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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우시 왕 1세 ㅣ 네버랜드 클래식 50
야누쉬 코르착 지음, 크리스티나 립카-슈타르바워 그림, 이지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9월
평점 :
"왕이 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일까요, 아닐까요?
만약 정말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싸움이라도 하겠지요.
하지만 평화로운 시기에 왕이 하는 일은 도대체 뭘까요?"(16)
<마치우시 왕 1세>는 아동 인권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야누쉬 코르착(본명, 헨릭 골드슈미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어린이동화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마치우시는 슬퍼할 겨늘도 없이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꼬마 왕 마치우시는 나이는 어렸지만 똑똑하고 의지력이 강한 어린이었습니다. 마치우시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왕이란 언제나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왕에게 금지된 일도 많다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싶었던 마치우시는 "혼자서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서도 슬프다"(18)는 것과, 공부를 하지 않고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지요.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경험도 없었던 마치우시는 장관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터져 나라에 위기가 닥쳤는데도 왕궁에 가만히 앉아 있는 왕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면 내가 우리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이 날 지켜 주는 거잖아?"(47) 마치우시는 신분을 속이고 전쟁에 전쟁터로 향합니다. 어린 병사로 전쟁터에 뛰어든 마치우시는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왕의 명예를 지키고,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외교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전쟁을 원하지 않아도 전쟁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도요.
"마치우시, 우리는 항상 잘못을 해 왔어요.
어른들에게만 개혁을 하면서요.
그러니 당신은, 어린이들부터 시작해 보세요. 어쩌면 잘 될지도…"(145).
아직은 어리고 미숙한 왕이지만 왕은 나라 전체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마치우시는 장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부가 아니라, 나라 전체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도록 자신만의 '개혁'을 계획합니다. 마치우시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아이들이 좋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도록 뭔가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우시는 자기 나라의 모든 아이가 이렇게 바닷가에서 태양을 바라보고 조각배를 타고 해수욕을 하고 버섯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어요"(153).
하지만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긴긴 회의가 꼭 따라온다는 것, 개혁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 어떤 개혁이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온갖 반대와 어려움도 불구하고 "어린이도 국민이라는 것, 그러므로 스스로 다스릴 권리가 있다"(200)는 믿음을 가진 마치우시는 어른과 어린이의 왕이지만, 어른들의 왕이 될 수 없다면 어린이들의 왕만이라도 되고 싶어 합니다.
자신만의 '개혁'을 위해 마치우시 왕은 식인종 나라로 모험을 떠나고, 어린이 장관으로 구성된 어린이만의 정부도 만들었지만, 마치우시 왕의 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이웃 나라의 스파이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제멋대로인 아이", 그리고 "경험 부족"이었습니다. 마치우시 왕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생의 교훈을 깨달아가며 성장하지만 나라는 또다시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이번에는 반역자들과 비겁자들의 배신으로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됩니다. 패전국의 왕으로 '포로' 신세가 된 마치우시가 무인도로 추방되면서 <마치우시 왕 1세> 이야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마치우시의 이야기는
폴란드라는 나라가 가진 비극적인 역사와
그 굴곡진 세월 속의 수많은 꿈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399, 옮긴이의 말 中에서).
<마치우시 왕 1세>는 두 가지 점에서 매우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하나는 400페이지에 달하는 어린이 동화라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봤던 그 어떤 동화보다 결말이 충격적이라는 점입니다. '마치우시'라는 어린이가 '왕'으로서 성장해가는 성장소설을 상상했는데, 충격적일 정도로 리얼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어린이'를 '어린이'로 존중한 역사는 매우 짧다고 합니다. 1878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이 책의 작가 야누쉬 코르착이 아동 인권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것만 봐도 그것이 얼마나 짧은 역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멋대로인 아이"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어린이도 국민이라는 것, 그러므로 스스로 다스릴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마치우시 왕 1세>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고, 변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린 왕자>처럼 <마치우시 왕 1세>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면서 동시에 어른들의 위한 동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살짝 기운다고 한다면, <마치우시 왕 1세>는 어린이 쪽으로 무게 중심이 살짝 기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우시 왕 1세>처럼 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균형"을 가진 작품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이야기꾼이라는 것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솔직히 순수히 '재미'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재밌다고 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작품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가 야누쉬 코르착의 일생 때문에 그의 작품이 더 빛이 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치우시 왕 1세>는 여러 차원에서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치 자신들은 처음부터 현명했고 그처럼 어리석은 어린 시절은 전혀 없었다는 듯이 어린이를 훈계하는 어른들에게 우리 모두는 어떻게 성장해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생생한 목소리로 쏟아내는 회의 장면을 보면, 아이들의 바람과 생각이 어리석고 황당하고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이지만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현명하고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