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이 가게에는 특유의 게임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 참가 조건은 명쾌하다.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 양쪽을 겸하는 사람, 셋 중 하나면 된다"(138).

 

 

읽을 때는 분명 재밌게 읽었는데, 누가 "이 책 재밌어?"라고 물으면 대답이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가나리야'라는 맥주바를 중심으로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연작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아무래도 1998년 작품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듯하다. 다음 해인 1999년에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의 단편 및 연작단편집상"을 수상했을 만큼 수작이지만, '당시'의 평가와 오늘의 독자 사이에는 세월의 강이 있고, 그만큼 높아진 독자의 눈이 있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곱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세로로 긴 초롱이 걸린 가게가 있다. 초롱엔 '가나리야'라고 적혀 있다. 바 안쪽에는 이 가게의 주인인 구도 데쓰야가 있다. 그는 요크셔테리어가 정교하게 수놓인 와인레드 빛의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이 가게에는 알코올 도수가 다른 맥주가 항상 네 종류 갖춰져 있다. 나이와 이력을 알 수 없는 이 남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구도는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 깊이 슬며시 들어와 최상의 요리와 맥주로 기분 좋게 해준다"(100).

 

이야기는 손님들을 통해 '가나리야'로 흘러 들어오고, 모든 수수께끼는 이 '수수께끼적인 인물' 구도 데쓰야에 의해 풀어진다. 그러나 명쾌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감탄하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구도의 논리적인 추론만 있을 뿐이다. 구도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처럼 모험적이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가와'처럼 과학적 사고를 신봉하지도 않는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로'처럼 육감이 비상한 탐정도 아니다. 셜록 홈즈와 왓슨이나 유가와와 구사나기 형사처럼 찰떡궁합의 콤비가 있지도 않다. 다른 명탐정들처럼 사건 현장을 누비지도 않는다. '천재적' 두뇌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구도는 '가나리야'를 찾는 단골 손님과 좋아하는 요리를 통해 다른 이의 고향을 추론할 정도의 추리력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야기의 일부만 듣고도 전체를 읽어버리는 능력을 가졌다. 구도가 가진 추리력의 비밀은 대부분 '관찰력'에 의존한다. 그는 알코올 도수가 다른 네 종류의 맥주를 손님의 상태에 맞게 적절하게 권할 만큼, 다정다감한 '관찰력'을 가졌다. 사소한 이야기도 허투로 듣지 않고, 미묘한 감정(표정)의 변화, 작은 몸짓도 놓치지 않는 예민하고 예리한 관찰력이 논리와 만나 설득력 있는 추론을 만들어낸다. 이런 추리물을 전문용어로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하는가 보다(해설 참고, 252).

 

이 책은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라는 제목처럼 다소 서정적인 추리소설이다.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정교한 트릭이나 충격적인 반전은 없다. 대신 이야기가 있다. 갖가지 삶과 죽음의 교차 속에 우리는 "인생의 비애"를 읽는다. 비애의 감정과 어울리게 살인사건조차도 잔잔하게 이야기되어진다. "고향도 이름도 기억의 돌무더기 밑에 봉인해야만 했던"(20) 한 하이쿠 시인의 쓸쓸한 죽음(꽃 아래 봄에 죽기를),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다시 찾게 된 가족과 그 옆에 선 고독한 남자(가족사진), 어느 사진작가와 "아무도 모르게 죽고자 했던" 어느 노부부의 사진(포스터) 이야기(마지막 거처), 하나 둘 모여온 손님들이 함께 풀어가는 괴담(빨간 손의 악마)과 기묘한 남자 이야기(일곱 접시는 너무 많다), 그리고 1화에 등장했던 하이쿠 시인의 또다른 인생의 자취(물고기의 교제)는 흩날리는 벚꽃처럼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아름답지만 슬픈, 슬프지만 아름다운, 고독한 인간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정교한 트릭이나 허를 찌르는 반전의 재미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에 기대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다양한 요리의 다양한 맛을 즐기듯, 색다른 맛에 대한 호기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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