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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스콧 할츠만.테레사 포이 디제로니모 지음, 정수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완벽한 가족이 아니라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하여!
개인화 되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가족'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또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캠프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가족의 화목과 행복을 도모하는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 대부분이 지극히 '정상적인', 이미 '행복한' 가족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사실 그런 프로그램에 가족이 함께 참여할 정도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가족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부모(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설정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혼한 가정의 자녀나 홀부모 자녀,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소외된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교회에서는 오랜 시간 '가족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공들여 준비하여 문을 열었는데, 막상 문제 가족들은 참여를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 스스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범주의 가족 구성원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가족들도 참여를 꺼렸다고 한다.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 처럼, 가족 구성원을 분리하여 실시하는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는 반면, 가족 전체를 단위로 하는 프로그램은 화목한 가족을 더 화목하게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정작 '회복'이 필요한 가족들은 '가족이 함께' 문제를 극복해나가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하나의 목표 앞으로 모두를 불러모으고,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독려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가족의 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점점 더 다양해지는 가족의 형태에 관심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또한 가족 전체가 함께 읽고, 함께 적용해보면 좋을 책이다. 저자인 '스콧 할츠만'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는 가족 전문가라고 한다. 24년 간 가족의 행복을 탐구해 왔다는 저자는 지난 2008년 2월 1일부터 12월 4일까지 '행복한 가족 설문'(Happy Family Survey)을 실시했다. 총 1,266명의 가족 구성원이 설문에 응답해주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바로 그 설문을 기반으로 하여 저자가 얻어낸 통찰을 담은 것이다. 저자는 설문의 응답자들이 공개하고 공유해 준 정보 속에서 가족을 행복으로 이끄는 절대적인 몇 가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며, 그것을 총 여덟 가지로 정리해냈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가족 가치관', '헌신과 소통', '지원과 지지', '자녀교육', '융화', '갈등해결', '회복', '휴식'이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다양해지는 현대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아들이 다니는 대학에서 '부모님 방문 주간' 행사 초대장을 받았는데, 그 초대장에는 '가족 공동체 방문 주간(전 '부모님 방문 주간')을 개최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시대에는 가족의 경계를 두 명의 생물학적 부모로 구성한다는 것에 한정하지 않는 것이다. (...) 우리 사회가 가족을 정의하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지 않으면 가족과 지역사회를 더 강하게 만들 실질적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11).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에서 저자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재혼가족 가장의 혼란'(179)이라든지 응답 사례를 통해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이 책의 저자도 짚어주듯이,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 슬픔이나 고통은 가족 구성원의 형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형태와는 상관 없는 것이다. 다만, 요즘 동성애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마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도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내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이웃으로 만날 수 있는 가족 형태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 책은 일부분, 일종의 '워크북' 처럼 활용하도록 꾸며져 있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중 첫 번째 조건인 '가족 가치관'의 경우 가족 가치관을 정하기 위해 가족 행복 리스트를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가치관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 조사를 하고 결과를 공유하며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나누는 토론 과정을 거쳐, 가족이 함께 가족 모두를 만족시킬 가치를 찾도록 인도한다. 문제는 앞서도 말했듯이 이런 작업을 가족이 함께할 정도이면 이미 그 가족은 '충분히 행복한 가족'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정작 이러한 작업이 필요한 가족은 참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가족 문제의 모순이라고 생각된다. 가족이 함께하면 좋겠지만 사정이 어렵다면, 이 책을 먼저 읽고, 가족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고, 접근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중에 '회복'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간다. 저자는 여기서 '가족 회복력'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데, 가족 회복력이란 "위기를 맞은 가족이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원래의 가족애로 돌아가는 것, 그 같은 능력"(226)을 말한다. 삶이 평탄할 때 행복한 가족이 되기는 쉽다. 문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바로 '가족 회복력'에 있다고 말한다. '행복한 가족 설문'에 참가한 사람들은 '회복력'을 가족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가장 영향력이 큰 단일 요소로 뽑았다고 한다. 만약 지수로 측정이 가능하다면 우리 가족은 가족 회복력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측정해보고 싶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가족생활의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도 읽어봄직하다고 생각된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학문적인 연구 성과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다만,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러 가지 사례들이 우리 정서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이 가지는 '가치'는 문화와 정서를 초월한다고 본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당연한 것이 너무 당연해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할 만큼 당연하다는 데 있다. 사회생활에서 경험하는 인간관계의 문제는 어떻게든 풀어보려 노력을 하면서도 가족의 문제는 그저 쌓아두었다가 한 번씩 불쑥 불쑥 폭발시키는 것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는 듯하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도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지는 당연한 사랑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 당연한 사랑을 가족이 함께 가꾸어가야 함을 말이다!
"여기서 내가 여러분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의 주제가 '완벽한 가족'이 아닌 '행복한 가족'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 어떤 가족이든 문제의 소지는 있다. 완벽한 가족이란 없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