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 철학 - 간결하고 매혹적인 철학에의 탐구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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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인, 너무도 형이상학적인"

 

영국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버크의 아포리즘이다. 프랑스 혁명을 반대한 그는 "프랑스 혁명이 성립시킨 인권선언에 대해 이와 같이 개탄"했는데, 다른 말로 말로 하면 "공허한, 너무도 공허한"이라고 한다(165). "온건한 상식에 입각하는 경험론적 입장에서의 프랑스 혁명과 인권선언은 기존의 앙샹레짐만큼이나 허황되고 공허한 형이상학적 이상주의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지금까지 서양철학사는 합리론(형이상학)과 경험론의 싸움터로 보인다. 이 두 철학사조는 영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도 각각 영향을 미쳤다. "시민사회로 이르는 정치혁명에 있어서 영국과 프랑스는 상이한 경로를 밟는다"(163). 영국에서는 왕과 부르주아가 결탁하여 귀족계급과 상층교권계급을 효과적으로 억누를 수 있었지만, 프랑스는 "어리석게도 왕이 궁극적으로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귀족과 결탁했고 이것이 피를 부르는 혁명을 불러왔다"(164). 영국이 비교적 순조롭게 구체제에서 신체제로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경험론적 전통"을 가졌기 때문이고, 버크가 프랑스 혁명이 성립시킨 인권선언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너무도 형이상학적인"이라고 개탄했던 것은 "형이상학적 기질을 가진 프랑스인들이 앙샹레짐을 뒷받침하던 합리론적 철학을 다른 종류의 합리론적 철학으로 바꾸었다는 데 있었다"(165)는 것을 이 책은 꼬집어준다. 역사를 보는 새로운 방식에 눈이 떠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내가 "형이상학적인, 너무도 형이상학적인"이라는 아포리즘의 탄생 배경을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따로 있다. 유명한 철학 아포리즘을 중심으로 서양철학사의 맥을 짚어가는 <아포리즘 철학>을 읽고 나니 철학사가 흘러내려온 물줄기를 지도를 펼쳐놓고 보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철학은 여전히 "형이상학적인, 너무도 형이상학적인" 차원의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사는 클래식 음악처럼, 철학적 논의는 여전히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고차원'에 존재하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러.나. 다시 철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바로 이것이 <아포리즘 철학>을 통해 얻은 하나의 소득이다. 여전히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지만, 딛고 올라설 벽돌 한 장을 얻었다고나 할까.

 

<아포리즘 철학>을 통해 새롭게 눈 뜬 사실이 있다면, 바로 경험론의 위력이다. 솔직히, 이제까지 경험론을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그런데 경험론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다. "존 로크, 조지 버클리, 데이비트 흄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경험론적 철학은 그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된다. 경험론적 인식론에 의해 근대는 붕괴되며 따라서 인간 이성이 지니고 있다고 믿어졌던 전능성 역시도 붕괴된다. 데카르트 이래의 지적 자신감은 커다란 타격을 입는다"(126). 또한 "버클리는 우리가 경험론을 믿는 순간 우리 지식의 보편성은 사라지며 따라서 사회적 질서도 사라진다고 말한다"(134). 앞서 영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서도 보았듯이 합리론과 경험론은 사회정치적 시스템에도 상반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합리론은 언제나 어떤 종류의 위계적 질서를 요청하고, 경험론은 언제나 극단적인 형태의 민주주의를 요청한다. 이것은 앞으로 오게될 사회정치적 시스템에서도 계속 되풀이된다"(128). 경험론은 윤리와 종교에도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 "윤리학에서 실재론은 자유의지론으로 이끌리고, 경험론은 결정론으로 이끌리듯이 신학적 경험론에서 비롯된 개신교의 이념은 예정설을 불러들인다." 또 "윤리적 결정론하에서 인간의 행위는 순간을 사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 이때 인간은 실존을 자각하게 되고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이것이 현존을 본질보다 우선적인 것으로 만들고 지금 이 순간의 열정과 분투만이 유효한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킨다"(117).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개론서 다음으로 <아포리즘 철학>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철학적 기초 지식을 가지고 읽는다면, 아포리즘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이러한 방식이 분명 높은 수준의 철학에 도달할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된다. 간명한 문장에 합축된 진리를 담은 아포리즘, 생각할수록 매력적이다. "고대 말에 인간이 죽었다면 근대 말에는 신이 죽었다"(139). 이것은 철학 아포리즘 만큼이나 인상적인 글귀이다. 나는 이것을 저자 조중걸 선생님의 아포리즘으로 기억하려 한다.

 

철학적 논의가 저기 하늘 위에서 이루어지는 수준 높은 지식인 것은 분명한데, 철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한 가지는 흄의 말처럼 "우리가 겸허해야 한다"(146)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의 제한된 경험의 테두리 내에서 지식을 형성하고 그것을 근거로 판단한다. (...) 흄은 상식에 입각하기를 권하고 자신의 습관을 잘 살피기를 권한다. 신념은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독단만큼이나 회의도 무섭고 회의만큼이나 독단도 무섭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노선을 따르든, 지식이라는 것이 머리에 담기면 담길수록 더욱 겸허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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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
박영택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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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작품'으로서의 그것은 선택받은 1%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그림 가격도 가격이지만,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미술관 나들이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요원한 일이기도 하고, 또 그림을 즐기는 사람조차도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눈을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터처블'(Intouchable)이라는 영화가 있다. '서로 닿을 수 없는' 상위 1%에 속한 사람과 하위 1%에 속한 사람이 만나 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영화는 이들의 '너무도 다른' 생활방식을 몇 가지 상징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그림'이다. 상위 1%에 속한 필립은 그림 애호가이다. 이 영화의 명대사로 꼽을 만한 그의 한마디. "사람들이 왜 예술에 관심을 갖는지 아나? 인간보다 앞선 유일한 거니까." 그러나 하위 1%에 속한 드리스는 "흰 도화지 위에 피를 토한 듯한" 그림을 몇 시간째 감상하며 멋진 작품이라 말하는 필립을 이해할 수가 없고, 그것을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사들이려는 필립을 '진심으로' 말리기까지 한다.

 

누구에게는 깊은 감동을 주는 그림이 누구에게는 그저 흰 도화지 위에 코피를 쏟아놓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느끼는 미술의 어려움이다. '언터처블'을 다시 보면, 드리스는 '이상한 그림'이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필립은 이것을 그의 친척에게 팔아주는데, 그림 애호가인 필립이 소장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어처구니 없는 작품이 비싼 가격에 팔린다. 필립의 안목만을 믿고 드리스의 작품을 비싼 가격에 구매한 아둔한 그 친척처럼, 고백하건데 나도 그림을 볼 줄 모른다. 특히 '현대미술'은 난해함 그 자체이다. 누군가는 감탄을 하는데, 도무지 그 감탄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작품이 여기 <테마로 읽는 한국 현대미술>에도 등장한다.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그림에 관한 책을 보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림에 눈을 뜨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 하나. 그저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왜 그것이 '작품'일수밖에 없는지 설명을 들으면 마치 숨어 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낸 듯한 쾌감을 느낀다.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은 상대적으로 서양의 유명한 작품보다 오히려 더 접할 기회가 드문 '한국의 미술'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과, 어쩐지 더욱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현대미술'을 다뤘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러나 나의 무식함을 탓해야 할까.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읽어내기 어려운 책이다. 

 

첫눈에 풍덩 빠져든 작품이 있다.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미술>은 총 7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한국의 현대미술을 보여준데, 그중에서 '시간'의 테마 안에 있는 윤정선(0704 11ㅣ41, 2010,)의 작품, 그리고 '전통'이라는 테마 안에 수록된 이왈종(제주생활의 중도)의 작품이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작품 해설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을 읽고 그 작품에 대해 눈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궁 속에 빨려드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난해한 문장이다. 신경을 얼마나 곤두세워 읽었는지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이왈종의 작품 해설을 잠시 옮겨본다. "자신의 몸과 자연의 생명체도 구분 없이 얽혀 있으며 매크로한 세계와 마이크로한 세계가 매순간 통합된다. 이처럼 그는 매일 비근한 일상을 살아내면서 그 안에서 작업을 한다. 작업과 일상은 맞물려 선회한다. '진리는 고고한 완성의 경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성의 불완전성 속에 내재하는 것'이란 사실을 일러주는 듯도 하다. 그것이 결국 삶이고 작업이기도 하다. 아울러 끊임없이 창조를 계속해서 자기 창진의 주체로서 살아 움직이는 본원적인 자신과 우주의 창진적 진화를 하나로 엮어나가는 것이다"(101). 아-.

 

학문으로서의 책 읽기를 쉰지 오래고, 어려운 문장을 읽어내는 훈련이 부족한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작품 해설이 오히려 암호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꼭 이렇게 어려운 말로 써야 했을까 저자를 잠시 원망도 해보았다. 그러나 나의 부족한 독해력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일. 내용은 내가 정복하기 어려운 수준의 것이었지만, "지나치게 서양 미술의 새로운 사조에 민감하게 부산을 떨기보다는 차분하게 이곳 현실과 미술계 속에서 미술에 대해, 작가란 존재에 대해 차분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는 작가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미술계에 어떤 예술가가 존재하며, 어떤 테마들이 다루어지며, 어떤 작품들이 우리에게 있는지 살펴보았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하나의 예술작품이란 사유를 촉발시키는 매개물이다. 인간의 삶에서 유래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사유하고, 이를 작가의 해석을 관통한 형상물로 빚어내는 일이 미술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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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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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가게에는 특유의 게임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 참가 조건은 명쾌하다.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 양쪽을 겸하는 사람, 셋 중 하나면 된다"(138).

 

 

읽을 때는 분명 재밌게 읽었는데, 누가 "이 책 재밌어?"라고 물으면 대답이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가나리야'라는 맥주바를 중심으로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연작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아무래도 1998년 작품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듯하다. 다음 해인 1999년에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의 단편 및 연작단편집상"을 수상했을 만큼 수작이지만, '당시'의 평가와 오늘의 독자 사이에는 세월의 강이 있고, 그만큼 높아진 독자의 눈이 있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곱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세로로 긴 초롱이 걸린 가게가 있다. 초롱엔 '가나리야'라고 적혀 있다. 바 안쪽에는 이 가게의 주인인 구도 데쓰야가 있다. 그는 요크셔테리어가 정교하게 수놓인 와인레드 빛의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이 가게에는 알코올 도수가 다른 맥주가 항상 네 종류 갖춰져 있다. 나이와 이력을 알 수 없는 이 남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구도는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 깊이 슬며시 들어와 최상의 요리와 맥주로 기분 좋게 해준다"(100).

 

이야기는 손님들을 통해 '가나리야'로 흘러 들어오고, 모든 수수께끼는 이 '수수께끼적인 인물' 구도 데쓰야에 의해 풀어진다. 그러나 명쾌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감탄하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구도의 논리적인 추론만 있을 뿐이다. 구도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처럼 모험적이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가와'처럼 과학적 사고를 신봉하지도 않는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로'처럼 육감이 비상한 탐정도 아니다. 셜록 홈즈와 왓슨이나 유가와와 구사나기 형사처럼 찰떡궁합의 콤비가 있지도 않다. 다른 명탐정들처럼 사건 현장을 누비지도 않는다. '천재적' 두뇌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구도는 '가나리야'를 찾는 단골 손님과 좋아하는 요리를 통해 다른 이의 고향을 추론할 정도의 추리력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야기의 일부만 듣고도 전체를 읽어버리는 능력을 가졌다. 구도가 가진 추리력의 비밀은 대부분 '관찰력'에 의존한다. 그는 알코올 도수가 다른 네 종류의 맥주를 손님의 상태에 맞게 적절하게 권할 만큼, 다정다감한 '관찰력'을 가졌다. 사소한 이야기도 허투로 듣지 않고, 미묘한 감정(표정)의 변화, 작은 몸짓도 놓치지 않는 예민하고 예리한 관찰력이 논리와 만나 설득력 있는 추론을 만들어낸다. 이런 추리물을 전문용어로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하는가 보다(해설 참고, 252).

 

이 책은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라는 제목처럼 다소 서정적인 추리소설이다.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정교한 트릭이나 충격적인 반전은 없다. 대신 이야기가 있다. 갖가지 삶과 죽음의 교차 속에 우리는 "인생의 비애"를 읽는다. 비애의 감정과 어울리게 살인사건조차도 잔잔하게 이야기되어진다. "고향도 이름도 기억의 돌무더기 밑에 봉인해야만 했던"(20) 한 하이쿠 시인의 쓸쓸한 죽음(꽃 아래 봄에 죽기를),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다시 찾게 된 가족과 그 옆에 선 고독한 남자(가족사진), 어느 사진작가와 "아무도 모르게 죽고자 했던" 어느 노부부의 사진(포스터) 이야기(마지막 거처), 하나 둘 모여온 손님들이 함께 풀어가는 괴담(빨간 손의 악마)과 기묘한 남자 이야기(일곱 접시는 너무 많다), 그리고 1화에 등장했던 하이쿠 시인의 또다른 인생의 자취(물고기의 교제)는 흩날리는 벚꽃처럼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아름답지만 슬픈, 슬프지만 아름다운, 고독한 인간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정교한 트릭이나 허를 찌르는 반전의 재미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에 기대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다양한 요리의 다양한 맛을 즐기듯, 색다른 맛에 대한 호기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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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드로잉 노트 이지 드로잉 노트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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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당신의 창조적 사고에 시동을 거는 일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당신의 창조적 사고가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그 다음의 문제일 뿐이다(2).

 

 

 

 


 

생텍쥐페리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책을 통하면 무엇과도 만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다른 언어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판타스틱'한 경험으로 고백하며, 책을 예찬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친구들은 참으로 엉뚱하다 놀릴 것 같지만, 나는 책을 통해 '드로잉'을 배웠다. 입시 미술이 아니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사치(낭비)로 여겨지던 시절을 보냈다. 그림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미술가로 대성할 싹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끄적끄적 노트마다 그림을 그려대는 버릇이 지금도 있다. 낙서 수준을 벗어나고 싶은데 전문적으로 배우기에는 '거시기' 하고, 어쩌다 풍경이 예쁜 길을 지나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뜬금없는 욕구가 불쑥 튀어나오고, 대력난감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만난 <이지 드로잉 노트>.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감동하고 말았다!

 

<이지 드로잉 노트>의 저자 김충원 선생님은 그림의 '창조적 사고'를 가장 먼저 말하지만, 내 마음은 그림의 치유력을 먼저 느끼고 있다. <이지 드로잉 노트>를 따라 연필 들고 선 몇 번 따라 그려보았을 뿐인데, 내 마음은 스스로 치유를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차분해지는 마음, 내 안에 무엇인가를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까지 어떤 충만한 느낌이 내 안에 가득하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샤프연필 한 자루와 하루에 한 시간 가량의 여유, 그리고 약간의 용기와 집중력!"(3)

 

 

 

 

"당신의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이 지루하고 따분했던 이유는 아무도 당신에게 선 긋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3).    

 

<이지 드로잉 노트>가 가르쳐주는 첫 번째는 "드로잉은 선"이라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렇게 뜻도 모를 낙서를 줄기차게 해대면서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 작업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지 드로잉 노트>를 만났을 때, 나의 낙서는 비로소 하나의 의미를 가진 선이 되었다. 김충원 선생님은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드로잉 능력을 향상시키는 '드로잉 신공'을 소개"(16)하는데, 그 방법이 독특하다. 그것은 종이를 보지 않고 그리는 연습인데, "이러한 드로잉을 다른 말로 '순수 윤곽 드로잉' 혹은 '오른쪽 뇌로 그리기'라고 한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이며 분석적인 왼쪽 뇌의 간섭을 차단하여 순수한 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연습 방법으로서, 완전히 새로운 드로잉을 체험할 수 있다." 종이를 보지 않고 마음가는 대로 완전히 자유롭게 선을 그려보라고 하는데, 막상 해보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쉽지 않았다.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니 오히려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죄수처럼, 내 손은 연필을 잡은 채 얼어붙어 있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거나 못 그리는 사람들 중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기 자신과 맞닥뜨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남자들도 오롯이 홀로 즐기는 놀이 문화에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19).

 

가만 살펴보니,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이고,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창조적인 사고를 자극한다. 여기에 과학적인 지식만 조금 보태진다면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린다. 창조적인 사고를 재미를 주고, 과학적인 지식은 입체감이나 거리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의 토대가 되어준다. <이지 드로잉 노트>를 통해 배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드로잉에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38). 물병을 그릴 때, 남자는 물병 따위는 무시하고 기울어진 물의 속성에 집중하는 반면, 여자는 물의 속성 따위는 무시하고 꽃병의 모양에 집중하는 특성을 보인단다. 그림 안에 뇌구조의 특징이나 심리적 상태도 반영된다는 증거이리라. 그러니까 미술 치료라는 것도 가능할 테고 말이다. 그림의 세계는 이처럼 다양하고 신비롭고 무궁무진하다.

 

효율과 가치를 따지는 현대 사회에서,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그림을 배워야 할 '좀더 그럴 듯한, 좀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지 드로잉 노트>를 통해 배운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해주고 싶다. "무언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몰랐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른바 '새로운 관점'이라는 게 뭔지를 경험하게 되고, 반복된 경험을 통해 우리의 의식은 다른 사람이 발견해 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54).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피카소를 꿈꿀 필요는 없다"(74).

 

나는 요즘 혼자서도 잘 논다. 화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림책을 만들 것도 아니지만, 혼자 매일 연습을 한다. 왜? 재밌으니까!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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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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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 키가 필요할 때!

 

그때 그 일만 내 인생에서 지워버린다면, 내 삶은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까. 또 누가 아는가. '그때 그 일만 없다면' 내가 대한민국의 힐러리가 되어 있을지. 오늘날 내 인생을 요모양 요꼴로 결정지은 결정적인 사건 하나를 찾아 지워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차 없이 삭제해버리고 싶은 순간이 하나 있다. 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때 그 사건. 바로 아빠의 계약서. 땅에 투자하라는 조언을 거절하고 어떤 사업에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말아먹게 만든 그 계약서를 찾아 당장 찢어버릴 텐데 말이다.

 

여기 그런 매혹적인 제안을 받은 여주인공이 있다. 부모님은 "샤를로타"라는 공주 같은 이름을 주었건만 "찰리"라는 이름에 더 걸맞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29살의 이 처자는 부모님 몰래 대학을 때려치우고 '드링크스&모어'라는 술집에서 서빙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이 진실을 알까 겁이 나고, 옆집 사는 절친 줄리가 자신을 외면하는 현실이 조금 서글프지만, '헤픈 여자'라는 문구가 박힌 티셔츠를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그녀는 나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딱히 불만일 것도 없는 이 생활에 돌맹이를 던진 것은 10년에 날아온 동창회 초대장이었다. 첫사랑에 대한 설레임을 안고 한껏 멋을 내고 찾아간 동창회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제대로 '폭탄'이 되어버렸다. 망신보다 더 심한 말이 무엇일까. 잘나가는 친구들 앞에 끔찍한 모습으로 까발려진 그녀의 오늘(인생). 제대로 상처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삶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그녀의 마음을 가득채웠을 때, 찾아온 은밀한 제안. 인생에서 삭제해버리고 싶은 순간을 지워준단다.

 

"누구나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이 꽤 있죠. 언젠가 실패했던 일들 말이죠. 민망하고 창피했던 모든 일이오.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 수 있다면? 만약 그런 모든 일을 우리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마치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124).

 

찰리는 곧바로 "지금 당장 삭제해버리고 싶은 가장 민망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사건 베스트 10"을 만들었다(126-127).

(찰리의 것을 참고로 자신의 것도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가 하는 의미에서 모두 적어본다.)

 

1. 가장 먼저는 지난 번 동창회

2. 완전히 취해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는데, 출동한 경찰한데 반항한 일

3. 어떤 남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친 일.

4. 여러 가지 다른 일 때문에 시험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일(그 결과 대학을 중퇴했다).

5. 유부남과 바람 피운 일

6. 운전면허 시험 도중 속도 측정 장치를 들이받고 도망간 일

7. 첫사랑 모리츠와 나의 첫 관계

8. 약 150차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겼던 일

9. 두 남자와 동시에 섹스를 한 일

10. 적어도 한 번씩은 시도해본 모든 약물.

그리고 끝내 모른척 하고 싶었지만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사건 하나 더!

11. 가장 친한 친구 줄리의 남자 친구와 잔 일.

 

바람대로 이 끔찍했던 사건들은 찰리 인생에서 삭제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간다. 첫사랑과 결혼하고, 해변가에 있는 예쁜 저택에서 살고, 번듯한 직장이 있고, 성공한 친구들에 둘러싸인, 그때 그 동창회에 나타난 잘나가는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뉴라이프'가 그녀 앞에 펼쳐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그녀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는 것! 끔찍했던 사건들을 모두 삭제해버리고 그토록 원하던 '성공한' 삶의 전형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그녀가 문득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은, "나도 이제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324).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이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깨달았다. 아주 작고 사소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라도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358-359).

 

결론적으로 말하지만 이 책은 상당히 치유적인 소설이다. '과거를 지우는 작업'과 연결되어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좀 맥이 풀려버렸지만, 충분히 치유적인 소설임을 인정한다. 아무리 끔찍한 기억도, 삭제해버리고 싶은 내 인생의 오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우리는 가끔 지금의 나와 완전히 다른 내가 되는 상상을 하지만, 내 인생의 끔찍한 사건을 삭제해버린다고 해서, 내가 정말 원하는 어떤 모양의 새 삶을 산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를 얼마간 끌어안을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길러준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니고, 바로 오늘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과 다른 내가 되고 싶다면 바로 '지금' 행동해야 한다는 것. 과거는 과거에서 지우는 것이 아니다.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오늘까지 살아남아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면, 지금 그것을 지워버리면 된다. 오늘, 바로 지금 내가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말이다!

 

"내 생각에 행복은 늘 오늘에 달린 거 같아.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직 오늘이 가장 중요해"(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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