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공경희 옮김 / 책만드는집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칼릴 지브란.
학창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에 가장 많이 인용했던 이름입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다음의 한 구절 때문입니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칼릴 지브란의 고백을 대신하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기도 했고, 변치 않는 우정을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칼릴 지브란이 시인일 뿐만 아니라 철학자요, 화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의 글을 인용하는 작가들도 많았는데, 대부분 <예언자>를 인용한다는 걸 눈치 챘습니다. 최근에 <파리의 심리학카페>라는 책을 읽었는데, 베테랑 심리학자인 그녀도 <예언자>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시의 일부를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그대들 중의 어떤 이는 말한다.
기쁨은 슬픔보다 위대하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아니, 슬픔이야말로 위대한 것.
하지만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이들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
이들은 언제나 함께 오는 것.
- 모드 르안, 파리의 심리학 카페, 갤리온, 129-130.
<예언자>는 이제 섬을 떠나야 하는 한 예언자가 마지막으로 총 26가지의 삶의 주제에 대해 지혜의 말을 남긴 것입니다. 그것이 예언자의 말이라는 점에서는 "현대판 성서"라는 표현에 더 공감이 됩니다. 실제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 무아지경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던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냉정한 비판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던 석학들이었다는 점에서 책의 내용과 제목도 참 걸맞아 보입니다.
<예언자>는 "현재까지 세계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1억 부 이상"(112) 판매고를 올린 책이라고 합니다. 출판 역사의 수치가 곧 책의 가치는 아니겠지만, <예언자>가 얼마나 대단한 책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증거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며 전세계인들에게 애독되어 오고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계속 인용되는 책이니 만치 꼭 읽고 싶었던 책인데, 그만큼 '번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처럼 쓰여진 글귀이기 때문에 암송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특별히 번역자를 눈여겨 보았는데 이번에 책만드는집에서 출간한 <예언자>는 '공경희 완역본'이라는 점에 특히 끌렸습니다. 밑줄 그은 몇 문장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사랑이 그대들에게 손짓하면 그를 따라가기를,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
도 그의 날개가 그대들을 감싸면 그에게 응하기를,
그의 깃털 아래 숨겨진 칼이 그대들에게 상처를 입힐지라도.
그가 그대들에게 말을 걸면 그를 믿기를,
삭풍이 정원을 황폐하게 만들듯 그의 목소리가 그대들의 꿈을 산산이 부술지라도(15-16).
결혼에 대하여
그러나 함께하면서도 거리를 두기를.
그리하여 그대들 사이에 천상의 바람이 너울대게 하기를.
서로 사랑하되 사랑에 굴레를 쓰우지 말기를.
사랑을 그대들 영혼의 양쪽 해안 사이에서 흐르는 바다가 되게 하기를(19-20).
베풂에 대하여
또 궁핍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궁핍 아닌가?
샘이 넘치는데도 갈증을 겁내는 것이 바로 풀 길 없는 갈증 아닌가?(24)
자유에 대하여
그때 내 안의 심장에서는 피가 흘렀네.
자유를 추구하는 욕망마저 재갈이 되어야,
또 자유를 목표와 성취라고 말하는 것마저 그만두어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으므로(56).
종교에 대하여
또 윤리에 얽매여 처신하는 자는 노래하는 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이니.
가장 자유로운 노래는 창살 틈으로 나오지 않네(91).
<예언자>는 사랑, 결혼, 자녀들, 베풂, 먹고 마시는 것, 일, 기쁨과 슬픔, 집, 옷, 사고파는 것, 죄와 벌, 법, 자유, 이성과 열정, 아픔, 자신을 아는 것, 가르침, 우정, 대화, 시간, 선과 악, 기도, 쾌락, 아름다움, 종교, 죽음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데, 시적이 문장이 글의 아름다움까지 더하고 있습니다.
가끔 세상은 우리가 생각 없이 살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위선적인 정치, 교묘한 상술, 합법적인 사기, 논리적인 거짓이 우리 삶을 위협하고 도둑질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살고 있진 않나 하는 위기감입니다. <예언자>와 같은 책은 날카로운 통찰로 잠자는 정신을 깨우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의미에서 삶의 등불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의 편집이 조금 더 고급스러운 예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옆에 두고 몇 번을 다시 읽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