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이야기 - 시대를 뒤흔든 창조산업의 산실, 픽사의 끝없는 도전과 성공
데이비드 A. 프라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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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시대를 바꾸다!

 
성격이 괴팍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세계적인 CEO가 '픽사'라는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만나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이야기는 단숨에 나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그동안 '픽사'는 스티브 잡스의 그늘 아래 가려져 있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 신화라는 거대한 물줄기 어디쯤에서 발견하는 하나의 커다란 지류 정도였다고나 할까. <픽사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스티브 잡스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중심이 아닌, <픽사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내가 기업의 성공 신화를 읽기 좋아하는 것은, 상상의 세계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고, 전쟁보다 더 치열한 생사를 건 전투가 있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고, 영웅보다 더 빛나는 열정의 사람이 있고, 그렇게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벅찬 감동과 환희를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제작사인 <픽사 이야기>는 그들이 만들어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픽사의 성공 스토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 가운데 하나는, 픽사를 이끈 사람들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전통적인 기준으로 볼 때) 한결같이 패배자였다는 점이다"(27).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디즈니에 입사했지만 해고 당한 래스터, 그래픽을 전공한 대학원생으로서 썩 괜찮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었고 결국에는 스스로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하게 된 캣멀, 강단에 있다가 제록스의 저 유명한 팰러앨토 연구센터에 들어간 뒤에 어느 날 갑자기 길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되었던 스미스, 애플컴퓨터에서 밀려나면서 굴욕과 고통의 쓴맛을 겪어야 했던 잡스, 이들이 모여 일구어낸 <픽사 이야기>는 '꿈, 도전, 역경, 실패, 열정, 성공'이라는 감동적인 꿈의 도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는 외롭다. 사람들은 앞선 '기술'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기술의 발명가가 아니라 그 신기술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기술만으로도 얼마든지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꿈이 아니었다. "이들은 기업가가 아니라 야먕을 품은 영화 제작자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117). 첨단 기술의 컴퓨터와 감성적인 영화의 만남! 그것은 아무도 꿈꾸보지 못한 것이었고, 누구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꿈 하나 때문에 이들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고, 전문가들도 고개를 내젖는 불확실에 뛰어들었다. <픽사 이야기>는 바로 그 꿈의 이야기이다. 

<픽사 이야기>의 사람들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한결같이 패배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스티브 잡스를 제외하고) 모두가 외면했던 그들의 꿈 때문이었다. <픽사 이야기>에서 가장 멋진 장면 중에 하나는 꿈에 불타고 열정을 불태우는 그들의 '열의'이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그들이지만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며 일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월급은 중요하지 않았다. 연구소 직원들은 밤과 낮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다들 자기들이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 컴퓨터 그래픽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았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단 한 시간도 허비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완전히 미쳤다. 적어도, 완전히 몰두했다"(53).

꿈은 역경도, 시련도, 실패도 멋진 이야기로 바꿔버리는 마법을 가졌다. 꿈과 성공은 열악했던 환경, 시련과 실패를 통해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이들의 성공이 단숨에 이룬 성과였다면 세계적인 부러움의 대상은 되었을지 몰라도 감동적인 신화로 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열정과 꿈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실패를 맛보았고,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며 실패를 통해 배웠다. 스키장 사고가 아니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스미스는 3개월 동안 가슴에서 발가락까지 깁스를 해야 했던 그 사고를 두고 이렇게 회상한다.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들 가운데 하나가 될 줄은 몰랐죠"(43).

<픽사 이야기>를 읽으며 설레일 정도로 멋져 보였던 장면 중에 하나는 이들의 팀워크였다. 스티브 잡스를 만나기 전, 이들의 선장이었던 루카스는 불행하게도 이들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함께하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나중에 루카스는 엄청나게 많은 직원을 필요로 하는 그래픽 컴퓨터 회사를 골칫덩이로 여기며 처분하려 하지만, 캣멀과 스미스는 오히려 같은 이유 때문에 그 팀을 소중히 여겼다. "핵심적인 역량이 한자리에 묶여 있는" 조직(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괴짜들과 동료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습니다"(54)라는 한마디가 진심으로 부럽다. 몰두할 수 있는 꿈만큼이나 그 꿈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살수록 깨닫게 되니 말이다. 

"픽사의 이야기는 운명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예술과 기술과 사업이라는 세 가지 측면의 투쟁이 한데 얽혀 있으며, 예술과 기술과 사업 차원에서 거둔 성공에 내재된 불확실성과 우연성에 대한 탐구이다. 이 이야기는 또 사회적, 경제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어떻게 서로 엮이는지, 그리고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 하더라도 역량을 효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자기 힘을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는지 들려준다. 작은 조직도 얼마든지 큰 조직을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이야기는 수학적인 정밀한 구성의 가상세계에서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길을 창조하겠다는 열망으로 똘똘 뭉쳐 함께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 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마침내 꿈이 실현되는 날을 맞은 어떤 작은 집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26-27).

<픽사 이야기>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경영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어떤 영웅담보다도 신나고 흥미진진하다. 다만, 그들이 가진 이야기의 흥미진진함에 비해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책의 '스토리텔링'이 산만하게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 설명과 에피소드가 수시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서 그런지 집중력이 자꾸만 흐트러진다. 가끔씩 이야기가 끊어지고, 첨단 기술에 대한 설명은 좀 어려우면서도 지루하고, 본문의 편집방식도 가독성이 좀 떨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사람들의 가슴 뛰는 열정과 꿈 같은 성공 신화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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