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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평점 :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우리에게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소서.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을 해야 합니다.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제게 '이어령'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일의 절약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들은 얼마나 절약 정신이 강한지 담배를 피울 때도, 성냥개비 하나를 아끼기 위해 몇 사람이 모일 때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불을 붙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이러한 독일을 칭송할 때,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불 좀 빌립시다"라는 한마디면 된다는 것이었지요.
이어령 선생님은 획일성에 갇혀 있는 사고의 문을 활짝 열어제끼며, 자유로운 생각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힘인지 가르쳐주셨던 '생각 선생님'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익숙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우리 것의 위대함'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셨지요. 얼마나 감동이었던지요. 그리고 그러한 선생님의 가장 강한 무기는 바로 '이야기'였습니다. 어찌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하시는지,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늘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각인된 선생님의 교훈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보이지 않던 세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늘 기억하려 애썼습니다.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노래(시)처럼 말입니다.
'이어령의 서원시'라는 부제가 붙은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이어령 선생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일생 어떤 일을 해오신 분인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셨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떠나셨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의 교육이 세뇌가 아니라, 천 개의 빛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반란, 상상력의 색깔을 만들어는 창조의 세계가 되기를 꿈꾸셨던 분임을, 이 책,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시인처럼 연인처럼 혹은 광기 어린 사람처럼 일상성에서 탈출하는 탈영병이 되어라(68).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라는 책을 통해 이어령 선생님이 남겨주신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위로가 되었고, 큰 힘이 되었던 이야기는 많이들 알고 있는 '우물에 빠진 당나귀'이야기였습니다.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는데,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우물을 파묻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 속으로 던졌습니다. 당나귀는 더욱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주시며,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55-56)고 하십니다. 그러니 "나를 음해하는 진흙이 나를 구해주는 기적의 사다리가 된다"(56)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이지요! '벽을 넘는 두 가지 방법'도 이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벽에 의지하고 벽에 반발하는 앰비버런스ambivalence(모순)에서 회회가 생겨난다. 그림은 벽에 뚫어놓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창을 벽의 상처라고 말하듯, 그림 또한 피가 흐르는 벽의 상처인 것이다"(69).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세상을 읽어내고 해석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대부분 서양의 것과 우리의 것과의 차이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도 선생님 특유의 그러한 은유가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양옥과 한옥이 집을 올리는 방식의 차이가 그렇습니다. 왜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은 집 전체가 무너지고 마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왜 "국물도 없다"는 말이 욕이 되지도요.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에 담긴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들은 '관계론적 사고'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거북선'이라는 실체론적 사고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북선의 위대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가지고 싸우려고 했던 일본의 배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적'을 알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러한 사고를 '관계론적 사고'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는 함께 어우러짐의 삶의 철학으로 구현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소음(노이즈)을 제거하는 방식의 서양 음악과 소음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포용할 때 완성하는 우리 음악의 차이, 재고 따지고 계산해서 정확한 치수로 만들어지는 양복과 재지 않고서도 평안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한복 바지의 차이, 넣을 물건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 자체로 독립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가방과 이에 비해 물건의 부피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쌀 것이 있을 때는 존재하다가 쌀 것이 없으면 하나의 평면으로 돌아가 사라져버리는 보자기의 차이, 서양의 침대와 한국의 이불(요)의 차이, 사방이 박힌 지하실의 벽과 가변적이고 신축인 우리나라 병풍의 차이, 코스별로 나오는 서양식 상차림과 우리의 한 상 차림의 차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이어령 선생님의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우리가 신축성, 융통성, 어우러짐, 그리고 그 안에서 빚어진 합리성이라는 위대한 날개를 가진 사람들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서원시처럼, 우리에게 생각의 날개를 주고 싶었던 선생님의 꿈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K-팝, K-브랜드, K-세일 등 K-문화라는 이름으로 K-열풍이 심상치 않는데, 아마도 이런 K-문화의 힘을 통찰하고, 예견하고, 선도했던 시원에 이어령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지만, 특히 (어떤 상황, 환경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청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꼭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달걀 꾸러미를 반만 감싸는 방식으로 포장했던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지혜, 그 놀라운 이야기를 꼭 들어보라고 당부드립니다! 달걀 포장 이야기는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견고한 틀과 사고로 무장한 사회와 조직은 생사람을 잡아요"(19). 갇힌 사고에서 나오는 신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유연한 생각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할 수 있고요. 우리가 맹신하는 돈의 힘보다 훨씬 강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어려울수록, 아니 벼랑 끝이라는 비상 상황일지라도, 하늘 보고, 바람 맞고, 꽃을 보고,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이 책 한 권 읽어보자고, 먼저 읽은 독자로서 기쁘게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