 지음, 신현호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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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해석이 중요해졌다!

"통계학은 '최선'을 향해 가는 길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알려주는 학문이다"(291).

 

 

'통계'라고 하면 설문조사 결과를 백분율로 정리해놓은 것 정도로 알고 있었던 제게 '통계학'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습니다. 정복할 수 없는 산처럼 버티고 선 통계학 때문에 논문을 포기해버렸을 정도입니다. 논문을 쓰기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가 큰코 다친 셈입니다. 통계학을 붙잡고 씨름하면 할수록 정말 정교한 논리의 학문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감동처럼 차오릅니다.

 

<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은 통계학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입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예언으로 시작합니다. "1903년, H. G. 웰스는 읽기, 쓰기 능력과 마찬가지로 통계학적 사고 역시 장차 사회인이 갖춰야 할 기본교양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16). H. G. 웰스는 SF소설의 아버지이며, 폭넓은 과학지식으로 핵무기와 국제연명, 백과사전의 등장까지 예언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통계학의 중요성을 간파하는 사람은 또 있습니다. 구글의 수석 경제학자 할 베리언은 2009년 "10년 이내에 통계가는 가장 섹시한 직업이 될 것이다"(48)고 말했습니다.

 

<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은 어떤 분야에서든 통계학이야말로 "최강의 무기"라고 단언합니다. "읽고 쓰는 능력을 리터러시(Literacy)라고 하는데 통계학적 리터러시, 즉 '통계 리터러시'가 없으면 사업적으로, 개인적으로 제대로 큰 결정을 내리지 못할 위험이 크다. 읽고 쓰기를 못하면 계약서나 법률 내용을 알 수 없는 것처럼 통계 리터러시가 없으면 확률이나 테이터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17).

 

급변하는 생활환경, 불확실성이 증가는 사회환경에서 (특히 비지니스 세계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통계학은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 가장 올바르고 빠른 답을 제시"해 준다고 강조합니다. "통계학은 지금 IT라는 강력한 동반자를 만나 모든 학문 분야를 통틀어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인간의 삶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최선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48). 선거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통계학이 왜 최강의 무기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구글 출신의 청년 댄 시로커를 선거참모로 한 오바마 캠프가 "버락 오바마닷컴을 방문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어떤 그림이나 메시지를 노출하느냐에 따라 선호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측정해 유권자를 타겟팅(목표)별로 나눠 새로운 선거 전략을 짰고 이는 결과적으로 오바마를 재당선시켰다"(91-92)고 평가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대공황에서 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젊은 통계가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도 밝힙니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어떤 학문에 종사하는 학자라도 통계학을 사용해야 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으며 통계 리터러시만 갖추고 있으면 경험과 감 이상의 실제적인 무기를 손에 넣는 것이다"(38). 우리가 통계(학)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통계학을 배워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최선의 답은 이미 우리 주변에 있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정보를 단순히 기록하고 보관만 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백분율로 표시하는 정도의 단순집계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행동 전략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분야이든 의사결정권을 가진 책임자라면 적어도 통계의 결과를 해석하고 그것으로부터 행동 전략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통계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할 때 가치 있고 의미 있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계학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통계적 인과추론의 기초" 정도는 몸에 익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충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절한 비교를 하는 통계적 인과추론의 기초만 몸에 배어 있으면 경험이나 감을 뛰어넘어 비즈니스를 단숨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비결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83).

 

옮긴이는 이 책의 성격과 가치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번역하는 내내 가졌던 생각입니다만 이 책을 결코 통계확의 입문서가 아니며 전문서적은 더더욱 아닙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거쳐 '빅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통계학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유용성을 발휘하는지 깨우쳐주는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295). 옮긴이가 이런 설명을 덧붙인 것은 이 책을 전문서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서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난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완전히 소화하기 다소 어려운 전문지식입니다. 이 책을 통해 통계학의 기법을 습득하는 데 목적을 두지 말고, 통계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통계학이란 무엇인지 그 정교한 이론을 맛보기 정도로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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