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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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려주세요."
"제가 낳은, 아이 말이에요. ―그쪽이 양자로 들인 아이요"(47).

우연한 기회에 한국 영화 <제니, 주노>(2005, 김호준 감독)와 미국 영화 <주노>(2008, 제이슨 라이트먼)를 비슷한 시기에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십 대의 임신과 출산을 다룬 영화였기 때문에, 같은 주제를 풀어가는 서로 다른 해법의 차이가 저절로 비교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아무 준비 없이 덜컥 아이가 들어선 십 대와 불임으로 고생하는 기성세대를 대비하여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한국 영화 <제니, 주노>는 십 대의 임신을 심각하지만 감동적인 '소동'으로 그려내며, 십 대의 임신과 출산을 (다소 판타지적인) 가족의 문제로 남겨 둡니다. 이에 반해 미국 영화 <주노>는 생태학적인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통해 성장해가는 한 여자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며, 자신이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안 '주노'가 불임 가정에 아이를 입양 보내는 사회적인 해법을 모색합니다.
두 영화를 비교하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와 한계를 실감하고,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 눈이 열렸다면, 일본 소설 <아침이 온다>는 두 영화가 보여주지 못했던 개인의 '고통'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아침이 온다> 역시 십 대의 임신과 불임 가정의 고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없는 엄마와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불임 부부의 심리와 고통이 잔잔하면서도 격렬하게 묘사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 상처를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합니다. <아침이 온다>는 십 대의 임신과 불임 가정의 고통을 '특별 양자 결연'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 연결 짓습니다. '특별 양자 결연'은 "사정이 있어서 태어난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생모와, 아무리 원해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젖먹이일 때 양자 결연을 맺는" 제도입니다(60). 그러나 <아침이 온다>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해도 키울 수 없어서 막막한 십 대의 출산 문제를 불임 가정의 입양으로 해결한다는 단순한 해법을 제시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불임 여성이 겪는 고통의 무게와,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모의 역할과 가족 간의 갈등을 섬세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내 핏줄이 아닌 아이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고, 무엇보다 내 자식을 남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더군요"(132).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핏줄과 가문에 대한 집착이 뿌리 깊은 일본도 서양에 비해 양자 결연(입양)은 드물 일이며,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불임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침이 온다>는 불임에 대한 남녀의 인식 차이는 물론, 불임치료 과정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여성들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남들은 당연하다는 듯 가지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압박감과 박탈감, 많은 비용, 약의 부작용, 엄청난 통증과 괴로움과 싸우며 점점 망가져가는 여성의 몸과, 기대와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고통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려집니다. "아사토가 오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긴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길고 긴 터널. 출구가 있는지 알 수 없는 터널. 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출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터널 말이다. 희망은 없으며 빛 또한 비치지 않을 거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면 거기서 단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매달리고 만다"(75).


"핏줄로 이어진 친부모와 말다툼 같은 대화를 하면서 가족이란 노력해서 쌓아 올리는 것임을 깨달았다"(140).

<아침이 온다>는
불임이라는 긴 고통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아침을 맞이한 '사토코'의 시점과 겨우 중학생의 몸으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긴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던 '히카리'의 시점이 교차합니다. <아침이 온다>에서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임의 고통이나, 십 대의 임신과 출산, 입양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더 원초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양자 결연은 '부모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찾기 위한 제도'(110)라는 일갈 속에 이 책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우리가 살아갈 이유와 힘이 되어주지만, 그만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아침이 온다>는 더 이상 가족은 핏줄로 얽힌 관계가 아니라, 이해와 사랑으로 묶일 때 진짜 가족이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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