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 연인
차오원쉬엔 지음, 김지연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빗물이 온몸을 흠뻑 적시고 뼛속까지 스며들어,
비가 그친 후에도 온몸에서 굵은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중국의 남방 유마지,
1년 내내 비가 내린다는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세 연인>도 온통 비에 젖어 있다.
한 가지 비가 아니라, 내릴 때마다 다른 모양의 비가 비를 맞는 유마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새로운 운명이,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유마지 땅에 쉴 새 없이 내리는 비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살다가 가고,
나고 죽는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시대는 변하고 흐른다.
<세 연인>의 땅에는 근현대사가 흐르고 있다.
근현대사의 변화의 소용돌이는 유난히 거세고 급하고 급격했다.
그 거세고 급격한 소용돌이에 사람들의 삶 또한 휘말려들어가,
누구는 변화의 파도를 타고, 누구는 변화의 파도에 밀리면서
소란하고 혼란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세 연인>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세 사람의 비극적 사랑은
유마지에서 비와 함께 시작된다.
홍수에 떠밀려 관 뚜겅을 타고 유마지에 흘러들어온 다섯 살 원조는
유마지의 대지주 정요전의 대저택에서 그의 딸 채근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채근이에게 두원조는 '작은 오빠'였다.
정씨 집안의 대저택에 들어와 채근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유마지 일대에서 가장 큰 제재소를 운영하며 정요전과 재물을 견줄만한 구반촌의 아들
구자동이 채근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두원조와 정채근과 구자동은 함께,
비와 혁명이 만들어낸 중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세 연인>의 소재와 등장인물과 줄거리는 통속 소설의 그것처럼 진부하다.
약자가 경험하는 모욕과 그로 인해 품게 되는 독기,
근현대사라는 급격한 변화에 휩쓸린 사람들의 광기,
권력을 향한 집착과 오만과 몰락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아이러니,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역사의 한 단면이 예리하고 집요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세 연인>은 전혀 다른 감성으로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햇빛이 투명한 날에 들판에 내리는 여우비처럼,
감각적인 언어의 리듬이 슬픔마저도 아름다운 빛을 띄게 만든다.
작가의 아름다운 언어는
때로 폭우가 몰아쳐 온 땅을 진흙탕으로 휩쓸어버리는 더럽고 가혹한 운명도
천천히 천천히 호흡하며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통곡 같은 빗물, 소리 없는 울음 같은 빗물, 환희의 빛 같은 <세 연인>의 빗줄기가
100년을 살지 못하면서도 마치 천 년, 만 년 이 땅에서 살아갈 듯
악착을 떨며 사랑하고 슬퍼하는 인생의 어리석음을 방울방울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