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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ㅣ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평점 :
"역사 연구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이다. 왜냐하면 역사서는 모든 사람이 뚜렷이 볼 수 있는 무한히 다양한 인간 경험을 기록하기 때문이다"(17).
책의 표지에 보면 두 명의 아이가 암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늑대 소년을 떠오르게 하는 저 모습은 로마 기원 설화에 등장하는 늑대 이야기입니다. 두 소년이 7개의 언덕에 도시를 세워 신생 로마가 탄생했다는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리비우스 로마사 Ⅰ>는 극적 긴장감이 극에 달한 한 편의 연극처럼 극적으로 들려줍니다. 형의 보위를 찬탈했던 아물리우스가 후일 불미스러운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조카 딸 레아 실비아를 신전의 여제관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영원히 처녀로 남게 할 심산이었으나 레아 실비아는 군신 마르스의 두 아들(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왕은 그 두 아들을 강에 내던져 익사시키라고 명령했으나 운명의 개입으로 갓난아기들을 넣은 바구니는 마른 땅으로 밀려갔고, 강에 목을 축이러 왔던 암 늑대가 바구니에 담긴 아이를 발견하고 두 아이에게 자신의 젖을 물려 살렸다는 전설을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기원 설화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로마사>를 쓴 리비우스는 이 로마 기원 설화에 다음과 같은 해석을 덧붙입니다. "파우스툴루스는 아이들을 그의 오두막으로 데려가 아내 라우렌티아에게 건네주어 양육하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근원을 다음의 사실에서 찾고 있다. 즉 라우렌티아는 평범한 창녀였는데 당시에 목동들에 의해 늑대라고 불렸다는 것이다"(24).
이것이 제가 아는 로마 제국의 기원 설화입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기원은 사실 더 먼 과거로부터 시작됩니다. <리비우스 로마사 Ⅰ>은 "라티움의 작은 언덕들에서 이탈리아 중부의 라티움 지방의 중심부로 부상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11). 그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가 멸망할 때 그곳을 떠나 다양한 모험을 겪었던 '아이네아스'와 '안테노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리비우스 로마사 Ⅰ>이 보여주는 신생 로마의 모습, 그 천 년의 시작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갓 태어난" 아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독자는 이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로마인들이 어떻게 신의 제국 다음으로 가장 강성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그 폭력적이고 맹렬하고 치열하며, 혼란과 비통함과 재앙과 승리와 영광이 반복되는 운명적인 과정을 재미있는 역사소설을 읽듯 흥미롭게 읽어내려 갈 수 있습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 이후 "그 이전의 저술된 로마 역사서는 모두 빛이 바랬다"라는 극찬을 듣는 '리비우스'는 로마의 위대한 3대 역사가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책의 완성도나 문장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 가장 큰 차별점은 "당대 역사사가 쓴 로마사"라는 데 있습니다. 로마를 직접 살아낸 로마인의 증언인 셈입니다.
리비우스는 이 책을 저술한 목적, 즉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이렇게 읽기를 권했습니다. "나는 독자들이 우리의 조상이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로마의 권력이 처음 획득되어 그 후 계속 확장되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정치와 전쟁의 수단을 사용했는지 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 보기를 촉구한다. 그런 다음 우리나라의 도덕적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기를 권한다"(16).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덕수 교수는 이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리비우스가 주목하려 했던 것은 로마의 성공 신화가 아니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우리의 악덕을 견디지도 못하고 또 그 악덕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시대"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라"고 그는 권고한다"(11). 그동안 로마의 성공 신화에만 매달려 그 역사를 미화시키기에 바빴던 우리가 이 역사가에게 한 방 먹은 기분입니다.
강철비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현 최고 통치권자와 남북문제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였던 한 정치인의 일갈입니다. "불행이지. 너 같이 역사의식 없는 놈이 임기가 남았다는 게." 역사의식이란 게 무엇일까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 위에서, 그 커다란 흐름 안에서 자신의 역사적 위치와 시대적인 사명을 자각하는 작업이 아닐까요. 로마 역사의 가장 전성기에 있었던 한 문인이 한탄하면서 썼다는 <리비우스 로마사>가 일깨워주고자 한 것도 바로 그 역사의식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로마사에 대한 조각 지식마저도 미천하고, 그리고 이제 막 이 방대한 <리비우스 로마사> 1권을 빠르게 한 번! 읽었을 뿐이고, 로마사 연구의 주요 쟁점이나, 믿기 어려운 고대 전승이 무엇인지, 다른 로마 역사와 비교해 봤을 때 <리비우스 로마사>만의 독창적인(?) 관점이 무엇인지를 구별해 낼 수가 없는 독자라서 이 책을 평하기에는 무리이고, 또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키케로에 관한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을 읽었을 때와 같은 재미가 있었다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독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듯이, 독자 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생생하게 전하는 리비우스가 역사가이기에 앞서 탁월한 이야기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들리는 바로는 이렇다는 이야기가 있다"거나, "따라서 우리는 해당 내용을 불확실한 채로 남겨두어야 한다. 안개에 싸인 고대는 늘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392)라는 식의 서술 방식이 이 역사가에 대한 신뢰도를 오히려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천 년의 로마 역사를 꿰뚫어 보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리비우스 로마사>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열정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