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 신은 혼자서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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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은 제가 알던 이브가 아니네요?"

세상엔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책들이 많지만, <성경>이 유독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이며, 그 대서사의 엔딩을 장식할 중요한 등장인물이 바로 '나'라는 벼락 같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책이 또 있을까요? 첫 소설 <오두막>으로 2500만 독자들을 감동시켜 화제를 모은 월리엄 폴 영이 신작 <이브>에서 이 신비를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브>는 <성경>을 모티브로 하여 폭력과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에 아담의 첫 번째 아내라는 릴리스의 신화를 살짝 가미하여 극의 긴장과 흥미를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그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문학작품이겠지만, 실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치유의 신비를 경험한 신앙인들은 주인공 '릴리'가 바로 '나'라는 사실에 전율할 것입니다.

<이브>는 간절한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종말까지 얼마나 더 남았죠? 우리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9) '존'의 이 물음은 첫 사람 '아담'이 일으킨 모든 혼란 속에, 폭력과 상처로 얼룩진 세상 속에 내던져진 모든 영혼들의 호소일 것입니다. <이브>는 왜 세상은 어쩌다 이렇게 폭력과 상처로 얼룩지게 되었는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할 길은 없는지에 대한 답이며, 다음과 같은 '이브'의 대답에 이야기의 중요한 복선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예전부터 우리를 대표할 특별한 세 사람이 있으니라는 걸 알았잖아요. 씨앗의 약속을 받은 한 사람, 그 씨앗으로 뱀의 대가리를 부술 한 사람, 그리고 씨앗과 영원히 하나가 될 한 사람, 바로 어머니와 딸과 신부 말이에요. 내 딸이 도착하면 종말은 시작될 거예요"(10). 

커다란 금속 컨테이너에 실려온 '릴리'는 존에게 발견되어진 뒤, 기억을 상실한 채로 깨어납니다. 그러나 온 몸이 부서져 버린 릴리는 자신의 치유를 위해 애쓰는 '존'과 '레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녀 안에서 세 개의 충돌하며 더욱 큰 혼란 속으로 빠져 듭니다. "이제 그녀 안에서 세 개의 세계가 충돌했다. 첫 번째는 잘 모르지만 갑작스럽게 툭툭 떠오르는 회상의 공간이다. 두 번째 세계에서 그녀는 태초의 증인이며 그곳은 환각으로 가득 차 있다. 세 번째 세계는 어떤 면에서 가장 기이하기도 한데, 지금 그녀가 깨어나 누군가가 부르는 천상의 노래에 매료된 바로 이곳이다"(109). 

<트리 오브 라이프>라는 영화를 보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주가 탄생하는 경이로운 광경을 폭발시키듯 장시간 보여줍니다. <트리 오브 라이프>가 장엄한 영상으로 그것을 보여주었다면, <이브>는 '영원한 이'와 '아담'의 얼굴을 맞댄 아름다운 사랑의 춤으로 그것을 묘사해냅니다. <이브>는 작가적 상상력 속에서 비교적 충실히 성경의 창조, 타락, 회복의 플롯을 따라가며, 말씀(성경)이 체험되어지는 현상을 환상적으로 그려냅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해석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해석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브>입니다. 이 책에는 총 세 명의 '이브'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태초의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주어 먹게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죄의 유혹이 뱀이 아니라, 아담의 돌아섬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낳은 비극의 실재가 무엇인지 슬프지만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아담이 자신의 돌아섬이 좋은 거라고 믿게 되자, 어둠은 실재가 되었어. 신뢰 대신 통제가, 말 대신 상상력이, 그리고 관계와 사랑 대신 힘이 찾아왔지. 그는 자신의 어둠을 통해 하나님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어. 자신이 돌아섰다는 사실조차 곧 잊었지.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며 권위와 지배를 가진 창조의 전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독립적인 자기만의 힘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어. 슬프게도 우리 모두 아담의 자녀이기에,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게속 살면서 무엇이 선과 악인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해"(298-299).


<이브>는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소화하기 쉬운 작품은 아닙니다. 환상적인 '천상'과 비밀스러운 '현상', 그리고 흐릿한 '과거'가 교차하는데다, 여기에 '릴리스'의 신화까지 가미되어 있습니다. 누구라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기본적인 성경 지식이나 신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작가의 의도를'정확하게' 알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책 읽기를 멈추고 '릴리스'에 관한 신화를 다시 찾아 읽어봐야 했습니다(이 책이 뿌리 깊은 여성차별과 페미니즘 운동에 미칠 영향까지 나름 고려하며 말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성경에 대입해서 읽지는 말기를 권합니다. 문학은 문학일뿐이라는 마음으로 접근을 해야지, 지나치게 성경을 대입하면 오해에 빠질 만한 웅덩이가 몇 군데 보입니다.


기독교는 사변의 종교가 아니라, 체험의 종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말 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 같은 아픔을 공유한 사람, 나와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을 통해 찢겨진 상처가 치유되는 체험도, 좋은 책을 읽을 때 부서진 마음과 깨진 영혼이 회복되는 체험이 이와 비슷한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브> 안에 이 세 가지 신비가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신비, 나와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신비, 좋은 책을 통해 부서진 것들이 회복되는 신비! 그리하여 우주를, 우주를 품은 나 자신을 통째로 바꿀 힘을 가진 좋은 책이라고 평하고 싶은 책입니다. "좋은 책은 좋은 노래나 사랑처럼 우주를 통째로 바꿀 수 있거든"(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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