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 조지 모리슨의 주옥 같은 저녁 설교
조지 모리슨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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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이 요란스럽다. 무서운 속도로 퍼지며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 끔찍한 범죄, 다툼이 끊이지 않는 정치권, 하루 하루가 불안한 경제 등등 쉴새 없이 들썩들썩거리며 세상이 요동치고 있다.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며 대책을 논의해보지만 불안은 더욱 깊어갈 뿐이다. 세상이 하도 떠들썩하니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 잠잠히 주님을 바라는 일이 쉽지 않다. 세상과 함께 요동하는 마음은 주님 앞에서도 좀처럼 고요해지지 않는다. 

이러한 때에 귀한 책을 만났다. 전도서의 전도자와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하는 예리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을 들었다. 조지 모리슨 목사님의 저녁 설교 모음집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는 대략 100전에 선포된 설교 말씀인데, 놀라운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들어야 할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조지 모리슨 목사님의 설교는 "청중의 지성과 감성을 존중한 창조적 설교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는데, 한편 한편 설교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것이 정확한 평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 교회의 강단에서는 전문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설교, 청소년 설교, 청년 설교, 장년 설교, 노년 설교 등 설교를 듣는 대상의 눈높이에 맞춘 말씀이 선포되는 경우가 많다. 목회자들은 공감을 하겠지만 다양한 계층과 연령층의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설교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조지 모리슨 목사님의 설교는 계층과 연령은 물론 시대를 뛰어 넘는다. 문화까지 초월한다. 그것은 조지 모리슨 목사님의 설교가 '복음의 진수',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언어'와 같은 감각으로 선포되는 조지 모리슨 목사님의 설교는 현상을 분석하고 성경을 접목시키는 눈이 예리하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설교에 마음이 베이지 않는 것은, 부드러운 언어를 통해 깨우침을 주고, 감각적인 언어를 통해 우리 마음이 은혜에 푹 잠기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설교 한편, 한편이 얼마나 깊이 있는 묵상에서 나온 말씀인지 조지 모리슨 목사님의 본문으로 사용한 성경 구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또 주목하지 않은 채 스쳐 지나는 말씀을 통해 놀라운 은혜의 진리를 알려 주신다. 세 편의 설교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첫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행 7:32)는 구절을 통해 '영원히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설교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선포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각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를 따로따로 들으시는 개개인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조리 모리슨 목사님은 이것이 자연 종교과 계시 종교 간의 한 가지 큰 차이라고 설명하신다. "자연 종교가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 하나는 한 영혼을 돌보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다"(p. 13). 나는 이 설교를 통해 내 마음의 짐, 즉 오직 나만이 질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의 짐을 돌보시는 하나님과 만났다. 

또 한편, '그물을 기우시는 분'이라는 제목의 설교는 베드로가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라고 할 때 사용된 단어가 그물 깁기에 사용한 단어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물처럼 마모로 인해 찢어진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서 기워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요, 은혜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설교는 본문 말씀이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사 40:28)이다. 조리 모리슨 목사님은 성경 기자들이 위로의 근원으로 자연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에 의문을 가지셨다. 그들이 위로나 인도를 구할 때 언약의 하나님이 아닌 하늘과 땅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조지 모리슨 목사님이 찾은 진리는 이것이다. "자연은 하나님의 직조된 옷"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경이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를 읽으며, 설교자로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에 대한 자기 반성을 해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필요를 채워주는 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는 하나님의 존전 앞에 고요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소망하도록 이끌어준다. 

또 하나, 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는 가르침은 서문에 소개된 조리 모리슨 목사님의 당부이다. "젊은 설교자들은 현대 생활의 독인 서두르는 성향을 경계하는 게 좋다. 쓸데없이 부산떨며 서두르는 버릇, 사소한 일에까지 끼어들고 집착하는 작금의 풍조, 그것이 우리에게서 많은 좋은 것들을 앗아가고 있다. 내 경우, 사색하고 묵상하는 여유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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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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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모두 13번째 인격을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는 <단절의 시대>에서 정치, 경제, 교육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과거와의 단절(斷絶)로 엄청난 진통을 겪고 있는 현 시대의 혼란과 고통을 꿰뚫어보았다. 그러한 단절은 이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사이로 침투해 ’우리’를 개인과 개인으로 분리하여 놓았다. 나는 가끔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틈을 비집고 길을 걷거나, 전철을 타거나, 카페에 앉아 있으면 문득 한 사람, 한 사람이 낱알갱이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러저러한 단절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통에 세상에는 심리-상담학이 득세를 하고 있다. 출판, 영화, 교육은 물론 독서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놀이치료 등등 각종 치유 프로그램까지 심리-상담학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치유 프로그램에 거의 중독 수준으로 좇아다니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 사회에서는 심리-상담 치료에도 의료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심리-상담학의 이론이 득세를 하는 가운데 과거에 강조되어 왔던 미덕의 자리에 덕목이 대치는 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인간관계에서 겸손, 예절, 정직과 같은 개념들이 강조되어 왔다면, 요즘은 경청, 이해, 공감, 격려 등의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이해하주고,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여 ’관심’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낱알갱이로 살아가는 세상에 ’진정한 관심’이야말로 서로의 삶을 이어주고 보듬어주는 중요한 가치요, 능력이 아닐까.

<13번째 인격>은 그러한 관심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채 인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살아가는 한 소녀(치히로)와 초능력에 가까운 공감능력을 타고난 미모의 여성(유카리)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유카리는 심리학 용어로 ’엠파시’의 능력을 가진 ’엠파스’이다. 다른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엠파시’라고 하고, 이처럼 상대의 감정을 간파하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엠파스(empath)라고 부른다고 한다. 엠파스인 유카리는 상대가 강렬한 감정적 체험을 반추하고 있을 때 뇌리에 영화를 보는 것처럼 뚜렷하게 시각적인 상이 맺히거나, 자신이 그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모든 것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종종 한다(p. 24). 

엠파스인 유카리는 대지진 피해를 입고 대피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 치료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 여섯 살 소녀인 치히로를 만난다. 유카리의 엠파시는 치히로가 다중인격으로 살아가는 ’해리성동일성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인 것을 감지해낸다(참고로, 정신과에서는 다중인격을 인정하지 않고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한다는 설명이 책에 나온다). 치히로를 돕기 위해 나선 유카리는 엠파시를 통해 그녀가 뿜어내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의 아픈 사연과 마주치며 그녀 안에 살고 있는 인격들과 차례로 만난다. 

다중인격의 치히로, 그녀는 다섯 살에 함께 타고 있던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트라우마를 안게 되고 이후 철저하게 방치된 채 살아왔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양육에는 무관심한 작은 아버지 부부, 게다가 이지메의 고통과 작은 아버지의 성적 학대까지,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지만 누구의 관심과 돌봄도 받지 못했다. 텅빈 집 마당에 있는 ’페스’라는 개에 대한 치히로의 공포는 한 소녀의 극에 달한 외로움과 불안을 보여주는 듯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치히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 그것을 담당할 인격을 하나씩 만들어냈다. 성처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과 공포와 분노, 치히로는 그 복잡한 감정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치히로의 ’13번째 인격’은 이야기의 핵을 차지한다.

이야기의 결말은 그야말로 ’헉!’ 하는 신음소리가 날만큼 공포스럽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못하겠지만 유체이탈 현상과는 별개로 ’13번째 인격’을 통해 고통에 대처하는 우리의 감정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양식을 보면, 어쩌면 우리는 모두 13번째 인격을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터리한 ’13번째 인격’ 때문에 이 소설이 호러물이 되고, 갑자기 임사체험과 유체이탈 현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는 스토리 전개가 아쉽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심리-상담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치밀하게 연구한 작가의 노력이 곳곳에 보이는데, 간혹 이론적인 설명이 이야기에 녹아들지 않고 ’원형’ 그대로 끼워넣어져 이야기의 흐름을 깨고 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살짝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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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진로를 바꾼 40가지 위대한 실험 - 그들의 실험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김기태 지음 / 하늘아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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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나는 항상 물리학이라고 대답한다. 어렸을 때, 완전히 몰입해서 보았던 외화 '맥가이버'가 내게 '물리학'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위기 때마다 기발한 방법으로 탈출을 하고 문제를 하는 맥가이버의 능력이 상당 부분 물리학 이론을 응용한 것임을 알고, 그때부터 '물리학'이라는 학문은 내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실제로 배우는 '물리' 과목은 맥가이버가 보여주는 흥미진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 다닐 때 '물리' 시간에 무엇을 배웠나 돌이켜보니, 원리에 대한 이해나 실험보다 암호 같은 공식을 계속 암기하고, 공식에 대입해 문제를 풀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맥가이버 영상을 보여주며 이론을 설명해주었다면 훨씬 흥미롭게 공부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물리학 교육은 얼마나 진보했을까? 궁금하다. <물리학의 진로를 바꾼 40가지 위대한 실험>의 '머리말'을 읽어보면, 물리학 교육 방법이 내가 자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여전히 '이해'보다는 이론적인 교육에 치우친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물리학의 진로를 바꾼 40가지 위대한 실험>의 저자 김기태 선생님은 "과거 100여 년 간의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자들의 업적을 분석해 보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가 실험적으로 물리학의 원리를 증명해보인 데서나 응용한 데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론보다는 실험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교육은 실험적인 면이 매우 취약하다는 평가이다. 옛부터 서책을 읽고 암기하며 공부하던 풍토가 있어서 그런지, 어느 분야이든 현장적이고 실험적인 교육은 '컬리큘럼'에서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왜 교육 방법은 그대로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리학의 진로를 바꾼 40가지 위대한 실험>은 저자의 의도대로 물리학의 기초실험에 대한 전문서적이나 참고서적으로 보면 적당할 듯 하다. 물리학에 큰 획을 그은 40가지 '위대한 실험'을 '역사적 배경 - 실험 내용(이론 설명) - 결과와 영향'이라는 세 가지 파트로 구분해서 정리해놓았다. 그런데 '역사적 배경'이나 '결과와 영향'말고는 몸통을 이루는 '실험 내용'(이론 설명)은 대중적으로 읽기가 어려울 만큼 전문적이고, 요약적이다. 전공자가 아닌 나와 같은 독자는 물리학의 진로를 바꾼 위대한 40가지 실험이 무엇이었는지, 즉 목차를 아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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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피터 드러커
이재규 지음 / 살림Friends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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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하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늘 '피터 드러커'를 지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내가 <청소년을 위한 피터 드러커>를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닮고 싶은 인물이라고 하면서도 그의 생애나 사상적 기반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번역된 몇 권의 책을 읽고, 또 그가 말하는 이론의 명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마치 피터 드러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피터 드러커>는 그의 '이론'이 아니라, 그의 삶과 사상을 통합적으로 보여주며 그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진의를 입체적으로 구성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피터 드러커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다는 점이 유익하다. 저자 이재규는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단골 번역자로 기억에 남아있던 이름이라,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는 제목에도 망설임 없이 선택하여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소년을 위한 피터 드러커>를 읽으며 마음에 큰 공명을 준 깨달음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로 피터 드러커는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바로 세상을 관찰하는 자세에 비결이 있었다. 그는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유복한 가정 배경 덕분에 당대의 뛰어난 인물들과 교제할 수 있는 행운을 타고 난 덕도 있지만, 그 행운의 기회를 확실한 행복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배움의 자세 덕분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피터 드러커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 배움을 얻었다. 그는 세상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명제를 하나씩 정립하여 명저를 남겼다. <청소년을 위한 피터 드러커>를 읽다 보면, 그의 이론은 어느 날 그의 연구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현장과 당대의 주요 인물들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슘페터로부터 경영학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둘째로 인상적인 것은 피터 드러커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미래를 예측하는 식견은 그가 제기한 몇 가지 주요한 질문을 통로로 하고 있다. 그가 던진 핵심적인 질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죽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든 각종 조직이 이 세상에서 제 몫을 다하면서 기능을 수행하려면 사회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자본주의 다음에 올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지식이 주요 생산수단인 지식사회에서는 기존의 두 주요한 생산 수단, 즉 노동과 자본의 미래의 기능은 무엇일까?", "내가 맡은 조직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와 의무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공헌해야 하는가?" 등이다. 그는 미래 사회를 예측하면서도 질문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다음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 경영자들이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직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 앞으로 다가올 다른 큰 변화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학문의 방향을 결정하는 탁월한 '질문'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로 인상적인 것은 피터 드러커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한 그대로 살았다. 평균 수명의 연장과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고 그는 스스로 은퇴 후 30여년 동안 왕성한 학술 활동을 하면서 수명이 길어진 지식사회의 지식근로자의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다. 피터 드러커는 이것을 다른 말로 지적 성실성(intellectual integrity)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미래사회에서 사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의 존재 목적, 지식근로자들이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이유와 삶과 '공헌'에 대한 철학, 그리고 경영은 삶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라고 하는 그의 명제는 내 생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가르침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과는 사뭇 다른 각도의 위인전 스타일이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는 가르침을 준 위대하고도 고마운 분의 이야기를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집필되어 있어 이해하기도 아주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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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연인
차오원쉬엔 지음, 김지연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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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이 온몸을 흠뻑 적시고 뼛속까지 스며들어, 
비가 그친 후에도 온몸에서 굵은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중국의 남방 유마지,
1년 내내 비가 내린다는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세 연인>도 온통 비에 젖어 있다.
한 가지 비가 아니라, 내릴 때마다 다른 모양의 비가 비를 맞는 유마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새로운 운명이,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유마지 땅에 쉴 새 없이 내리는 비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살다가 가고,
나고 죽는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시대는 변하고 흐른다.

<세 연인>의 땅에는 근현대사가 흐르고 있다.
근현대사의 변화의 소용돌이는 유난히 거세고 급하고 급격했다.
그 거세고 급격한 소용돌이에 사람들의 삶 또한 휘말려들어가,
누구는 변화의 파도를 타고, 누구는 변화의 파도에 밀리면서 
소란하고 혼란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세 연인>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세 사람의 비극적 사랑은 
유마지에서 비와 함께 시작된다.
홍수에 떠밀려 관 뚜겅을 타고 유마지에 흘러들어온 다섯 살 원조는
유마지의 대지주 정요전의 대저택에서 그의 딸 채근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채근이에게 두원조는 '작은 오빠'였다.
정씨 집안의 대저택에 들어와 채근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유마지 일대에서 가장 큰 제재소를 운영하며 정요전과 재물을 견줄만한 구반촌의 아들 
구자동이 채근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두원조와 정채근과 구자동은 함께,
비와 혁명이 만들어낸 중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세 연인>의 소재와 등장인물과 줄거리는 통속 소설의 그것처럼 진부하다.
약자가 경험하는 모욕과 그로 인해 품게 되는 독기,
근현대사라는 급격한 변화에 휩쓸린 사람들의 광기,
권력을 향한 집착과 오만과 몰락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아이러니,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역사의 한 단면이 예리하고 집요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세 연인>은 전혀 다른 감성으로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햇빛이 투명한 날에 들판에 내리는 여우비처럼,
감각적인 언어의 리듬이 슬픔마저도 아름다운 빛을 띄게 만든다.
작가의 아름다운 언어는
때로 폭우가 몰아쳐 온 땅을 진흙탕으로 휩쓸어버리는 더럽고 가혹한 운명도
천천히 천천히 호흡하며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통곡 같은 빗물, 소리 없는 울음 같은 빗물, 환희의 빛 같은 <세 연인>의 빗줄기가
100년을 살지 못하면서도 마치 천 년, 만 년 이 땅에서 살아갈 듯
악착을 떨며 사랑하고 슬퍼하는 인생의 어리석음을 방울방울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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