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三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귀스타브 카유보트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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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_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


이 책은 마치 "시를 감상하기 좋은 날은 어떤 날일까요?"라는 물음에, "일 년 열두 개의 달, 모든 날"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듯합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는 매월 매일 시 한 편과 명화 한 점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화집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중 3월에 해당하는 시화집입니다. 그러나 3월을 주제로 한 시, 3월을 주제로 그린 명화는 아닙니다. 3월을 연상케 하는 작품들을 선별했다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가 주로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윤동주 시인 외 18명의 시인(이장희, 노천명, 김소월, 이상화, 백석, 정지용, 박인환 등 국내 유명 시인은 물론 일본의 일본의 하이쿠(산토카), 에밀리 디킨슨 등)의 시도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중 3월을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시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3월의 명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때문입니다. 제게는 낯선 이름의 화가였는데, 조용하게 시선을 끄는 그의 그림에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덕에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과, 사실주의 화풍을 공부하며 학문으로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도움을 주었던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은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세잔 등이었다는 것" 등입니다(책의 앞 날개 中에서). 그림을 평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그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림 못지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세잔과 같은 어마어마한 인상주의 화가들 뒤에 귀스타브 카유보트가 버티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너무 적나라한 현실감 때문에 살롱전 심사위원들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사연 때문인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물론, 3월의 시를 감상할 때에도 계속해서 시와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감"을 찾으려 애쓰며 시와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새로운 시 읽기이자, 그림 감상법이었습니다. "봄이 시인의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그렇게 시가 태어나고,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의 털"이 화가의 손에 어리우어 명화가 태어난 듯했습니다. 

잘 간직해 두었다가
포근한 햇살 가득 품은 3월이 다시 돌아오면, 이 책을 천천히 다시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시 하나쯤 가슴에 품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의 약속을 떠올리며 말입니다. 명화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주는 '덤' 같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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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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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문득 신고에게 산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없다. 달은 보름달에 가깝게 밝지만 작은 산 위를 수놓은 나무들의 윤곽은 습한 밤기운으로 희미해진다. 그러나 바람에 움직이지는 않는다. 
……
아득한 바람 소리와 닮았지만 땅울림 같은 깊은 저력이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해서, 신고는 이명인가 싶어 머리를 흔들어보았다. 
소리는 멎었다.
소리가 멎은 뒤에야 비로소 신고는 공포에 휩싸였다. 임종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났다(산소리, 20-21).

<산소리>는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숨겨진 명작'으로, 그의 작품 중에서도 '만년의 걸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독자로서 조금 민망해지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 속에 담긴 문장의 힘, 문장의 맛을 알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고 해도 해외 문학에서는 우리네 정서와 다른 생소함과 마주칠 때가 더 많은데, 일본의 문학은 그중에서도 우리네 정서와 닮은 데가 참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열풍을 생각하면 확실히 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산소리>는 예순두 살의 '신고'를 통해 하루하루 생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끼는 노년의 회한을 아주 감각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억압된 금기의 욕망을 꿈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출시키는 (다소) 몽환적인 소설입니다. 책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작품해설'을 참고하면, <산소리>는 전후의 일본, 다시 말해 '패전 후'의 일본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 살 많은 예순셋의 아내 야스코와 살고 있는 신고는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은 소년 시절부터 아내의 언니를 동경했으나 언니 대신 그 동생과 결혼을 했고, 오랜 세월 동안 부부로 함께 살아온 아내의 육체를 보며 노추(老醜)를 느끼는 신고가 아내의 몸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은 코 고는 소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아내의 코를 잡고 흔들 때 뿐이지만, 며느리 기쿠코에게는 더 없이 다정한 시아버지입니다. 외도하는 아들 슈이치의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서도, 딸 둘을 데리고 폐인이나 다름 없는 남편과 이혼하려는 딸 후사코의 문제에 대해서는 손녀 딸린 딸을 다시 떠맡게 될까봐 우울해하는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신고가 최근에 자신이 꾼 음란한 꿈을 떠올려보니 대부분 상대는 소위 천한 여자였다. 오늘 밤의 아가씨도 그랬다. 꿈에서까지 간음의 도덕적 가책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

"앗." 그때 신고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꿈속의 아기씨는 기쿠코의 화신이 아니었을까? 꿈에도 역시 도덕의식이 움직여서 기쿠코 대신 슈이치의 친구 여동생 모습을 빌린 것이 아닐까? 더구나 불륜을 감추기 위해서, 가책을 감추기 위해서 대역인 여동생을 시시한 여자로 탈바꿈한 것이 아닐까?
만일 신고의 욕망이 원하는 대로 허용되어 그의 인생을 고칠 수 있다면, 신고는 처녀 적의 기쿠코, 즉 슈이치와 결혼하기 전의 기쿠코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상처 후, 319-320)

<산소리>를 읽으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떠올렸습니다. <엄마를 부탁해>가 장성한 자녀의 시선에서 노년의 엄마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이해해가는 과정이었다면, 노년의 시선으로 그려진 <산소리>는 그 '노인'이 바로 '나'라는 충격을 던져주는 듯해서 말입다. 자녀가 노년의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은 산파적이었다면, 관찰자의 시점에서 시들어가는 지켜보던 그 노인이 바로 나라는 깨달음은 소름끼치는 일격입니다.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고가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겠지만, 나이듦의 쓸쓸함을 아는 독자들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그려내는 노년의 감각이 징그러울지도 모릅니다. 기묘한 동질감과 반감이 동시에 느껴질 테니까요. 

<산소리>는 읽는 맛이 있는 소설입니다. "
달밤이 깊어져갔다. 깊은 밤이 자욱이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20). 이런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습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인데, 음미할수록 순수문학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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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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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가는 일, 

그거 참 그것만으로 문학이 되고, 철학이 되고, 종교가 되고, 

노래가 되고, 구원이 되는 그런 것! 

- 사람 사는 일 中에서 


시인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글이 되고,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문집입니다. 새벽에 달 보러 동네에서 젤 높은 델 올라갔다 오고, 위독한 외로움을 껴안고 술잔 앞으로 나아가고, 시래깃국에 밥 말아 먹고, 첫사랑이 죽고 난 다음 날의 고통 같은 가난을 지나왔고, 침을 삼킬 수 없을 만큼 목이 아파 이비인후과에 다녀오고, 세월호를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고, 페이스북을 하고, 치통을 견디고, 조문을 가는 그저 그런 일상까지 시인의 삶에 시가 머무는 것인지, 시인이 살아낸 모든 시간이 시가 되는 것인지, '그냥 시를 살아내는 일'을 하고 있는 듯, 시인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시가 되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은 그냥 빗속에서 비를 살아버렸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말입니다(71).


그래서일까요? 분명 산문집인데 나의 마음은 금방 시어를 읽은 듯이 울렁울렁합니다. 어느 글에선가 그는 "남들이 보기 불편해하는 것을 굳이 쳐다보는 시인"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불편한 삶의 진실이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언어로 그려져 있어 이것을 아름답고 말해야 하나, 아프다고 말해야 하나, 재밌다고 말해야 하나, 독하다고 말해야 하나, 슬프다고 말해야 하나 심정이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 베른식 레스토랑에 "처음 고아원에 간 남매처럼 가서 앉았다"는 글이 그렇습니다. 가슴에 확 와닿는 명징한 표현이 처음엔 재치 있다고 느껴졌다가 곱씹을수록 명치를 아프게 합니다. 상투적인데 의외로 신선하고 아련하고 뭉클하고 그러다 슬퍼집니다. 




겨울이 곤란한 것은 소리가 들린다. … 

별들이 거기 있는 소리. 죽은 잎사귀에 바람이 눕는 소리. 

가만히 견디는 소리. 내가 나에게 고독을 들키는 소리. 

당신이 행여 이 별에 닿았다 가는 소리. 

- 겨울이 곤란한 것은 中에서 


누군가의 산문집을 읽는다는 건, 글을 읽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읽는 일이라는 걸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류근'이라는 시인은 전 국민이 사랑해 마지않는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시인이라는 정도였는데,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은 시인이 말하는 '무엇'을 읽은 기분이 들지 않고, '류근'을 읽은 듯한 감상에 젖다 보니, 본적도 없고 한 반 만난 적도 없는 '류근' 시인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척을 좀 해도 될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천상 시인인 사람이 있구나. 날 때부터 시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구나. 시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시가 운명인 사람, 남들과 다른 귀를 가직 태어난 사람. 그리하여 시인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시인이란 그리하여 모름지기 견디는 사람이다. 

비도 견디고,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슬픔도 견디고, 쓸쓸함도 견디고, 

죽음도 견디고 견디고 견디어 마침내 시의 별자리를 남기는 사람이다. 

다 살아내지 않고 조금씩 시에게 양보하는 사람이다. 

시한테 가서 일러바치는 사람이다 ……. 

- 시인이란 中에서 


죽음 직전의 슬픔 같은 가난을 지나왔다는 시인은 영양실조와 허기를 앓느라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노는 시간보다 문지방에 머리를 베고서 누워 구름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잠자코 누워 구름을 바라보았던 시간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인의 눈을 키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가볍게 읽으려고 했던 책인데 정성드려 밑줄까지 그으며 몰입해서 읽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부지런히' 추천하는 중입니다. 좋은 것은 절로 입소문이 나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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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 그 행복한 경험
라준석 지음 / 두란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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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의 히브리말은 '소드'입니다. '숨기는 것이 없는 아주 가까운 만남'을 의미합니다. '은밀히 가깝게 만나서 비밀을 말하는 것', '자신의 뜻을 아주 밝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비밀의 화원에서 만나듯이 가깝게 만나서 아주 속 깊은 이야기를 솔직하고 다정하게, 분명하고 따뜻하게 나누는 것입니다(21-22).


이 책을 읽고 새벽기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꽉 붙들고, 더 바짝 달라붙고,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더 굳게 붙들게 해달라는 한 가지 간구만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신앙의 성패가 이 한 가지에 달린 것처럼 말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라"는 것이었는데, '가까이하다'의 뜻이 바로 '꽉 붙들다', '바짝 달라붙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다', '목숨 걸고 달라붙다', '굳게 붙들다'라고 이 책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42).

몇 년 전,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수호신 '도깨비'와 '도깨비의 신부'로 태어난 여인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입니다(성경적이지는 않지만요). 라준석 목사님의 <친밀함>을 읽다가 재방송되는 그 드라마를 잠깐 보게 되었는데, 섬광처럼 뇌리를 스치며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무엇을 말하는지 드라마의 두 주인공을 보며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다가가고, 믿어주고, 의논하고, 비밀을 나누고, 품에 안고 대화하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려야 할 <친밀함>의 강도가 바로 그런 사귐이라고 이 책이 계속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는 당연한 권리로 신랑되신 예수님과 친밀함을 누릴 수 있으며, 마땅히 누려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다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것이 왜 복 중의 복인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왜 가장 큰 능력인지, 하나님께 가까이함을 얻는 비결은 무엇인지, 라준석 목사님의 <친밀함>을 통해 꼭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는 회중을 보며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누리는 친밀함의 강도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정말 행복한 경험, 하나님께서 친구처럼 하나님의 꿈에 대해 나와 의논하시는 환상적인 경험이 나의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매일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친밀함>은 그 자리로 나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다정한, 선물 같은 책입니다. 








하나님의 친밀하심을 경험하는 것이 사역의 시작입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을 경험하는 시간이
예배입니다.
이것이 헌신의 시작입니다.

당신을 품에 안고
하나님의 비밀을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하십시오.
당신과 친구처럼 하나님의 꿈에 대하여
의논하시는 것을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친밀하심을 경험하십시오. 

- 라준석, 친밀함, 두란노, 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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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 디즈니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 원작 에프 클래식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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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나 좀 멋있었지? 내 모습 어때?"

푸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물었어.

"너? 풍선에 매달려 있는 곰 같아 보이는데?"(19)

 

빨간색 짧은 티를 입고, 수줍은 듯한 몸짓에, 천진한 웃음을 웃으며, 손에 꿀단지를 안고 있거나, 손에 파랑 풍선을 들고 있는 아기 곰의 모습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곰돌이 푸'의 모습입니다. 어릴 때, 미술 시간에 자유 주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판화를 만들거나 만들기를 하면 언제나 저의 단골 주제는 '곰돌이 푸'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기억 속의 곰돌이 푸는 이미지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실 <곰돌이 푸>가 스토리가 있는 동화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화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에프에서 선보이는 <곰돌이 푸>는 우리가 기억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의 원작 소설입니다.


어릴 적, 디즈니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를 사랑했던 독자라면 가장 사랑받는 주인공 "푸" 외에도, 너도밤나무 안에 마련된 아주 근사한 집에 사는 꼬마 돼지 "피글렛", 나이를 지긋이 먹은 회색 당나귀 "이요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지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숲속에 와서 살기 시작한 "캥거"와 캥거의 아기인 "루", 그리고 "토끼"와 "올빼미"와의 만남이 무척 반가울 것입니다. 곰돌이 푸를 따라 친구들을 하나씩 만날 때마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아스라한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푸가 풍선을 잡고 있느라 일주일도 넘게 팔을 위로 뻗은 채 공기 중에 떠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인지 내려와서도 한참 동안은 팔이 좀처럼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어. 그래서 푸는 파리가 코에 앉을라치면 손을 못 쓰고, '푸, 푸' 하면서 입바람을 불어 파리를 쫓아내야 했지. 그리고 내 생각엔 그게 바로 곰이 푸라는 이름을 갖게 된 진짜 이유인 것 같아"(24).


만화가 아니라, 원작 소설, 동화로 만나는 <곰돌이 푸>는 이전에 모르던 것을 많이 알려주었습니다. 곰돌이 푸의 이름이 "위니 더 푸"라는 것, 그리고 어떻게 "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동화 속에는 "크리스토퍼 로빈"이라는 친구가 등장하는데, 크리스토퍼 로빈은 작가의 실제 아들 이름으로 곰돌이 푸와는 둘도 없는 친구라는 사실 등을 말입니다. 



"푸야, 너는 아침에 일어나면 맨 처음 생각하는 게 뭐야?"

피글렛이 마침내 입을 열어 푸에게 물었어.

"아침으로 뭘 먹을까 하는 생각."

푸가 대답을 하고 피글렛에게도 똑같이 물었어.

"피글렛 너는 뭔데?"

"나는 있지 …… 오늘은 또 어떤 신나는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

피글렛의 대답에 푸가 깊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170).

 

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크리스토퍼 로빈"이 곰돌이 푸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저런, 바보 곰 같으니라고!"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곰돌이 푸를 미워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정을 가득 담은 말처럼 들립니다. 조금 어리숙해도 괜찮아, 조금 엉뚱해도 괜찮아, 조금 실수해도 괜찮아라고 속삭여주는 말로 들립니다. 푸는 북극 '팜험'에 나설 만큼 용기 있고, 빗물에 잠겨 떠내려갈 뻔한 피글렛을 구해낼 만큼 용감하고, '떠다니는 곰' 호와 '푸의 명섬함' 호를 직접 발명할 만큼 재치 있고, 언제나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착한 친구라는 것을 크리스토퍼 로빈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곰돌이 푸>의 원작 소설이라 우리에게 익숙한 곰돌이 푸의 모습을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의 타겟 독자층은 누구일까 알쏭달쏭할 정도로 당황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의 구성이나 서체 크기 등을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번에 에프에서 발간된 <곰돌이 푸>는 어릴 적, 곰돌이 푸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부모님들에게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동심이 있으니까요. 곰돌이 푸를 사랑했던 "꼬마"가 어느새 훌쩍 자라, 곰돌이를 사랑하는 아이의 부모가 되어 있다면, 아이 몰래 <곰돌이 푸>를 먼저 읽어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곰돌이 푸>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이름 자기 이름이나, 아이의 이름으로 바꾸어 <곰돌이 푸>의 신나는 모험을 들려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적 정말 친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잊히지 않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사랑받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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