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의학자 -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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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그림은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의사인 제게 있어 그림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즉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기록'입니다"(6).

성경 공부를 할 때, 학습자료 '명화'를 자주 사용합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카라바조의 <참수 당하는 세례 요한(세례 요한의 목 베임)>과 <성 마태의 소명> 등이 그런 그림입니다. 한 점의 그림 속에는 말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또 백 마디의 설명 보다 그림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더 오래, 길고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문자적인 내용뿐 아니라 신앙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사람들만이 더 진하고,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그림의 목소리입니다. 

"한 점의 그림은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는데 의사의 시각에서 보는 명화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쏟아낼까요?<미술관에 간 의학자>는 의학과 미술의 공통점으로,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꼽습니다(6). 이 책을 읽으니 신화와 종교가 노골적인 미술의 소재였다면, 질병과 의학은 은밀하게 감추어진 소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끼 안에 손을 집어넣어 배를 만지는 듯한 일명 '나폴레옹 포즈'가 사실은 위장병의 증거라는 것, 고흐의 그림(노랗게 빛나는 별 등)은 압생트 중독의 영향일지 모른다는 것, <커피포트>라는 툴루즈 로트레크의 작품은 커피포트를 그린 정물화가 아니라, "유전병으로 성장을 멈춘 짧은 다리와 그에 걸맞지 않게 큰 머리와 통통한 몸을 그린 화가 자신의 자화상"(183)이라는 것 등이 더욱 그러합니다. 

의사의 시각에서 그림을 보니 역사도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외과는 치루에서 나왔다"는 말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페스트가 어떻게 봉건제도를 붕괴시켰는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라는 스페인 독감이 무오년에 어떻게 조선을 강타했는지 등 그림과 의학과 역사가 이 한 권의 책 안에 흥미롭게 녹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염병으로 흉흉해진 민심이 이듬해인 1919년 3.1운동을 발발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45)은 처음 알게 된 흥미로운 역사적 해석입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의 눈으로 그림을 보니 질병에 대한 이해도 새롭지도 깊어집니다. 주변에 갑상샘암으로 평생 호르몬 약을 먹어야 하는 후배가 있는데, 그림을 통해
국내 발병률 1위라는 갑상샘암에 대해 더 깊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학습에 있어서 그림이 무엇보다 좋은 시청각 자료인 것을 다시 한 번 새삼 느끼며 말입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는 죽음이 일상 가까이 도사리고 있었던 시대가 그리 오래전이 아니라는 것, 달리 말해 지금은 알약 한 알이면 치료될 병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역사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것, 또 무지에서 비롯된 우리 안의 편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비극과 고통과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는지를 말없이 보여줍니다. 우리가 당연시 누리고 있는 '평균 수명'의 축복이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놀랍고 놀라운 축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덕분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화가도 있습니다. 푸젤리라는 화가입니다. "푸젤리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개념이 거의 전무했던 시대에, '꿈과 악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최초의 화가"(116)라고 하는데, 환상적인 분위기에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이 그 누구의 그림보다 강렬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또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낭만주의는 아름답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화풍이 아니라, "합리적 판단과 계몽주의 같은 철저한 이성에 반하면서 대신 인간의 복잡한 감정, 환상, 무의식적 충동, 비합리적 행동 등에 주목하는 화풍"(116)이라는 것입니다. 

"한 점의 그림은 수만 갈래의 삶을 보듬고 위로합니다. 때로는 한 점의 그림에서 오랜 상처를 치유할 처방전을 얻기도 합니다"(5).

그림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지만, <미술관에 간 의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특히 더 흥미로웠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림이 의학자를 더욱 해박하게 한 것인지, 해박한 의학자가 그림을 더 풍성하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에 대한 깊은 조예만큼이나 이야기를 참 잘 하는 의사 선생님이십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백 년마다 한번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다"(62)라고 했다는데, 이런 심성을 가진 의사 선생님이 지역마다 한 분씩 계신다면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은 보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는 "다 아는 이야기"도 재밌게 들려줄 수 있는 분입니다. 명화 속 의학 이야기, 지루할 틈이 없을 거라고 살짝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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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소나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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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빠름-느림(혹은 미뉴에트)-빠름'으로 연주되는 4악장의 소나타

<속죄의 소나타>라는 제목에 힌트를 얻어 이 이야기를 음악에 비유한다면, 총 4부로 이루어진 <속죄의 소나타>는 느림-빠름-느림-빠름으로 이루어진 4악장의 교회소나타(주제가 속죄라는 의미에서 더욱)처럼 연주되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인지 모를 범인이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제1악장 '죄의 신선도'는 느리지만 장엄하게, 살해된 자의 신원이 드러나면서 사건과 또 다른 사건이 서로 맞물려 들어가 제2악장 '벌의 발소리'는 도주하는 푸가처럼 빠르게, 과거로 돌아가 사건 속의 사건,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잇는 제3악장 '속죄의 자격'은 숨을 고르며 한 템포 느리게,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4악장 '심판받는 자'는 몰아치는 듯한 빠른 리듬 속에 결말을 향해 치닫습니다.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제3악장을 해석하기에 따라서 느림-빠름-미뉴에트-빠름의 구성을 가진 4악장의 소나타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거의 확신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것이 4악장의 소나타였다면, 미리 눈치채고 그렇게 읽어주는 것도 작가와 공명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엔 면역성이 있다"(123).

<속죄의 소나타>는 "제일 악독하고 제일 돈 많이 버는 변호사"로 정평이 나 있는 '미코시바' 변호사와 "교활하기로는 남부럽잖은" 사이타마 현경 수사1과의 '와타세' 반장이 대결 구도를 이룹니다. 서로 반목하는 변호사와 경찰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 것은, '미코시바'라는 변호사 캐릭터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밤 유기되었다가 옷이 벗겨진 채 발견된 시체. 범인은 왜 옷을 벗겼을까요? 피해자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 "신원을 감출 거면 얼굴을 완전히 망가뜨리거나 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40)습니다. 도대체 왜 옷을 벗겼을까요? (사건을 추적하는 힌트 중 하나입니다) 피해자의 신원은 싱겁게 밝혀지고 맙니다. 프리랜서 기자 가가야 류지 살인 하건은 신문을 떠들썩하게 도배하고 있는 보험금 살인 '도조 미쓰코 피고 사건'과 연결되어 있고, 가가야 류지 살해 용의자를 쫓던 와타세 반장은 악랄한 사람들을 변호해서 비싼 수임료를 챙기는 변호사인 줄로만 알았던 미코시바가 사실은 열네 살 소년이었을 때 이웃집 5세 여아를 엽기적으로 살해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범인임을 알게 되고, 사냥개 특유의 감각으로 가가야 살해 사건이 도조 미쓰코의 변호를 맡고 있는 미코시바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챕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감각하기만 했던 미코시바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자격에 '인격'이라는 항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법고시는 인격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시험 성적만 좋으면 변호사 배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일 텐데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215).

엽기적인 살해 사건의 범인이었던 한 소년이 과거를 감춘 채, 악랄한 사람들을 변호하고 비싼 수임료를 챙기는 악명은 높지만 실력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변호사로 다시 등장한 미코시바. 반전의 반전,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는 가운데
<속죄의 소나타>는 '과연 그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져줍니다. 


"악마가 도로 사람이 되려면 계속해서 속죄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283).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이 소설은 '속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속죄는 아무 이유 없이 여아를 죽인 미코시바의 죄만이 아닙니다. 협박을 일삼다 살해당한 가가야, 트럭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남편을 보험금을 노려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도조 미쓰코, 선천성 뇌성마비로 태어난 그의 아들 미카야, 나쁜 놈들을 변호하는 미코시바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자살을 선택했다고 믿는 왕따 피해자의 어머니로 그 아들의 복수를 결심한 야스타케 사토미 모두 죄와 속죄의 굴레 속에 있습니다. 문제는 각자 자신이 '정의'의 기준이 될 때입니다. 자신이 가진 정의의 기준으로는 누구도 심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에 선 '미코시바'가 그 증인입니다. 

<속죄의 소나타>는 속죄란, 후회가 아니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 후회 따위 하지 마라. 후회해 봤자 과거는 수복되지 않아. 사죄도 하지 마라. 잘못을 아무리 빌어도 잃어버린 생명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대신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283). 속죄를 하려면 후회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넌 한 인간을 죽였다. 그걸 보상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 내라"(226).

이 책의 등장인물이 죄와 속죄의 굴레 속에 있는 인간들이라는 점에서, <속죄의 소나타>는 우리 삶의 비극의 한 토막을 연주하는 슬픈 음악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
피아노 곡 하나가 인간을 바꿔 놓는 게 가능할까"(246) 하는 물음을 던져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듭니다.) 와타세 반장과 고테가와 콤비가 좀 더 활약을 해주었더라면 훨씬 더 흥미진진한 '수사극'(법정활극)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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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셀프트래블 - 2018-2019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36
김수정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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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좋은 계절, 겨울!

남들은 겨울에 무슨 여행이냐고 하기도 하는데, 저에게 겨울은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겨울이 성수기인 여행지도 있지만) 겨울은 대체로 여행 비수기이기도 하고, 발품 파는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더위를 많이 타는 저에게 여름 여행은 그 자체로 고행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열심히 달려온 한 해의 삶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떠나는 여행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여행적기는 늦가을부터 겨울! 바로 지금이라는 이야기지요. 

겨울에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었는데 바로 <후쿠오카>입니다. 엄마와 함께 다녀온 적이 있는데, 패키지로 떠난 그때 그 여행이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자유여행에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에 상상출판에서 출간한 <후쿠오카 셀프트래블>이 뜨거운 불을 지펴주는 중입니다. 일본 여행 전문가지만 일본어는 잘 못한다는 여행 작가가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후쿠오카를 여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약속한 가이드북이니까요! 



                   

                                              

후쿠오카,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여행사에서 다 드린다는 고급 여행 상품을 골라 3박 4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엄마랑 싸우다 온 기억이 더 많이 납니다. 여러 명소를 방문하는 것은 좋았는데, 버스 타고 배 타고 계속 이동하는 바람에 함께 온 부모님들이 좀 지치셨거든요. 마지막 날 숙소였던 그랜드 하얏트 후쿠오카에서는 정말 그냥 잠만 잤어요.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렌드마크라는 커낼시티 하카타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밤이면 텅 비어 있던 거리에 순식간에 들어선다는 알록달록한 포장마차 체험을 못했다는 것! 웬만한 레스토랑보다 더 음식이 고급지고 맛있다는, 나카스 강변 포장마차가 유명하다는 말을 가이드님께 듣고도 엄마를 혼자 호텔에 두고 나갈 수가 없어 그냥 같이 자버리고 말았어요! 

그런데 상상출판의 <후쿠오카 셀프트래블>을 보니 '한국어 메뉴판은커녕 영어 메뉴판도 제다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들이 대부분이라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되는 건가 걱정스럽지만 사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해도 야타이를 즐기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말을 들으니 자유여행에 대한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중입니다! 제가 애정하는 음식 중 하나인 '우동'의 발상지가 후쿠오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후쿠오카에서 꼭 먹어 봐야 하는 우동이 있다는데, 언젠간 꼭 먹고 말테에요!



 

 

멋모르고 떠났던 후쿠오카 여행에서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 곳은 유후인입니다. 엄마랑 가장 크게 싸웠기 때문입니다. 일본 온천을 즐기는 패키지 여행이라 그런지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이 많았는데,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며 관광을 하는 동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습니다. 관광지에 도착해서도 버스에서 안 내리겠다고, 젊은이들이나 다녀오라고 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1-2시간 관광을 하고 다음 장소로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느라 체력이 떨어지신 것입니다.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온천마을이라는 유후인에 도착했는데, 우리 엄마도 내리기를 거부하시는 바람에 저랑 다투었어요.

안 좋은 기억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다시 유후인에 가보고 싶습니다. 녹차 아이스크림이나 호떡을 먹으며 산책하기 아주 좋은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온천을 즐기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엄마랑 싸우고 대충 둘러보다 다음 장소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후쿠오카 셀프트래블>이 꼭 해봐야 한다고 일러주는 미션만 즐겨도 아주 만족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후쿠오카 셀프트래블> 자유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입니다. 이 책 덕분에 나홀로 여행을 떠나볼까 싶은 용기도 막 나는 중입니다. 처음 떠나는 자유여행은 많은 곳을 둘러보려는 욕심보다 한두 곳을 집중적으로 즐기는 것도 여행하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처음 떠나는 후쿠오카 자유여행, 실패를 용납할 수 없다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다면, 안전하고 즐겁게 다녀오고 싶다면, <후쿠오카 셀프트래블>을 추천해드립니다! 여행 정보 외에도 작가님이 곳곳에서 알뜰살뜰 챙겨주는 '여행 팁'이 아주 유용한 가이드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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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펄전의 전도 세계기독교고전 56
찰스 H.스펄전 지음, 김귀탁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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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수가 많아지고,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으로 전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11).

그동안 단순히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전도로 착각한 탓일까요?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급성장이라고 흥분했던 한국 교회인데, 어느새 대한민국이 선교강국이 아니라 선교대상국이 될 위기에 놓여 있다는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전도의 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영적 거장 스펄전에게 전도를 배워보았습니다!


<스펄전의 전도>에서 전도자는 곧 목회자이며, 복음선포는 곧 설교이고, 전도는 곧 목회와 연결됩니다. 마치 목회자세미나 같은 분위기입니다.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이처럼 훌륭한 목사님들에게 설교하는 것은 커다른 특권"(151)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보니,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설교를 모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몰라도, <스펄전의 전도>는 전도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인생의 목표"(7)라고 하지만, 특히 목회자의 제일 사명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전도자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는 것은 전도 은사자, 즉 전도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고, 누구보다 목회자의 사명이라는 것은 전도특공대를 구성해서 내보내는 것으로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며, 목회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도록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스펄전의 전도>는 전도에 관한 설교로 읽히기도 하지만, 전도의 근본이 되는 이론서(원론)로 읽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전도의 개념부터 다시 살피며, 전도자의 자격에서부터 전도에 대한 지침까지 근본되는 문제를 두루 살핍니다. 그중에서도 두 가지가 강조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전도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전도자의 자격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을 신자로 간주하는 것은 교회를 약화시키고, 악화시키는 것"(9)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한국 교회는 이미 전도 숫자에 집착하고 숫자를 과시하는 것은 무익한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쓰라리게 경험하는 중입니다. 

<스펄전의 전도>는 전도의 개념에서부터 영혼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해 전도가 무엇인지를 여러 방면으로 설명합니다. 그중에서도 "제7장 죽은 자를 살리는 방법"의 가르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과정을 통해 전도자의 사역은 죽은 아이를 살려내야 했던 엘리사의 사역과 같음을 생생한 그림 언어로 설명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욥바에서의 베드로, 드로아에서의 바울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젊은 도르가나 유두고를 살려내야 합니다"(133)

<스펄전의 전도>가 강조하는 전도자의 자격은 '전도자의 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전도가 무엇인가만큼 전도자의 상태가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복음은 그림이 들어 있는 신문과 같습니다. 설교자의 말은 글씨이지만, 그림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살아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람들은 이 신문을 읽을 때, 종종 글씨는 읽지 못하지만, 그림은 항상 주목합니다"(235).

책에 보면, 맥체인의 전기를 읽어보라며 이렇게 설명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십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그 책을 읽어 보라는 말 외에 다른 권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책에는 새롭고 위대한 사상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읽을 때 그 안에서 신선하고 놀라운 내용은 거의 맛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큰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40). <스펄전의 전도>를 읽은 감상이 이와 똑같습니다. 새롭고 신선하고 놀라운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큰 감동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죽은 목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려 주는 이적을 행하시는데 죽은 도구들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에게는 살려 주는 사람들 곧 생명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41).

<스펄전의 전도>는 무엇보다 전도자로 부름받은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일깨우며, 더불어 얼마나 큰 책임이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에 대한 긴장을 불어넣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도록 깨끗한 그릇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력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가운데 부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사명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전도에 대해 핑계 댈 수 있는 목회자는 없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우리의 목적은 세상을 뒤집어놓는 것"(152)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명에 붙들려 "여러분도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서 움직이는 자가 되기를!"(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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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물에 비친 그림자의 기억
찰스 디킨스 지음, 김희정 옮김 / B612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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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바깥세상의 모든 기억(아내, 친구, 아이, 형제)을 간직한 채
잊혀간 존재들이 머물렀던 지하 감옥을 바라보던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신음을 토해내며 굶주린 채 죽어가던 곳.
하지만 나는 온통 깨지고 썩어서 저주 받은 벽과
군데군데 갈라진 틈 사이로 새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승리감 비슷한 전율을 느꼈다.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기쁨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41).

당신의 여행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요즘 외국인들이 한국을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관찰예능을 보면, 여행에도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첫 제주 여행을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딸과 함께 좋은 풍경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이런 저런 체험도 하면 엄마도 신나시겠지 했는데 이상하게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울적해지셨습니다. 알고 보니 엄마는 함께 여행을 다니시면서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추억하고 계셨고, 과거를 추억하는 여행은 다시 딸과 함께 이곳을 와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심어주었고, 엄마는 그렇게 지나가 버린 시간과 오지 않는 시간 속을 여행하느라 내내 울적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 알았습니다.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는 여행자도 있고, 시간 속을 걷는 여행자도 있고, 낯선 땅에서도 마음 깊은 곳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는 여행자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탈리아, 물에 비친 그림자의 기억>은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이탈리아 여행에세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찰스 디킨스의 여행은 한 편의 현란한 꿈 같습니다. 쇠락한 건물은 한 편의 꿈처럼 과거의 영광으로 되살아나고, 교황청의 추락한 지위는 억울한 죽음과 뒤엉키며 우울한 전율에 떨게 하고,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번영의 뒷골목은 찰스 디킨스의 마음을 아주 혼란스럽게 헤집고 다니는 사물들의 환영을 만들어냅니다. 잊혀져간 사람들이 아름다운 예술로 남은 이탈리아는 얼마 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처럼, 우울하고 찬란한 땅이었습니다. 

전쟁의 명멸하는 불꽃이 꺼지고
가정의 불꽃이 세대를 거치면서 쇠락하는 때에도
하늘이 준 빛으로 밝힌 근엄한 거리와 거대한 궁전들과 탑 속의 불꽃은
지금도 밝게 타오른다.
수천수만 명의 얼굴들이 늘 다니던 장소와 낡은 광장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지만,
어느 이름 없는 피렌체의 여인은 화가의 손에 의해 영원히 잊히지 않는
우아함과 젊음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처럼(284).

화려한 제국의 역사, 예술의 역사를 간직한 땅이여서일까요. 그의 기억 속에 새겨진 학대와 억압이 번영의 이면을 또렷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일까요. 그에게 이탈리아는 무너진 신전, 버려진 궁전, 굴러다니는 감옥의 돌덩이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그의 여행은 찬란하지만 참으로 음울하고, 빛으로 가득할 때조차 쓸쓸합니다. 

사실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명작 에세이라 하여 매우 큰 기대를 품었던 것에 비하면, 그리 집중할 수 없는 여행이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곳'이 그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함께 스며들 수 없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그와 함께 풍경 속으로, 시간 속으로, 그의 꿈(내면) 속으로 빠져 들지 못하고, 냉냉하게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원한다면 하루에도 스무 번씩 길을 잃을 수도 있"(65)다는 그 환상적인 제노바 골목에서도 찰스 디킨스가 느낀 것과 같은 묘한 대비는 쉽게 제 마음 안으로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의 여행 스타일이 저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어쩌면 저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어쩌면 번역의 간극이 큰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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