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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둑 (별책: 글도둑의 노트 포함) - 작가가 훔친 문장들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좋은 글에는 구성력과 함께 깊이 있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는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264).
심각한 국어 파괴 현상과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함께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책을 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누구라도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현상도, 그래서 자기계발 분야에서 '글쓰기' 관련 신간이 쏟아지는 것도, 그리 고운 시선으로 쳐다봐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글도둑>은 최근에 읽은 같은 분야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며,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책이며, 글 쓰기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에게 최우선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결국 이 또한 글쓰기를 훈련하는 책인 줄 알면서도 <글도둑>에 관심을 가진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작가가 훔친 작가의 문장들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명문장을 써내지는 못해도 살리에르처럼 그것을 감상하는 눈이라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단순한 '필사 노트'가 아니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글 쓰는 능력은 생각하는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한 문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글도둑>은 필사를 기본으로 합니다. 말을 배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하듯이, 좋은 글을 쓰려면 다른 사람의 글을 따라 써봐야 한다는 논리가 상당히 설득적입니다. 따라 쓰되, '좋은 글'을 따라 써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작가의 글'을 탐하고 훔친 이유가 여기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문장만 따라 쓴다고 느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 쓰는 것이 어휘력을 늘려줄 수는 있겠지만 깊이 있는 문장력을 길러주기는 어렵습니다. 문장력을 기르려면 따라 쓰는 문장들이 인간의 본성을 통찰했다거나 가슴을 뒤흔드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따라 쓸 것이 아니라 좋은 문장을 가려서 따라 써야 합니다"(58).
그러나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작가들의 문장을 훔치는 기술 때문입니다. 단순히 "천천히, 예쁘게, 크게"(23) 따라 쓰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좋은 문장의 구조를 내 것으로 만들고, 그렇게 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훈련까지 시도합니다. 즉, 단순히 따라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문장을 응용하는 훈련을 통해 "말하는 능력" + "생각하는 능력"까지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글을 쓰는 능력은 좋은 문장 구조를 익혀서 거기에 자기 생각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느냐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내용을 매력적으로 채울 수 있는 생각의 힘이 필요합니다"(7).
시급하게 글 쓰기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특히 자기 생각을 글에 담아내는 훈련(생각을 글로 표현하는)을 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필사를 하고, 응용을 하며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책인데, 달리듯 읽어버렸습니다. 소설처럼 읽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참 성실하고 진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름 책을 꾸준히 읽고 있지만,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인격이 절로 좋아지지도 않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작가가 훔친 문장도 문장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탐이 나는 것은 저자의 '습관'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습관, 좋은 문장을 탐하는 습관, 좋은 문장을 필사하고, 암기하고, 응용하는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집니다. 사실 작가가 훔친 '문장들'에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작가가 훔친 문장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문장과 명언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글도둑>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좋은 글은 좋은 습관(훈련)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다음 책도 기대됩니다. "우리 삶은 수없이 반복되는 날들로 가득 차 있지만, 반복된다는 이유로 게으르게 살기 쉽습니다. 이때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반복을 통해서 큰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