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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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의 질병 속에서 역사의 비밀을 읽는다!"

<왕의 한의학>은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왕의 몸과 질병의 기록을 한의사의 눈으로 응시하는 작업"(11)입니다. 저자는 조선의 왕의 몸과 그 몸을 괴롭힌 질병이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왜 조선의 왕의 체질과 질병, 그리고 처방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어보는 것이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까요?

한의학 박사이기도 한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첫째는, 조선의 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변화를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견뎌 내야만 했기 때문에 왕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질병을 보면 정치적, 경제적 사건이나 시대 정신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소용돌이가 왕의 몸을 병들게 하기도 하고, 또 갑작스러운 왕의 죽음은 새로운 정치적 소용돌이를 몰고왔다는 점에서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8)라는 저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또 하나, 조선의 왕의 몸은 국가적인 관리 대상이었기 때문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도 연구의 의의가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매우 세밀하게 왕의 일상 생활과 약물 처방 및 투약 뒤의 증상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8). 사료가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 연구​ 신빙성을 높여주지 않겠습니까.

<왕의 한의학>은 왕의 몸(질병)을 더듬어보는​ 내밀한 작업이며, 따라서 기존의 역사관으로는 파악할 수 없어썬 '숨겨진 진실'을 드러나게 해준다는 데도 의의가 있습니다. 실제로 <왕의 한의학>은 그동안 우리가 가져왔던 왕의 이미지를 바꿔놓기도 하고, 역사 논쟁을 잠재울 강력한 근거를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건장하고 강인한 장군의 풍모를 갖추었을 것만 같은 '태종'은 사실 "의외로 파리하고 허약한 체질"이었다는 것, 또 조선에서 몇 안 되는 성군의 이미지를 지닌 '성종'이 "25년의 재위 기간 동안 세 명의 왕후와 아홉 명의 후궁을 맞아들이고 16남 12녀"를 거느린 밤의 황제였다는 것, 검소한 밥상을 즐겼다 하여 더 존경하게 된 '정조'가 사실은 사실은 "식욕이 없어 하루 두 끼 정도"만 먹은 것이라는 것 등 숨겨진 왕의 이면을 보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정조는 독살되지 않았다!

 

 

<왕의 한의학>는 역사를 읽는 흥미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데, 단순한 흥미꺼리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를 여실히 증명해준 것이 '정조 독살 논쟁'에 관한 한의학적 소견입니다. 정조의 치료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한의학자는 "정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질환은 종기가 분명하다"(350)고 결론 짓습니다. "정조의 삶과 죽음을 가른 중요한 포인트는 인삼, 더 정확하게는 인삼이 중심이 된 경옥고의 과다 처방"으로, 정조의 죽음은 "일종의 약화 사고"(350)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꽤 설득력 있는 논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왕의 한의학>은 조선 왕 독살설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효종의 의료사고를 검증하고, 경종의 몸봐 질병, 처방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게장과 감을 먹여 선왕을 독살했다"는 루머에 시달려야 했던 영조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현세자의 독살설을 부정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학질에 걸린 소현세자에게 번침을 놓도록 한 것이 당시의 의학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것이 고의가 아니라 "돌팔이 이형익의 오진과 잘못된 치료로 인한 의료 사고에 가깝다"(208)고 결론 내립니다. 정황증거만으로 독살로 몰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상식으로도 맞지 않는 의료사고가 발생한데다 정황증거까지 분명하다면 오히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사고(?)였다고 보는 것이 더 논리에 맞지 않을까요?

 

<왕의 한의학>을 읽고 나니 조선의 왕들이 달리 보입니다. <왕의 한의학>은 "대체로 왕실에서 나고 자라 왕이 된 이들은 질병에 자주 걸리고 단명"(124)을 보여줍니다. 왕노릇이 수명을 단축시켰다는 것입니다. 절대 권좌에 앉았으나 권력 다툼 한 가운데서 비극적인 가족사를 안게 된 왕들의 심리적 트라우마와, 또 왕좌에 앉아서도 대신들의 눈치, 백성들의 눈치, 또 강대국(중국)의 눈치까지 봐가며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던 왕들의 모습은 인간적인 연민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세종, 문종, 세조, 중종, 문종, 효종, 정조 등 조선의 거의 모든 왕들이 종기로 고생했고 종기가 원인이 되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 왕에게서 건강할 권리도 빼앗아 갔던 성리학, 그 성리학적 프레임에 갇힌 조선의 퇴행, 당대 최고의 의사(어의)가 왕을 살폈는데도 왕실에 의료사고가 많았다는 것, 왕실에서 일어난 의료 사고가 이 정도면 평민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 등 이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조선 왕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의 삶이 그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그 영향이 어떤 질병을 낳았는지 왕의 한의학이라는 프레임으로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합니다. 무엇이 왕을 병들게 했나를 살펴보면 병든 왕의 몸은 병든 정치의 단면이기도 하며, 왕의 치료에 참여하는 자들의 면면은 당시 권력 다툼의 쟁점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합니다.

 

<왕의 한의학>은 일단 재밌습니다. 역사와 한의학 정보를 함께 읽는 재미가 솔솔하고, 더불어 건강 상식도 챙길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새로운 프레임으로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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