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필사 시간 : 상록수 나를 찾는 필사 시간
심훈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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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기 위해 필사는 꼭 필요한 연습이다.

또한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


소설가 조정래


퇴근하면 일단 TV 앞에 앉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볼 것이 있든 없든 말입니다. 요즘은 TV 앞에 작은 상을 펴고 앉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있습니다. 상 위에는 필사노트와 펜을 올려놓고 말입니다. 아직은 TV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필사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TV의 소음은 저절로 사라지니까요. 요즘 컬러링북과 함께 필사노트도 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아마도 그 원인은 '소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아도 끊임없이 눈과 귀를 파고드는 소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도피처가 되어주니까요. 가만히 필사에 몰두하고 있다 보면, 잡념으로 들끓던 머릿속도 하루에 12번도 더 감정의 파도를 타는 마음도 어느새 차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내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 더 치열한 지식이 아니라 이렇게 고요하게 내 마음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필사에 도전한 건, 일단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오랜 목마름 때문입니다. 조정래 작가님도 말했듯이 글을 잘 쓰기 위한 훈련으로 필사만한 것도 없다는 추천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좋은 문장으로 쓰여진 책을 한 권 필사하는 것이 더 좋다는 판단도 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손글씨를 쓸 일이 별로 없으니 자꾸만 글씨체가 이상해지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필사는 정독, 문장연습 뿐 아니라, 손글씨 훈련까지 제게는 더 없이 좋은 훈련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필사의 장점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찾는 필사시간>은 "다양한 작가들의 문체를 습득할 수 있으며 작가의 좋은 문장이 내 것"이 되는 장점말고도, 맞춤법과 띄어쓰기 향상, 글을 이해하고 창작하는 기술, 모방을 통한 창작훈련, 나의 생각을 쓰고 싶다는 육구 등을 필사의 장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필사를 시작하는 분들을 위하여!



필사가 좋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는 분들에게 이 책은 몇 가지 유용한 팁을 제공합니다. 필사라고 하면 무조건 '베껴쓰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이 책은 가장 먼저 "가능한 한 문장, 한 단어를 눈으로 보고 암기해서 노트에 적으라"고 조언합니다. 필사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필사를 한답시고 무조건 베껴쓰다 보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글자를 적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한참을 베껴쓰며 팔이 아파오기 시작하면 이게 무슨 소용인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가능한 문장을 암기해서 노트에 적는다는 것,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또 "유용한 문장 표현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시해 좋은 표현들을 따로 정리하라"고 조언하는데, <나를 찾는 필사시간>은 필사노트 하단부에 독특한 문장이나 표현을 따로 정리할 수 있는 메모란이 있습니다. 어휘와 문장력을 기르기 위한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극찬하고 싶더라고요!






 




"손으로 베껴 쓰는 문장은 놀랍게도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다"(5).



<나를 찾는 필사시간>에서 필사하는 첫 책은 심훈의 <상록수>입니다. 농촌계몽운동을 소재로 한 이 책을 읽으며 어슴푸레'채영신'과 같은 삶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동혁과 같이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이상을 품은 인연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말입니다! 필사를 하며 깨달은 것은 어릴 때는 그 맛을 몰랐던 사투리 표현의 구수함이 리얼하게 살아 있다는 것, 동혁이 영신에게 빠져드는 감정이 제 기억보다 격렬했다는 것입니다. 필사를 하며 이들의 클래식한 사랑에 오랫만에 설레였답니다.


이처럼 많은 양의 손글씨를 써본 것이 언제였는지 모릅니다. 글씨가 생각만큼 예쁘게 써지지 않아 괜히 펜을 탓하며 볼펜으로 썼다, 연필로 썼다, 샤프로 썼다 혼자서 매일밤 끙끙대었습니다. 글씨체에 신경쓰느라 정작 내용은 뒷전일 때도 있었지만, 노트를 볼 때마다 가득 차오르는 뿌뜻함이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분들, 어휘와 문장력을 훈련하고 싶은 분들, 손글씨를 예쁘게 쓰고 싶은 분들, 그리고 마음이 복잡한 분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필사'를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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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선데이 - 테겔 감옥에서 쓴 자전적 소설 Echo Book 4
디이트리히 본회퍼 지음, 조병준 옮김 / 샘솟는기쁨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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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와는 이것이 끝이지만, 나에게는 이제부터가 생명의 시작일세"(213).


독일 거주 유태인들에 대한 핍박을 목격한 본회퍼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목사로서 나치정권에 저항하며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교수형에 처해지는 순간에 간수에게 남겼다는 마지막 말과 같이, 그는 나치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세속적인 삶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믿음의 삶을 살아내려 했던 그는 믿음대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우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바로 "행동하는 신앙(믿음)"입니다. 그가 우리 앞에 던져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뜨거운 도전은 역사가 계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본회퍼의 선데이>는 테겔 감옥에서 쓴 "본회퍼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로서 가족 이야기"(208)라고 소개합니다. 그가 소설도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는데,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본회퍼는 다양한 장르이 글쓰기를 시도하게 되는데, 그것은 교도관의 검열을 피해 자신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207)고 합니다. 어느 주일, 독일의 두 가정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가족과 에피소드들은 실제 그의 가족과 약혼자의 가족, 그리고 그가 직접 경험한 사건들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쓴 본회퍼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니 어떻게 읽어야 할지 다소 혼란스러웠습니다. 문학작품으로 읽어야 할지, 소설이라는 껍질을 쓴 설교(?)로 읽어야 할지 말입니다. 두 가지로 다 읽을 수 있겠지만, 소설 속에서 자꾸만 비판적 메시지(설교)를 찾아내려고 하다보니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는 덜해지더라고요. 작품을 분석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책 읽기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회퍼의 선데이> 안에 녹아있는 비판적인 시각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독일 중산층 가족을 중심으로 당시 독일 교회와 독일 사회를 잠식해가는 문제가 무엇인지 폭로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때의 독일 교회나 지금의 대한민국 교회나 어쩌면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이래로 지금까지 교회는 항상 위기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 더 치명적인 독은 핍박이 아니라, 안일함과 나태함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말입니다. 매주일 교회에 가지만 "이미 오래 전에 목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브레이크 여사, "현대인이 주일이 누리고 싶은 것은 침묵 속의 망각이거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분 전환, 즉 평안이 아니라 휴식이라"고 말하는 손자, 올바른 말씀인가보다 새로운 말씀인가에 더 관심이 많은 교인들, "공허한 구절과 허접하고 진부한 설교"로 가득한 교회! 당시 독일 교회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해놓은 듯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감성적으로 잘못 전하고 있는 설교는 살아남을 힘이 없어요. 저는 생생하게 살아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지, 죽은 신앙이나 과거에 대해서는 관심없어요"(19).

 

본회퍼는 솔직한 불신앙보다 참 기독교와 그것을 감성적으로 잘못 표현하는 것을 혼동하는 신앙적 위선이 더 위험하다고 단언합니다. 여전히 "야망이라는 독소와 쾌락의 욕망"에 감염된 채 살아가고, 불의와 무질서 속에 남용되는 권력에 저항하기보다 보잘 것 없는 한 조각 작은 권력이라도 쥐어보겠다고 다툼을 멈추지 않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 제자라고 자처할 수 있는지 본회퍼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물어오는 듯합니다. 더불어 <본회퍼의 선데이>는 우리가 경계하고 저항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노하고 행동하라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본회퍼가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주었던 과제는 오늘 우리 시대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소설적인 재미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놀라운 은혜를 받았으나 현실의 풍요와 만족에 취해 복음에서 멀어져버린 한국 교회가 다시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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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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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는 하루만 살 수 있는데 불행히도 하루 종일 비가 올 때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고 합니다.

-작가의 말, 7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이면, 하루살이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귀 기울여보겠습니다.

빗소리 틈으로 루살이의 힘찬 날갯짓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 나도 그 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하루살이를 마음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고 나를 응원했던 하루살이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시인은 익숙함 속에서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우리가 놓쳐버렸던 삶의 교훈들을 되돌려주며,

지친 마음 잠시 쉬어 가라고,

바쁜 걸음 잠시 머물다 가라고,

다독다독 다독입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의 불행이 남을 위로하는 일보다 

남의 불행이 나를 위로하는 일이 더 많았다.

불행한 이들에게 많은 빚을 지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셈이다.

- 아래를 먼저 보세요, 37


정호승 시인의 글은 읽을 때마다 언제나 "책이 주는 위안이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해줍니다. 

미처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했던 것들 하나씩 가슴에 새겨질 때마다

놓쳤던 감사, 잊어던 사랑이 다시 깨어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보다

누군가 눈물짓고, 슬퍼하고, 아파했던 고통스러운 삶의 기억 속에서 더 큰 위안을 얻는 듯합니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SNS의 글들보다 책 속에서 더 큰 위안을 얻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SNS의 글들은 행복한 찰라의 기록일 뿐이지만,

책은 그 찰라의 기록을 통해서도 삶 전체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니까요.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봐도 외롭고, 꽃이 지는 것을 봐도 외롭다.

서울역을 떠도는 노숙자들의 술 취한 모습을 봐도 외롭고, 

잠실 롯데백화점 입구 분수대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사람 구경을 하고 있는

노인들을 봐도 외롭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롭다.

- 우리는 언제 외로운가, 192-195


내가 읽는 책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읽어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정의를 참 좋아합니다.

책을 읽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면, 

바로 그 책이 내 마음을 읽어주는 책이랍니다.

내 마음을 읽어주는 책, 몇 권이나 가지고 계신가요?


별다를 것도 없는 일상인데 유난히 외로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딱히 보고픈 사람도 없는데 괜실히 그리움이 차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익숙한 고통이지만 누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이유도 없이 울고 싶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시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 가난한 내 가슴에 아름다운 시 한 편 채우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그런 날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거창한 철학, 대단한 이론, 굉장한 에피소드가 들어 있는 책은 아니지만

소박해서 더 다정하게 다가오는 글들입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이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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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걷기여행 - 살아 있는 역사 박물관
김영록 지음 / 터치아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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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경주 ★ 경주 걷기여행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던 길 위의 사람들을 보게 됐다." <이혼변호사는 연애중>이라는 드라마 마지막 회에 나온 대사입니다. 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보아야 할 것들도 있습니다. 웰빙 바람을 타고 걷기여행이 하나의 트랜드로 잡리잡기 전에도, 여행의 기본은 걷기였습니다. 더구나 도시 전체가 역사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경주'의 거리를 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은 경주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주변에서는 걷기여행이 생각보다 고된 여정이라며 겁을 주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멀미가 심해 지금까지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습관 때문에 더 두려움 없이 "도전! 경주 걷기여행!"을 외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전의지를 자극하는 것은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의 증언입니다. "경주 걷기는 행복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이 책의 저자와 같이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보며 걷는 답사 걷기입니다. 문화유산 답사를 좋아하는 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 1순위는 경주일 것입니다.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만큼 유물, 유적이 산재해 있고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 두발로 천천히 걸으면서 한눈도 팔고 주변의 작은 것들에 눈길도 주면서 경주의 매력에 푹 빠지셨으면 좋겠습니다"(8).





 



<경주 걷기여행>은 경주를 총 6개의 권역으로 묶어, 22개의 코스를 제안합니다. ​경주 걷기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사계절 중 언제 걷는 것이 가장 좋은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걷기여행이니 아무래도 햇빛이 강한 더운 여름은 피해야겠다 싶었는데 <경주 걷기여행>은 계절별로 걷기 좋은 코스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도시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이는 4월 초의 경주는 어디를 가나 눈부시지만 특히 월성(1코스)을 빙 둘러 피어난 벚꽃과 때를 맞춰 화답하는 유채꽃은 꽃 대궈을 이뤄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대릉원 정문의 오른쪽 담장길(1코스), 김유신묘를 찾아가는 길(12코스), 보문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벚꽃 길(16코스)도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햇볕이 강한 여름에는 남산 등산길(6-10코스)이 좋다. … 경주 벌판이 황금색으로 물드는 가을에는 고운 단풍이 터널을 이루는 불국사와 석굴암(18코스), 함월산의 기림사와 골굴사(19코스), 낭산과 널따란 보문들판(3코스)이 좋다"(17).


게다가,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경주이지만 "한 겨울 눈 덮인 왕릉과 석탑은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하니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을 때, 그 때에 맞는 맞춤 코스를 선택한다면 경주 걷기여행은 사계절 내내 떠나기를 망설일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불시에 들이닥쳐도 늘 반갑게 맞아주는 오랜 친구처럼 말입니다.






사실 걷기여행은 가장 많은 계획과 정보가 필요한 여행이기도 합니다. 저처럼 겁이 많은 여행자는 걷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를 걷고 어디에서 마칠 것인지 미리 계획해야 하는 코스, 거리, 소요시간, 이동방법 등을 사전에 철저히 조사를 해야 안심이 됩니다. 제주에 올레길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무작정" 제주 올레길에 올랐다가 반나절만에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걷기여행일수록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는 편입니다. 잘못하면 아무것도 없는 텅빈 길 위에서 밤을 맞을 수도 있답니다. <경주 걷기여행>은 이런 여행자의 마음과 필요를 잘 아는 책입니다. 걷기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 코스에 따라 걷기 난이도, 코스 연계까지 절하게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경주 걷기여행>을 만나기 전까지 경주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일순위로 가고 싶은 여행 스폿은 야경이 아름다운 안압지였는데, <경주 걷기여행>으로 미리 6개의 경주 권역 중에서는 '남산권'에 가장 끌립니다. "남산에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한마디가 강렬하게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년 왕국 신라의 중심지 경주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신비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혼자 떠날 용기가 없어 늘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함께 떠날 친구가 아쉽습니다. 여행 갈 때마다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신 엄마가 지금 무릎이 아파 치료 중이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저녁마다 이 책을 계속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딸이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올해 <경주 걷기여행>이 제안하는 22개의 코스 중 꼭 1-2코스라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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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움 - 삶이 다시 경이로워질 때 믿음은 시작된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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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결국 고해의 바다일 뿐일까요, 아니면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일까요? 지금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생은 어떤 의미입니까?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생은 흐느낌과 훌쩍거림과 미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훌쩍거릴 때가 제일 많다." 오 헨리의 말처럼, 대부분 무덤덤한 반복과 지겹고 불만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힌 채 사나운 운명에 흐느끼고 훌쩍거리며 살아다가, 간혹 찾아오는 삶의 빛나는 환희와 생명력 앞에 한번씩 미소짓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짧은 순간이여서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 찰라의 환희로 흐느낌과 훌쩍거림을 견디며 말입니다.


<경이로움(wonder)>은 삶의 황홀감을 생생한 것으로 만드는 그 무엇, 분명하게 느낄 수 있지만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그 벅찬 환희의 실체를 추적하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그것을 세계적인 석학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경이로움'이라 이름 붙이고 이렇게 정의해냅니다.


"경이로움이란 절대 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감성을 황홀하게 만드는 마음의 그 '사로잡힘'이다. 그것은 현실을 단단히 그러잡고 있는 것이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절정을 느껴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삶의 투쟁에서 비롯되는 좌절과 낙담이 있다고 해서 취약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가운데 비범한 것을 알아보며, 그 비범함 속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확인한다. 경이로움은 영혼(영적인 것)을 굳게 움켜쥐면서도 몸(물질적인 것)으로 느낄 수 있다. 경이로움은 매 순간을 즐기면서도 영원의 눈으로 삶을 해석한다"(44-45).


<경이로움>은 어떻게 하면 그 경이로움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으며 그것을 유지하고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달리 표현하면 원더풀한 인생을 누리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탐구한 철학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C.S. 루이스 이래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이름이 높지만 이 책은 신학적 탐구라기 보다 철학적 탐구에 가깝습니다. <경이로움>은 궁극적으로 경이로움의 근본이신 하나님께로 독자를 인도하지만, 인생과 시대를 통찰하는 철학적 탐구 없이는 쉽게 설득되거나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왜 뜬금없이 "경이로움"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로 우리에게 다가왔을까 궁금했는데,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오락과 쾌락과 물질이 넘치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경이로움>이라는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었습니다. 현대인은 마치 장난감을 여러 개 가진 아이와 같이, 너무 많은 기회와 가능성 때문에 오히려 천진한 호기심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즐기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우리가 정작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하여 더 많이 가질수록 고마워할 줄 모르고 오히려 지겹고 불만스러운 감정을 쏟아놓는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고 있는지를 밝히는데, 그 중심에 "경이로움"이라는 키워드가 자리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라, 온통 경이로움이다. 그리고 삶을 매혹적이고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영혼을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면 우린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종교 중에서 기독교 신앙이 제공하는 것처럼 풍요로운 음악을 지닌 종교가 없는 까닭이 바로 그것일지 모르겠다. 그분의 이름이 '경이로우심'이기 때문에 우리는 노래 부른다"(50).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듯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성과 풍요를 자랑하는 현대인들이 오히려 경이로움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대상을 잘못 정하고 찾아 헤매기 때문입니다. <경이로움>은 그 한 예로 성과 부의 유혹을 경고하며, "비록 그것들이 기막히게 좋은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는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은 될 수 없음"을 논증합니다(105).


<경이로움>은 읽어내기 녹록지 않은 책입니다. 끈기가 필요하고 깊은 사색이 필요한 책입니다. 또 기독교 색채에 대한 선입견으로 거부감을 느낄 독자도 있겠지만, "경이로움은 감사와 진실과 사랑과 희망의 절정에서 풍성하게 이루어진다"(178)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또 경이로움을 유지하고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공부와 독서와 사색과 깊이 있는 대화와 믿음으로 기도하기 등이 필요한데, 그것은 한마디로 "예배"라는 설명(215)에 이르기까지 편견 없이 다가가 볼 것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세계적인 강연가의 철학적 통찰과 성찰을 통해 시대를 읽고 인생을 되돌아볼 기회가 될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경이로움"의 근원을 발견한다면, 우리 삶은 그야말로 원더풀해질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패배자처럼 시큰둥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창조주의 놀라운 손이 모든 삶 속에 천국을 가득 채워주셨음을 깨닫는 것 - 그것이 경이로움의 한 부분이다"(170-171).





땅은 천국으로 가득 차 있고

모든 흔한 숲은 하나님으로 불타오르지만,

오직 보는 자만이 신발을 벗고

나머지는 둘러앉아 검은 딸기를 따는구나.


- Elizabeth Barrett Brow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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