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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드로잉 노트 ㅣ 이지 드로잉 노트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당신의 창조적 사고에 시동을 거는 일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당신의 창조적 사고가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그 다음의 문제일 뿐이다(2).



생텍쥐페리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책을 통하면 무엇과도 만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다른 언어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판타스틱'한 경험으로 고백하며, 책을 예찬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친구들은 참으로 엉뚱하다 놀릴 것 같지만, 나는 책을 통해 '드로잉'을 배웠다. 입시 미술이 아니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사치(낭비)로 여겨지던 시절을 보냈다. 그림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미술가로 대성할 싹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끄적끄적 노트마다 그림을 그려대는 버릇이 지금도 있다. 낙서 수준을 벗어나고 싶은데 전문적으로 배우기에는 '거시기' 하고, 어쩌다 풍경이 예쁜 길을 지나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뜬금없는 욕구가 불쑥 튀어나오고, 대력난감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만난 <이지 드로잉 노트>.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감동하고 말았다!
<이지 드로잉 노트>의 저자 김충원 선생님은 그림의 '창조적 사고'를 가장 먼저 말하지만, 내 마음은 그림의 치유력을 먼저 느끼고 있다. <이지 드로잉 노트>를 따라 연필 들고 선 몇 번 따라 그려보았을 뿐인데, 내 마음은 스스로 치유를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차분해지는 마음, 내 안에 무엇인가를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까지 어떤 충만한 느낌이 내 안에 가득하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샤프연필 한 자루와 하루에 한 시간 가량의 여유, 그리고 약간의 용기와 집중력!"(3)

"당신의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이 지루하고 따분했던 이유는 아무도 당신에게 선 긋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3).
<이지 드로잉 노트>가 가르쳐주는 첫 번째는 "드로잉은 선"이라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렇게 뜻도 모를 낙서를 줄기차게 해대면서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 작업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지 드로잉 노트>를 만났을 때, 나의 낙서는 비로소 하나의 의미를 가진 선이 되었다. 김충원 선생님은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드로잉 능력을 향상시키는 '드로잉 신공'을 소개"(16)하는데, 그 방법이 독특하다. 그것은 종이를 보지 않고 그리는 연습인데, "이러한 드로잉을 다른 말로 '순수 윤곽 드로잉' 혹은 '오른쪽 뇌로 그리기'라고 한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이며 분석적인 왼쪽 뇌의 간섭을 차단하여 순수한 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연습 방법으로서, 완전히 새로운 드로잉을 체험할 수 있다." 종이를 보지 않고 마음가는 대로 완전히 자유롭게 선을 그려보라고 하는데, 막상 해보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쉽지 않았다.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니 오히려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죄수처럼, 내 손은 연필을 잡은 채 얼어붙어 있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거나 못 그리는 사람들 중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기 자신과 맞닥뜨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남자들도 오롯이 홀로 즐기는 놀이 문화에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19).
가만 살펴보니,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이고,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창조적인 사고를 자극한다. 여기에 과학적인 지식만 조금 보태진다면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린다. 창조적인 사고를 재미를 주고, 과학적인 지식은 입체감이나 거리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의 토대가 되어준다. <이지 드로잉 노트>를 통해 배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드로잉에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38). 물병을 그릴 때, 남자는 물병 따위는 무시하고 기울어진 물의 속성에 집중하는 반면, 여자는 물의 속성 따위는 무시하고 꽃병의 모양에 집중하는 특성을 보인단다. 그림 안에 뇌구조의 특징이나 심리적 상태도 반영된다는 증거이리라. 그러니까 미술 치료라는 것도 가능할 테고 말이다. 그림의 세계는 이처럼 다양하고 신비롭고 무궁무진하다.
효율과 가치를 따지는 현대 사회에서,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그림을 배워야 할 '좀더 그럴 듯한, 좀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지 드로잉 노트>를 통해 배운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해주고 싶다. "무언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몰랐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른바 '새로운 관점'이라는 게 뭔지를 경험하게 되고, 반복된 경험을 통해 우리의 의식은 다른 사람이 발견해 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54).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피카소를 꿈꿀 필요는 없다"(74).
나는 요즘 혼자서도 잘 논다. 화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림책을 만들 것도 아니지만, 혼자 매일 연습을 한다. 왜? 재밌으니까! 이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