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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프 1 - 쉐프의 탄생
앤서니 보뎅 지음, 권은정 옮김 / 문예당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주방문은 열렸다, 주방의 일급비밀을 폭로하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가급적 해산물을 재료로 한 요리를 주문하지 말라!" 중국 음식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 지인의 조언이다. '고급' 중식당이 아닌 곳에서는 해산물을 재료로 한 요리 주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재료 회전이 느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선한 해산물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또 하나, 집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내 친구는 절대로(!) 김밥을 사먹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푹푹 찌는 무더위에 김밥을 먹는 것은 김밥이 아니라 대장균 덩어리를 먹는 것이라며 말이다.
가끔 TV에서 한 번 손님상에 올랐던 재료(반찬)를 재활용하는 식당이나 끔찍할 정도로 비위생적인 주방의 모습을 보여주어도, 일부(!) 식당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쉐프>를 읽고 나서는, 외식을 할 때마다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음식이 이 상에 오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을지 말이다. 원산지는 둘째 치고, 재료들을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특히 요리에서 홍합을 발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손질은 잘 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으니 설마 설마 하며 외식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27년을 미국의 저명한 식당들에서 주방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맨해튼의 별 두 개짜리 레스토랑에서 수석 주방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저자 앤서니 보뎅은 <쉐프> 1, 2권을 통해 "식당의 급소라 할 수 있는" 주방의 일급비밀을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 최장기 베스트셀러이자 세계 18개국에 번역 출간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나는 표지와 제목만 보고 이 책이 '소설'이라고 덜컥 혼자 결론을 지어버렸다. 책을 받아 '이야기를 시작하며'를 읽을 때까지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한 소년이 요리사를 꿈꾸게 된 추억담을 시작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주방의 진실과 마주하며 적잖이 당황했다. <쉐프>는 소설이 아니라, 르뽀이다!
"TV 스타 쉐프의 팬들, 그리고 소위 식도락가들은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유니폼을 입고 어느 때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대령하길 즐겨하는 사랑스럽고 껴안고 싶은 존재로 주방장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11).
<쉐프>의 저자 앤서니 보뎅은 주방의 진실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전혀 다르다. TV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낭만적인 열기로 가득한 주방과는 달리. "매일매일 쏟아져나오는 주문"에 맞춰 "똑같은 방식으로 요리를 해서 담아내는" 실제 요리의 세계는 고달프고 힘든 작업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유니폼"을 입은 멋진 쉐프를 상상하지만, 앤서니 보뎅은 음식 얼룩으로 더러워진 유니폼을 입고 쉴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느라 굵은 땀방울을 줄줄 흘리며 일하는 진짜 주방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그저 식당의 급소이자 가장 후미진 구석, 그간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주방의 진실에 대해 털어놓고 싶을 뿐이다"(21).
"일어나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한두 시간을 열나게 자판을 두드렸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써 갈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거침이 없다. 문 닫힌 뒤쪽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요리의 과정과 군대처럼 질서정연하면서도 난장판인 주방의 '하급문화'가 만들어내는 은어들, 스타 쉐프들에 대한 험담까지 거침 없이 쏟아진다. 그렇다고 '폭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요긴한 주방 도구들에 대한 설명, 필수적인 양념들에 대한 설명, 식당 오너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전하는 '경고', 성공적인 식당 운영의 법칙까지 다룬다. 식당과 주방에 관한 것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공개하기로 작정한 사람 같다.
그러나 역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 할 수 있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관한 것들이다. "먹기 전에 의심하라"(115-133)는 부분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와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외국 여행을 갈 수도 있는 일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저자가 폭로하는 몇 가지 규칙 중에 '월요일 생선요리 주문은 미친 짓'(116)이라든지, '웰던'을 주문하는 것은 주방장의 쓰레기를 먹어치는 행위(124)라든지 하는 것은 다른 음식을 주문할 때도 응용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규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갈한 그릇에, 정성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정갈하게 담아낸, 그런 음식을 먹고 싶다면 엄마에게 가야할 것 같다. 일급 요리사인 저자도 장모님의 소박한 음식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앞으로 소스에 버무려져 나오는 샐러드는 절대 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