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복음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나
조나단 도슨 지음, 김재영.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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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은 당신의 유익에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해서든 거래를 성사시키기만 바랐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전도를 받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23).

열심 있는 성도라면 전도에 대한 거룩한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전도를 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 전도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 외쳐도 전도가 되던 때가 있었다는데, 지금 그렇게 전도하면 같은 교인에게도 욕을 먹습니다. 복음을 불쾌하고 짜증나는 무엇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더 충격적인 진실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많은 교회가 사랑했고 또 지금도 훈련받고 있는 사영리와 전도폭발과 같은 건전한(?) 전도 프로그램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짜여진 복음"을 "제시"하는 데 급급한 전도는 "판매에 나선 영원사원"이 "실적을 올리려고 하는 행동"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합니다. 문제는 "전도를 받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프레젠데이션 자체에 초점"(25)을 맞추는 것입니다. "'현대적' 형태의 전도는 복음 증거를 비인격적이며, 설교투에다 편협하고, 정작 사람들이 묻는 것에 그다지 알려주는 게 없는 식으로 만들어버렸다. ... 그런 경험을 반복하게 되면 비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전도를 짜증스럽게 여기게 된다"(11).

 

"전도의 목표는 단번에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의 목표는 마음에 이르는 것이다"(58).


벌어질 대로 벌어져 버린 복음과 사회 사이에 간극, 어떻게 하면 메울 수 있을까요? <왜? 복음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나>는 그 해답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핵심은 사랑이며, 기본은 "그 사람을 존중하고 개인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목표는 "마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도는 시간과 삶을 나누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상대방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빡빡한 일정을 수정하고, 정형화된 대답을 피하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 사람들은 30초 복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왜 믿을 만한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171).


"오늘날 많은 이들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을 듣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은 마음에 연결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복음이 어떻게 마음과 연결되는지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사람들의 가장 깊은 욕망과 꿈, 희망, 그리고 두려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복음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63).

 

그런데 전도로 고민하는 모든 교회에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숫적 부흥을 약속하는 탁월한 전도 전략 때문이 아닙니다. 이 책의 강점은 복음이 좋은 소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먼저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다섯 가지 메타포를 통해 어떻게 접근하고 전해야 듣는 자에게도 복음이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가르쳐 줍니다. 전도의 방식보다 먼저 전도의 내용, 즉 무엇을 전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합니다.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적용해나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이 책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복음은 '공동체적인 프로젝트'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스스로의 삶을 통해, 그리고 실제 교회 공동체의 삶을 통해 복음이 공동체 안에서 시도되고 적용될 때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깨우쳐줍니다.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말로 만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지요.

<왜? 복음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나>는 복음에 진실하게 반응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보여줍니다. 복음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된 것은 어쩌면 많은 교회가 복음을 모르고 복음대로 살지 않으면서, 복음을 아는 체하고 입으로만 떠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교회가 전도를 위해 기도대상자를 정하고 태신자를 품는 시기입니다. 전도대상자를 정하기 전에, 아니 숫적 부흥을 꿈꾸기 전에, 모든 교회가 먼저 이 책을 읽고 고민하는 일이 먼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를 전도의 현장이 아니라, 회개의 자리로 먼저 이끌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음을 짜증나는 무엇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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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프로 응답받는 기도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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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응답에 대한 약속이 기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는 나름의 기도가 있고, 응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정성과 치성을 드려야 하는, 거래와 흥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간절한 내 소원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는 그것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는 신앙적인 면에서 굉장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입니다. 100프로 응답을 '받아내는' 비결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처럼 필요한 것만 구하고자 하나님과 흥정하고, 내 유익, 내 정욕을 채우기 위해 떼를 부렸습니다. 정욕으로 기도하고 떼 부리며 기도하여 무엇을 얻으면 그것이 기도 응답인 줄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앉으나 서나 땅에 소원이 많기에 기도 부탁만 하러 다녔습니다. 하늘만 쳐다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막고 제가 하고 싶은 기도만 계속 해댔습니다. 응답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실족했습니다. 내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도 없었습니다"(218).​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라는 제목에 혹 했다면, 지금 다급하고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거래와 흥정으로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미리 알려드리면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는 한마디로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이타적인 기도입니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에게 축복을 베풀어 달라고 드리는 기도가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다"(237).

저자는 '팔복'의 기도라고 부르며, 여덟 가지 기도의 바른 방법을 설명합니다(주기도, 감사와 찬양기도, 회개기도, 서원기도, 고난의 때에 드리는 능력기도, 중보기도, 내려놓는 기도,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 간증과 '큐티 설교' 형식으로 풀어놓기 때문에, 잘 읽히고, 이해도 쉽고, 재미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평이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기도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기본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신앙 년수와 직분에 상관 없이 누구에게도 선물하기 좋은 책이며, 누가 읽어도 깊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또 김양재 목사님은 큐티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에 이 책 역시 성경을 읽고 적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면에서 살짝 아쉬움이 남습니다(지극히 주관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먼저,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 하고 걸리는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는 본문을 통해 "내 정욕으로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린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분노가 뒤따른다"(219)는 적용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기브온 족속을 '용서하고 전도한 배우자'에 빗대며 아모리 다섯 왕과의 전쟁(227-234)을 해석(아모리 다섯 왕과의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브온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는지 물으셨다는)한 것도 흥미롭고 재밌긴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핵심메시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큐티식 설교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작은 가시처럼 마음에 걸려 있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핵심 키워드가 '내 죄'처럼 읽힌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안에서 내 죄를 보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실 것이다"(259). 이 마지막 문장이 이 책의 강조점이요, 핵심 키워드처럼 읽힙니다. 성도들조차도 죄에 대해 둔감한 현실을 생각하면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인 것은 분명하지만, 보다 날카롭게 설명되지 못하고 '내 죄'를 보는 것이 모든 기도의 목적인 것처럼, 그것이 모든 기도에 응답받는 조건처럼 제시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하나님보다 내 죄를 더 묵상하게 만드는 듯한 뭔가 개운치 못한 여운이 남습니다. "그저 100프로 기도 응답받는 조건은, 먼저 내 죄를 보는 것이고, 그 죄를 깨끗이 둘러엎는 것이다"(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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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둑 (별책: 글도둑의 노트 포함) - 작가가 훔친 문장들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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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에는 구성력과 함께 깊이 있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는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264).

심각한 국어 파괴 현상과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함께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책을 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누구라도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현상도, 그래서 자기계발 분야에서 '글쓰기' 관련 신간이 쏟아지는 것도, 그리 고운 시선으로 쳐다봐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글도둑>은 최근에 읽은 같은 분야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며,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책이며, 글 쓰기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에게 최우선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결국 이 또한 글쓰기를 훈련하는 책인 줄 알면서도 <글도둑>에 관심을 가진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작가가 훔친 작가의 문장들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명문장을 써내지는 못해도 살리에르처럼 그것을 감상하는 눈이라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단순한 '필사 노트'가 아니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글 쓰는 능력은 생각하는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한 문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글도둑>은 필사를 기본으로 합니다. 말을 배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하듯이, 좋은 글을 쓰려면 다른 사람의 글을 따라 써봐야 한다는 논리가 상당히 설득적입니다. 따라 쓰되, '좋은 글'을 따라 써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작가의 글'을 탐하고 훔친 이유가 여기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문장만 따라 쓴다고 느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 쓰는 것이 어휘력을 늘려줄 수는 있겠지만 깊이 있는 문장력을 길러주기는 어렵습니다. 문장력을 기르려면 따라 쓰는 문장들이 인간의 본성을 통찰했다거나 가슴을 뒤흔드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따라 쓸 것이 아니라 좋은 문장을 가려서 따라 써야 합니다"(58).


그러나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작가들의 문장을 훔치는 기술 때문입니다. 단순히 "천천히, 예쁘게, 크게"(23) 따라 쓰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좋은 문장의 구조를 내 것으로 만들고, 그렇게 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훈련까지 시도합니다. 즉, 단순히 따라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문장을 응용하는 훈련을 통해 "말하는 능력" + "생각하는 능력"까지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글을 쓰는 능력은 좋은 문장 구조를 익혀서 거기에 자기 생각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느냐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내용을 매력적으로 채울 수 있는 생각의 힘이 필요합니다"(7).

시급하게 글 쓰기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특히 자기 생각을 글에 담아내는 훈련(생각을 글로 표현하는)을 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필사를 하고, 응용을 하며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책인데, 달리듯 읽어버렸습니다. 소설처럼 읽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참 성실하고 진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름 책을 꾸준히 읽고 있지만,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인격이 절로 좋아지지도 않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작가가 훔친 문장도 문장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탐이 나는 것은 저자의 '습관'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습관, 좋은 문장을 탐하는 습관, 좋은 문장을 필사하고, 암기하고, 응용하는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집니다. 사실 작가가 훔친 '문장들'에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훔친 문장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문장과 명언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글도둑>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좋은 글은 좋은 습관(훈련)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다음 책도 기대됩니다. "우리 삶은 수없이 반복되는 날들로 가득 차 있지만, 반복된다는 이유로 게으르게 살기 쉽습니다. 이때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반복을 통해서 큰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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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으로의 초대 세계기독교고전 53
리차드 백스터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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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은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심', 누군가에게는 낯선 종교 용어일 뿐이고, 누군가에는 익숙한 교리(지식)이며, 누군가에는 인생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회심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사건'이 아니라, '교리(지식)'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은 많으나 진짜 그리스도인은 찾아보기 어렵고, 수는 많으나 영향력은 적은 교회들이 넘쳐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들조차 회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심'은 '거듭나다', '돌이키다', '돌아서다', '방향을 바꾸다' 등으로 설명됩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 이제까지의 삶에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나는 죽고 이제 예수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예수님을 따라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선언인 것이지요. 그런데 리처드 백스터는 <회심으로의 초대>에서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 다음과 같은 생생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회심은 어떤 사람이 지닌 땅에 속한 마음이 하늘로 끌어올려지고, 사람들이 지극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놀랍고 탁월한 것들을 보게 되어서, 하나님에 대한 영원히 꺼지지 않을 사랑이 그의 마음 속에서 타오르게 되고, 죄를 향한 마음을 끊어 버리고, 그리스도께로 피하여 자신의 피난처로 삼고, 감사함으로 그리스도를 자기 영혼의 생명으로 받아들이며, 그의 마음의 성향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서, 지금까지 복으로 여겨 왔던 것들을 부인하고,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회심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됨으로써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94)​.



리처드 백스터는 '돌이킨다'는 의미를 보다 정확하고 생생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반대되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가 볼 때 "회심한 사람"의 반대되는 개념은 "악인"이며, 어떤 사람들이 악인인지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꼽습니다. 자​신이 진짜 회심한 그리스도인지 알고 싶다면, 이 악인의 세 가지 특징에 자신의 삶을 대입해보면 될 것입니다.

악인의 첫 번째 특징은, "자신의 가장 주된 만족을 땅에서 찾는다는 것"입니다(88).

악인의 두 번째 특징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자신의 육적인 목표들을 성취하는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90).

악인의 세 번째 특징은 "​악인의 영혼은 구속의 신비를 진정으로 알지도 못하고 맛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91).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예배에 자리에 앉아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회심'을 배우려고 합니다.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심은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내 삶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일입니다. 내가 죽는 것, 장례를 지내는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이처럼 회심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존재 가운데서 한두 가지, 또는 수십 가지가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 전체, 그리고 생각과 감정과 행실을 포힘한 한 사람의 삶 전체의 방향과 성향이 완전히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97).


""돌이키는" 것, 즉 회심은 단순히 헌 집을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헌 집을 완전히 다 무너뜨린 후에, 구원의 확실한 "터"이자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새 집을 짓는 것입니다"(115).


보통 '회심'이라고 하면 불신자들에게 필요한 무엇, 그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리(지식)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심으로의 초대>는 "실제로는 회심하지 않았는데 회심한 것처럼 생각하여 스스로 속이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자신은 이미 돌이켰다고 믿으며 살았는데, 심판대 앞에서 전혀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더 최악은 상상할 수 없을 테니까요.

<회심으로의 초대>를 읽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제게 "회심은 주인을 바꾸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내 안에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돌아보게 하시며, "주인을 완전히 바꾸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을 바꾼다는 것은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머리로 알고, 입으로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 정말 그렇게 살기로 작정하니 삶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이 아니라 옆자리에 모셔놓고 하나님이 나를 섬겨주기 바라며 나를 위해 살아왔다는 증거겠지요.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고 진심을 다해, 뜻을 다해, 정성을 다해 고백하고 나니, 이제야 믿음의 첫 발을 내딛는 기분입니다.

<회심으로의 초대>는 재밌는 책은 아닙니다. '회심'에 대해 개념을 잡은 것으로 다 이해했다고 해치우고 마는 단순한 신앙서적이 아닙니다. 회심이 무엇인지, 왜 회심이 필요한지, 왜 회심이 그토록 중요한지 집요하고 지루하도록 파고듭니다. "회심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불변의 법"임을 분명히 경고하지만, "돌이키면 산다는 진리"도 확실히 전합니다. 현대인들은 흑백논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모든 악인들에게는 회심이냐 멸망이냐, 이 두 가지 길 중에서 오직 하나만이 있을 뿐이라는 진리"를 가차없이 전합니다. 자신이 회심하였는지 제대로 올바르게 확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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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 신은 혼자서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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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제가 알던 이브가 아니네요?"

세상엔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책들이 많지만, <성경>이 유독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이며, 그 대서사의 엔딩을 장식할 중요한 등장인물이 바로 '나'라는 벼락 같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책이 또 있을까요? 첫 소설 <오두막>으로 2500만 독자들을 감동시켜 화제를 모은 월리엄 폴 영이 신작 <이브>에서 이 신비를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브>는 <성경>을 모티브로 하여 폭력과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에 아담의 첫 번째 아내라는 릴리스의 신화를 살짝 가미하여 극의 긴장과 흥미를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그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문학작품이겠지만, 실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치유의 신비를 경험한 신앙인들은 주인공 '릴리'가 바로 '나'라는 사실에 전율할 것입니다.

<이브>는 간절한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종말까지 얼마나 더 남았죠? 우리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9) '존'의 이 물음은 첫 사람 '아담'이 일으킨 모든 혼란 속에, 폭력과 상처로 얼룩진 세상 속에 내던져진 모든 영혼들의 호소일 것입니다. <이브>는 왜 세상은 어쩌다 이렇게 폭력과 상처로 얼룩지게 되었는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할 길은 없는지에 대한 답이며, 다음과 같은 '이브'의 대답에 이야기의 중요한 복선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예전부터 우리를 대표할 특별한 세 사람이 있으니라는 걸 알았잖아요. 씨앗의 약속을 받은 한 사람, 그 씨앗으로 뱀의 대가리를 부술 한 사람, 그리고 씨앗과 영원히 하나가 될 한 사람, 바로 어머니와 딸과 신부 말이에요. 내 딸이 도착하면 종말은 시작될 거예요"(10). 

커다란 금속 컨테이너에 실려온 '릴리'는 존에게 발견되어진 뒤, 기억을 상실한 채로 깨어납니다. 그러나 온 몸이 부서져 버린 릴리는 자신의 치유를 위해 애쓰는 '존'과 '레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녀 안에서 세 개의 충돌하며 더욱 큰 혼란 속으로 빠져 듭니다. "이제 그녀 안에서 세 개의 세계가 충돌했다. 첫 번째는 잘 모르지만 갑작스럽게 툭툭 떠오르는 회상의 공간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 그녀는 태초의 증인이며 그곳은 환각으로 가득 차 있다. 세 번째 세계는 어떤 면에서 가장 기이하기도 한데, 지금 그녀가 깨어나 누군가가 부르는 천상의 노래에 매료된 바로 이곳이다"(109). 

<트리 오브 라이프>라는 영화를 보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주가 탄생하는 경이로운 광경을 폭발시키듯 장시간 보여줍니다. <트리 오브 라이프>가 장엄한 영상으로 그것을 보여주었다면, <이브>는 '영원한 이'와 '아담'의 얼굴을 맞댄 아름다운 사랑의 춤으로 그것을 묘사해냅니다. <이브>는 작가적 상상력 속에서 비교적 충실히 성경의 창조, 타락, 회복의 플롯을 따라가며, 말씀(성경)이 체험되어지는 현상을 환상적으로 그려냅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해석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해석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브>입니다. 이 책에는 총 세 명의 '이브'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태초의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주어 먹게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죄의 유혹이 뱀이 아니라, 아담의 돌아섬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낳은 비극의 실재가 무엇인지 슬프지만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아담이 자신의 돌아섬이 좋은 거라고 믿게 되자, 어둠은 실재가 되었어. 신뢰 대신 통제가, 말 대신 상상력이, 그리고 관계와 사랑 대신 힘이 찾아왔지. 그는 자신의 어둠을 통해 하나님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어. 자신이 돌아섰다는 사실조차 곧 잊었지.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며 권위와 지배를 가진 창조의 전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독립적인 자기만의 힘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어. 슬프게도 우리 모두 아담의 자녀이기에,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게속 살면서 무엇이 선과 악인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해"(298-299).


<이브>는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소화하기 쉬운 작품은 아닙니다. 환상적인 '천상'과 비밀스러운 '현상', 그리고 흐릿한 '과거'가 교차하는데다, 여기에 '릴리스'의 신화까지 가미되어 있습니다. 누구라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기본적인 성경 지식이나 신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작가의 의도를'정확하게' 알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책 읽기를 멈추고 '릴리스'에 관한 신화를 다시 찾아 읽어봐야 했습니다(이 책이 뿌리 깊은 여성차별과 페미니즘 운동에 미칠 영향까지 나름 고려하며 말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성경에 대입해서 읽지는 말기를 권합니다. 문학은 문학일뿐이라는 마음으로 접근을 해야지, 지나치게 성경을 대입하면 오해에 빠질 만한 웅덩이가 몇 군데 보입니다.


기독교는 사변의 종교가 아니라, 체험의 종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말 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 같은 아픔을 공유한 사람, 나와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을 통해 찢겨진 상처가 치유되는 체험도, 좋은 책을 읽을 때 부서진 마음과 깨진 영혼이 회복되는 체험이 이와 비슷한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브> 안에 이 세 가지 신비가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신비, 나와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신비, 좋은 책을 통해 부서진 것들이 회복되는 신비! 그리하여 우주를, 우주를 품은 나 자신을 통째로 바꿀 힘을 가진 좋은 책이라고 평하고 싶은 책입니다. "좋은 책은 좋은 노래나 사랑처럼 우주를 통째로 바꿀 수 있거든"(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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