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탐정 정약용 세트 - 전2권
이수광 지음 / 산호와진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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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탐정 정약용, 소설로 만나다!




<조선 명탐정 정약용>은 영화 제목으로도 친숙하기 때문에 이미 독자들에게 꽤 익숙한 캐릭터입니다. 추천사를 쓴 영화감독 권칠인은 이 소설을 추리소설이면서 법정소설로 분류합니다. 정약용이 천재적 학자였을 뿐 아니라, 명탐정이기도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조선 명탐정 정약용>은 실제 역사에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진 역사소설입니다.


 

"형조참의 정약용에게 특진관을 겸임하게 하여 팔도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재판하게 한다. 참의에게 전권을 위임한다"(37).


어느 날, 정약용에게 정조의 밀지가 전해집니다. 형조참의에 임명된 정약용에게 특진관을 겸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특진관에게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정조는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판결하는 형조참의의 자리에서 뒤로 역모의 배후를 캐라는 은밀한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형조참의로써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판결하는 정약용의 활약이 씨줄이라면, 치열한 권력 투쟁 한복판에서 벌어진 정조 독살 사건이 날줄이 되어 이야기를 직조해나갑니다.


정조는 즉위하고도 내내 암살 위협에 시달려 왔습니다(2권, 10-11). 영조를 즉위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로를 세우고 득세한 노론에게 그들이 죽인 사도 세자의 아들은 껄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조는 자신의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하는 노론을 제거해야 조정을 개혁할 수 있었고, 노론의 가문이 살려면 정조가 죽어야 했습니다. 팽팽한 대립 속에 노론과 위태한 관계를 이어오던 정조는 노론을 제거하고 남인을 등용하여 조정을 개혁하려 하고, 위기를 감지한 노론은 또 다시 반정을 일으킬 역모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 반정의 중심에 정조의 할머니 정순대비가 있었습니다.


<조선 명탐정 정약용>은 정조의 히든카드로 그 암투의 한복판에 자리하게 된 천재 학자 정약용의 활용을 그리는데, 정약용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서학(천주교)였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이 서학인에게 죄를 덮여 씌우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연쇄살인범의 범인이 서학인이라면 대신들이 서학에 대해 일제히 탄핵할 것이고 그로 인해 피바람이 불 것"(1권, 47)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명탐정 정약용>은 이렇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조선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의 해결과 재판 과정을 다룹니다.



"시체를 죽어서도 말한다고 한다. 우린 억울한 시체가 없도록 진짜 범인을 잡아야 한다"(1권, 175).


사실 <조선 명탐정 정약용>은 명정으로서의 정약용의 모습보다, 명판관으로서의 정약용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명판관으로써 정약용의 신조는 "재판은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곧 서릿발 같은 지조로 법은 공정해야 한다는 정신을 지켜가는데, 살인사건을 다루는 재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는 "살인이냐, 정당방위냐"하는 것입니다. 살인사건이지만 살인이냐, 정당방위냐에 따라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고, 무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시대의 법은 살인사건에 대하여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는 것을 보고 현장에서 흥분하여 복수를 하는 경우나 부부, 가족의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 그 자리에서 복수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사로운 복수를 금하고 엄격한 법에 의해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권, 168). 따라서 당시 조선법에 따르면, 부모를 죽이는 원수를 현장에서 죽이면 무죄가 되지만 하루가 지나서 앙심을 품고 죽이면 사형에 처해집니다.


제10화 "법이란 공평한 것이다"(경상도 영행 신사량 옥사사건)에서는 살인이냐 정당방위냐를 놓고 정약용과 정조가 팽팽한 대립을 하기도 합니다. 며느리를 꾀어내어 간음하게 한데 분노하여 시아버지(신사량)가 며느리를 꾀어낸 여인을 살해했는데, 신사량은 자신이 살인을 한 것은 사실이나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정약용과 대신들은 간음을 교사한 것은 죄이지만 죽일 죄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신사량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조의 판결은 달랐습니다. "형조 당상은 '신사량 한 사람을 살려 주는 것은 몇 명의 신사량으로 하여금 법을 농락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나는 '신 여인 한 명의 목숨을 갚아 주는 것은 몇 명의 신 여인으로 하여금 풍속을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겠다. 법을 농락한 죄는 작지만 풍속을 무너뜨린 폐단은 크니, 교회는 중하고 법률은 가벼운 것이다. 형벌의 정수라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2권, 47).


<조선 명탐정 정약용>은 실제했던 역사적 사실과 판결문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조선의 법치를 연구하는 자료로도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유대인의 법에서는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증언하면 무효라고 합니다. 자문은 고문에 의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자백은 인정하지 않다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 명탐정 정약용>에 보면, 재판의 대부분이 추국(심문)에 의한 자백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할 때까지 곤장을 치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정조의 어찰 정치, 남장을 한 여리와 정약용의 사랑, 그리고 정조 독살설이 제기되어 왔지만 최근의 역사 연구는 정조의 독살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그런 측면에서 정조 독살을 사실화한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조선 명탐정 정약용>은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역사소설은 역사가 스포인데, <조선 명탐정 정약용>은 쉽게 접하 수 없었던 조선시대의 살인사건과 그 재판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신선한 소재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 듯합니다. 추리적인 재미는 다소 아쉽지만,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한 법정소설이라는 점에서 일독해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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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 유대인 5000년 지혜의 원천 파워의 근원
샤이니아 지음, 홍순도 옮김 / 서교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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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탈무드를 '바다'라고 부른다. 바다는 끝없이 넓고 커서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담겨져 있고, 또한 그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299).



스피노자, 마르크스, 에리히 프롬, 프로이트, 샤갈, 하이네, 아인슈타인, 로스차일드, 록펠러,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레너드 번스타인, 헨리 키신저, 스필버그, 블룸버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 30% 이상이 유대인일만큼 유대인의 지혜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탈무드는 그런 유대인들의 지혜의 원천, 지혜의 보고라고 할 만한 지혜서입니다. "탈무드는 기원전 5000년부터 서기 500년까지 구전되던 것을 10년에 걸쳐 2,000여 명의 랍비들이 집대성한 실로 엄청난 분량의 저작물"인데, 이번에 서교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한 <탈무드>는 "탈무드 원본의 대표적인 이야기들을 엄선하여 현대인에 맞게 재편집"한 것입니다(8). 사람의 도리, 자신과 타인, 결혼과 과정, 육체생활, 도덕생활, 사회생활이라는 총 6개의 큰 카테고리 안에 유대인 5000년의 지혜가 담겼습니다. 누군가의 인용이나 회자되는 이야기를 통해 <탈무드>의 단편적인 지혜는 많이 접했지만,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번역된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독서였습니다.


<탈무드>는 금언 같은 가르침도 있지만, 우화 같은 느낌의 '이야기'가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또 서교출판사의 <탈무드>는 반복되는 교훈이나 이야기가 제법 많은데 원전이 그런 것인지, 이 책의 편집이 그러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많이 반복해서 여러 버전으로 등장하는 교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어떤 이교도가 (유명한 랍비인) 힐렐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제가 한쪽 발로 서 있는 동안 유대교의 율법을 모두 가르쳐 줄 수 있겠습니까?"

힐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행하기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마라."


탈무드의 이 이야기는 예수님도 알고 계셨고, 그 가르침을 확장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유명한 "황금률"입니다. 탈무드의 교훈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라면, 예수님은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지침으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탈무드는 구약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며 실천적인 지혜를 더한 것이기 때문에 성경적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탈무드>를 읽으며 가슴에 새겨진 가르침은 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 특히 험담을 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 또 지혜가 귀하다는 것, 더불이 그만큼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자녀교육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스승을 아버지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 또 선행을 베풀며 살라는 것 등입니다. 유대인들이 아침식사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도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교훈이었습니다.



죽어 천당에 간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성실하게 일을 했는가?

배움을 위해 시간을 투자했는가?

자손의 번식을 위한 일에 동참했는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 노력했는가?

지혜에 대해 토론했는가?

사물의 본질을 깊이 탐구했는가?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면서 현대인들은 지혜의 소중함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소화하기에도 벅차니까요. 그러나 역사와 유대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 중 하나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 속에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이끌어나갈 힘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지혜로운 리더, 지혜로운 정치인, 지혜로운 기업가, 지혜로운 교육자, 지혜로운 어른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탈무드>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탈무드> 읽기 운동이 일어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짜 지혜로운 자는 '배움'에 늘 겸손한 자라는 의미에서, 타민족의 이야기라 치부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읽어볼 만한 지혜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민족도 머리 좋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민족이니. 학력이 아니라 지혜를 존중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이름을 드높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 인상적인 글귀


- 우상숭배, 간음, 살인, 험담은 큰 화를 불러올 네 가지 죄악이다(51).


- 상대방의 성격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모습을 보면 파악할 수 있다. 술 마시는 방식, 돈 쓰는 방식, 그리고 화내는 모습이다. 또 혹자는 농담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84).


- 내일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 내일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내일은 돌아오지만 당신은 영원히 살 수 없으니 당신이 속하지 않은 세상을 위해 걱정하지 말라(105).


- 다음과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은 피해야 한다. 오만한 가난뱅이, 아첨을 좋아하는 부자, 호색한 노인, 그리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가 바로 그들이다(122).


- "네가 한 말은 행동으로 옮겨라. 그러나 네가 한 선행은 말로 옮기지 마라."(127)


- 사랑을 베풀다 보면 정말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 한 명이 세상을 변화시킨다(133).


- 유대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최고의 기도 방식은 공부하는 일이다(162).


-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에 최선을 다하라. (미래 네 운명이 그들에게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175).


- 마찬가지로 아내가 시댁 식구들이 자신의 집에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면 남편도 아내의 뜻을 존중해 줘야 한다. 그 누구도 부부의 집에 함부로 출입하거나 함께 살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192-193).


- 유머를 히브리어로 '호프마'라고 하는데 '예지'를 뜻한다. (...) 예지와 유머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민족은 유대인이 유일할 것이다(273).


- 이브는 아담이 돌아오면 언제나 그의 갈빗대를 세어 보았을 것이다(여자의 질투심 중에서,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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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 인간관계가 귀찮은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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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형 인간이 늘어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88).



"인간 관계를 귀찮아 하는 나, 회피형 인간일까?" 이런 의심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속성 테스트를 원한다면, 다음 중 내게 해당되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혼자 있는 게 더 편하다

- 아이를 갖는 게 부담스럽다

- 상처받는 게 두렵다

- 진정한 친구가 별로 없다

- 책임이나 속박이 싫다

-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꺼린다

- 감정을 억제한다. 


회피형과 불안형을 구별해야 하는데, 회피형 인간의 본질은 "친밀한 신뢰 관계와 그에 따른 지속적인 책임감을 피하는 것. 이것이 핵심적인 특징"(19)입니다. 회피형 인간은 지속적인 책임과 결부된 친밀한 관계를 성가셔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인간관계를 귀찮아 하는 것입니다. 런 성향의 사람들은 타인과의 기분 좋은 교류, 자기를 드러내는 것, 감정 표현을 힘들어 합니다. 회피형 인간을 대표하는 또다른 특징은 무기력, 무관심, 자포자기입니다. "자신의 문제인제 왠지 남 일처럼, 무덤덤한 태도를 취하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자포자기의 자세"를 보이기도 합니다(143).


성격마다 장단점이 있는 것처럼, 회피형 인간의 성향이 장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서적 측면을 억제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힘든 장면과 마주치더라도 냉정하고 쿨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일은 일로써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경향이나 감정을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도 장점이 될 수 잇습니다. 물론, 일은 잘 하지만 인맥 형성이나 관리의 측면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 중에 하나는 현대의 환경 변화가 회피형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착 성향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유전보다는 양육 환경 같은 2차 요인이 큰 영향"을 끼친다. 현대인들 중 회피형 인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을 유지시키는 '애착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이다"(52). 저자는 회피형 인간이 급증하는 이유로 양육자의 "과보호"나 "과도한 지배"를 원인으로 꼽습니다. 이 때문에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지극힌 평범한 가정에서도 회피형 아이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61). 마약중독과 비슷하게 뇌에 악영향을 끼치는 인터넷 중독, 그리고 '바쁜 엄마'도 회피형 인간을 양상하는 환경적 요인으로 꼽습니다. 


저자는 애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대 사회의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애착의 개념을 경시하는 풍토를 경고합니다. 애착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애착은 인간의 생존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소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먹을 게 퐁족해도 애착이 없으면 행복을 느끼기 힘들고, 이것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그뿐인가? 부부 관계나 자녀 양육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에 인류라는 종의 생존조차도 위협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28). 그런데 회피형 인간은 인간관계 자체를 피하는 경향이기 때문에 사회생활, 결혼, 양육과 같은 과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애착 시스템이라는 것이 자녀를 양육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의 보존을 위해 진화했다고 본다면, 현대인의 애착 성향이 이토록 급속도로 변화하는 것은 단지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을 변질시킬 뿐 아니라 부부 관계나 자녀 양육에도 영향을 미쳐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78).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는 우리가 아는 많은 유명인들이 회피형 인간이었음을 밝히며 회피형 성향이 그들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줍니다. 부두 노동자 철학자로 유명한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 시인 다네다 산토카, 대문호 헤르만 헤세,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로, 아이덴티티 이론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 몇 번이나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되었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 해리 포터 작가 조앤 롤링, 정신의학의 세계적인 대가 카를 구스타프 융,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등이 그들입니다. 작가는 유명인들의 인생사를 통해 회피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 회피형이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 또 회피형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회피형 애착 성향'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 책에 실린 "애착 성향 진단 테스트"로 자신의 애착 성향을 진단해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제목을 읽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하는 것이 귀찮고 혼자인 게 편한 제 속마음을 들켰기 때문입니다. 책도 읽고 애착 성향 진단 테스트를 해보니 다행히(!) 회피형 애착 성향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면 내게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도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심각하게 와닿았던 내용은 '바쁜' 현대인의 생활이 관계의 양은 늘렸을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관계의 저하를 가져오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애착 형성에서 중요한 것은 "공감하면서 반응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눈은 핸드폰이나 TV 화면을 쳐다본 채, 입으로만 반응하는 것은 사실상 방치와 같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지내는 시간이 긴 것, 어머니 위주로 아이가 맞춰야 하는 것도 일종의 "방치"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포유동물에게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왜 스스로를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고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사람과의 관계가 인생을 움직인다"(200)는 교훈을 남깁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에 온통 마음을 쏟느라 정서적 빈곤으로 내몰리는 줄도 모르고 질주하는 우리가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경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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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컨티뉴드 - 복음으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라!
J. D. 그리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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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강한 돌풍 같은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셔서 기독교 운동을 탄생시키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이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들썩거렸고, 그 결과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다. 초대 교회는 스터디 그룹이나 자아발견 세미나, 건축 프로젝트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력한 성령의 운동이었다"(17-18).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을 보면, 사도행전 머리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예수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 계속된다.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 안에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 안에서 일하셨으며, 그들 안에 살아 계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연히 우리 안에서도 그렇게 하심을 의미한다." 우리는 교회에서 설교를 통해,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의문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실생활에서 생생하게 경험되어지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안에 살아 계신 이 무한하신 분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15) <지저스 컨티뉴드>는 이런 의문에 대한 생생한 답변입니다. 


<지저스 컨티뉴드>는 내 안에 살아 계신 무한하신 분과 생생하게 소통하는 법,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기초 위에서 성령 하나님과 깊고 만족스러운 관계 맺는 법'을 알려 주는 책입니다(15). 개인적으로 청소년기 이후 줄곧 오순절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해왔고, 성령 사역에 집중하는 교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성령'에 관한 말씀이라면 꽤 익숙한 주제입니다. 그럼에도 <지저스 컨티뉴드>는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성령 신학보다 가장 생생하고 직접적이며 성경적인 성령 신학이었습니다!


<지저스 컨티뉴드>는 본격적으로 성령님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치기에 앞서 많은 성도가 신앙생활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부터 조명합니다. 성령에 대한 오해, 성령에 대한 무관심은 곧 복음에 대한 오해, 복음에 대한 무관심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성령 없는 열심이 우리의 신앙을 따분한 종교생활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자각은 이미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더욱 갈망하게 해주었습니다. <지저스 컨티뉴드>를 읽어가는 내내, 초대 교회 성도들을 통해 이루셨던 위대한 역사를 오늘 내 삶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이루어가실, 아니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하실 성령님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성령이 예수님에 대해서 쓴 책이다. 서로가 서로의 책을 읽어 예수님을 더 많이 알가는 것이 성령의 뜻이다.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볼 때, 성령이 당신을 어떻게 사용하길 원하시는 것 같은가?"(200)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 '곁에' 있는 것보다 성령이 그들 '안에' 계신 것이 더 좋다고 분명 말씀하셨다"(33).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성령님과 함께할 때 우리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며, 성령님의 임재를 간절히 기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친밀하게 소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보통 성령이 임재하시면 우리에게 강력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지저스 컨티뉴드>는 성령님을 더 강력하게 경험하기 원한다면 내게 이미 주신 성령의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합니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는 이 책을 통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깊은 열망이 솟아 올랐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향한 경고의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룩한 사명에로의 초대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회는 은헤로운 설교와 예배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품고 거리고 나가게 만드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360). 교회 성도들에게 "당신이 성령의 역사를 가장 강력하게 경험하는 때는 언제입니까"라고 물어보십시오. 만일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입니다"라고 대답한다면 목회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시는 때는 복음 전도의 현장, 바로 세상 속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저스 컨티뉴드>는 모든 교회에게 교회의 사이즈가 아니라, 사람을 키워 성령의 능력으로 내보내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지저스 컨티뉴드>는 나를 찾아오시고, 부르시고,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성령님의 손짓을 경험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성령님과 생생하게 동행하는 신앙생활을 간절히 사모한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후, 변화된 생활을 경험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거룩한 소명의 자리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세상을 거슬러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드리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성령이 가능성과 불가능, 위험과 모험의 세계로 당신을 부르고 계신다. 명심하라. 그분은 당신이 필요해서 부르시는 게 아니다. 당신을 사랑하시기에 당신에게 그분의 경이를 보여 주고 그분의 영광을 경험시켜 주시려고, 당신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시려고 당신을 부르시는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구조 작전에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특권이다"(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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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조지 손더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조지 손더슨의 이야기들은 예술적인 동시에 심오하다. '어둡게 재미있는' 그 이야기들은 독자를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질문들의 가장자리까지 이끌고 가 그 이면과 그 너머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폴리오문학상 선정 심사위원평, 뒷 표지 中에서).



"독창적이다!" 첫 작품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첫 느낌은 "독창적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12월 10일>은 "영미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미국 단편문학의 귀재"라 불리는 "조지 손더스"의 단편집입니다.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중편집에 더 가까워보이기도 합니다. 이 "미국 단편문학의 귀재"는 2페이지로 끝나는 이야기에서부터 거의 70페이지에 달하는 작품까지 분량에 구애됨 없이 단편과 중편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듭니다.

 

이 책에 쏟아진 많은 찬사 중에 폴리오문학상 선정 심사위원평이 이 작품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둡게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평처럼, 조지 손더스의 이야기는 굉장히 유머러스한데 그 유머 뒤에 냉혹하게 현실을 파헤치는 예리한 칼날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재밌어서 더 오싹하다고나 할까요. 생각 없이 웃다가 잔혹한 덫에 걸린 걸 알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 오싹함이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질문들의 가장자리까지 독자를 이끌고 가 그 이면과 그 너머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조지 손더스의 작품은 읽어내기 그리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스타일이 워낙 독특하기 때문인지 처음엔 몹시 당혹스러웠습니다. "이건 뭐지?" 하는 느낌. 그러다 알게 됩니다. 장난스러워 보이는 장치들이 사실은 굉장히 수준 높은 풍자라는 걸 말입니다. 자적인 색체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는 <거미머리 탈출기>입니다. '거미머리'로 불리는 통제실의 조정 아래 재소자를 상대로한 신약 검증 실험이 진행됩니다. 인간 실험쥐가 된 재소자에게 인권도, 자유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작품이 독자에게 숙제처럼 던져주는 문제는 '자살'입니다.


가장 짧은 작품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작품 <막대>. 한 사람의 인생, 한 세대의 삶을 '막대' 하나에 응축에 그려낸 이 작품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아버지는 사랑한다라고 적은 표지판을 만들어 쇠막대에 매달고 용서해줄래?라고 적은 표지판까지 만들어 걸어놓은 뒤, 집 안 복도에서 라디오를 켜둔 채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 집을 젊은 부부에게 팔았고, 그 부부는 쇠막대를 뽑아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 길가에 내다놓았다"(막대/ 42). 조지 손더스의 작품은 굉장히 격렬한 순간에도 감정의 동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문체를 구사합니다. 그런데 그 건조한 문체가 가진 폭발력은 얼마나 강력한지, 작가는 마치 독자를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자신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초연하게 독자를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더 오싹합니다.


<12월 10일>은 읽고 나서 토론이 하고 싶어지는 소설입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이면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건드리기 전에 먼저 강렬한 느낌으로 독자를 강타하는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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