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프 1 - 쉐프의 탄생
앤서니 보뎅 지음, 권은정 옮김 / 문예당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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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방문은 열렸다, 주방의 일급비밀을 폭로하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가급적 해산물을 재료로 한 요리를 주문하지 말라!" 중국 음식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 지인의 조언이다. '고급' 중식당이 아닌 곳에서는 해산물을 재료로 한 요리 주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재료 회전이 느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선한 해산물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또 하나, 집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내 친구는 절대로(!) 김밥을 사먹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푹푹 찌는 무더위에 김밥을 먹는 것은 김밥이 아니라 대장균 덩어리를 먹는 것이라며 말이다. 

가끔 TV에서 한 번 손님상에 올랐던 재료(반찬)를 재활용하는 식당이나 끔찍할 정도로 비위생적인 주방의 모습을 보여주어도, 일부(!) 식당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쉐프>를 읽고 나서는, 외식을 할 때마다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음식이 이 상에 오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을지 말이다. 원산지는 둘째 치고, 재료들을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특히 요리에서 홍합을 발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손질은 잘 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으니 설마 설마 하며 외식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27년을 미국의 저명한 식당들에서 주방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맨해튼의 별 두 개짜리 레스토랑에서 수석 주방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저자 앤서니 보뎅은 <쉐프> 1, 2권을 통해 "식당의 급소라 할 수 있는" 주방의 일급비밀을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 최장기 베스트셀러이자 세계 18개국에 번역 출간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나는 표지와 제목만 보고 이 책이 '소설'이라고 덜컥 혼자 결론을 지어버렸다. 책을 받아 '이야기를 시작하며'를 읽을 때까지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한 소년이 요리사를 꿈꾸게 된 추억담을 시작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주방의 진실과 마주하며 적잖이 당황했다. <쉐프>는 소설이 아니라, 르뽀이다!


"TV 스타 쉐프의 팬들, 그리고 소위 식도락가들은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유니폼을 입고 어느 때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대령하길 즐겨하는 사랑스럽고 껴안고 싶은 존재로 주방장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11).

<쉐프>의 저자 앤서니 보뎅은 주방의 진실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전혀 다르다. TV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낭만적인 열기로 가득한 주방과는 달리. "매일매일 쏟아져나오는 주문"에 맞춰 "똑같은 방식으로 요리를 해서 담아내는" 실제 요리의 세계는 고달프고 힘든 작업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유니폼"을 입은 멋진 쉐프를 상상하지만, 앤서니 보뎅은 음식 얼룩으로 더러워진 유니폼을 입고 쉴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느라 굵은 땀방울을 줄줄 흘리며 일하는 진짜 주방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그저 식당의 급소이자 가장 후미진 구석, 그간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주방의 진실에 대해 털어놓고 싶을 뿐이다"(21).

"일어나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한두 시간을 열나게 자판을 두드렸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써 갈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거침이 없다. 문 닫힌 뒤쪽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요리의 과정과 군대처럼 질서정연하면서도 난장판인 주방의 '하급문화'가 만들어내는 은어들, 스타 쉐프들에 대한 험담까지 거침 없이 쏟아진다. 그렇다고 '폭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요긴한 주방 도구들에 대한 설명, 필수적인 양념들에 대한 설명, 식당 오너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전하는 '경고', 성공적인 식당 운영의 법칙까지 다룬다. 식당과 주방에 관한 것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공개하기로 작정한 사람 같다.

그러나 역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 할 수 있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관한 것들이다. "먹기 전에 의심하라"(115-133)는 부분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와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외국 여행을 갈 수도 있는 일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저자가 폭로하는 몇 가지 규칙 중에 '월요일 생선요리 주문은 미친 짓'(116)이라든지, '웰던'을 주문하는 것은 주방장의 쓰레기를 먹어치는 행위(124)라든지 하는 것은 다른 음식을 주문할 때도 응용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규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갈한 그릇에, 정성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정갈하게 담아낸, 그런 음식을 먹고 싶다면 엄마에게 가야할 것 같다. 일급 요리사인 저자도 장모님의 소박한 음식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앞으로 소스에 버무려져 나오는 샐러드는 절대 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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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천하 손자병법 시그마북스 동양고전 시리즈
도설천하·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 엮음, 이현서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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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다, <손자병법>이 전하는 이기는 기술!


<도설천하 손자병법>을 읽고 있으니 옆의 동료가 한마디 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전쟁을 참 좋아해요!" 나는 "5천 년 역사 동안 수많은 외침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침략 전쟁을 한 적이 없을 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후예인데 무슨 말을 그리 살벌하게 하느냐?"고 교과서적인 반론을 펼쳤다. 그랬더니 그 동료가 말하기를,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우리가 썼던 말들을 보란다. '허정무 사단', '태극 전사', '원정 16강', '삼바 군단', '무적함대', '오렌지 군단', '전차 군단' 등 우리는 축구를 운동으로 보지 않고 전쟁으로 여긴다는 증거를 들이댄다. 뿐만 아니라,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조폭과의 전쟁, 교통사고와의 전쟁, 귀성전쟁, 입시전쟁, 심지어 살과의 전쟁 등 사회 곳곳에 전쟁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쟁 같은 사랑'이라는 유행가 가사까지, 삶이 온통 전쟁이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병서라는 <손자병법>이 지금까지 유효하게 읽히는 이유도 그것일까. 종전이 아니라 휴전 중인 한반도에서, 우리는 매일 무엇과 치열한 전투를 하며 살아가니 말이다.

<손자병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영학에서 다루는 '조직 리더십' 때문이다. 몇 해 전, 경영학 과목을 수강하며 '조직 리더십'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업의 조직 경영을 연구하는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손자병법>이 전하는 '군대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Organizational Leadership>이라는 책을 보면, <손자병법>이 전하는 전쟁의 기술과 전략에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 예를 들면, <손자병법>은 "백만 대군의 생사가 한 사람(리더)에게 달렸다" 하여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전한다.  나아가, 적의 퇴각로를 열어두어 퇴각하는 적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은 '협상'의 기술에서 응용한다. 파부침주(破釜沈舟)라 하여 생존을 위해 싸움에 헌신하도록 아군의 퇴각로를 차단하는 것은 고용인들에게 상당량의 중요 주식 지분을 보유하게 하여 헌신된 노동력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응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산전수전(山戰水戰)에서는 현장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으라는 교훈을 길어올린다. 한마디로, 동양의 고전의 가치를 서양의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앞서나가는 학문 중에 하나라고 자부하는 분야에서 말이다.

시그마북스의 <도설천하 손자병법>은 구성이 독특하다. '손무'의 것이냐, '손빈'의 것이냐 하는 저자 논란이 있었음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이 책에는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손자병법>뿐만 아니라, 부록으로 <손빈병법>까지 수록하였다. 관심 있는 독자는 두 <병법>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본문은 '개론적인 설명'과 함께 한문으로 쓰인 '원문'을 그대로 실어주고, 이어서 한글 '음독'(!)을 달고, '주석'까지 달아, 원문을 '해석'한 후에, '해설'은 물론 '경전고사'라 하여 역사에서 실제 사례까지 제시하며 그 '고사분석'까지 해주고 있다. 한문을 몰라도 리듬 있게 음독을 읽으면 고전을 직접 있는 맛을 느낄 수 있고(^^;), 원전과 원뜻은 물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교훈과 다양한 읽을꺼리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도설천하 손자병법>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원문만 보면 <손자병법>은 생각보다 얇은 책이다. 

  

 

 


"전쟁에서 최상책이란 지략으로 적을 굴복시켜 승리를 거두는 것이며, 그 다음이 외교수단을 통해 적을 이기는 것이고, 그 다음 방법은 무력으로 진공하는 것이며, 최하의 방법은 적의 성지를 공격하는 것이다"(70).

<손자병법>은 전쟁을 위한, 다시 말해 잘 싸우기 위한 전략(기술)이 아니라, 잘 이기기 위한 전략(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손자병법>은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전쟁 없이 적군의 싸우려는 의지를 꺽으며, 가장 손실이 많고 위험한 정면 충돌을 피하고,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싸우지 말고, 얻을 게 없으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전략이 그것을 말해준다. 전쟁에서 이겨도 아군의 손실이 따르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다.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기되 '잘'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싸움을 하며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일보다 더 미련한 짓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간혹 너무 화가 나면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되어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의 파괴적인 싸움도 불사하게 될 때가 있다. <손자병법>은 '너 죽고 나 죽자'는 물론,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싸움도 상책이 아니라고 한다. 넓은 안목으로 봤을 때, 적군의 손실은 곧 나(아군)의 손실이 된다는 것이다. "적국이 온전한 채로 항복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69)이다. 승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적국의 손실마저 최소화 하려 노력해야 한다. 전쟁을 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고 상생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손자병법>은 오늘날 전쟁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 필요한 전략일지 모르겠다. 

<손자병법>은 본디 전쟁의 전략과 기술에 관한 책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교훈은 우리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과 응용이 가능하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기업의 조직 경영과 리더십에서는 물론, 외교(협상), 인간관계, 자기계발의 측면에서도 귀 기울여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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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이야기 - 시대를 뒤흔든 창조산업의 산실, 픽사의 끝없는 도전과 성공
데이비드 A. 프라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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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시대를 바꾸다!

 
성격이 괴팍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세계적인 CEO가 '픽사'라는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만나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이야기는 단숨에 나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그동안 '픽사'는 스티브 잡스의 그늘 아래 가려져 있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 신화라는 거대한 물줄기 어디쯤에서 발견하는 하나의 커다란 지류 정도였다고나 할까. <픽사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스티브 잡스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중심이 아닌, <픽사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내가 기업의 성공 신화를 읽기 좋아하는 것은, 상상의 세계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고, 전쟁보다 더 치열한 생사를 건 전투가 있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고, 영웅보다 더 빛나는 열정의 사람이 있고, 그렇게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벅찬 감동과 환희를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제작사인 <픽사 이야기>는 그들이 만들어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픽사의 성공 스토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 가운데 하나는, 픽사를 이끈 사람들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전통적인 기준으로 볼 때) 한결같이 패배자였다는 점이다"(27).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디즈니에 입사했지만 해고 당한 래스터, 그래픽을 전공한 대학원생으로서 썩 괜찮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었고 결국에는 스스로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하게 된 캣멀, 강단에 있다가 제록스의 저 유명한 팰러앨토 연구센터에 들어간 뒤에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되었던 스미스, 애플컴퓨터에서 밀려나면서 굴욕과 고통의 쓴맛을 겪어야 했던 잡스, 이들이 모여 일구어낸 <픽사 이야기>는 '꿈, 도전, 역경, 실패, 열정, 성공'이라는 감동적인 꿈의 도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는 외롭다. 사람들은 앞선 '기술'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기술의 발명가가 아니라 그 신기술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기술만으로도 얼마든지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꿈이 아니었다. "이들은 기업가가 아니라 야먕을 품은 영화 제작자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117). 첨단 기술의 컴퓨터와 감성적인 영화의 만남! 그것은 아무도 꿈꾸보지 못한 것이었고, 누구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꿈 하나 때문에 이들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고, 전문가들도 고개를 내젖는 불확실에 뛰어들었다. <픽사 이야기>는 바로 그 꿈의 이야기이다. 

<픽사 이야기>의 사람들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한결같이 패배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스티브 잡스를 제외하고) 모두가 외면했던 그들의 꿈 때문이었다. <픽사 이야기>에서 가장 멋진 장면 중에 하나는 꿈에 불타고 열정을 불태우는 그들의 '열의'이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그들이지만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며 일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월급은 중요하지 않았다. 연구소 직원들은 밤과 낮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다들 자기들이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 컴퓨터 그래픽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았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단 한 시간도 허비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완전히 미쳤다. 적어도, 완전히 몰두했다"(53).

꿈은 역경도, 시련도, 실패도 멋진 이야기로 바꿔버리는 마법을 가졌다. 꿈과 성공은 열악했던 환경, 시련과 실패를 통해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이들의 성공이 단숨에 이룬 성과였다면 세계적인 부러움의 대상은 되었을지 몰라도 감동적인 신화로 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열정과 꿈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실패를 맛보았고,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며 실패를 통해 배웠다. 스키장 사고가 아니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스미스는 3개월 동안 가슴에서 발가락까지 깁스를 해야 했던 그 사고를 두고 이렇게 회상한다.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들 가운데 하나가 될 줄은 몰랐죠"(43).

<픽사 이야기>를 읽으며 설레일 정도로 멋져 보였던 장면 중에 하나는 이들의 팀워크였다. 스티브 잡스를 만나기 전, 이들의 선장이었던 루카스는 불행하게도 이들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함께하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나중에 루카스는 엄청나게 많은 직원을 필요로 하는 그래픽 컴퓨터 회사를 골칫덩이로 여기며 처분하려 하지만, 캣멀과 스미스는 오히려 같은 이유 때문에 그 팀을 소중히 여겼다. "핵심적인 역량이 한자리에 묶여 있는" 조직(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괴짜들과 동료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습니다"(54)라는 한마디가 진심으로 부럽다. 몰두할 수 있는 꿈만큼이나 그 꿈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살수록 깨닫게 되니 말이다. 

"픽사의 이야기는 운명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예술과 기술과 사업이라는 세 가지 측면의 투쟁이 한데 얽혀 있으며, 예술과 기술과 사업 차원에서 거둔 성공에 내재된 불확실성과 우연성에 대한 탐구이다. 이 이야기는 또 사회적, 경제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어떻게 서로 엮이는지, 그리고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 하더라도 역량을 효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자기 힘을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는지 들려준다. 작은 조직도 얼마든지 큰 조직을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이야기는 수학적인 정밀한 구성의 가상세계에서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길을 창조하겠다는 열망으로 똘똘 뭉쳐 함께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 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마침내 꿈이 실현되는 날을 맞은 어떤 작은 집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26-27).

<픽사 이야기>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경영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어떤 영웅담보다도 신나고 흥미진진하다. 다만, 그들이 가진 이야기의 흥미진진함에 비해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책의 '스토리텔링'이 산만하게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 설명과 에피소드가 수시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서 그런지 집중력이 자꾸만 흐트러진다. 가끔씩 이야기가 끊어지고, 첨단 기술에 대한 설명은 좀 어려우면서도 지루하고, 본문의 편집방식도 가독성이 좀 떨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사람들의 가슴 뛰는 열정과 꿈 같은 성공 신화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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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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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이지만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걷기 여행!


걷기 여행이 열풍이다. 공원에 운동하러 갈 때에도 공원까지 차를 타고 가고, 가까운 은행이나 마트에 갈 때에도 차를 타고 가는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걷기 여행에 열광한다는 사실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인의 이혼 사유 목록을 보다가 '과도한 조깅'이라는 항목을 보고 빵 터진 적이 있는데, 편리를 추구하며 열심히 몸을 움직일 기회를 줄이고 있으면서도 또 애써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우리의 삶이 좀 애처롭기도 하다.

걷기 여행은 미친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삐져나와 한껏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얼마 전, 걷기 여행을 한 차례 시도한 나는 그것이 '고행'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몇 시간을 채 걷기도 전에 물집이 잡히고, 근육이 뭉치기 시작해, 나름 야심차게 준비했던 나의 걷기 여행 계획은 그렇게 반나절만에 접혔다. 그러나 걷기 여행을 중도에 포기한 이유가 체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걷기 여행은 여행지의 생경함과 아름다운 풍경을 '더 많이' 눈에 담으려는 조급함을 떨쳐버려야 한다. 걷는 속도만큼 느리게 흘러가는 여행지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고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니 난생 처음 가본 여행지 구석구석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탐색해보고 싶은 나의 조급함과 걷기 여행과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2권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걷고 싶은 길>도 그런 우려가 먼저 생긴다. 체력과 여행 기간은 둘째 치고, 수록된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이 길을 '다' 돌아보고 싶은 나의 조급함이 걷는 속도를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일본의 걷고 싶은 길> 첫 권은 "일본 최북단의 섬 홋카이도와 가장 큰 섬 혼슈를 찾아간 이야기"이다. 저자는 잘 알려진 대도시보다 덜 알려진 곳들을 찾고 싶었고, 도시보다는 자연과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1권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일본이 이렇게 아름다운 섬 나라였나 하는 점이다. "길에서 여우나 사슴과 눈이 맞고, '곰 조심'이 일상인' 생태 환경이 감탄스럽다. 같은 초록인데, 어딘지 모르게 척박하게 느껴졌던 필리핀과 비교해보면 일본은 원시림마저 축복의 땅으로 느껴질 만큼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고풍스러운 풍경과 초록의 정경이 마음을 잡아끈다.

<일본의 걷고 싶은 길> 두 번째 책은 시코구와 시코쿠보다 더 남쪽에 자리잡은 규슈와 오키나와의 이야기이다. "일본스러운 음산함"이 신비롭게 다가오는 두 번째 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걷고 싶은 길'은 "1번 절부터 88번 절까지 번호가 매겨진 88개의 절을 따라가는 1200킬로미터의 불교 순례길"이다. 산티아고보다 더 길고 오래된 성지 순례길이라고 한다. 왕복 아홉 시간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7000년을 살아왔다는 조몬 삼나무까지, 다소 어두운 영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나라"라고는 믿지 않을 만큼 미신이 가득한 나라답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은 당장이라도 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걷기 여행은 풍경에 욕심을 내기보다 느리게 걸으며 '사색을 즐겨야' 제맛은 여행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사색하기 좋은 지형"의 나라라는 것이 눈에 띈다.

1권에 보면, 교토 아이몬지 산(175-183)에 '철학의 길'이 소개된다. "주택가 한가운데 비와코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2킬로미터 남짓한"(178) 이 길을 '철학의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교토 대학의 철학자인 나시다 기타로 교수가 이 길에서 산책을 즐겼기 때문"이란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후쿠이 겐이치 교수도 이 길을 즐겨 걸었다고 하는데, 겐이치 교수는 노벨상 수상 비법을 이렇게 전수했다고 한다. "산책하면서 드는 생각을 메모하라. 사색하기 좋은, 경사가 약간 있는 길을 걸어라"(178). 교토 대학의 총장 역시 그 대학 출신의 자연과학자들이 다섯 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비결을 묻자 '산책하기 좋은 지형'을 꼽았다고. 이렇게 보니, 참 탐나는 지형이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것들 사이의 변주를 즐길 수 있는 곳!
"이 나라에서는 익명의 여행자로 머물고 싶다는 욕망도, 이방인으로서 눈길을 받고 싶은 욕망도 모두 채울 수 있다"(129).

일본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대부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맛있는 음식, 둘째는 친절한 사람들이다.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의 저자는 여기에 한 가지 매력을 더 보탠다. 여행지로서 일본이 지닌 특별한 묘리를 이렇게 표현한다(129-132). 낯설면서도 익숙한 것들 사이의 변주를 즐길 수 있는 곳, 여행지와 일상 사이의 간극을 오갈 수 있는 곳, 숨어들기와 드러내기를 조절할 수 있는 곳!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아마도 단동을 여행할 때 조선족과 함께했던 그 편안함과 닮아 있을 듯 하다.

"이 나라를 여행하는 일은 여행과 일상 사이에 머무는 것 같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내 생김새가 이곳 사람들과 똑같기에 사람들은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쩌면 이 나라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완벽하게 익명의 존재로 남을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음식도, 정서도 우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와도 익숙한 것들과 완전히 결별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단지 내가 떠나온 곳보다 작게 말하고, 좀 더 자주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를 말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129). 그러면서도 동시에 "배용준과 이병헌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환대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나라"이다.

미래인에서 출간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은 일본의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그것을 담아낸 책이 예쁘다. 그래서 더 일본 여행에 끌리는지 모르겠다. 이 예쁜 책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는 책의 첫 장에 인용된 명언 하나가 잔잔한 내 마음을 자꾸만 들쑤신다.

"삶이란 절제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노엘 베스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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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스콧 할츠만.테레사 포이 디제로니모 지음, 정수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완벽한 가족이 아니라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하여!

 

개인화 되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가족'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또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캠프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가족의 화목과 행복을 도모하는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 대부분이 지극히 '정상적인', 이미 '행복한' 가족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사실 그런 프로그램에 가족이 함께 참여할 정도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가족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부모(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설정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혼한 가정의 자녀나 홀부모 자녀,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소외된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교회에서는 오랜 시간 '가족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공들여 준비하여 문을 열었는데, 막상 문제 가족들은 참여를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 스스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범주의 가족 구성원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가족들도 참여를 꺼렸다고 한다.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 처럼, 가족 구성원을 분리하여 실시하는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는 반면, 가족 전체를 단위로 하는 프로그램은 화목한 가족을 더 화목하게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정작 '회복'이 필요한 가족들은 '가족이 함께' 문제를 극복해나가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하나의 목표 앞으로 모두를 불러모으고,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독려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가족의 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점점 더 다양해지는 가족의 형태에 관심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또한 가족 전체가 함께 읽고, 함께 적용해보면 좋을 책이다. 저자인 '스콧 할츠만'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는 가족 전문가라고 한다. 24년 간 가족의 행복을 탐구해 왔다는 저자는 지난 2008년 2월 1일부터 12월 4일까지 '행복한 가족 설문'(Happy Family Survey)을 실시했다. 총 1,266명의 가족 구성원이 설문에 응답해주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바로 그 설문을 기반으로 하여 저자가 얻어낸 통찰을 담은 것이다. 저자는 설문의 응답자들이 공개하고 공유해 준 정보 속에서 가족을 행복으로 이끄는 절대적인 몇 가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며, 그것을 총 여덟 가지로 정리해냈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가족 가치관', '헌신과 소통', '지원과 지지', '자녀교육', '융화', '갈등해결', '회복', '휴식'이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다양해지는 현대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아들이 다니는 대학에서 '부모님 방문 주간' 행사 초대장을 받았는데, 그 초대장에는 '가족 공동체 방문 주간(전 '부모님 방문 주간')을 개최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시대에는 가족의 경계를 두 명의 생물학적 부모로 구성한다는 것에 한정하지 않는 것이다. (...) 우리 사회가 가족을 정의하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지 않으면 가족과 지역사회를 더 강하게 만들 실질적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11).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에서 저자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재혼가족 가장의 혼란'(179)이라든지 응답 사례를 통해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이 책의 저자도 짚어주듯이,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 슬픔이나 고통은 가족 구성원의 형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형태와는 상관 없는 것이다. 다만, 요즘 동성애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마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도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내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이웃으로 만날 수 있는 가족 형태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 책은 일부분, 일종의 '워크북' 처럼 활용하도록 꾸며져 있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중 첫 번째 조건인 '가족 가치관'의 경우 가족 가치관을 정하기 위해 가족 행복 리스트를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가치관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 조사를 하고 결과를 공유하며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나누는 토론 과정을 거쳐, 가족이 함께 가족 모두를 만족시킬 가치를 찾도록 인도한다. 문제는 앞서도 말했듯이 이런 작업을 가족이 함께할 정도이면 이미 그 가족은 '충분히 행복한 가족'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정작 이러한 작업이 필요한 가족은 참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가족 문제의 모순이라고 생각된다. 가족이 함께하면 좋겠지만 사정이 어렵다면, 이 책을 먼저 읽고, 가족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고, 접근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중에 '회복'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간다. 저자는 여기서 '가족 회복력'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데, 가족 회복력이란 "위기를 맞은 가족이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원래의 가족애로 돌아가는 것, 그 같은 능력"(226)을 말한다. 삶이 평탄할 때 행복한 가족이 되기는 쉽다. 문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바로 '가족 회복력'에 있다고 말한다. '행복한 가족 설문'에 참가한 사람들은 '회복력'을 가족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가장 영향력이 큰 단일 요소로 뽑았다고 한다. 만약 지수로 측정이 가능하다면 우리 가족은 가족 회복력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측정해보고 싶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가족생활의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도 읽어봄직하다고 생각된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학문적인 연구 성과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다만,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러 가지 사례들이 우리 정서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이 가지는 '가치'는 문화와 정서를 초월한다고 본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당연한 것이 너무 당연해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할 만큼 당연하다는 데 있다. 사회생활에서 경험하는 인간관계의 문제는 어떻게든 풀어보려 노력을 하면서도 가족의 문제는 그저 쌓아두었다가 한 번씩 불쑥 불쑥 폭발시키는 것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는 듯하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도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지는 당연한 사랑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 당연한 사랑을 가족이 함께 가꾸어가야 함을 말이다! 

"여기서 내가 여러분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의 주제가 '완벽한 가족'이 아닌 '행복한 가족'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 어떤 가족이든 문제의 소지는 있다. 완벽한 가족이란 없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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