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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걷기여행 - 살아 있는 역사 박물관
김영록 지음 / 터치아트 / 2015년 5월
평점 :

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경주 ★ 경주 걷기여행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던 길 위의 사람들을 보게 됐다." <이혼변호사는 연애중>이라는 드라마 마지막 회에 나온 대사입니다. 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보아야 할 것들도 있습니다. 웰빙 바람을 타고 걷기여행이 하나의 트랜드로 잡리잡기 전에도, 여행의 기본은 걷기였습니다. 더구나 도시 전체가 역사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경주'의 거리를 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은 경주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주변에서는 걷기여행이 생각보다 고된 여정이라며 겁을 주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멀미가 심해 지금까지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습관 때문에 더 두려움 없이 "도전! 경주 걷기여행!"을 외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전의지를 자극하는 것은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의 증언입니다. "경주 걷기는 행복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이 책의 저자와 같이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보며 걷는 답사 걷기입니다. 문화유산 답사를 좋아하는 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 1순위는 경주일 것입니다.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만큼 유물, 유적이 산재해 있고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 두발로 천천히 걸으면서 한눈도 팔고 주변의 작은 것들에 눈길도 주면서 경주의 매력에 푹 빠지셨으면 좋겠습니다"(8).

<경주 걷기여행>은 경주를 총 6개의 권역으로 묶어, 22개의 코스를 제안합니다. 경주 걷기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사계절 중 언제 걷는 것이 가장 좋은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걷기여행이니 아무래도 햇빛이 강한 더운 여름은 피해야겠다 싶었는데 <경주 걷기여행>은 계절별로 걷기 좋은 코스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도시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이는 4월 초의 경주는 어디를 가나 눈부시지만 특히 월성(1코스)을 빙 둘러 피어난 벚꽃과 때를 맞춰 화답하는 유채꽃은 꽃 대궈을 이뤄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대릉원 정문의 오른쪽 담장길(1코스), 김유신묘를 찾아가는 길(12코스), 보문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벚꽃 길(16코스)도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햇볕이 강한 여름에는 남산 등산길(6-10코스)이 좋다. … 경주 벌판이 황금색으로 물드는 가을에는 고운 단풍이 터널을 이루는 불국사와 석굴암(18코스), 함월산의 기림사와 골굴사(19코스), 낭산과 널따란 보문들판(3코스)이 좋다"(17).
게다가,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경주이지만 "한 겨울 눈 덮인 왕릉과 석탑은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하니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을 때, 그 때에 맞는 맞춤 코스를 선택한다면 경주 걷기여행은 사계절 내내 떠나기를 망설일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불시에 들이닥쳐도 늘 반갑게 맞아주는 오랜 친구처럼 말입니다.

사실 걷기여행은 가장 많은 계획과 정보가 필요한 여행이기도 합니다. 저처럼 겁이 많은 여행자는 걷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를 걷고 어디에서 마칠 것인지 미리 계획해야 하는 코스, 거리, 소요시간, 이동방법 등을 사전에 철저히 조사를 해야 안심이 됩니다. 제주에 올레길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무작정" 제주 올레길에 올랐다가 반나절만에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걷기여행일수록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는 편입니다. 잘못하면 아무것도 없는 텅빈 길 위에서 밤을 맞을 수도 있답니다. <경주 걷기여행>은 이런 여행자의 마음과 필요를 잘 아는 책입니다. 걷기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 코스에 따라 걷기 난이도, 코스 연계까지 절하게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경주 걷기여행>을 만나기 전까지 경주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일순위로 가고 싶은 여행 스폿은 야경이 아름다운 안압지였는데, <경주 걷기여행>으로 미리 6개의 경주 권역 중에서는 '남산권'에 가장 끌립니다. "남산에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한마디가 강렬하게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년 왕국 신라의 중심지 경주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신비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혼자 떠날 용기가 없어 늘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함께 떠날 친구가 아쉽습니다. 여행 갈 때마다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신 엄마가 지금 무릎이 아파 치료 중이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저녁마다 이 책을 계속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딸이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올해 <경주 걷기여행>이 제안하는 22개의 코스 중 꼭 1-2코스라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