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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조지 손더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조지 손더슨의 이야기들은 예술적인 동시에 심오하다. '어둡게 재미있는' 그 이야기들은 독자를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질문들의 가장자리까지 이끌고 가 그 이면과 그 너머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폴리오문학상 선정 심사위원평, 뒷 표지 中에서).
"독창적이다!" 첫 작품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첫 느낌은 "독창적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12월 10일>은 "영미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미국 단편문학의 귀재"라 불리는 "조지 손더스"의 단편집입니다.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중편집에 더 가까워보이기도 합니다. 이 "미국 단편문학의 귀재"는 2페이지로 끝나는 이야기에서부터 거의 70페이지에 달하는 작품까지 분량에 구애됨 없이 단편과 중편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듭니다.
이 책에 쏟아진 많은 찬사 중에 폴리오문학상 선정 심사위원평이 이 작품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둡게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평처럼, 조지 손더스의 이야기는 굉장히 유머러스한데 그 유머 뒤에 냉혹하게 현실을 파헤치는 예리한 칼날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재밌어서 더 오싹하다고나 할까요. 생각 없이 웃다가 잔혹한 덫에 걸린 걸 알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 오싹함이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질문들의 가장자리까지 독자를 이끌고 가 그 이면과 그 너머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조지 손더스의 작품은 읽어내기 그리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스타일이 워낙 독특하기 때문인지 처음엔 몹시 당혹스러웠습니다. "이건 뭐지?" 하는 느낌. 그러다 알게 됩니다. 장난스러워 보이는 장치들이 사실은 굉장히 수준 높은 풍자라는 걸 말입니다. 풍자적인 색체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는 <거미머리 탈출기>입니다. '거미머리'로 불리는 통제실의 조정 아래 재소자를 상대로한 신약 검증 실험이 진행됩니다. 인간 실험쥐가 된 재소자에게 인권도, 자유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작품이 독자에게 숙제처럼 던져주는 문제는 '자살'입니다.
가장 짧은 작품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작품 <막대>. 한 사람의 인생, 한 세대의 삶을 '막대' 하나에 응축에 그려낸 이 작품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아버지는 사랑한다라고 적은 표지판을 만들어 쇠막대에 매달고 용서해줄래?라고 적은 표지판까지 만들어 걸어놓은 뒤, 집 안 복도에서 라디오를 켜둔 채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 집을 젊은 부부에게 팔았고, 그 부부는 쇠막대를 뽑아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 길가에 내다놓았다"(막대/ 42). 조지 손더스의 작품은 굉장히 격렬한 순간에도 감정의 동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문체를 구사합니다. 그런데 그 건조한 문체가 가진 폭발력은 얼마나 강력한지, 작가는 마치 독자를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자신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초연하게 독자를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더 오싹합니다.
<12월 10일>은 읽고 나서 토론이 하고 싶어지는 소설입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이면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건드리기 전에 먼저 강렬한 느낌으로 독자를 강타하는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