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 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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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는 신앙은 '종교'와 다르다는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는 바를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도 꺼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독교(복음)는 왜 종교가 아닌지 설명하는 일에는 서툴렀습니다. '느낌적'으로는 알겠는데, 다른 이들을 설득할 만큼의 이론적 체계는 갖지 못한 것입니다.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는 이러한 제게 명쾌한 해답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책은 단지 '종교'와 '복음'의 '다름'에서 끝나지 않고, 그 '다름' 안에 숨어 있는 깊고도 생생한 복음의 본질을 우리 앞에 풀어놓고 있습니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이 책에 담긴 진리의 무게는 감히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합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신을 원한다"(70).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를 읽으니, 사람들은 선악과 없는 종교를 원한다는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은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신이 아니라,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신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전하는 가장 무서운 경고(진리)는 예수 신앙과 종교는 다르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종교로 변질되는 예수 신앙입니다. 종교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나의 두려움을 없애ㅈ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신'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신) 그분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무엇'을 '얻어내는 것'이 신앙의 목표가 된다면, 그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 게임 중이라는 것이 이 책의 가르침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 하나님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려는 것일 뿐이다"(35).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소비주의라는 우리 문화의 우상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사명주의'라는 또 다른 우상을 끌어들였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83).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는 이처럼 종교도 소비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비주의 종교, 소비주의 예배를 간파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실체는 바로 또 다른 우상숭배가 될 수 있는 '사명주의'라는 일침입니다. 이 책이 지적하고 있는 '사명주의' 우상은 하나님의 목표를 위해 쓰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명에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추앙하면서, 덜 거룩한 일에 한눈을 파는 사람들은 비판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명을 더 강조하는 이러한 사명주의는, 우리가 마치 하나님께 '이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도,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이용되기 위해' 존재한다는 듯한 태도도 모두 복음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입니다.



"당신이 단순히 하나님을 '위해' 살기보다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오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157).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종교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실패한 종교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독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는 진짜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실질적 무신론자가 문제이고, 바로 '우리'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말입니다. 이 책은 죽은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 진정으로 연결된 기분을 향한 갈망을 뜨겁게 심어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려 하는 거룩한 부담감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오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하는 책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여기 있음을 매우 기발하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특히 선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우상으로 변질시키는 종교'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고민해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복음에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가기를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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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
이지현 지음 / 율도국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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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어디서나 나는 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자세히 보지 않는 곳에 의외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여기에 감동받는다"(툴루즈 로트렉, 40).

화가들의 색채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습니다. 색채는 "인간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들의 심리상태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므로, "작품 속에서의 색채의 표현은 작가의 무의식의 억압된 심리의 표출"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고, 설명입니다(6).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은 유명 화가들의 굴곡진 인생사를 통해 작품 해석을 시도하는데, 이때 화가들의 무의식 속에 갇혀 있던 감정들이 어떻게 그림의 색채 속에 투사되어 있는지를 추적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화가의 내면과의 직접적인 대화의 시도이며, 어쩌면 화가들은 '대상' 아니라, 자신을 그리고 표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이 책에 소개되는 11명의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새로운 주장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총 11명의 화가들을 다루는데, 이들의 공통점을 들자면 심리적 불안, 고통, 슬픔을 그림으로 표출함으로써 치유했다는 점이다"(8).


"고통은 훌륭한 예술을 창조하는 힘이 된다"(프리다 칼로, 53).

마리 로랑생, 툴루즈 로트렉, 프리다 칼로, 에곤 쉴레, 앙리 마티스,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트 뭉크, 구스타프 클림트, 이메데오 모디리아니, 페르디낭 호들러, 앙리 루소.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화가들입니다.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은 잘 읽히는 책입니다. 명화를 그렸던 시기에 작가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아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그림 속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가들의 인생사에 밀려 '색채 이야기'는 조금 주변으로 밀려난 느낌도 들지만, 보색의 대비를 통한 감정 표현, 색채의 변화를 통한 (무의식적) 감정의 변화를 읽는 일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검은색은 죽음의 공포, 블루는 우울, 노란색은 활발하고 생동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색이라고 일반화(?) 할 수 있다면, 그런 점에서 빨강은 참 묘한 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를 상징하기도 하는 빨강은 생명과 죽음의 공포를 둘 다 상징할 수 있으니까요.



"색채는 약이 될 수 있고 의사가 될 수 있다. 약물의 부작용 없이 우울증을 개선시키려면 오렌지 컬러와 같은 밝고 따뜻한 색을 보면서 치료하면 된다"(102).

색채 치유의 이론에 따르면, "불안하고 우울할 때는 주황, 노랑과 같은 따뜻한 색 계열이나 그린 계열이 치유에 도움은 준다"고 합니다. "빨간색은 열정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주황색과 분홍색은 온화하고 따뜻함을, 노란색은 밝은 생기를 불어 넣어 삶에 희망과 용기를 준다. 또 그린 계열의 색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편안하고 안정감을 준다"(138).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은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함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어떤 화가들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치유의 과정이 되고, 어떤 화가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림으로 치유하기에는 인생에 불어닥친 비극의 힘이 너무 셌기 때문일까요? 우리가 노래하는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라는 사나이도" 여기 등장하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이 책은 색채를 통한 치유보다, 고통은 훌륭한 예술을 창조하는 힘이 된다는 명제를 더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점이 살짝 아쉽지만, 또 그 때문에 흥미롭고 재밌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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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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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려주세요."
"제가 낳은, 아이 말이에요. ―그쪽이 양자로 들인 아이요"(47).

우연한 기회에 한국 영화 <제니, 주노>(2005, 김호준 감독)와 미국 영화 <주노>(2008, 제이슨 라이트먼)를 비슷한 시기에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십 대의 임신과 출산을 다룬 영화였기 때문에, 같은 주제를 풀어가는 서로 다른 해법의 차이가 저절로 비교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아무 준비 없이 덜컥 아이가 들어선 십 대와 불임으로 고생하는 기성세대를 대비하여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한국 영화 <제니, 주노>는 십 대의 임신을 심각하지만 감동적인 '소동'으로 그려내며, 십 대의 임신과 출산을 (다소 판타지적인) 가족의 문제로 남겨 둡니다. 이에 반해 미국 영화 <주노>는 생태학적인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통해 성장해가는 한 여자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며, 자신이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안 '주노'가 불임 가정에 아이를 입양 보내는 사회적인 해법을 모색합니다.
두 영화를 비교하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와 한계를 실감하고,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 눈이 열렸다면, 일본 소설 <아침이 온다>는 두 영화가 보여주지 못했던 개인의 '고통'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아침이 온다> 역시 십 대의 임신과 불임 가정의 고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없는 엄마와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불임 부부의 심리와 고통이 잔잔하면서도 격렬하게 묘사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 상처를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합니다. <아침이 온다>는 십 대의 임신과 불임 가정의 고통을 '특별 양자 결연'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 연결 짓습니다. '특별 양자 결연'은 "사정이 있어서 태어난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생모와, 아무리 원해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젖먹이일 때 양자 결연을 맺는" 제도입니다(60). 그러나 <아침이 온다>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해도 키울 수 없어서 막막한 십 대의 출산 문제를 불임 가정의 입양으로 해결한다는 단순한 해법을 제시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불임 여성이 겪는 고통의 무게와,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모의 역할과 가족 간의 갈등을 섬세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내 핏줄이 아닌 아이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고, 무엇보다 내 자식을 남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더군요"(132).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핏줄과 가문에 대한 집착이 뿌리 깊은 일본도 서양에 비해 양자 결연(입양)은 드물 일이며,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불임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침이 온다>는 불임에 대한 남녀의 인식 차이는 물론, 불임치료 과정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여성들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남들은 당연하다는 듯 가지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압박감과 박탈감, 많은 비용, 약의 부작용, 엄청난 통증과 괴로움과 싸우며 점점 망가져가는 여성의 몸과, 기대와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고통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려집니다. "아사토가 오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긴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길고 긴 터널. 출구가 있는지 알 수 없는 터널. 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출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터널 말이다. 희망은 없으며 빛 또한 비치지 않을 거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면 거기서 단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매달리고 만다"(75).


"핏줄로 이어진 친부모와 말다툼 같은 대화를 하면서 가족이란 노력해서 쌓아 올리는 것임을 깨달았다"(140).

<아침이 온다>는
불임이라는 긴 고통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아침을 맞이한 '사토코'의 시점과 겨우 중학생의 몸으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긴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던 '히카리'의 시점이 교차합니다. <아침이 온다>에서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임의 고통이나, 십 대의 임신과 출산, 입양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더 원초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양자 결연은 '부모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찾기 위한 제도'(110)라는 일갈 속에 이 책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우리가 살아갈 이유와 힘이 되어주지만, 그만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아침이 온다>는 더 이상 가족은 핏줄로 얽힌 관계가 아니라, 이해와 사랑으로 묶일 때 진짜 가족이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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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우시 왕 1세 네버랜드 클래식 50
야누쉬 코르착 지음, 크리스티나 립카-슈타르바워 그림, 이지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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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일까요, 아닐까요?
만약 정말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싸움이라도 하겠지요.
하지만 평화로운 시기에 왕이 하는 일은 도대체 뭘까요?"(16)

<마치우시 왕 1세>는 아동 인권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야누쉬 코르착(본명, 헨릭 골드슈미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어린이동화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마치우시는 슬퍼할 겨늘도 없이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꼬마 왕 마치우시는 나이는 어렸지만 똑똑하고 의지력이 강한 어린이었습니다. 마치우시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왕이란 언제나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왕에게 금지된 일도 많다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싶었던 마치우시는 "혼자서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서도 슬프다"(18)는 것과, 공부를 하지 않고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지요.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경험도 없었던 마치우시는 장관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터져 나라에 위기가 닥쳤는데도 왕궁에 가만히 앉아 있는 왕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면 내가 우리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이 날 지켜 주는 거잖아?"(47) 마치우시는 신분을 속이고 전쟁에 전쟁터로 향합니다. 어린 병사로 전쟁터에 뛰어든 마치우시는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왕의 명예를 지키고,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외교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전쟁을 원하지 않아도 전쟁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도요. 


"마치우시, 우리는 항상 잘못을 해 왔어요.
어른들에게만 개혁을 하면서요.
그러니 당신은, 어린이들부터 시작해 보세요. 어쩌면 잘 될지도…"(145).

아직은 어리고 미숙한 왕이지만 왕은 나라 전체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마치우시는 장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부가 아니라, 나라 전체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도록 자신만의 '개혁'을 계획합니다. 마치우시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아이들이 좋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도록 뭔가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우시는 자기 나라의 모든 아이가 이렇게 바닷가에서 태양을 바라보고 조각배를 타고 해수욕을 하고 버섯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어요"(153).

하지만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긴긴 회의가 꼭 따라온다는 것, 개혁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 어떤 개혁이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온갖 반대와 어려움도 불구하고 "어린이도 국민이라는 것, 그러므로 스스로 다스릴 권리가 있다"(200)는 믿음을 가진 마치우시는 어른과 어린이의 왕이지만, 어른들의 왕이 될 수 없다면 어린이들의 왕만이라도 되고 싶어 합니다. 

자신만의 '개혁'을 위해 마치우시 왕은 식인종 나라로 모험을 떠나고, 어린이 장관으로 구성된 어린이만의 정부도 만들었지만, 마치우시 왕의 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이웃 나라의 스파이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제멋대로인 아이", 그리고 "경험 부족"이었습니다. 마치우시 왕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생의 교훈을 깨달아가며 성장하지만 나라는 또다시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이번에는 반역자들과 비겁자들의 배신으로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됩니다. 패전국의 왕으로 '포로' 신세가 된 마치우시가 무인도로 추방되면서 <마치우시 왕 1세> 이야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마치우시의 이야기는
란드라는 나라가 가진 비극적인 역사와
그 굴곡진 세월 속의 수많은 꿈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399, 옮긴이의 말 中에서).

<마치우시 왕 1세>는 두 가지 점에서 매우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하나는 400페이지에 달하는 어린이 동화라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봤던 그 어떤 동화보다 결말이 충격적이라는 점입니다. '마치우시'라는 어린이가 '왕'으로서 성장해가는 성장소설을 상상했는데, 충격적일 정도로 리얼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어린이'를 '어린이'로 존중한 역사는 매우 짧다고 합니다. 1878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이 책의 작가 야누쉬 코르착이 아동 인권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것만 봐도 그것이 얼마나 짧은 역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멋대로인 아이"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어린이도 국민이라는 것, 그러므로 스스로 다스릴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마치우시 왕 1세>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고, 변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린 왕자>처럼 <마치우시 왕 1세>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면서 동시에 어른들의 위한 동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살짝 기운다고 한다면, <마치우시 왕 1세>는 어린이 쪽으로 무게 중심이 살짝 기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우시 왕 1세>처럼 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균형"을 가진 작품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이야기꾼이라는 것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솔직히 순수히 '재미'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재밌다고 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작품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가 야누쉬 코르착의 일생 때문에 그의 작품이 더 빛이 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치우시 왕 1세>는 여러 차원에서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치 자신들은 처음부터 현명했고 그처럼 어리석은 어린 시절은 전혀 없었다는 듯이 어린이를 훈계하는 어른들에게 우리 모두는 어떻게 성장해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생생한 목소리로 쏟아내는 회의 장면을 보면, 아이들의 바람과 생각이 어리석고 황당하고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이지만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현명하고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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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쓰면 돈 버는 2018 가계북
상상출판 편집부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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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5분 가계북 쓰는 습관

벌써 2018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이런저런 반성을 해봅니다. 과감하게 사표를 내던지고 용감하게 백수생활에 뛰어들었던 탓에 전에는 몰랐던 '나의 위치'를 많이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그와중에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를 보며, 소비습관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이 쇼핑일 만큼 돈을 잘 쓰지 않는 성격이라 특별히 소비나 예산 운용에 대해 계획을 세워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데, 제 소비패턴이 심각하게 '즉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회계, 가계부, 장부, 숫자 뭐 이런 것하고는 친해지지 못했는데 2018년도에는 가계북을 작성해볼까 야무진 결심 중입니다.


★ 꿈 통장을 키우는 가계북 

상상출판의 <2018 가계북>은 '가계부'가 아니라, '가계북'입니다. 책처럼 재정관리에 관해 읽을거리가 있고, 다이어리처럼 계획을 세우고 메모를 해나갈 수 있고, 가계부를 쓰며 꿈 통장까지 관리할 수 있어 '가계북'으로 이름 붙인 듯합니다. 휴대하기에는 좀 묵직한 '가계북'이지만, 다이어리와 가계부를 하나로 통합하여 1년 생활을 계획하고, 점검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습관이요, 매 순간을 함께해야 하는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오늘부터 가계북을 쓰기로 했다!

사실 백수가 되고 나서, 나의 소비패턴을 분석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가계부를 작성해왔습니다. 그런데 '지출'을 기록하기에는 좋은데, 자산 운용이나 계획을 세우기에는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종이 책과 더 친한 세대여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계부를 쓰며 가장 좋았던 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식대'를 많이 줄였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식대가 차지하는 비용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 저절로 절제하게 되더라고요. 이래서 가계부를 쓰는 습관이 중요하구나 싶었습니다. 

희망차게 다가오는 2018년, 상상출판에서 나온 <2018년 가계북>으로 먼저 시작하는 중입니다. 올 11월부터 사용하도록 구성되어 있어 2018년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기에 더 좋습니다. 앞서 나가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2018년도는 좋은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인데, 그 첫 발걸음으로 '가계북 쓰기'를 실천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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