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 하나님 자리를 훔치다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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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들에게 결별을 선언하다!


무엇이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이다.

권력을 구하는 사람은 권력에 지배당하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기 원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지배당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에게 지배당한다(29).



"우상이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얻고자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이다"(200)

 

현대 교인들에게 우상숭배를 멈춰야 한다고 말하면, 구약성경이나 토템을 떠올리며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팀켈러의 내가 만든 신>은 현대 교인들 사이에 만연한 우상숭배를 폭노한다. 팀 켈러가 정의하는 우상이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22-23). 내 안에도 우상이 자리잡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어질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가? 만일 '뭔가가 있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뭔가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것이 내가 만든 가짜 신, 즉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것 없으면 못 사는 게 바로 우상이기 때문이다"(19).


팀 켈러가 폭노하는 현대인의 우상을 보면, 정체가 훤히 드러나는 우상도 있지만, 교묘하게 본 모습을 감추고 우리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들이 있다. '돈'과 '권력'이 정체를 훤히 드러내는 우상이라면, '평생 소원'이나 '사랑', '성취', '문화와 종교'는 쉽게 그 독소를 드러내지 않는 우상이다. 팀 켈러는 평생 소원해왔던 아들 이삭을 얻었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해온 동기가 아들을 얻기 위함이었다면 그 평생 소원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헌신적인 관계'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랑(로맨스)도 마찬가지이다. 팀켈러는 여기서 우상의 교묘한 속성을 간파한다. "우리는 우상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체가 나쁜 경우는 거의 없다. 더 좋은 것일수록 그것이 우리의 가장 깊은 욕구와 희망을 채우리라는 기대"(22) 속에 우상으로 달바꿈된다는 것이다.



"우상을 그냥 없앨 수는 없고 대체해야만 함을 이제부터 깨달으면 된다(231).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은 왜 우리는 끊임없이 가짜 신을 만들어내는지, 왜 가짜 신을 섬기면 필연적으로 쓰라린 환멸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지, 우리 안에 있는 가짜 신, 즉 우상을 몰아내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우상을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대체"하는 것이다. 즉 가짜를 몰아내려면, 진짜를 그 자리에 들여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참 하나님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계속 대상만 바뀔 뿐이다"(243). 우상을 하나님으로 대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생생하게 만나는 것이다"(231).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은 하나님과 생생하게 만나는 책이며, 복음의 진수로 가득찬 책이다. 팀 켈러 목사님의 책이 언제 그렇듯이 이 책 역시 구조적으로 잘 짜여진 강의처럼 명쾌하며, 복음으로 충분하다. 두란노에서 나온 책답게 번역과 편집도 깔끔하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하지 말고, "주실 수 있는 분께 구하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강력하고 통쾌하게 영혼을 꿰뚫는지 막혔던 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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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논리 수업 - 행복을 이끄는 논리적 사고의 비밀
무천강 지음, 이지은 옮김 / 미래지식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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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위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246).



요즘 tv를 보면 '아무말' 잔치라는 자막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재미와 웃음을 위해서 논리가 없는 단순한 말장난이라는 뜻일텐데, 고루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사회생활하며 가장 당황스럽고 난처할 때가 있는데, 바로 논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감정에만 빠져 상황과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과 소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고, 꽉꽉 막힌 담만큼이나 답답한 일입니다. 논리적인 사고가 약한 사람일수록 '열폭'하는 경향이 강해서 '말' 자체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데, 엄밀히 따지만 논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버드의 논리 수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재치나 많은 지식보다 논리적인 사고를 훈련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책에서 피카소와 관련된 한 일화를 읽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던 한 신사가 옆자리의 피카소를 알아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 당신은 그림을 똑바로 그리지 못하고 그렇게 그리십니까?" 피카소가 그림을 똑바로 그린다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신사는 지갑에 있던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림을 똑바로 그린다는 것은 이 사진처럼 눈, 코, 입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그리는 겁니다." 사진을 건네받은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댁의 부인은 굉장히 작군요. 그리고 평평하게 생겼네요."


이 일화 속의 신사는 자기만의 사고체계에 갇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고의 한계이며 함정일 것입니다. <하버드의 논리 수업>은 이 일반적인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어 본질을 꿰뚫는 사고력을 훈련하는 책입니다.



"논리적 사고를 하기 위한 과정은 일종의 '두뇌력 향상 게임'이라 하겠다. 논리적 사고는 복잡하고 심오한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이해력을 끌어올리는 자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14).


"행복을 이끄는 논리적 사고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하버드의 논리 수업>은 이론편과 응용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론편은 개념, 판단, 추리 등의 사유형식과 논증과 논리의 규칙을 이론적으로 익히고 연습해볼 수 있는 (일반적인) '논리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응용편은 부제 그대로 "행복을 이끄는 논리적 사고의 비밀"을 다루는데, 자기계발서 처세술 등에서 배울 수 있는 인생의 이치, 행복의 이치, 성공의 이치, 게임의 이치 같은 배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응용편이 이 책의 차별점이며서 또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논리학의 범주를 실생활에 확장한 사고력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독자들은 논리 수업을 기대했는데 자기계발서나 처세술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7강 사람됨의 이치 편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쳐줍니다. "얕보이고 싶지 않다면 얕보이는 법을 배워라"(215-219). "상대에게 자신의 약점을 보이는 방식은 생존의 지혜이자 성공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218)것이 핵심입니다. 강자는 때때로 자신의 빈틈(약점)을 적당히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얕보여야 상대의 경계심이 무너지고 호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니다. 강자가 아니라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솔직하다고 평가하며 오히려 더 큰 호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려고만 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며 자신의 강점으로 전환할 줄 아는 능력을 익혀야 한다는 '논리'가 이 수업을 듣는 서양인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양적인 지혜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결핍은 행복을 위한 필수조건"(282)이라든지, "듣기 좋은 칭찬은 냄새가 그윽할 뿐 마실 수 없는 향수 같다"(322)는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양적인 지혜가 매력적이지만, 특별한(!) <하버드의 논리 수업>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식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버드에서 이런 수업을 받기 때문에 그 출신들이 소위 말하는 성공의 자리, 리더의 자리에 올라 다른 사람들을 이끌며 살아갈 수 있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버드의 논리 수업>은 논리적 사고력이야 말로 행복으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비논리적 사고는 아무리 뛰어나도 어떤 의의도 없다"는 말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와닿습니다. 논리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인생을 '바르게' 해석하는 '설명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석(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은 참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기보다(어차피 그런 긍정의 힘은 그리 강하지 못하겠지만),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을 때 삶은 더 고귀한 의미와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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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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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런데 왜 가장 깊은 고통의 상징인 오두막에서 만나자는 것일까?"(102)



2009년 펑펑 울며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7년 동안 키운 동생 같은 강아지를 잃었고, 동물병원의 실수로 감염이 되었다는 분노가 상실의 고통과 뒤섞였고, 고통스러워하는 강아지를 붙잡고 며칠을 눈물로 기도했지만 결국 응답되지 않은 기도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실망까지 더해져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버릴 것 같은 상태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 그 <오두막>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화 되었고, 이렇게 100쇄까지 인쇄되어 새로운 번역본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오두막>은 "출판계에 기현상"을 일으킨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자녀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열다섯 부의 복사본에서 시작된 원고가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46개국에 출간되어 2천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을 주문해서 주위에 나눠주는 일이 되풀이 된 결과라는데(440-441), 그 기현상에 저도 한몫 했음을 자랑스럽게 밝히는 바입니다. 저 역시 책을 읽고 더 많은 책을 주문해서 주위에 나눠주었고, 한동안 제 선물 목록 1호는 오직 이 책이었습니다.




"당신이 그 일을 벌어진 않았지만, 멈추게 하지도 않았죠"(205).

이 책에서 "오두막"은 "가장 깊은 고통의 상징"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가장 깊은 고통의 상징, '거대한 슬픔'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그 고통의 한복판으로 초대하는 책입니다. 그 고통의 한복판에 하나님이 계시고,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사랑과 용서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맥'에게 '오두막'은 사랑하는 막내 딸이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에게 유괴되어 잔혹하게 살해된 장소입니다. 바로 그곳으로 자신을 찾아오라는 '파파'(하나님)의 쪽지(초대)는 주인공의 가슴에 거대한 슬픔보다 더 크고 통렬한 고통과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하셨죠? 왜 날 여기 부른 거죠? 하필이면 여기에서, 왜 여기에서 만나자는 거죠? 내 아이를 죽인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나요? 나마저 갖고 놀아야 했나요?"(123)

<오두막>은 인류의 DNA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의문에 답하는 책입니다. "신(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악몽을 거둬가지 않으시는 걸까?" 하는 의문말입니다. 인생을 덮쳐오는 고통은 언제나 신에 대한 분노로 연결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분노입니다. 왜냐하면 그 신은 자신이 태초에 이 세상을 만들었으며, 자신은 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했다고 하면서 왜 폭력에 희생되도록 두고 보시는가, 모든 악몽을 멈추게 할 힘이 있는데도 왜 두고 보시는가" 말입니다. 어쩌면 상실과 폭력의 고통보다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건, 바로 이 '원망', 신을 향한 정당한 원망일겁니다. 이 책의 주인공 맥이 그랬고,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정당화하지 않아요. 구원해요"(208).

 

<오두막>은 종교적인, 더 정확하게 말해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한 책입니다. 그러나 종교를 증오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적 신앙의 역동을 이해해야 이 책이 전하는 감동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데, 그 감동은 바로 종교적인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과정 속에서 보다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오두막>을 읽고 많은 지인들에게 선물을 한 이유는, 읽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힘(독서치유)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사랑과 공의(심판)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하나님의 신비를 이처럼 아름답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고, 신학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두막>은 하나님을 "체구가 크고 빛이 나는 흑인 여성"으로, 성령님을 "체구가 자그마한 아시아계 여인"으로 예수님을 "중동사람 같은 외모에 작업복 같은 옷을 입고, 연장이 담긴 벨트에다 장갑까지 끼고 있는 남성"으로 설정하여, "서로에 대해 사랑을 품고 그로 인해 완전함을 얻는"(170) 관계 속의 하나님을 아주 매혹적으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사랑의 춤'으로 표현했던 신학적인 설명을 아름다운 문학으로 재탄생시킨 느낌입니다. 하나님을 심판하는 심판관의 자리에 앉아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떨쳐내고 심판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용서하게 되는 과정이 압권입니다. 또한 초판을 읽었을 때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스토리뿐 아니라 문장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재번역의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상상하거나 이해하는 것 이상의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나에 대한 믿음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 안에서 좀 쉬도록 해요"(165).

 


<오두막>은 결국 치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과 아픔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작고 불완전한 그림이 아니라 하나님 수준의 큰 그림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작은 신뢰가 있다면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그 믿음 안에서 쉼을 얻을 수가 있다는 걸,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고통의 상징이 치유의 상징이 되는 역설적이고 신비로운 <오두막>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신앙교육을 통해 배우고 상상했던 하나님과는 많이 다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랑과 자유와 용서와 평안이 고통 속에 서 계신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뜨겁게 알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도록 창조되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사랑받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그게 바로 당신 삶을 제한하는 거예요"(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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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알고 싶다 - 다시 배우는 교회, 교회가 가야 할 길에 대하여 알고 싶다
송태근 지음 / 넥서스CROSS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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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명분 아래 자기 의를 드러내려 했기 때문이다. 그 종교는 결국 성경이 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만든 종교다. 이런 무서운 현상이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도 자리잡고 있다. 하나님의 설계도와 다르게 한국교회가 만들어놓은 종교 형태가 있는 것이다. 복음의 가치와 전혀 다른 한국교회의 종교 형태, 이는 우상이다"(55).

교회라는 조직 '안'에서 먹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교회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그 고민은 지금도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구를 돌아볼 것도 없고, 어느 교회를 탓할 것도 없이, "나는 교인인가, 제자인가?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나, 교회로 세워져가고 있나?" 하는 물음에 스스로 떳떳하게 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교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에 치여 결국 교회를 뛰쳐 나오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때(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마다 지금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알고 싶다>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원형"을 다시 점검하고 확인하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신앙과 삶의 중심이었던 성전을 헐라고 하신 것과, 그러면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헐어버려야 할 성전(우상이 된 교회)과 예수님이 일으켜 세우시는 성전(교회)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줍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회가 알고 싶다>는 교회가 어떻게 회복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설계도'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설계도'는 송태근 목사님이 새롭게 발견하거나 새롭게 그려낸 설계도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성경이 말해왔고, 성령께서 계시하여 주셨던 설계도입니다. 목회자들이나 교회론을 열심히 공부한 성도들에게는 익숙한 말씀이고, 이미 익히 아는 바입니다. 그럼데도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너무도 분명한 교회의 원형을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많은 교호가 속무무책, 수수방관의 자세로 영적 잠을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소망 없어 보일지라도 주님은 교회를 통해서 시대의 해답을 준비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의 물꼬를 터나가신다. 신비한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함부로 조롱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말 무서운 짓이다"(37).


많은 교회가 영적인 영향력을 잃고, 단순히 종교 모임으로, 하나의 기업체로 전락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희미할지라도 회개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감지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회개의 바람을 몰고오는 <교회가 알고 싶다>를 읽으며 작은 조각 구름 같은 희망을 발견합니다. <교회가 알고 싶다>는 교회야말로 이 세상의 희망임을 다시 일깨워주며, 교회가 가진 사명을 다시 한 번 점검합니다. 모든 교회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재무장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으며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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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비밀 - 숨겨진 숫자의 비밀을 찾아서
마리안 프라이베르거.레이첼 토머스 지음, 이경희 외 옮김 / 한솔아카데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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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은 근본적으로 아름답다!"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에서 유시진 대위 역은 맡은 송중기는 의사 강모연 역을 맡은 송혜교에게 묻습니다. "강 선생은 왜 의사가 됐어요?" 대답은? "국영수를 잘해서요. 특히 수학!" 드라마 대사처럼 "되게 설득력 있는 대답"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일찌기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의 삶을 선택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의사의 꿈은 아예 꿀 수 없었습니다. 숫자도 말을 하는 언어(기호)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하니 숫자의 언어를 읽을 수가 없었고, 읽을 수가 없으니 숫자의 우아함이나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내가 수학에,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숫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수학 공부가 아닌 다양한 독서를 통해 숫자가 품고 있는 '신비'가 있다는 것에 어렴풋이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숫자의 비밀에 조금씩 다가갈수록 숫자야말로 우주의 언어, 신의 언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강모연이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숫자의 언어는 우리 앞에 닫혀 있는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숫자의 비밀>이란 책에 흥미를 가진 것도, 그 제목처럼 숫자가 품고 있는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평점을 별 다섯이 아닌 별 넷으로 한 것은, 이 책이 부족하거나 흥미롭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 책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만큼 수학적 자식이 없는 제 탓입니다. <숫자의 비밀>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모를 수밖에 없는 책입니다. 관련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읽으려 해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읽기는 읽었는데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태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살짝 번역에도 문제가 좀 있어 보입니다. 다음의 문장을 읽어봅시다. 책의 맨 앞에 수록된 '소개'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문장이 연결되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인지 저는 몇 번을 읽어도 의미가 선명하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학자들은 수학의 우아함, 단순함, 은혜로움이 느껴질 때까지 그들의 작품에 완벽하게 만족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의 '부당한 효과'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는 힘이다. 가끔 이것은 수학의 일부가 발견된 이후 오랜 시간이 걸려 그것이 숨어버리기도 한다. 수학은 모든 과학이 사용되는 언어로 우리를 우주의 작업장으로부터 우리 마음이 작업장까지 지식의 영역으로 데려다 줘서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수포자'에게는 다소 힘겨운 책이지만, <숫자의 비밀>은 한창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라는 것이 어떻게 발견되고 활용되고 체계화되어 왔는지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배울 수 있으며, 수학적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리하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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