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떡방 이야기 - 행복을 나눕니다 기아대책
정정섭 지음 / 두란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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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어릴 때 본 외화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천상에서 죄를 짓고 이 땅으로 쫓겨난 천사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천사에게 땅에 살면서 사람들을 도우라고 명하셨다. 천사는 용서받기 위해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하나님은 천사에게 다시 하늘로 올라오라고 명하신다. 그러나 천사가 이렇게 묻는다. "하나님, 제가 떠나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누가 도와주나요?" 그때 하나님께서 하셨던 대답이 어른이 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걱정말아라. 내가 그들에게 이웃을 주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조금 자신이 없지만, 하나님의 대답만큼은 분명하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안전장치가 바로 이웃이라는 것이다! <복떡방 이야기>는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이웃, 즉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구촌 이웃으로 살아가는 <기아대책>의 나눔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은 배고픔 설움을 아는 민족이다. 아직도 우리 부모님 세대는 배고픈 기억을 간직하고 계신다. <한국기아대책>의 회장님이며 이 책의 저자이신 정정섭 회장님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을 전하신다. "그 시절 우리는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캐어 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 봄이 되면 진달래꽃을 따다 먹고, 잔디 뿌리를 씹어 먹었다. 보리쌀 한 움큼에 물만 한가득 넣어 끓인 멀국을 서로 빨리 먹으려고 달려들었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 봄이 되면 마을 청년들은 누렇게 뜨고 퉁퉁 부은 동네 사람의 시체를 지게에 져다가 야산에 묻곤 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이들이었다"(9).

어느새, 지금 우리는 1년이면 8조원 이상의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서울 시민이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의 분량이 인천 시민이 먹고 남을 분량의 식량과 같다는 보도를 접할 만큼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복떡방 이야기>는 아직도 이 땅에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이웃들이 굶주림 때문에 1분마다 34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1년이면 1,800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것이다. 

<복떡방 이야기>는 "땅끝까지"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명령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선교사라고 해도 선교 활동을 할 수 없고, 선교사라고 하면 비자도 내주지 않는 북위 10-40도 사이에 있는 나라인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권과 몽고, 북한,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인도 등 힌두 국가, 태국 등 불교 국가가 21세기의 땅끝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전 세계 굶주린 사람들의 84%가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의 97%가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들어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한다. 이러한 때에, <기아대책>의 정정섭 회장님은 "한 손에는 떡을, 다른 손에는 복음을 들고 들어가는 하나님의 새로운 전권대사가 필요하다"고, "몸과 영혼의 굶주림을 함께 채워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사람들의 육체적 굶주림뿐만 아니라 영적인 굶주림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력하게 일깨워준다.

<복떡방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성경의 진리는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이다. 복음과 떡을 들고 가는 ’사람’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다. "만약 그 지역에 선교사가 들어가지 않은 채 지원금만 계속 보내줬다면 포캄치인들의 문명은 발달했을지 몰라도 삶의 아름다운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54). "어떠한 경제적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56).

예수님은 사람이 되어 사람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보내신다.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반드시 외국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아대책>은 해외 사역 70%를 할애하고, 국내사역에도 30%를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어떤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느냐,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눈물이 있느냐"이다.

당장 우리나라부터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의 양을 보라. 지구촌의 굶주림은 음식의 절대량이 부족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한 사람’이 부족한 데 있다. 우리 돈으로 단돈 100원이면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200그램짜리 빵을 전해줄 수 있고, 1천 원이면 열 사람, 1만 원이면 백 사람, 10만 원이면 1천 명을 먹일 수 있다고 한다. 기적은 아주 작은 나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작은 것이라도 내가 가진 것을 내어놓고 나누고자 할 때, 어린아이의 도시락이 수천명을 배부르게 했던 것처럼, 우리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축복의 사람>이라는 찬양의 가사가 마음에 맴돈다. "그대 섬김은 아름다운 찬송 / 그대 헌신은 향기로운 기도 / 그대가 밟는 땅 어디에서라도 주님의 이름 높아질꺼예요." 그리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 책을 읽은 감동이 그저 감동으로만 그치지 않고 내 삶에 실천으로, 순종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결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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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번연의 하늘 문을 여는 기도 - 천로역정의 작가 존 번연의 영혼을 사로잡는 기도의 세계, 개정 증보판
존 번연 지음, 정혜숙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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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수첩은 10년 후를 위한 기도제목, 1년을 위한 기도제목, 한달을 위한 기도제목, 그리고 오늘 하루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빽빽하다. 이외에도 가족을 위한 기도제목, 지인들을 위한 기도제목, 중보기도요청을 받은 기도제목,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그리고 거창하지만 인류를 위한 기도제목도 빼곡히 적혀 있다. 제목별로 맨 위에 구분하는 스티커를 붙여놓고, 생각날 때마다 추가하고, 응답될 때마다 하나씩 지워나간다. 

그런데 요즘 기도를 해도 영혼에 만족이 없고,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는 것을 느낀다. 습관적으로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말하지만, 하나님과 교통하는 느낌을 잃어버린 채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다 기도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존 번연의 하늘 문을 여는 기도>를 다 읽고 나는 내 수첩에 적힌 기도제목들을 모두 뜯어서 내버렸다. ’나’를 위한 계획, ’가족’을 위한 소원, 지체를 위한 것도, 공동체를 위한 것도, 교회를 위한 것도, 인류를 위한 고상한 기도제목까지 모두 ’내 생각’ 속에서 나온 것들! 미련 없이 찢어버렸다.

오랜 신앙생활을 경험으로 ’기도는 어떠해야 한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는 것>만큼 실제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존 번연의 하늘 문을 여는 기도>를 읽으며 영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다시 새겨보았다. 존 번연은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한 중요한 첫째 요소로 ’신실함’을 꼽고 있다. 하나님은 신살함이 없는 어떤 기도도 받지 않으신다.  존 번연이 말하는 ’신실함’이란 <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쏟아붓는> 기도를 말한다. 하나님께 내 영혼을 쏟아붓는 기도! 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되내어보았다.

신실함이 있는 기도의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의 관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기도 자리에서 잠잠히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 조급한 마음은 늘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자마자 다급하게 나의 ’요청’을 쏟아놓기에 바쁘다. 

존 번연은 성경적 기도, 즉 성경에 나오는 기도문을 모범으로, 그리고 기도에 관한 성경의 증언과 가르침을 토대로 기도의 성경적 원리를 명확하게 제시해준다. 그 가르침 중에 <기도할 때 오직 하나님만이 그 영혼 속에 남아 있어야 하며,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이 지극히 당연하고도 평범한 진리 앞에 오래도록 머물며 눈물로 회개해야 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내 뜻대로 간구하며 끝내버리는 초보적인 기도 수준으로 다시 되돌아가 영적인 잠을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심장이 차가워지도록 정신이 번쩍든다. 나태하고 형식적인 나의 기도! 

<존 번연의 하늘 문을 여는 기도>의 내용이 그대로 내 고백이, 내 기도가 되도록 나는 소리내어 읽었다. 존 번연의 가르침을 따라, 성령님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내가 기도를 단지 흉내 내며 중얼거리고 있지 않도록 나의 영혼을 "깨워 주옵소서"라고 간구한다. "성령의 총명으로 마땅히 빌 바를 알게 하옵소서"라고 엎드려 간구한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은혜의 보좌 앞!
그 은혜를, 그 자리를, 그 특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한 가지 했다. 그것은 기도 후에 기도제목을 적는 것이다! 책과 함께 받은 <기도수첩>이 있는데, 이것을 활용하여 하나님께 기도 드린 후, 마음에 결정되고 정리된 기도제목을 적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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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잔씨
류승희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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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이 이젤을 세웠던 그림의 현장으로 세잔을 찾아 떠나는 여행


모네의 눈부신 빛에 마음을 뺏긴 뒤로는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무조건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잔의 것은 터치가 다소 거칠다는 것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세잔? 많이 들어본 화가 같은데 정작 아는 것이 없는 화가!

<안녕하세요, 세잔씨>는 화가의 작품보다는 화가 자체에 더 관심이 많은 나 같은 독자가 반길 책이다. 이 책은 세잔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가의 인생 ’이야기’는 미술이나 화법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이 책은 화가의 삶을 조명하는 한 편의 다큐처럼 그의 숨결이 살아있고, 그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을 찾아 그의 생애사를 따라 여행하는 컨셉으로 집필되었다. 세잔이 이젤을 세웠던 현장, 즉 세잔의 그림이 그려진 현장을 답사한다. 세잔의 화폭으로 옮겨진 ’원형’을 보는 일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그림 속 실제 현장 속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마법처럼, 그림이 살아서 움직인다. 2006년이 그의 서거 100주년이었다고 하는데, 작가가 직접 찍어 그의 작품과 비교한 사진을 보면 세잔의 때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풍경이 실로 놀랍고 신기할 정도이다.

세잔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엑상프로방스로 향하는 길에서 시작되는데, 직접 글을 쓰고 사진도 찍은 작가 류승희는 이 여행이 우울했다고 고백한다. 미술시장에서 세잔은 피카소, 반 고흐와 함께 경매가가 가장 높은 화가에 속하지만, 그의 생애는 저주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불운하다는 것. 한마디로 비운의 삶을 살았던 화가이기 때문이란다. 

세잔의 가장 큰 시련은 아버지와의 불화가 아니었나 싶다. 한 모직물상의 직원에서 은행장이 되기까지 어렵게 자수성가한 세잔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강하고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였는지 이런 에피소드가 남아 있다고 한다. 한 번은 기차를 놓친 세잔이 3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을 뛰어서 도착했다. 까다로운 아버지가 가족 식사에 참석하라는 절대적인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때 세잔은 서른아홉 살이었다(작가는 이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는지 두 번이나 언급한다/46,187).

작품을 찢어대고 쉽게 노하던 돌발적인 성격의 세잔의 아버지는 죽어서 유산을 남겨주기 전까지 아들을 지원해주지 않았고, 세잔은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 재밌는 것은, 유로화로 바뀌기 전 프랑스 지폐 30프랑에 30대의 세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고 한다. 은행장 아버지를 거역하고 평생 고통을 짊어져야 했던 세잔이 역설적이게도 지폐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세잔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1878년에서 1887년까지로 경제적으로도 가장 어려웠고, 작업에서도 새로운 조형세계를 찾고자 분투하던 시기이고, 쉽게 폭발하는 괴팍한 성격은 더 심해져서 늘 주위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아들 폴은 병이 났고 아내도 앓아누웠다. 세잔은 22년 동안 거의 매해 <살롱>에 출품했고,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거절당했다. 

세잔에게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그의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어떻게 그런 성격을 가지고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세잔은 낭만적이면서도 화를 잘 내는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는데, 주변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정말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성격과 정신은 고독으로 서서히 망가져갔는데, 가뜩이나 거친 언행과 쉽게 화를 내고 격해지는 정도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난폭해졌고, 화가 나면 그리다 만 풍경화를 던져버리고 돌아오기 일쑤였고 나이프로 그림을 찢는 일이 허다했다고. 그리고 대단한 일에도, 또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그는 이렇게 외쳤단다. "이 소름끼치는 인생!" 

그런데 솔직히 이 정도로 ’저주 받은 화가’라고 하기에는 좀 과장되지 않나 싶다. 고갱이나 카라바조 같은 화가도 있었는데 말이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아주 참을성이 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예술에 관해서 만큼은 대단히 참을성이 많았다는 것이다. 세잔은 그 참을성으로 그는 결국 전설이 되었다. 피카소는 그를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했고, 미술사는 그에게 '근대회화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주었으며, 그의 그림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은 1958년에는 258만 프랑에 경매되었다(사실 어느 정도의 액수인지 감이 잘 안 온다).

책을 덮으면서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 을 읽어봐야겠다는 계획으로 호기심이 이어진다. 이 작품이 모네를 비롯한 당대의 모든 화가를 화나게 했다고 하는데, 세잔은 이 <작품>을 읽고 졸라를 용서할 수 없었고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결국 이 일로 세잔은 평생 절친이었던 졸라와 결별했다.

저자는 세잔의 생애 중에 단 한 장면만 선택해야 한다면, 수많은 욕설과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붓질을 했던 세잔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아마도 그 장면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세잔이 이젤을 폈던 장소는 지금도 고독과 자연만이 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소리와 물소리밖에 없다. 자연이 세잔의 유일한 벗이었다"(185). 실패와 야유와 비난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강렬한 햇살 아래 끊임없이 붓질을 하는 그의 거칠고 고독한 붓질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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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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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강렬하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은 책일까?
부제가 책의 소재와 내용을 알려준다.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그런데 이상하다.
이 책,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렸다는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 굽쇼?>를 열심히 읽었는데,
내 안에 피 끓는 애국심이 물결친다.
이 책을 읽으며 난데없이 난 애국자로 거듭나고 있다!

저자 홍동원.
이분 ’구랏발’(이분 표현을 빌자면)이 장난이 아니다.
1961년생이신데 패기는 청춘을 부끄럽게 하고, 
포스는 웬만한 독설가 저리 가라이다.

미적 감각과 창의력은 디자인의 기본 중의 기본이니
두말 하면 입만 아플 뿐이고,
디자인과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체력인가보다.
저자와 그 일당들은 밤 새우는 것을 일반인 잠자듯 하시는 것 같다.

TV에서 세계의 디자인에 관한 무슨 다큐를 보고 난 뒤,
이제 디자인이 권력인 시대이구나 생각했는데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 굽쇼?>를 읽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인가 보다.
저자 홍동원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디자인이라는 작업은 노가다를 방풀케 한다. 

이 책은 다지인에 디자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디자인에 경제가 있고, 경제의 또다른 이름인 자본주의가 있고,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고, 환경이 있고, 사람이 있고, 생활이 있고, 또 정치가 있다.
그리고 이 책만의, 그리고 홍동원 선생님만의 독보적인 애국심이 있다.
선생님의 공짜 달력을 좋아하고,
얼마전 우리나라 자동차 번호판 디자인이 새로 나왔을 때
저게 뭐냐고 다짜고짜 비난했던 일이 죄송스러워진다.
선생님의 공짜 달력이 그렇게 단가가 쎈 줄 몰랐고,
자동차 번호판 디자인을 할 때
1자를 4자로 쉽게 만들 수 있다든지, 3자를 8자로 쉽게 만드는 범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디자인까지 요구받는 줄 몰랐다.
(이것 말고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지만.)

노느니 그냥 글을 쓰자고, 그래서 썼다는 글인데 
신은 공평하지 않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디자이너의 감각만 아니라, 글발까지, 
그보다 더 중요한 철학과 깨어있는 의식과 박학다식한 예리함까지,
거기에 인맥 네트워크와 체력과 말발까지, 
그리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무대포 정신까지, 
너무했다.

디자인 세계에 작동하는 역학이 재밌다.
유명 디자인 뒤에 숨은 어떤 에피소드들은 신기하고 재밌고 신선하다.
어떤 에피소드들은 눈물 날만큼 감동적이고 또 뜨겁다.

나는 조직의 <교육>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
교육 교재를 기획하고 발간하는 일을 해오면서
오랫동안 출판사와 북디자이너들과 인쇄업체 사람들과 작업을 함께했다.
디자인 일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내가 아는 디자이너들은 모두가 고집불통인데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매일 새롭고 참신한 작품을 요구받지만,
자신의 틀과 색깔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을 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디자이너부터 해고 대상이 된다고 들었다.
인쇄는 유난히 사고가 많은 곳이라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

나는 매일 디자이너들과 싸운다.
좀 더 새롭고, 좀 더 참신하게, 좀 더 획기적으로, 좀 더 빠르게, 
좀 더 윗분들 마음에 들게, 그리고 좀 더 싸게! 해달라고 말이다.
모든 기획과 상품의 가치가 최종적으로 디자인에서 판가름이 나기 때문에
최대한 기를 쓰고 좋은 디자인을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들과의 작업은 늘 피 튀기는 전쟁이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디자이너들에게 많이 미안해진다.
며칠 일하고 표지 한 장 디자인비로 몇 백씩 챙긴다고 부러워했는데,
보이지 않는 그들의 땀을 알고 나니 앞으로는 디자인비를 많이 깎지 못할 것 같다.

어느 분야이든 전문가를 만나면 늘 숙연해진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 굽쇼?>를 읽으면서 나는 숙연해진다.
이런 열정으로, 이런 성실함으로,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게다가 한국적인 것,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이 배출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이 한층 아름다워지리라.
그런데 내가 크게 할 일은 없을 것 같고,
그저 진심을 담아 열렬히 응원합니다, 홍동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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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 글쓰기의 달인을 위한
로버트 그레이엄 외 지음, 윤재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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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언론의 고시의 꿈을 접고 뜬금없이 작가가 되겠다며 방송국의 ’아카데미’에 다닌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경쟁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고,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친구는 M 방송국의 작가가 되었다. 작가 수업은 어떻게 받나 궁금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훈련 강도가 높았다. 그중에서 가장 나를 질리게 했던 것은 프로그램마다(드라마, 예능, 뉴스 등) 한 편씩 선정해서, 그 한 프로그램에 나오는 모든 대사와 자막과 지문(스스로 만들어 넣어야 한다)을 대본으로 써오는 훈련이 있었다. 매일 한 편이었는제, 일주일에 한 편씩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는 그 과제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그 과제가 얼마나 탁월한 훈련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문인의 나라라는 문화 안에 살아서 그런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것을 떠나서 글 쓰기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학부 때, 공대에서 문과로 편입한 분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부분이 ’논술 시험’이었다. 제목 하나 놓고 커다란 시험지를 앞뒤로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 몇 장을 더 받아 답안을 작성하는 친구들을 보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냐며 의아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은 <논술>이 입시전형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특별한 관심이나 재능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글쓰기는 누구나 익혀야 할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기안 문구 한 줄을 쓰는 일에도 쩔쩔매는 후배들을 많이 본다.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나는 제목과 함께 어마어마한 목차에 반해서 이 책을 선택했다. 글쓰기의 준비 과정부터 핵심적인 테크닉은 물론, 출판에 관련된 제반 사항과 작가로서의 철학 등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 두루 다루어준다. (그러나 계약금, 대리인, 서점과의 협상 등과 같은 출판과 관련된 부분은 개념을 익히고, 우리나라 출판문화와 관례를 따로 알아봐야 할 것이다.)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명확한 개념과 함께 필요한 원리를 간단하지만 꽤 세부적으로 다루어준다는 점이다. 설명과 함께 예시문도 인용되어 있어 개념과 원리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정독을 한 번 하고 필요할 때마다 사전처럼 찾아 읽어도 좋을 책이다.

나에게 재밌고 새로웠던 것은, <글쓰기 아이디어>에서 낱말을 나열할 때 자음순으로 기록해보자’라는 아이디어이다. "개미, 노란색, 다리미, 리듬, 망아지, 바람, 사람, ... 이런 식으로 말이다. ㅎ에 다다르면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읽으며 마음에 드는 낱날 세 개를 골라보라. 구체적인 낱말 두 개와 추상적인 낱말 하나를 선택하고, 이 세 낱말을 사용해 문단을 작성하자. 몇 번 반복해서 시도해보고 같은 단어를 사용해 문단을 몇 개 써보자. 모든 문단은 글의 시작이 될 수 있다"(20).

글을 쓴다는 것은,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고, 열심히 관찰하과 열심히 쓰고,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다니고(여행 등) 열심히 쓰고(기록하고), 열심히 보고 열심히 쓰고, 삶의 모든 것을 글로 연결시키는 작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글을 쓴다는 것은 열심히 사는 일이다라는 다소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글이란 스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뭔가 글로 담아낼 것이 있는 삶의 양분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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