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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감추고 있는 비밀들이 톱니바귀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스릴러 소설에 대하여,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고, 스포가 될 만한 이야기를 빼면 또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요? 일단은 이들이 처한 상황이 백 년 만에 맞는 최악의 '건조한' 상황이었다는 것. 이 타는 듯한 건조함이 저주처럼 한 마을을 뒤덮고 있으며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장치이자,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거대한 상징으로 작용한다는 것 정도? "공식적으로 백 년 만에 맞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기상 패턴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그 발음은 절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엘니뇨"(11).
다음으로 말해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게 정말 문학이지 하는 감탄이 절로 솟아나게 하는 절제된 문장들. 현란하지 않아 더 품위가 느껴지는 문장들. 별 내용 아닌데도 별 내용 아니네 하고 한순간도 가벼이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사진 아래에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이 지역의 꽃으로 쓰여 있었다. 루크, 캐런, 빌리"(15).
또 말해볼 수 있는 것은, 이야기가 채워져 나갈수록 더 궁금해지고,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어느 한 부분도 편안하게 읽을 수 없는 (어딘지 모르게) 오싹한 스릴러라는 것. 줄거리를 길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지만, <드라이>는 '카와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 가운데 가장 극적인 두 사건이 맞물려 돌아갑니다.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본인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듯 참혹한 변사체로 발견된 '루크' 가족의 장례식. 이곳에 금융범죄 전문 수사관 '포크'가 소환되어 옵니다. 알고 보니 그는 20여 년 전 자살로 결론지어진 엘리 디컨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계기로 도망치듯 이 마을을 떠났던 차였습니다. 그런 포크를 마을로 다시 소환한 건 루크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루크와 포크가 20여 년 전 엘리 디컨의 죽음에 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크의 아버지는 20년 전에도 루크가 사람을 죽였는지, 자신의 아들이 그런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루크는 거짓말을 했어. 너도 거짓말을 했지. 장례식에 와라"(18). 이 루크의 거짓말과 포크의 거짓말 사이에 숨어 있는 슬픈 우연들이 <드라이>를 읽어나가는 열쇠가 됩니다.
<드라이>는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때까지 머릿속으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열심히 구상해보는 재미가 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잔혹함이 주는 충격입니다. 인간은 언제 어떤 순간이든 의도치 않게 잔혹해질 수 있다는 것.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내 아들이, 내 친구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그들의 고통에, 그들의 신음소리에 무감각할 수 있다는 잔혹함.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순간 너무 쉽게 타인의 희생에 눈 감아버리는 잔혹함이 그것입니다. 솔직히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기대했던 것만큼 놀라운 흡입력을 가진 스럴러는 아닙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품격 있는 스릴러인 것은 확실합니다! 단순한 재미보다 훨씬 많은, 그리고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책을 덮고도 긴 여운이 남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