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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 인간관계가 귀찮은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회피형 인간이 늘어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88).
"인간 관계를 귀찮아 하는 나, 회피형 인간일까?" 이런 의심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속성 테스트를 원한다면, 다음 중 내게 해당되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혼자 있는 게 더 편하다
- 아이를 갖는 게 부담스럽다
- 상처받는 게 두렵다
- 진정한 친구가 별로 없다
- 책임이나 속박이 싫다
-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꺼린다
- 감정을 억제한다.
회피형과 불안형을 구별해야 하는데, 회피형 인간의 본질은 "친밀한 신뢰 관계와 그에 따른 지속적인 책임감을 피하는 것. 이것이 핵심적인 특징"(19)입니다. 회피형 인간은 지속적인 책임과 결부된 친밀한 관계를 성가셔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인간관계를 귀찮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타인과의 기분 좋은 교류, 자기를 드러내는 것, 감정 표현을 힘들어 합니다. 회피형 인간을 대표하는 또다른 특징은 무기력, 무관심, 자포자기입니다. "자신의 문제인제 왠지 남 일처럼, 무덤덤한 태도를 취하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자포자기의 자세"를 보이기도 합니다(143).
성격마다 장단점이 있는 것처럼, 회피형 인간의 성향이 장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서적 측면을 억제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힘든 장면과 마주치더라도 냉정하고 쿨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일은 일로써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경향이나 감정을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도 장점이 될 수 잇습니다. 물론, 일은 잘 하지만 인맥 형성이나 관리의 측면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 중에 하나는 현대의 환경 변화가 회피형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착 성향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유전보다는 양육 환경 같은 2차 요인이 큰 영향"을 끼친다. 현대인들 중 회피형 인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을 유지시키는 '애착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이다"(52). 저자는 회피형 인간이 급증하는 이유로 양육자의 "과보호"나 "과도한 지배"를 원인으로 꼽습니다. 이 때문에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지극힌 평범한 가정에서도 회피형 아이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61). 마약중독과 비슷하게 뇌에 악영향을 끼치는 인터넷 중독, 그리고 '바쁜 엄마'도 회피형 인간을 양상하는 환경적 요인으로 꼽습니다.
저자는 애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대 사회의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애착의 개념을 경시하는 풍토를 경고합니다. 애착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애착은 인간의 생존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소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먹을 게 퐁족해도 애착이 없으면 행복을 느끼기 힘들고, 이것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그뿐인가? 부부 관계나 자녀 양육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에 인류라는 종의 생존조차도 위협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28). 그런데 회피형 인간은 인간관계 자체를 피하는 경향이기 때문에 사회생활, 결혼, 양육과 같은 과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애착 시스템이라는 것이 자녀를 양육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의 보존을 위해 진화했다고 본다면, 현대인의 애착 성향이 이토록 급속도로 변화하는 것은 단지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을 변질시킬 뿐 아니라 부부 관계나 자녀 양육에도 영향을 미쳐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78).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는 우리가 아는 많은 유명인들이 회피형 인간이었음을 밝히며 회피형 성향이 그들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줍니다. 부두 노동자 철학자로 유명한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 시인 다네다 산토카, 대문호 헤르만 헤세,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로, 아이덴티티 이론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 몇 번이나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되었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 해리 포터 작가 조앤 롤링, 정신의학의 세계적인 대가 카를 구스타프 융,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등이 그들입니다. 작가는 유명인들의 인생사를 통해 회피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 회피형이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 또 회피형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회피형 애착 성향'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 책에 실린 "애착 성향 진단 테스트"로 자신의 애착 성향을 진단해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제목을 읽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하는 것이 귀찮고 혼자인 게 편한 제 속마음을 들켰기 때문입니다. 책도 읽고 애착 성향 진단 테스트를 해보니 다행히(!) 회피형 애착 성향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면 내게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도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심각하게 와닿았던 내용은 '바쁜' 현대인의 생활이 관계의 양은 늘렸을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관계의 저하를 가져오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애착 형성에서 중요한 것은 "공감하면서 반응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눈은 핸드폰이나 TV 화면을 쳐다본 채, 입으로만 반응하는 것은 사실상 방치와 같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지내는 시간이 긴 것, 어머니 위주로 아이가 맞춰야 하는 것도 일종의 "방치"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포유동물에게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왜 스스로를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고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사람과의 관계가 인생을 움직인다"(200)는 교훈을 남깁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에 온통 마음을 쏟느라 정서적 빈곤으로 내몰리는 줄도 모르고 질주하는 우리가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경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