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 

그거 참 그것만으로 문학이 되고, 철학이 되고, 종교가 되고, 

노래가 되고, 구원이 되는 그런 것! 

- 사람 사는 일 中에서 


시인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글이 되고,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문집입니다. 새벽에 달 보러 동네에서 젤 높은 델 올라갔다 오고, 위독한 외로움을 껴안고 술잔 앞으로 나아가고, 시래깃국에 밥 말아 먹고, 첫사랑이 죽고 난 다음 날의 고통 같은 가난을 지나왔고, 침을 삼킬 수 없을 만큼 목이 아파 이비인후과에 다녀오고, 세월호를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고, 페이스북을 하고, 치통을 견디고, 조문을 가는 그저 그런 일상까지 시인의 삶에 시가 머무는 것인지, 시인이 살아낸 모든 시간이 시가 되는 것인지, '그냥 시를 살아내는 일'을 하고 있는 듯, 시인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시가 되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은 그냥 빗속에서 비를 살아버렸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말입니다(71).


그래서일까요? 분명 산문집인데 나의 마음은 금방 시어를 읽은 듯이 울렁울렁합니다. 어느 글에선가 그는 "남들이 보기 불편해하는 것을 굳이 쳐다보는 시인"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불편한 삶의 진실이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언어로 그려져 있어 이것을 아름답고 말해야 하나, 아프다고 말해야 하나, 재밌다고 말해야 하나, 독하다고 말해야 하나, 슬프다고 말해야 하나 심정이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 베른식 레스토랑에 "처음 고아원에 간 남매처럼 가서 앉았다"는 글이 그렇습니다. 가슴에 확 와닿는 명징한 표현이 처음엔 재치 있다고 느껴졌다가 곱씹을수록 명치를 아프게 합니다. 상투적인데 의외로 신선하고 아련하고 뭉클하고 그러다 슬퍼집니다. 




겨울이 곤란한 것은 소리가 들린다. … 

별들이 거기 있는 소리. 죽은 잎사귀에 바람이 눕는 소리. 

가만히 견디는 소리. 내가 나에게 고독을 들키는 소리. 

당신이 행여 이 별에 닿았다 가는 소리. 

- 겨울이 곤란한 것은 中에서 


누군가의 산문집을 읽는다는 건, 글을 읽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읽는 일이라는 걸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류근'이라는 시인은 전 국민이 사랑해 마지않는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시인이라는 정도였는데,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은 시인이 말하는 '무엇'을 읽은 기분이 들지 않고, '류근'을 읽은 듯한 감상에 젖다 보니, 본적도 없고 한 반 만난 적도 없는 '류근' 시인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척을 좀 해도 될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천상 시인인 사람이 있구나. 날 때부터 시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구나. 시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시가 운명인 사람, 남들과 다른 귀를 가직 태어난 사람. 그리하여 시인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시인이란 그리하여 모름지기 견디는 사람이다. 

비도 견디고,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슬픔도 견디고, 쓸쓸함도 견디고, 

죽음도 견디고 견디고 견디어 마침내 시의 별자리를 남기는 사람이다. 

다 살아내지 않고 조금씩 시에게 양보하는 사람이다. 

시한테 가서 일러바치는 사람이다 ……. 

- 시인이란 中에서 


죽음 직전의 슬픔 같은 가난을 지나왔다는 시인은 영양실조와 허기를 앓느라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노는 시간보다 문지방에 머리를 베고서 누워 구름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잠자코 누워 구름을 바라보았던 시간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인의 눈을 키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가볍게 읽으려고 했던 책인데 정성드려 밑줄까지 그으며 몰입해서 읽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부지런히' 추천하는 중입니다. 좋은 것은 절로 입소문이 나는 법이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