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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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산장,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주로 음울한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를 쓰는 소설가 인자야 도모야.

그는 그림책 작가인 아내 유메코와 함께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의 산장에서

신작 <어둠의 여인>의 성공을 축하하며 와인을 마시고 잠이 든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아내는 자취를 감춘 채 신발과 옷, 휴대폰이 사라지고

컴퓨터, 자동응답기 겸용 팩스기까지 모두 불통이다.


게다가 인자이의 귀를 자극하는 말벌의 날갯소리가 들린다.

예전에 말벌에 쏘인 적이 있는 그는 벌 독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이번에 또 쏘이면 아나필락스 쇼크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런데 눈보라가 몰아치는 11월 하순에,

그것도 해발고도 1,000미터가 넘는 산에 

어째서 말벌이 돌아다니는 것일까?


인자이는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추리를 거듭하며

산장 곳곳에서 자신을 덮쳐오는 말벌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데….

 

 


<검은 집>, <13번째 인격>, <악의 교전> 등으로 유명한 '기스 유스케'의 최신작(2013)입니다. '기스 유스케'라고 하면 "모던 호러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소개되는데, 정확하게 모던 호러는 어떤 장르를 말하는 것까요? 정확한 뜻을 말해주는 사전이 없네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호러'와 차갑고 간결한 도시적(현대적)인 감각을 주로 일컫는 '모던'을 합쳐서 이해하면 될까요? 아니면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라는 설명에 힌트가 들어 있을까요?


<말벌>이 '호러소설'인 것은 분명합니다. 시종일관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 분위기가 작품을 뒤덮고 있습니다. <말벌>은 수수께끼와 같은 물음, 오리무중인 범인, 마지막 반전 등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미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밀실 트릭'을 살짝 비튼 설정과 살해도구로 '말벌'이 등장하는 것이 새롭습니다. 보통은 외부와의 소통이나 개입이 전혀 불가능한 '밀실'에서 숨겨진 살인트릭을 추리해가는 것이 밀실 트릭인데, <말벌>은 생존도구가 숨겨긴 '밀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그립니다. 밀실 트릭이 '어떻게 죽였는가?'에 초점이 있다면, <말벌>은 살해도구가 숨겨진 밀실(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독자의 심장을 쫄깃하게 합니다.


<말벌>이 독자에게 던져주는 수수께끼는 이것입니다. 주인공 '인자야 도모야'의 아내는 왜 자취를 감추었는가? 지난 밤,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누가, 왜, 산장 안에서 밖과 소통할 수 있는 기기(휴대폰, 컴퓨터, 팩스기까지)를 모두 불통으로 만들었는가? 그렇게 한 목적은 무엇인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11월 하순에, 해발고도 1,000미터가 넘는 산장에 어떻게 노랑말벌(말벌 중에 덩치가 제일 작지만 공격성은 제일 강해 인명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벌, 21)과 장수말벌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인가? 


말벌에 쏘인 적이 있기 때문에 다시 쏘이면 쇼크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인자야 도모야'. 그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 그의 아내 '유메코'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그런데 일부러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벌을 이용하다니, 거기에 특별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고통을 주고 싶기 때문일까? 설마! 유메코가 내게 그렇게까지 깊은 원한을 품을 이유가 있을까?"(54)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설정해놓은 '말벌'이라는 트릭이 독자들을 설득하기에 부족하다 싶었나 봅니다. 독자들이 던질만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왜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그것은 처음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커다란 의문이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방법으로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성이 부족한 데다 산장 안에 부자연스러운 공작의 흔적이 남게 된다"(145). 그리고 살해도구로 '말벌'이라는 번거롭고 불확실한 방법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변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피해자가 악전고투하는 장면이 서스펜스의 재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미노 게임처럼 치밀한 계획을 하니씩 풀어나가는 장면에는 미스터리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기묘한 쾌감이 있다. 범인은 일그러진 귀족적 취미라고나 할까, 범행 시각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커피나 브랜디를 마시며 피해자가 죽길 편안히 기다리는 것이다"(148) 이 작품은 "왜 말벌인가?"가 추리소설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데 견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 나를 움직이는 것은 말벌에 대한 분노와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은 욕망뿐이다"(108). <말벌>이라는 작품을 재밌게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를 뽑으라고 하면 '악의', '인격', '정보'를 꼽고 싶습니다. 반전의 묘미를 떨어뜨리는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기스 유스케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악의'와 '인격'에 관심이 많은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결국 생사를 가른 것은 무기나 식량이 아니라 정보였다"(28)는 한 문장의 힌트처럼, <말벌>은 말벌에 대한 '정보'가 범인을 '추리해내는' 재미를 대신합니다. 솔직히 독자의 뒤통수를 후련하게 내려치는 극적인 반전의 묘미는 다소 부족합니다. 사건을 추리해내는 탐정의 역할이 반전의 재미를 살려야 하는데, 결말쯤 누군가가 등장해 사건의 전말을 고백(!)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자가 진범이다'는 그 '의외성'의 미덕이 오히려 독자들을 김빠지게 만들어버린다고 할까요. 열광할 만큼의 임팩트는 다소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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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회화 바이블
Richard A. Spears 지음 / 넥서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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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교재가 없어서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니야!"를 외치며, 더 이상 새로운 영어학습 교재를 쳐다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이미 책상 위를 차지하고 있는 많은 교재를 보며 "문제는 책이 아니라, 꾸준함"이라고 스스로의 가슴에 대못도 박았습니다. 이 나이까지(?!) 아직도 영어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늘 제자리 걸음인 영어실력이 부끄러워 또다시 새로운 교재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칠 수 없었던 책이 바로 <영어회화 바이블>입니다.


"사전류 편찬에 있어서 세계적인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 출판사"에 만든 "전세계 베스트 셀러"이며, "원어민 전문가가 직접 고른, 지금 이순간에도 미국 현지에서 생생하게 사용되고 있는 회화 표현"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사, 대화, 칭찬과 격려, 감사와 같은 일상 회화 표현, 생각 표현, 질문하고 답하기, 다양한 감정 표현, 결정과 선택 말하기, 전화, 약속과 만남, 문제 상황에 대한 표현, 요청과 허가에 대한 표현과 같은 주제별 회화 표현, 식사할 때, 양해가 필요할 때, 명령할 때, 음식점에서, 언행, 태도, 인생에 대한 교훈 등과 같은 상황별 회화 표현이 사전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필요에 따라 찾아보기도 쉽습니다. (단, 저자는 "필요한 부분만 찾아보는 사전처럼 참고도서로 사용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이 책의 특징은 "미국인들이 일생생활의 대화 시에 수도 없이 사용하는 2,100여 개의 기본 표현과 문장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며, 수록된 표제어와 예문은 거의 "구어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영어학습 교재에 단골로 등장하는 공항, 쇼핑, 호텔과 같은 곳에서 사용되는 표현들이 없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대신 미국 현지에서 날마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표현들이기 때문에 실생활에 꼭 필요한 실전 영어를 익힐 수 있으며, 표현 자체의 의미는 명확하지만 실제로 대화 속에서 사용될 때 의미가 달라지는 표현들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문들 중 상당수는 농담이나 분노, 혹은 빈정거리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 실제 대화에서 따온 예문들"이기에 "과장된 내용이나 비속어들도 상당히 많다"고 밝혀둡니다. 이런 표현들을 익히는 목적은 "일상생활에서 들었을 때 적어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책을 넘겨보다 보면 비속어나 짜증날 때 하는 표현, 빈정거리는 표현들에 더 관심이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이 참!

(초판 한정) mp3도 무료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영어 교재가 새로운 표현이나 다음 쳅터로 넘어갈 때, 알림음이나 음악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책에 수록된 영어 대화 이외에 어떤 알림소리나 음악소리도 없습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일을 하며 mp3 CD를 플레이해놓기도 합니다.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옆에서 일을 하는 기분이 들도록, 그리고 가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상황극을 혼자 연출하며 말입니다. ㅎㅎ

요즘은 유학이나 언어연수를 다녀오지 않고도 영어회화를 꽤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분들이 많은데, <영어회화 바이블>은 그런 분들이 가장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교재이기 않을까 싶습니다. 영어회화 실력 상, 중, 하에 상관 없이 관심 있는 분들이면 모두가 탐낼 만한 영어회화 사전이며, 유익한 학습 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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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페이퍼 커팅 아트
아사히로 가요 지음, 조민정 옮김 / 니들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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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움직이는 것이면 좋겠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것이면 좋겠고, 배워두면 재능기부도 할 수 있는, 그런 취미생활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퇴근을 하면 자연스럽게 TV 앞으로 가서 앉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계획적으로 무엇을 배우기에는 퇴근시간이 둘쑥날쑥하지만, 자투리 시간이라고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그런 시간들을 좀 더 보람차고 의욕적으로 채워보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방전된 체력 때문에 '즐겁지 않으면' 꾸준히 할 수 없다는 뻔한 교훈을 얻었을 뿐입니다. 


<처음 만나는 페이퍼 커팅 아트>에 관심을 가진 건, 손을 움직이는 것이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것이며, 배워두면 재능기부도 할 수 있는 그런 취미생활이 가능하겠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이처럼 '즐겁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적이었습니다. 





 



 

초보들도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취미생활로 <페이퍼 커팅 아트>의 또다른 장점은 도구와 준비물이 무척 간단하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한때 요리를 취미로 가져볼까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 평소에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도구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또 지중해 요리나 제빵과 같은 것들은 재료 구하는 것도 어려운 미션처럼 느껴졌고요. 그런데 <페이퍼 커팅 아트>는 일단 종이와 커터칼만 있어도 연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칼질할 때 필요한 고무 매트, 도안을 종이에 고정할 때 사용하는 마스킹 테이프(또는 셀로판 테이프), 종이를 오려내는 디자인 커터, 가위, 목공용 본드(풀)가 필요합니다. 이중에서 꼭 구매가 필요한 도구는 디자인 커터 정도입니다. 페이퍼 커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작품에 따라 다양한 종이를 구매해서 작품을 시도해볼 수도 있습니다. 






 


<페이퍼 커팅 아트>는 어릴 때 많이 했던 종이 오리기와 비슷한 작업입니다. 단, 종이를 오린다는 간단한 작업이 '아트'의 경지라는 것만 다릅니다. 식물과 동물, 인형, 크리스마스 장식, 눈 결정체, 동화 속 주인공 등을 테마로 인테리어 소품, 귀걸이 거치대, 북 커버, 컵받침, 카드, 메모지, 모빌, 봉투, 웰컴 보드, 종이갓, 장식, 클립, 반지걸이, 북마크, 마커 등을 만들어내는 매우 창의적이면서 생산적인 작업이기도 합니다. 책에 실린 작품 도안을 보면 정말이지 말그대로 입이 떡- 벌어집니다. 새롭고 예뻐서요! 개성 있는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좋고, 나만의 특별한 카드, 장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감동도 줄 수 있는 아트 세계입니다. 열심히 배워두면 특별한 재능기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더 즐거워지기도 하고요.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성전 장식이나 만들기를 할 일이 많은데 <페어퍼 커팅 아트>를 배워두면 활용도가 매우 높을 것 같습니다. 특별하고 예뻐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무척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 '신기'한 느낌까지 더해서 감동이 배가 될 듯합니다. 







처음 책을 받고는 종이 오리기 연습을 했고, 지금은 레벨 4에 해당하는 백설공주 모빌에 도전하는 중입니다. 이 책에는 레벨 1에서 4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이 책 안에서는 최고 레벨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일단은 가지고 있는 종이와 커터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 동네 문구점에는 디자인 커터가 없더라고요. 책에 수록된 도안을 복사해서, 작품 하나를 가위로 자른 후, 잘 떼어지는 테이프로 종이와 고정시킨 후, 칼로 오려내면 끝! 참 간단하죠? 그런데 곡선을 오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커터칼로도 어느 정도 작품이 가능하지만, 디자인 커터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세밀한 곡선 때문인 듯합니다. 얼굴 옆선과 같이 굴곡이 많은 곳, 손가락처럼 세밀한 곳은 커터칼로 표현하기가 매우 매우 까다롭습니다.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난장이와 마법 거울을 오려서 주변에 보여주었더니 표현이 정교하다고 깜짝 놀랍니다 ^^ 완성되면 특별하면서도 재밌는 모빌이 될 것 같습니다. 5살 아이가 있는 동료는 종이 인형극을 해도 재밌을 것 같다고 감탄을 해주었답니다. 재로 준비도 간단하고, 몰입하는 즐거움도 있고, 내 손에서 작품이 탄생한다는 보람도 있고, 활용도도 다양하고, 재능기부도 가능한 취미로 <처음 만나는 페어퍼 커팅 아트>, 성공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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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 옛날, 옛날에 동양 여성들은 이렇게 살았다네
E. B. 폴라드 지음, 이미경 옮김 / 책읽는귀족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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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여성이 남자의 동반자로 인식되는 반면, 동양에서는 여성을 남자의 노예이자 노리개로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여성에 대한 존경이 숭배 수준까지 높아진 적도 있는 반면에, 동양에서는 여성이 진정 인간이었던 적이 있는지에 관해 곧잘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307).


독일의 이집트어 학자인 에르만의 이 말이 처음에는 좀 의아했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서양에서는 여성 차별이 없었던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근대 페미니즘 역명의 선구자로 불리는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는 "여성의 존재가 보잘것없으며 여성이 남성에게 노예적 복종을 하는데 대하여 항의"했으며, <여권의 옹호>라는 책을 통해 "여성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남성 의존적이며 무능하게 비쳐지는 이유는 선천적이고 자연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 구조 속에 양산된다"는 것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영국 여성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인터넷을 통해 '여성혐오' 현상이 위험수준으로 번져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여성혐오는 오늘날의, 그리고 동양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도 그 사례를 찾을 수 있을 만큼 뿌리가 깊으며, 17세기부터 20세기 서구의 저명한 철학자들이 여성혐오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분명 서양에서도 여성차별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위에 인용된 에르만의 한마디는 전에는 품어보지 못한 질문을 하나 던져주었습니다. '같은 여성차별을 겪었어도 서양에서의 삶과 동양에서의 삶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까?'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는 전설과 신화를 포함한 고대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극서에서 극동지역까지, 종과 횡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동양여성들의 삶을 고찰합니다. 100년 전에 나온 책이며, 저자는 침례교 목사이자 성서문학을 가르쳤던 서양인 남성이며, 미국에서 총 10권의 시리즈로 출간된 '여성' 이야기 중 제4권에 해당되는 책을 국내 최초로 번역한 것입니다. 성서와 전설, 신화, 역사사료는 물론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특징들까지 호방하게 훑어내려가며 동양여성들의 삶의 특징들을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분석하기보다 특징적인 모습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들려주기 때문에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옛 이야기를 듣듯 구수하게 읽히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서 와, 이런 이야기 처음이지?>가 보여주는 동양여성의 지위와 삶을 보면, 우선 지역별로 여성의 위상에 차이가 있으며, 무엇보다 종교의 영향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브라만교나 이슬람교를 주요 종교로 삼고 있는 나라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이 책이 깨닫게 해준 가장 의외(!)의 사실은, 고대 동양여성들의 지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의 지위가 높았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창세기(구약성서)에 기록된 사라(아브라함의 아내)의 성대한 장례식 장면은 '여성을 존중하는 히브인들의 태도'를 보여주며, 유대 여성들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존경스러운 위치에 있었다(108)는 점도 새삼 달리 보였습니다. 또 하나, 구약의 십계명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모공경' 계명을 보면, "어머니를 공경하는 의무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의무와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짚어냅니다. 이처럼 "율법에서 내세운 여성의 위상 덕분에 히브리 여성들은 그밖의 다른 셈족이나 동양 민족의 여성들에 비해 상당한 우위에 서게 되었다"(95)고 분석합니다. 여성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남성을 살해한 범죄와 마찬가지로 혹독하게 처벌했다는 것도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93-97).


고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여성의 지위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히브리와는 달리 여신이 있었는데, 고대 북유럽 신화에서도, 그리스에서도, 그리고 바빌로나아인들에게도 지하세계의 진정한 왕위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181-184).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죽은 자의 영역에서 여성의 힘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심지어 어떻게 제왕적 성격을 띠고 있는가?"(183)


이 밖에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금수저 여성이 오히려 덜 자유로웠다"(193)는 것입니다. 상류층 여성은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으며, 그들의 단조롭고 고립된 생활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만한 작업으로 정원이 만들어졌다는 설명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 동양의 결혼을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결혼 성사 과정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남자 형제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옛날에는 결혼은 당연히 남자와 한 여자가 아닌, 두 명 이상의 남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계약에 따라 성사되었다"(51)는 것도 오늘의 결혼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또, 힌두 문학에 나타나는 여성을 주목하며 "동양의 어떤 나라도 문학에서 여성을 그렇게 높은 위치를 부여하거나, 문학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 또한 그처럼 높은 나라는 없다"(268)는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서 와, 어린 이야기는 처음이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제를 남겨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설명대로라면, 동양여성의 삶은 오히려 고대에 누렸던 지위를 점점 잃어가는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그 원인을 파헤친 논문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적어도 동양여성의 지위면에서 보면 인류는 퇴행의 역사를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교적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히브리인(유대인), 이집트 여인의 삶이 그 증거입니다. 저자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여성의 지위가 유대 가족 사이에서조차 이스라엘의 독립과 힘을 보였던 시절만큼 높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며, "특히 아들들에게서 예전에는 의문의 여지없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어머니에 대한 공경이 사라졌다. 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자 형제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고 그렇게 취급당한다. 동양의 모든 여성은 이런 열등한 대접을, 하늘이 그들을 남자가 아닌 여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일종의 형벌이라 여기며 참으로 잘 견뎌온 듯하다"(112-113)고 덧붙입니다. 동양 여성 중에 훨씬 더 독립적이고 어머니의 지위 역시 높이 존중되었던 이집트 여인들의 지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이집트에서도 여성의 교육은 안타까울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 심지어 고대 여성의 교육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들은 대개 여성들을 엄격하게 열등한 위치로 내몰거나 비하하기도 한다"(246) .




"어느 나라에서나 여성의 상대적 지위는 나라의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리고 이러한 잣대를 동양에 적용해보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결과가 드러난다. 여성이 성서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히브리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15).


저자는 "여성의 지위에 따라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보인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100년 전이니, 이 말은 100년 전에 한 것인데, 100년이 지난 지금 저자가 다시 우리를 본다면, 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문화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최근 종영한 '시그널'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명대사가 나옵니다. "설마 거기도 그럽니까? ...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지요. 그죠?" 이 책의 저자가 우리에게 묻고 싶은 말은 아닐까요?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는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재미있게 읽힙니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기에 그림에 비유하면 정밀화라기보다 대략적인 스케치에 가깝습니다. 정말한 고찰에 한계를 지니기도 하지만, 이렇게 큰 그림으로 동양여성의 삶을 그려주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과 비교하여 읽을 수 있는 서양여성의 삶에 관한 책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번역하는데도 많은 지식을 요했을 것 같은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옮긴이의 주'가 친절하고도 고마웠습니다. 다만, 성서에 등장하는 이름의 표기가 통일되지 않은 점은 살짝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예를 들면, '입다'를 '예프타'라고 한다든지, '에스더'와 '에스델서'를 혼용한다든지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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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여행작가 - 여행하고 글쓰고 돈도 버는
박동식.채지형.유정열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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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되기 프로젝트!


"쟤네들은 놀면서 돈도 버네. 좋겠다!" 요즘 TV를 시청할 때마다 부모님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맛있는 것도 먹는데 돈도 벌고, 협찬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돈도 벌고, 여행도 돈을 받으면서 다닌다고 부러워하시는 것입니다.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부러움 속에 은근한 억울함도 숨어 있는 듯합니다. 이런 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을 사셔야 했으니까요. 아무튼 요즘 우리가 꿈꾸는 최고의 삶, 이상적인 삶은, 좋아하는 일도 하면서 돈도 버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제가 가장 부러워 하는 직업군이 바로 '여행작가'입니다. 한 해를 마감할 때마다, 매년 새 다이어리를 펼칠 때마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고민할 때마다,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때마다 일순위로 떠오르는 키워드가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것이 초조해질 때마다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여행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직장에 매여 있으니 시간적 제약이 많고, 경비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 그토록 소원하는 여행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여행작가가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은 거지요.  


그런데 여행작가가 되려면 어디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오늘부터 여행작가>는 바로 이러한 물음 가진, '여행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책입니다. 요즘 여행작가 등용문으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 전문적으로 여행작가를 양성하는 '여행작가학교'라고 합니다. "1세대의 여행작가가 여행기자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면, 2세대는 파워블로거 출신들이 대세를 이러갔다. 그다음으로 떠오른 등용문이 여행작가학교를 비롯한 각종 여행자가 교육과정들이다"(43). 여행작가 교육과정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하는 한국여행작가협회의 '여행작가학교'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여행작가>는 바로 그 '여행작가학교'의 대표 강사진들이 가르쳐주는 '여행작가 되기 프로젝트, 원 포인트 레슨'입니다. 여행작가들의 현실적인 고민에서부터 여행작가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생생한 현장 노하우까지 이 한 권의 책에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색,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나만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 갈고 닦고서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36).


'여행작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여행작가는 여행을 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표현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다"(15). 여행작가가 일반 여행가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특정한 주제를 정리해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이라고 강조합니다. "여행작가는 기록을 통해 자신의 여행을 정리하고, 정리한 내용으로 다른 이들과 소통한다. 기록과 정리를 통해 여행작가는 자신의 여행이 다른 이들의 여행과 삶에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란다"(16). 그러니까 여행작가에게 필요한 기술은 자신의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술, 바로 "쓰기"와 "찍기"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여행작가>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글쓰기"와 사진 찍기"입니다. 글쓰기 강좌는 '여행 기사'와  '여행 에세이'로 구분되는데, 여행 기사가 알차고 현장감 넘치는 '정보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면, 여행 에세이는 타인을 감동시키고 설득시키는 '정서'에 더 무게를 둔 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 찍기 강좌는 사진 "촬영법"뿐 아니라, 여행사진 "표현법"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행사진은 자신의 고백이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행지의 정보를 담는 기록"(181)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진과 차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돌아오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와 함께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표현법을 익히는 것이 목표입니다. 


<오늘부터 여행작가>에서 가르쳐주는 글쓰기 강좌와 사진찍기 강좌는 꼭 여행작가를 꿈꾸는 독자가 아니어도, 블로그나 사진에 취미가 있는 독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것을 직업으로 하든, 취미로 하든, 어떤 일에 대한 기본 이론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열심히 하면 실력이 는다고 하는데, 기본 이론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꾸준한 시간을 투자해도 제자리 걸음이기 쉽니다. 기본 이론이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스스로 한계를 극복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부터 여행작가>는 취미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분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오늘부터 여행작가>가 가르쳐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이든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있어야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전문성"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고, "특정 분야"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것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오늘부터 여행작가>를 읽고 나니, 막연하게 품어 왔던 여행작가라는 꿈이 포기가 되기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처음 한 발을 시작해봐야겠다는 계획이 서기도 합니다. 단순히 '취미'나 '재미'로 덤벼들기에는 이곳도 치열한 전쟁터이며 어마어마한 노력이 가미된 전문성을 요한다는 측면에서 포기가 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꼭 전문적인 여행작가가 아니더라도 나만의 여행을 즐기며 경험과 이야기를 쌓아가며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첫 발을 내딛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교차합니다. 행하면서 돈도 버는 사람들을 보면 놀면서 돈도 번다고 부러워하지만,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이면에는 엄청난 수고와 노력과 고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면 좋지만,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어느 분야이든 노력 없이 타인을 감동시키고 설득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꿈을 이뤄가는 여행작가 지망생도 있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막연했던 꿈을 포기하는 이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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