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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소나타 ㅣ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11월
평점 :
'느림-빠름-느림(혹은 미뉴에트)-빠름'으로 연주되는 4악장의 소나타
<속죄의 소나타>라는 제목에 힌트를 얻어 이 이야기를 음악에 비유한다면, 총 4부로 이루어진 <속죄의 소나타>는 느림-빠름-느림-빠름으로 이루어진 4악장의 교회소나타(주제가 속죄라는 의미에서 더욱)처럼 연주되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인지 모를 범인이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제1악장 '죄의 신선도'는 느리지만 장엄하게, 살해된 자의 신원이 드러나면서 사건과 또 다른 사건이 서로 맞물려 들어가 제2악장 '벌의 발소리'는 도주하는 푸가처럼 빠르게, 과거로 돌아가 사건 속의 사건,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잇는 제3악장 '속죄의 자격'은 숨을 고르며 한 템포 느리게,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4악장 '심판받는 자'는 몰아치는 듯한 빠른 리듬 속에 결말을 향해 치닫습니다.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제3악장을 해석하기에 따라서 느림-빠름-미뉴에트-빠름의 구성을 가진 4악장의 소나타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거의 확신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것이 4악장의 소나타였다면, 미리 눈치채고 그렇게 읽어주는 것도 작가와 공명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엔 면역성이 있다"(123).
<속죄의 소나타>는 "제일 악독하고 제일 돈 많이 버는 변호사"로 정평이 나 있는 '미코시바' 변호사와 "교활하기로는 남부럽잖은" 사이타마 현경 수사1과의 '와타세' 반장이 대결 구도를 이룹니다. 서로 반목하는 변호사와 경찰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 것은, '미코시바'라는 변호사 캐릭터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밤 유기되었다가 옷이 벗겨진 채 발견된 시체. 범인은 왜 옷을 벗겼을까요? 피해자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 "신원을 감출 거면 얼굴을 완전히 망가뜨리거나 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40)습니다. 도대체 왜 옷을 벗겼을까요? (사건을 추적하는 힌트 중 하나입니다) 피해자의 신원은 싱겁게 밝혀지고 맙니다. 프리랜서 기자 가가야 류지 살인 하건은 신문을 떠들썩하게 도배하고 있는 보험금 살인 '도조 미쓰코 피고 사건'과 연결되어 있고, 가가야 류지 살해 용의자를 쫓던 와타세 반장은 악랄한 사람들을 변호해서 비싼 수임료를 챙기는 변호사인 줄로만 알았던 미코시바가 사실은 열네 살 소년이었을 때 이웃집 5세 여아를 엽기적으로 살해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범인임을 알게 되고, 사냥개 특유의 감각으로 가가야 살해 사건이 도조 미쓰코의 변호를 맡고 있는 미코시바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챕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감각하기만 했던 미코시바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자격에 '인격'이라는 항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법고시는 인격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시험 성적만 좋으면 변호사 배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일 텐데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215).
엽기적인 살해 사건의 범인이었던 한 소년이 과거를 감춘 채, 악랄한 사람들을 변호하고 비싼 수임료를 챙기는 악명은 높지만 실력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변호사로 다시 등장한 미코시바. 반전의 반전,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는 가운데 <속죄의 소나타>는 '과연 그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져줍니다.
"악마가 도로 사람이 되려면 계속해서 속죄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283).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이 소설은 '속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속죄는 아무 이유 없이 여아를 죽인 미코시바의 죄만이 아닙니다. 협박을 일삼다 살해당한 가가야, 트럭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남편을 보험금을 노려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도조 미쓰코, 선천성 뇌성마비로 태어난 그의 아들 미카야, 나쁜 놈들을 변호하는 미코시바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자살을 선택했다고 믿는 왕따 피해자의 어머니로 그 아들의 복수를 결심한 야스타케 사토미 모두 죄와 속죄의 굴레 속에 있습니다. 문제는 각자 자신이 '정의'의 기준이 될 때입니다. 자신이 가진 정의의 기준으로는 누구도 심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에 선 '미코시바'가 그 증인입니다.
<속죄의 소나타>는 속죄란, 후회가 아니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 후회 따위 하지 마라. 후회해 봤자 과거는 수복되지 않아. 사죄도 하지 마라. 잘못을 아무리 빌어도 잃어버린 생명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대신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러"(283). 속죄를 하려면 후회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넌 한 인간을 죽였다. 그걸 보상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 내라"(226).
이 책의 등장인물이 죄와 속죄의 굴레 속에 있는 인간들이라는 점에서, <속죄의 소나타>는 우리 삶의 비극의 한 토막을 연주하는 슬픈 음악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피아노 곡 하나가 인간을 바꿔 놓는 게 가능할까"(246) 하는 물음을 던져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듭니다.) 와타세 반장과 고테가와 콤비가 좀 더 활약을 해주었더라면 훨씬 더 흥미진진한 '수사극'(법정활극)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