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당신을 위한 로마서 1 팀 켈러, 로마서
팀 켈러 지음, 김건우 옮김 / 두란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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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을 많이 못해서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친구에게!

 


전도폭발 훈련을 받고 전도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전도폭발은 "선생님, 만일 오늘밤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런데 "착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해서 천국에 못 들어갈 것 같다'고 대답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느냐와는 상관 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더니, "그러면 살인죄를 지은 사람이나 평생을 선하게 살아온 사람이나 다 똑같이 천국에 간다는 말이냐?" 하면서 격하게 화를 낸는 할아버지도 계셨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 도덕적인 삶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회적으로 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와, 본이 되지 못하는 신앙인에 대한 사회적 지탄과, 믿음만 강조하고 행함은 부족한 것에 대한 신학적 자성이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발간된 김세윤 박사님의 <칭의와 성화>도 그런 요청에 대한 신학적 답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세윤 박사님은 그 책에서 칭의와 성화를 다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종말의 완성 때까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하는 성도의 긴장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성도의 삶에 대한 이러한 요청이 또다른 긴장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이 구원의 조건으로 인식될 위험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복음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죄가 아니라, 율법주의(공로주의, 도덕주의, 성과주의, 종교적 열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할 때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죄가 아니라, 나의 의(공로, 착한 행실)를 자랑함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가르치는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팀 켈러가 가장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 율법주의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것은 죄가 아니라, 교묘한 위장된 도덕주의(율법주의, 공로주의, 성과주의, 종교적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저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목회자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책을 읽고 복음의 본질에 새롭게 눈떴기 때문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복음은 본질적으로 좋은 소식, 즉 뉴스"임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는 좋은 소식을 '좋은 전령"이라고 번역했습니다.) "1세기 경,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는 전령을 보내 자신의 승리와 통치권, 그리고 평화를 선포했다. 한마디로 복음은 선언이자 선포다. 복음은 따라야 할 충고가 아니라, 이루어진 것에 대한 소식, 그것도 좋은 소식이다"(23). 복음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어떤 규칙 조항이나 엄격한 규율, 도덕적 충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다. 복음은 개념이 아닌 한 분에 관한 것이다"(24).


 

 


 

 

  

"하나님의 복음"(롬 1:1)은 하나님의 의의 선포였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거룩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안에서 나타났으며, 

이 완전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해 거저 주는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메시지이다(15).

 

팀 켈러의 <당신을 위한 로마서> 1권은 로마서 7장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은 성경을 보는 눈을 열어 주고, 어떻게 오늘의 일상 속에서 말씀을 적용할지 제안하는 해설이자 안내서"라고 소개합니다(16-17). 성경 66권 중에 로마서만큼 복음의 본질을 잘 설명한 책도 없고, 로마서만큼 많은 성도들에게 읽히고 연구되어 온 책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한 로마서>는 바울을 사상을 탐구하며 복음의 본질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강조되는 것이 복음(은혜)은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복음을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예수님이 단지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죽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과거지사를 청산한 것에 불과"하며, "공적이나 공로를 쌓아가는 일은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습니다(38). 믿음에 의해 우리가 의로워지고 난 후, 우리 자신의 선함으로 그 의로움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복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오해입니다. 


로마서는 이러한 도덕주의자들이 들으면 경악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말한다. '죄 아래'와 '불의한'은 같은 말이다. 불의하다는 것은 위치와 관계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다른 사람 앞에 똑바로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죄 아래'는 법률 용어로, 우리가 죄의 시민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울은 어처구니없게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모두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하다. 로마서 1장 18-32절에 묘사된 그대로 소름끼칠 만큼 부도덕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이나 양심적이고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나 똑같이 죄 아래 있는 것이다.팀 켈러 목사님은 이런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처한 법적 상태가 같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길을 잃었고, 그 면에서만큼은 정도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110).

 

거룩한 삶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인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착한 행실에 만족하며 은근한 자랑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이 전하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종교적인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는 죄가 아니라, '착한 행위'에 대한 태도에 있다. 둘 다 죄를 회개하지만 그리스도인만이 잘못된 동기에서 비롯된 착한 행위들을 회개하고, 종교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들에 의존한다"(122).


선한 행위, 착한 행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주의 이면에 도사리는 교만을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복음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고, 복음의 기쁨과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탈진과 무기력의 늪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자녀 세대에게 복음을 이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신앙전수에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전부는 빈손으로 그리스도께 가서 그분의 의를 받는 것이다. 사람들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그들의 죄라기보다는 그들의 선한 행위들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선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의로서 자기가 한 선행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의를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선함을 포기하고, 우리의 반역만이 아니라 종교성도 회개해야 한다"(127).

  

 

 



 

 

 

"로마서는 우리로 이런 자문을 던지게 한다. 

루터처럼 나는 현재와 미래의 삶에서 복음이 나에게 주는 자유와 해방을 향해 

'돌진하고(broken through)' 있는가?"(16)

 


우리가 로마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학적인 논쟁이나 지적 만족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편지(로마서)를 읽고 고찰하면서, 이전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통해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삶이 새로워질 것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은 바울"(롬 1:1). 여기서 "택정함을 입다"로 번역된 단어의 원 뜻은 '분리되다', 곧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평생 복음을 위한 '종'으로 살았지만, 그것은 그의 기쁨이기도 했습니다(22). 


<당신을 위한 로마서>를 읽으며 '복음'의 본질이 깨달아질 때, 사도 바울이 받았을 충격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전해져오는 듯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훼방하고 반대했던 유대인들의 극렬한 저항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누구보다 율법에 열심이었고, 종교생활에 열심이었던 사도 바울이었기에 복음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도 바울처럼, 복음이 주는 완전한 자유가 오히려 복음의 '종'으로 살기를 열망하게 하며, 복음이 주는 완전한 해방감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으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터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귀하지만, 우리의 지성을 통해 진리가 깨달아질 때 온몸에 이는 전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한 희열이기도 합니다. <당신을 위한 로마서>는 바로 우리의 지성을 터치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원하는 신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다음 권이 무척 기대됩니다. 복음이 나에게 주는 자유와 해방을 향해 돌진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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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만든 사람 -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다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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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알지 못하고는 믿음의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20).

 

 

인생은 삶의 모델이 있으냐 없느냐, 삶의 모델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인격을 형성하는데 말의 영향력은 7%, 경험의 영향력은 18%로 합니다. 그런데 무려 75%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삶의 본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할 수 있어, 꿈은 이루어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7%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좋은 본보기, 본받을 만한 삶의 모델은 무려 75%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은 모두 믿음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이 삶의 본보기, 모델로 삼을 만한 믿음의 사람에는 누가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믿음의 본보기가 될 수 있겠지만 성경은 그 첫 사람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모델로 제시합니다.

 

<믿음이 만든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인생의 모델"을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추적하여 아브라함이 남긴 믿음의 법칙을 밝힌 강준민 목사님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알지 못하고는 믿음의 세계를 알 수 없다"(20)고 단언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모험을 요구합니다. 희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새로운 일을 하도록 부르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새롭게 응답해야 합니다. 새로운 헌신을 다짐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되기보다 부족한 보통 사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35).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믿음으로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75세에 믿음의 여정에 들어선 아브라함은 "인생 전반부와 전혀 다른 후반부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에 선택받았습니다(21). "하나님 없는 천국을 도모했던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까요? <믿음이 만든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그가 무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21).

 

당시 세상에는 영걸들도 많았는데 하나님은 무명의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일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삶의 목적이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내 이름을 내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사람들. 믿음으로 살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되기보다 부족한 보통 사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강준민 목사님의 메시지가 2015년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듯했습니다.

 

<믿음이 만든 사람>은 강해설교집처럼 읽힙니다. 풍부한 원어 연구와 성경 지식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깊이를 더해주고, 생생한 사례와 예화들은 오늘 여기 우리의 삶에 자리에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도록 도와줍니다. 은혜롭게 읽으며 지식적으로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하란" 땅은 "열매가 없다"(32)는 뜻이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기를 주저하고 하란 땅에 머물렀던 아브라함은 열매 없이 세월을 허송한 것이라는 영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처음 이른 곳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인데, 세겜과 모레라는 지역명에는 복종과 지식의 개념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강준민 목사님은 여기서 "모든 지식은 순종의 결과라는"(59) 영적 메시지를 길어냅니다.

 

또 <믿음이 만든 사람>을 읽으며 많은 예화를 따로 메모해 두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입니다. "리처드 호프만은 현대인의 죽음에 세 가지 다른 살해 요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달력, 둘째 전화, 셋째 시계입니다. 결국 긴박감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354).

 

 

 

 

 

 

 

"우리에게 아브라함을 배운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배운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아브라함을 인도하시고, 그를 복 되게 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404).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믿음의 법칙을 신앙 유산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그가 삶으로 보여준 믿음의 법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배운 믿음의 법칙 중에 나에게 도전을 준 것은 그의 삶이 '모험하는 인생' '장막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믿음은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받은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개척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안전을 과감히 포기하고 전적으로 믿음에 이끌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생을 통해 저에게도 모험의 길을 떠나라는 음성을 들려주시는 듯했습니다. 또 하나 <믿음이 만든 사람>을 통해 아브라함의 생애를 다시 묵상하며 그가 평생 장막에 거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했다는 것은 그가 순례자로 살았음을 의미"(410)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언제까지나 머물 수 있는"(71) 장막인생을 보며, 제 삶은 그처럼 가벼운가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믿음이란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 반응하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믿음오로 응답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 그것은 결국 순종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인생의 모델로서 아브라함 인생의 최절정기는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까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 모리아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리아산의 다른 이름은 바로 순종의 산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믿음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그것은 순종을 통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수많은 약속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알고 있는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함이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점점 그의 신앙이 깊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326-327)​.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누리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도 복의 근원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바로 복의 근원이 되는 비결을 알려주는 모범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나는 아브라함과 같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좌절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생애를 다 돌아본 후, 강준민 목사님이 우리에게 진짜 전해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을 배운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배운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아브라함을 인도하시고, 그를 복 되게 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404).

 

<믿음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지금 읽어야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믿음의 여정을 계획하고, 다짐하고, 각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든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 이 믿음이 제 삶도 이끌어가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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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1
박광수 엮음.그림 / 걷는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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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_ 나태주

시를 읽으면 제 마음은 언제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갑니다. 친구들과 함께 시를 읽었던 그 등나무 아래로 말입니다. '광수생각'의 그 광수씨가 골라준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시 100"편을 읽는 내내 저는 그 등나무 아래에 가 앉았습니다. 높다란 학교 담장 밑 레코드 점에서 노래가 들려오는 환상에 젖기도 했습니다. '야자'(야간자율학습) 중인 친구를 몰래 불러내듯, 저는 그 등나무 아래 앉아 이름을 하나씩 되내이며 친구들을 소환했습니다. 여기 이 책,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에 실린 시들을 읽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리세요

 

잊어버리세요, 꽃을 ​잊듯이

잊어버리세요, 한때 세차게 타오르던 불꽃을 잊듯이

영원히, 영원히 잊어버리세요.

 

시간은 친절한 벗

우리는 시간과 함께 늙어 갈 거예요.

만일 누군가 묻거든 대답하세요,

그건 벌써 오래전 일이라고

꽃처럼 불처럼 아주 먼 옛날

눈 속으로 사라진 발자국처럼 잊었노라고.

 

 

_ 사라 티즈테일

 

 

친구야, 기억하니? 우리가 서로에게 적어보내던 그 시야. 이 책에서 다시 만나 읽어보니 웃음이 난다. 고작 열일곱 밖에 되지 않았던 우리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 마음은 그토록 고통이었을까. 아니 다시 읽으니 눈물이 난다. 우리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지. 진짜 시간과 함께 늙어 가고, 그건 벌써 오래전 일이 되었구나. 그때 너를 그렇게 눈물 짓게 하던 고통을 이젠 영원히 잊어버렸을까. 가만히 알아보고 싶다.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를 읽으며 유난히 고등학교 시절을 많이 떠올린 것은 지금 내게 그리운 사람들이 그 시절에 만난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광수생각'의 광수씨와 (저보다 '오빠'지만) 공유할 수 있는 ​시간들이 같아서인가 봅니다. 그때보다 곱절의 나이를 더 먹은 친구들을 만나면 함석헌 선생님의 '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꼭 읽어주고 싶습니다. 살아오면서 사람이 그리울 때마다,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마다, 친구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읊어보던 시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이 책은 광수씨가 살아오면서 힘이 되어 주었던 시들을 고른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시인 중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라는 시인의 이름을 메모해두었습니다. 햇살 좋은 날, 무작정 걷고 싶은 날, 어딘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날,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 서점에 나가 이 시인의 시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시를 읽고 시가 나를 읽듯, 이 책을 선물하면 내 마음이 보일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전해질 것만 같아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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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인도식으로 배워라 - 단 3단어로 1시간 안에 영어가 터진다!
야스다 타다시 지음 / 로그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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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3단어로 1시간 안에 영어가 터진다고? 단 3단어로 1시간 안에 진짜 영어가 터졌다!!!

 

이 책 대박입니다! 단 3단어로 1시간 안에 영어가 터질까 반신반의 했는데, 진짜 됩니다! 영어를 스탠다드하게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라 영국 모범생 같은 분들은 인도식으로 배우는 영어가 싫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식 영어 학습법>은 발음 따위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알아듣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뭐냐?", "인도식 영어는 특히 발음이 안 좋다"고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논리가 상당히 설득적입니다. <인도식 영어 학습법>이 원어민 같은 발음 훈련에 신경쓰지 않는 이유는, 20억 명의 영어 인구 중, 17억 명이 비원어민이기 때문이랍니다. 영어로 의사를 소통하는 86%가 비원어민이라는 것은 영어 자체가 비원어민 간에 이해하기 쉬운 도구로 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3개의 동사로 영문 만드는 훈련을 하는데 그중 첫째가 <A sound B> 형태입니다. 그런데 예문의 주어가 "The manager"일 때는 동사가 "sounds"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일단 "sound"로 말해도 뜻이 충분히 통하기 때문에 sound 뒤에 s를 붙이는 것에는 크게 신경을 안 씁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훈련을 하니 <A sound B> 형태의 문장이 입에서 술술 나옵니다.

 

<인도식 영어 학습법>은 영어를 철저히 의사소통의 도구로 보는 학습법입니다. "통하면 된다"는 것이 모토입니다. 친한 동료 중에 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이 있습니다. 누가는 그의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누구와 만나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세계 표준 영어도 발음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도 일단 발음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 책은 "sound, find, give", 이 3개의 동사가 만드는 영문 형태를 마스터하는 교재입니다. 이 3개의 동사가 만들어내는 3개의 영문 형태는 한국인의 뇌에 3개의 영어 회로를 만드는 작업니다. 3개의 영문 형태를 확실히 외우고, 매일 20분씩 3개월 동안 유사동사 39개만 훈련하면 누구든지 세계 표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제가 실제로 연습을 해봤는데, 중학교 정도의 영어 지식이 있으면 1시간만에 영어를 말할 수 있는 기초력이 확실히 생깁니다.

 

유창한 영어로 한국인을 기죽이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영어로 외국인과 어떻게든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보십시오. 일단 머릿속에 3개의 영문 형태가 확실하게 그려지니 영어로 말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비정상회담'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도 있지만, 서툰 실력으로라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외국인이 더 많습니다. 그렇게 자꾸 한국어를 사용하니 또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인도식 영어 학습법>은 영어로 쉽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고급영어가 필요한 분은 해당이 없겠지만,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분들에게는 영어로 자유롭게 말하는 자유를 선물해줄 것입니다. 그동안 영어로 소통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서 외국으로 떠나는 자유여행을 계속 망설였는데 3개월 후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유여행에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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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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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의 질병 속에서 역사의 비밀을 읽는다!"

<왕의 한의학>은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왕의 몸과 질병의 기록을 한의사의 눈으로 응시하는 작업"(11)입니다. 저자는 조선의 왕의 몸과 그 몸을 괴롭힌 질병이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왜 조선의 왕의 체질과 질병, 그리고 처방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어보는 것이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까요?

한의학 박사이기도 한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첫째는, 조선의 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변화를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견뎌 내야만 했기 때문에 왕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질병을 보면 정치적, 경제적 사건이나 시대 정신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소용돌이가 왕의 몸을 병들게 하기도 하고, 또 갑작스러운 왕의 죽음은 새로운 정치적 소용돌이를 몰고왔다는 점에서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8)라는 저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또 하나, 조선의 왕의 몸은 국가적인 관리 대상이었기 때문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도 연구의 의의가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매우 세밀하게 왕의 일상 생활과 약물 처방 및 투약 뒤의 증상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8). 사료가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 연구​ 신빙성을 높여주지 않겠습니까.

<왕의 한의학>은 왕의 몸(질병)을 더듬어보는​ 내밀한 작업이며, 따라서 기존의 역사관으로는 파악할 수 없어썬 '숨겨진 진실'을 드러나게 해준다는 데도 의의가 있습니다. 실제로 <왕의 한의학>은 그동안 우리가 가져왔던 왕의 이미지를 바꿔놓기도 하고, 역사 논쟁을 잠재울 강력한 근거를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건장하고 강인한 장군의 풍모를 갖추었을 것만 같은 '태종'은 사실 "의외로 파리하고 허약한 체질"이었다는 것, 또 조선에서 몇 안 되는 성군의 이미지를 지닌 '성종'이 "25년의 재위 기간 동안 세 명의 왕후와 아홉 명의 후궁을 맞아들이고 16남 12녀"를 거느린 밤의 황제였다는 것, 검소한 밥상을 즐겼다 하여 더 존경하게 된 '정조'가 사실은 사실은 "식욕이 없어 하루 두 끼 정도"만 먹은 것이라는 것 등 숨겨진 왕의 이면을 보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정조는 독살되지 않았다!

 

 

<왕의 한의학>는 역사를 읽는 흥미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데, 단순한 흥미꺼리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를 여실히 증명해준 것이 '정조 독살 논쟁'에 관한 한의학적 소견입니다. 정조의 치료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한의학자는 "정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질환은 종기가 분명하다"(350)고 결론 짓습니다. "정조의 삶과 죽음을 가른 중요한 포인트는 인삼, 더 정확하게는 인삼이 중심이 된 경옥고의 과다 처방"으로, 정조의 죽음은 "일종의 약화 사고"(350)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꽤 설득력 있는 논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왕의 한의학>은 조선 왕 독살설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효종의 의료사고를 검증하고, 경종의 몸봐 질병, 처방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게장과 감을 먹여 선왕을 독살했다"는 루머에 시달려야 했던 영조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현세자의 독살설을 부정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학질에 걸린 소현세자에게 번침을 놓도록 한 것이 당시의 의학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것이 고의가 아니라 "돌팔이 이형익의 오진과 잘못된 치료로 인한 의료 사고에 가깝다"(208)고 결론 내립니다. 정황증거만으로 독살로 몰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상식으로도 맞지 않는 의료사고가 발생한데다 정황증거까지 분명하다면 오히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사고(?)였다고 보는 것이 더 논리에 맞지 않을까요?

 

<왕의 한의학>을 읽고 나니 조선의 왕들이 달리 보입니다. <왕의 한의학>은 "대체로 왕실에서 나고 자라 왕이 된 이들은 질병에 자주 걸리고 단명"(124)을 보여줍니다. 왕노릇이 수명을 단축시켰다는 것입니다. 절대 권좌에 앉았으나 권력 다툼 한 가운데서 비극적인 가족사를 안게 된 왕들의 심리적 트라우마와, 또 왕좌에 앉아서도 대신들의 눈치, 백성들의 눈치, 또 강대국(중국)의 눈치까지 봐가며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던 왕들의 모습은 인간적인 연민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세종, 문종, 세조, 중종, 문종, 효종, 정조 등 조선의 거의 모든 왕들이 종기로 고생했고 종기가 원인이 되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 왕에게서 건강할 권리도 빼앗아 갔던 성리학, 그 성리학적 프레임에 갇힌 조선의 퇴행, 당대 최고의 의사(어의)가 왕을 살폈는데도 왕실에 의료사고가 많았다는 것, 왕실에서 일어난 의료 사고가 이 정도면 평민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 등 이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조선 왕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의 삶이 그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그 영향이 어떤 질병을 낳았는지 왕의 한의학이라는 프레임으로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합니다. 무엇이 왕을 병들게 했나를 살펴보면 병든 왕의 몸은 병든 정치의 단면이기도 하며, 왕의 치료에 참여하는 자들의 면면은 당시 권력 다툼의 쟁점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합니다.

 

<왕의 한의학>은 일단 재밌습니다. 역사와 한의학 정보를 함께 읽는 재미가 솔솔하고, 더불어 건강 상식도 챙길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새로운 프레임으로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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