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현대지성 클래식 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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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에 속한 모든 것은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고, 호흡에 속한 모든 것은 꿈이고 신기루다. 인생은 전쟁이고 낯선 땅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호위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가. 오직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철학이다"(52).
건물 벽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을 보고 올해 선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낯선 후보자는 자신이 얼마나 믿을 만한 정치인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갖다 붙여놓은 허울뿐인 공약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철학을 가진 자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천박한 내면을 가진 자에게 계속 권력을 쥐어주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는 말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로마 제국을 다스리는 일과 이민족과의 전쟁이라는 외적인 압박감과 무거운 짐으로부터 물러나서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가서 흐트러질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는 교훈들을 기록한 책을 마주하고 있다"(9).
<명상록>은 로마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철학 일기'입니다. 그냥 일기가 아니라 철학 일기라 함은, 황제 자신이 철학자였기 때문이요, 또 이 일기는 단순히 하루 동안의 기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 속으로 물러나 인간과 세계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하는 사색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의 생각에 화려하고 그럴듯한 옷을 입히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많은 일을 벌이지 말라. 네 안에 있는 신이 너를 이끌어 나가게 하여, 맹세나 그 누구의 증언이 없어도 한 사람의 로마인이자 한 사람의 통치자로서 너의 자리에서 네게 맡겨진 국사를 원숙하고 담대하게 처리하다가,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부터 퇴각하라는 신호가 나면 아주 기꺼이 물러나라. ... 다른 사람이 주는 편안함을 물리치고 스스로 서라"(59).
<명상록>을 읽으며 충격적일 정도로 감동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도덕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습이 역사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로 이런 통치자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황제는 전쟁터에서조차 혹독할 정도로 통치자로서 자신의 내면이 어떠해야 하는지 살피고 또 살피며, 지키고 또 지키며, 단련하고 또 단련하려고 노력합니다. 

"교묘한 언변이나 수사학을 익히는 일에 빠져서 열을 올리지 않아야 하고", "메추라기를 싸움 붙이는 놀이를 하지 않고 그 같은 일들에 열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해 주는 솔직한 말들을 막지 말고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는 것", "잘잘못을 따져 훈계하는 연설을 삼가려 하고", "사람들에게 금욕주의자나 자선사업가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고", "멋있는 건물을 짓는 것에 애착을 보이지 않으며", "하찮고 덧없는 명예욕이 자신을 사로잡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것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 노력하는 황제입니다. 

마치 '갑질'을 하기 위해 권력도 쥐고 재물도 모으는 사람처럼, 작은 권력이라도 쥐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졌다는 생각이 들면
'갑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것을 가진 자의 특권이라도 생각하여 속된 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진땀 나게 만드는" 일을 즐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 어쩌다 재물을 얻고 권력을 얻었지만 철학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모든 일에 교훈을 얻기 위해 그는 철학을 하고 스스로에게 일기를 썼습니다. "시기심이 많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폭군의 특징이라는 것, 우리 가운데서 귀족의 지위에 있는 자들 중에는 인정이 없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배웠다"(32).

정치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살펴서 적어도 "치세하는 동안에 대중의 온갖 환호와 온갖 아부에 재갈을 물릴 줄 알고, 국정을 돌보는 일에 밤낮으로 노심초사하며, 나라의 재정을 아끼고 지혜롭고 관리하고, 거기에 따른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며, 정의롭고 공동체의 유익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확신으로 행하고, 마음이 만족을 얻는 것보다 더 선한 것을 발견한다면 마음과 목숨을 다해 그것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해보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황제는 되지 못했을지라도 이 책을 일 년에 두 번은 꼭 읽는다는 빌 클린턴이 다시 보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권력의 정점에 선 자가 스스로에게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철학하는 힘을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철학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도 생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마음이 선하게 정리되고 늘 새롭게 인생을 마주하기 위해 여러 번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오직 현재라는 아주 짧은 순간만을 살아갈 뿐이고, 다른 모든 시간은 지나간 과거이거나, 네가 살게 될지조차 불확실한 미래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너의 인생은 극히 짧고, 네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 조각도 아주 작다"(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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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모험이 있는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 - 금발 머리와 곰 세 마리 외 7편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
스콧 구스타프손 지음, 토마스 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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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가 나의 단짝 친구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고무줄 놀이를 할 때는 신나는 놀이 친구였고, 오빠만 대우해주고 동생만 챙겨주는 부모님이 서운할 때는 혼자 울음을 삼키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상상 속의 친구였습니다. 신데렐라는 언제나 제 편이었고, 제가 필요로 할 때면 언제나 제 앞에 짠하고 나타나 주었습니다. 슬플 때면 백설공주나 숲 속의 공주보다 신데렐라가 먼저 생각나고 신데렐라를 친구로 삼았던 건, 어린 마음에도 재투성이 아가씨라면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꿈과 모험이 있는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로 다시 만난 신데렐라는 제 기억 속의 신데렐라 이야기와 조금 달랐습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라고 노래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모님이 아니라 엄마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신데렐라가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는데도 아버지가 전혀 몰랐다는 걸 생각하면, 부모님을 잃었다는 표현이 또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결말입니다. <꿈과 모험이 있는 일러스트 세계 명화 동작>는 신데렐라의 결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예뻤던 신데렐라는 언니들을 궁전으로 초대해서 함께 살았어요. 그리고 궁전의 멋진 귀족 신사 둘과 결혼까지 시켜 주었답니다"(87).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기에 앞서, 나는 어릴 때 동화를 읽으며 무슨 꿈을 꾸었나, 어떤 상상을 했었나, 무엇을 배웠나 다시 생각해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기 돼지 삼형제>입니다. 부지런히 벽돌 집을 지었던 셋째 아기 돼지를 보며, 쉽고 빠르고 편한 길보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무엇을 하든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배웠던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일러주신 말들을 까먹고 할머니까지 늑대에게 잡아 먹히게 만들고 말았던 <빨간 모자>는 아무리 동화 속 주인공이래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는 제가 어렸을 때 즐겨 보았던 동화책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멋진 동화책입니다. 커다란 판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표정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고 생생하게 표현한 일러스트가 정말 예술입니다. 일러스트 자체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꿈과 모험이 있는 일러스트 세계 명작 동화>에서는 <금발 머리와 곰 세 마리> 외에도 <장화 신은 고양이>, <빨간 모자>, <엄지손가락 톰>, <개구리 왕자>, <럼펠스틸트스킨>, <신데렐라>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독서노트는 그 자체로 독서지도사의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독서노트를 충실하게 사용한다면 좋은 독서 습관은 물론 독서의 깊이, 사고의 깊이까지 확장되겠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독서노트와 함께라면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동화책입니다. 물론, 독서를 위한 독서, 논술이나 공부를 위한 독서보다, 단순하게 동화책을, 이야기를, 상상의 세계를 즐기라고 하고 싶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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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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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연구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이다. 왜냐하면 역사서는 모든 사람이 뚜렷이 볼 수 있는 무한히 다양한 인간 경험을 기록하기 때문이다"(17).

책의 표지에 보면 두 명의 아이가 암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늑대 소년을 떠오르게 하는 저 모습은 로마 기원 설화에 등장하는 늑대 이야기입니다. 두 소년이 7개의 언덕에 도시를 세워 신생 로마가 탄생했다는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리비우스 로마사 Ⅰ>는 극적 긴장감이 극에 달한 한 편의 연극처럼 극적으로 들려줍니다. 형의 보위를 찬탈했던 아물리우스가 후일 불미스러운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조카 딸 레아 실비아를 신전의 여제관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영원히 처녀로 남게 할 심산이었으나 레아 실비아는 군신 마르스의 두 아들(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왕은 그 두 아들을 강에 내던져 익사시키라고 명령했으나 운명의 개입으로 갓난아기들을 넣은 바구니는 마른 땅으로 밀려갔고, 강에 목을 축이러 왔던 암 늑대가 바구니에 담긴 아이를 발견하고 두 아이에게 자신의 젖을 물려 살렸다는 전설을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기원 설화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로마사>를 쓴 리비우스는 이 로마 기원 설화에 다음과 같은 해석을 덧붙입니다. "파우스툴루스는 아이들을 그의 오두막으로 데려가 아내 라우렌티아에게 건네주어 양육하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근원을 다음의 사실에서 찾고 있다. 즉 라우렌티아는 평범한 창녀였는데 당시에 목동들에 의해 늑대라고 불렸다는 것이다"(24). 

이것이 제가 아는 로마 제국의 기원 설화입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기원은 사실 더 먼 과거로부터 시작됩니다. <리비우스 로마사 Ⅰ>은 "라티움의 작은 언덕들에서 이탈리아 중부의 라티움 지방의 중심부로 부상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11). 그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가 멸망할 때 그곳을 떠나 다양한 모험을 겪었던 '아이네아스'와 '안테노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리비우스 로마사 Ⅰ>이 보여주는 신생 로마의 모습, 그 천 년의 시작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갓 태어난" 아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독자는 이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로마인들이 어떻게 신의 제국 다음으로 가장 강성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그 폭력적이고 맹렬하고 치열하며, 혼란과 비통함과 재앙과 승리와 영광이 반복되는 운명적인 과정을 재미있는 역사소설을 읽듯 흥미롭게 읽어내려 갈 수 있습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 이후 "그 이전의 저술된 로마 역사서는 모두 빛이 바랬다"라는 극찬을 듣는 '리비우스'는 로마의 위대한 3대 역사가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책의 완성도나 문장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 가장 큰 차별점은 "당대 역사사가 쓴 로마사"라는 데 있습니다. 로마를 직접 살아낸 로마인의 증언인 셈입니다. 

리비우스는 이 책을 저술한 목적, 즉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이렇게 읽기를 권했습니다. "나는 독자들이 우리의 조상이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로마의 권력이 처음 획득되어 그 후 계속 확장되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정치와 전쟁의 수단을 사용했는지 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 보기를 촉구한다. 그런 다음 우리나라의 도덕적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기를 권한다"(16).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덕수 교수는 이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리비우스가 주목하려 했던 것은 로마의 성공 신화가 아니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우리의 악덕을 견디지도 못하고 또 그 악덕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시대"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라"고 그는 권고한다"(11). 그동안 로마의 성공 신화에만 매달려 그 역사를 미화시키기에 바빴던 우리가 이 역사가에게 한 방 먹은 기분입니다. 

강철비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현 최고 통치권자와 남북문제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였던 한 정치인의 일갈입니다. "불행이지. 너 같이 역사의식 없는 놈이 임기가 남았다는 게." 역사의식이란 게 무엇일까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 위에서, 그 커다란 흐름 안에서 자신의 역사적 위치와 시대적인 사명을 자각하는 작업이 아닐까요. 로마 역사의 가장 전성기에 있었던 한 문인이 한탄하면서 썼다는 <리비우스 로마사>가 일깨워주고자 한 것도 바로 그 역사의식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로마사에 대한 조각 지식마저도 미천하고, 그리고 이제 막 이 방대한 <리비우스 로마사> 1권을 빠르게 한 번! 읽었을 뿐이고, 로마사 연구의 주요 쟁점이나, 믿기 어려운 고대 전승이 무엇인지, 다른 로마 역사와 비교해 봤을 때 <리비우스 로마사>만의 독창적인(?) 관점이 무엇인지를 구별해 낼 수가 없는 독자라서 이 책을 평하기에는 무리이고, 또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키케로에 관한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을 읽었을 때와 같은 재미가 있었다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독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듯이, 독자 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생생하게 전하는 리비우스가 역사가이기에 앞서 탁월한 이야기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들리는 바로는 이렇다는 이야기가 있다"거나, "따라서 우리는 해당 내용을 불확실한 채로 남겨두어야 한다. 안개에 싸인 고대는 늘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392)라는 식의 서술 방식이 이 역사가에 대한 신뢰도를 오히려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천 년의 로마 역사를 꿰뚫어 보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리비우스 로마사>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열정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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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일리아스 명화로 보는 시리즈
호메로스 지음, 김성진.강경수 엮음 / 미래타임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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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는 일리오스(트로이아)의 이야기라는 뜻인데, 10년간에 걸친 트로이아 전쟁 중 그 마지막 해를 다루었으며, 전사들의 무용담이나 영웅들의 이야기, 결투 따위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500).


현존하는 그리스 최대 최고의 대서사시요, 서양 최초의 문학 작품으로 "필독서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는 <일리아스>는 전쟁과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주께서, 그러니까 경쟁자 없는 한 분 하나님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듯이 아름다운 질서가 있고 체계가 있는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전하는데, 인간들은 지략과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고, 혼돈과 폭력이 뒤섞인 전쟁, 그러니까 전사가 전투에서 승리하는 방식으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듯합니다. 예술가보다 전쟁 영웅을 더 원하는 것일까요?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는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직 승자가 필요할 뿐이지요. 강함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우리 속에 숨어 있는 듯합니다. <일리아스>는 "누가 영웅인가"를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밌는 것은 힘의 세계, 폭력으로 다스려지는 세계를 격동시키고,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신들도, 전쟁 영웅들도, 사랑 앞에서는 나약한 포로가 되고, 사랑을 위한 투쟁이 결국 서로를 죽고 죽이는 크고 작은 전쟁을 불러 일으킵니다. 때문에 <명화로 보는 일리아스>는 힘찬 근육과 용맹한 모습의 전사만큼이나 관능적인 남녀의 모습이 넘쳐 납니다. 결국 사랑을 차지하는 자가 영웅이라는 뜻일까요? 그러나 뺏고 빼앗기는 사랑과,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는 전쟁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이 <일리아스>의 결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테티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킬레우스가 불멸의 몸을 얻을지라도 전쟁 중에 죽음을 맞을 운명이다"라는 신탁의 예언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노심초사하였다. 테티스는 제우스의 제안대로 아기 아킬레우스를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는 스틱스 강물에 담겼다. 그러나 그녀가 잡고 있었던 발목 부분엔 강물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발목 뒤 힘줄은 아킬레우스가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치명적 약점으로 남았다. 이 전설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뜻하는 '아킬레스건'(아킬레스는 아킬레우스의 라틴어 발음)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31-33).

지금까지도 <일리아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웅은 아킬레우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트로이>에서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스(아킬레우스) 역을 연기한 탓일지도 모르지만요. 삼손과 드릴라처럼 영웅 아킬레우스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폴릭세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반한 아킬레우스는 그녀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맹세하지만, 폴릭세나는 아킬레우스의 약점이 발뒤꿈치라는 사실을 알아내어 파리스에게 은밀히 귀뜸해줌으로써 우리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너무도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468). 

<명화로 보는 일리아스>는 "오로지 힘과 지략이 넘치는 전쟁터에서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는 헥토르라고 해석합니다. 비록 아킬레우스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영웅은 "가장 뛰어난 맹장이지만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던"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따뜻했고, 나라에 충성하고, 군사들을 아꼈던" 헥토로라는 것입니다(462).

<명화로 보는 일리아스>는 일리아스의 방대한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된 책입니다. 유명 화가들의 생생한 명화는 스토리 이해는 물론, 명화 그 자체를 감상하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일라이스> 정독에 몇 번이나 도전했다 실패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가장 읽기 쉽고 편한 책입니다. 편집점에 따라 스토리 연결이 조금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책보다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일리아스>의 전체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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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 최신 개정증보판
김정희 지음 / 혜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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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통해서 수학으로 가는 길!

"어린이에게도 고독이 필요하다. 고독은 창조력을 만든다. 고독은 내적 풍요와 외적 경험을 만든다. 자기 안에 있는 마음의 고향으로 기꺼이 들어가라"(21). 수학이 취미인 이 소설가는, 미국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일리즈 보울딩의 말을 인용하여 수학보다 먼저 고독을 이야기합니다. 그녀에게 수학은 고독한 순간을 즐기는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학이 놀이 친구인 이 소설가는,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인데도 수학 참고서를 살 때는 가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아파트의 분리수거일이나 헌책방에서 철지난 문제집을 구해오기도 하지만, "머리가 복잡하거나 무기력증에 빠질 때 수학 문제를 풀면 머리가 맑아지고 개운한 게 양치질을 하고 난 후의 느낌이 나고, 훌륭한 고전문학을 한 편 읽고 났을 때의 느낌"(31)이 난다고 합니다.

수학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 소설가는,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이 가르치는 나라에서 이토록 수포자가 많은 것은 "대중을 위한 수학보다는 엘리트를 위한 수학을 배워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34). 이 책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들, 아니 수학의 재미를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하고,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수학과 멀어진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만일 수학 엘리트가 이런 책을 썼다면, 수포자들은 또 한 번 깊은 좌절감을 맛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쉽고 재미있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배신하는 수학 엘리트들의, 결코 대중적일수 없는 수학적 교양도서들이 그 증거입니다.

수학하는 즐거움을 노래하는 이 소설가는, 무시무시한 진도의 공포에 시달리며, 수학 시간에 선생님께 뺨을 맞은 이후로 더더욱 수학을 무서워했던 학생이 어떻게 소설을 통해 수학에게 다가갈 수 있었는지, 어떻게 수학과 친해질 수 있었는지를 털어놓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의 즐거움, 일상에서 수학적인 순간을 즐기는 법을 천천히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깊은 우물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 제 속으로 저 혼자 깊어 간다.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에서처럼 '나는 왜 저 사람이 아니고 나일까, 저 사람은 왜 내가 아니고 저 사람일까' 하는 마음속의 고독한 성찰이 위대한 철학을 발생시켰다. 수학도 철학과 그 뿌리를 같이하므로, 다르지 않다. 수학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수학 속엔 문학과 예술, 역사와 인생이 숨어 있다"(57).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는 수학은 단순히 숫자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 수학은 음악이며, 문학이며, 놀이이며, 움직이라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계 그 자체가 수학적이라는 것, 신은 알고 보면 초월적인 기하학자라는 것을 흥미롭게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수학천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수학적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내기 위해 "예술가처럼 영감을 기다리며, 뼈아프게 철학"(241)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과 같이 어떻게 하면 수학을 손으로 몸으로 익힐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도 제공합니다. 

밑줄을 많이 그으면서
읽은 책입니다. 홀로 생각할 시간을 찾고 싶을 때, "역사 속 수학 이야기"(2장)를 한 단원씩 천천히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절대 빨리 읽어서는 안 되는 책처럼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니 어떤 과목이든 문제를 잘 풀려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독해력, 즉 국어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수학도 공식이나 문제풀이가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혼 속에서 시를 노래하지 않고서는 수학자가 될 수 없다."
- 소피아 코발레스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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