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문방구 종이인형 - 가장 예쁘고 품질 좋은 종이인형 모음집
리트머스 편집부 엮음, 신소금 감수 / 리트머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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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추억의 문방구 종이인형!



'추억의 문방구 종이인형'은 최근 몇 년 사이 리프린팅되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만들어진 종이인형을 차곡차곡 오랜 기간 동안 잘 보관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종이인형만을 선별해 엮은 것으로, 국내에서 가장 다양하고 예쁘며 상태가 좋은 종이인형임을 자랑합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이 <추억의 문방구 종이인형> 모음집은 진정한 의미의 종이인형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와 똑같이 제작한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 만들어진 것을 차곡차곡 보관했다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종이인형만을 선별한 것이라고 하니까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최상의 상태입니다!


보자마자 "소장 가치 100%"라고 흥분했던 것은, 제가 바로 문방구 종이인형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놀이의 여왕이라 불리며 동네를 주름잡던 골목대장이었는데, 고무줄, 다방구, 술래잡기, 망까기처럼 뛰어노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소꿉놀이, 종이인형놀이도 좋아했었답니다! '니나'가 잡혀 있는 이상한 나라로 달려갔던 '폴'처럼, 종이인형만 있으면 우리는 언제든 '상상의 세계'로 달려갈 수 있었으니까요. 어릴 때 했던 수많은 놀이 중에 가장 상상력을 자극했던 놀이는 바로 종이인형놀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생각할 때에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말(이야기)을 참 잘 한다"는 이야기를 꼭 해줍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종이인형놀이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의 문방구 종이인형>은 다양한 테마의 종이인형이 33장, 뽀나스로 엄마와 봄이의 패션쇼, 어린이 은행놀이, 미니 딱지가 각 1장씩 들어 있습니다. 종이인형은 오리기 난이도에 따라 상, 중, 하로 구분됩니다. 오리기 난이도 '상'을 택해서 오리기에 도전해봤는데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는 이모나 고모가 대신 오려주셨던 것 같습니다. 추억의 딱지도 들어 있어 반가웠는데 뜯기 형식이 아니라, 딱지도 오리기로 되어 있어 그건 좀 아쉽더라고요.


종이인형을 오릴 때는 먼저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놓고 하나씩 오리는 것이 편리합니다. 전체 종이를 들고 하나씩 오려내다 보면 종이가 구겨지기도 하고, 잘못하면 옆 그림까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옷'을 오릴 때는 종이인형이 입을 수 있도록 11자 형으로 된 고리를 잘라내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어릴 때, 옷 선을 따라 오리다 잘못해서 그 고리 부분까지 잘라버리면 세상이 끝장 난 것처럼 좌절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멋있는 인생>이라는 주제를 가진 종이인형입니다. 금발머리 친구가 '소피아', 보라색머리카락 친구는 '쥰'입니다. 학생복이 있으니 학생인건 분명한데 옷장만 보면 나이를 구분하기가 애매한 친구들입니다!(ㅎㅎ)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때 우리는 이 종이인형들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갔을지 궁금해집니다.


이젠 그때 그 시절의 엄마만큼 나이를 먹었고, 친구들은 그때 그 시절 우리만한 딸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 딸을 키우는 엄마에게서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라는 말을 듣고 찾아보았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제 눈에는 성인으로 보이는) '캐리' 언니가 소꿉놀이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동영상인데, 아이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보다, 누군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워한다니  어쩐지 좀 씁쓸해졌습니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장난감을 갖지 못한 아이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것도 염려되고, 친구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놀이를 하기보다 '동영상'으로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도 안타까웠습니다. 종이인형 한 장이면 충분했던 그 시절이 어쩌면 마음은 더 풍성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이나 주변에 아이가 있다면 <추억의 문방구 종이인형>으로 아이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놀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날로그적인 놀이를 하며 자란 우리 세대가 훨씬 행복지수가 높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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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one - 일상은 심플하게, 인생은 의미 있게 만드는, '나만의 한 가지'
댄 자드라 지음, 주민아 옮김, 이영옥 추천 및 워크북 감수 / 앵글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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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하는 모든 일의 99퍼센트는 그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 그대는 불행한가?
교회 안에 '소명찾기'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도, 전공이 정해진 대학생들도, 직장생활을 시작한 청년들도, 전업주부든 전문직인든 10년, 20년을 한 자리에서 일해온 어른들도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무엇일까?"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음이 더 무거운 무게로 그리스도인들을 압박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특별히 내게만 허락하신 달란트가 있고, 내게 주어진 사명이 있음을 믿는데, 문제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괴리에서 괴로워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에 더하여 나만의 사명이 있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없는 괴로움이 하나 더 얹어진 셈입니다. 이런 문제를 같이 풀어보고자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여러 책들을 찾아보는 중인데, <원one>도 바로 그러한 관심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희망과 도움, 의미와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타인의 삶에 다가가 바로 그것을 안겨줄 때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런 지금부터 당신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원one>을 통해 더 확실히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은, 나만의 특별한 사명은 '내 안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하는 일은 '나'에게 집중하는 일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할 때 '나는' 가장 즐거운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오로지 나에게 집중, 또 집중하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나'에게만 집중할 때, '나'에게 매몰될 때, 길을 잃게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one>은 달랐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명'의 본질과 이 책에서 추구하는 인생의 '의미'가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one>은 오로지 자기에게 집중하라고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서 희망과 도움, 의미와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타인의 삶에 다가가 바로 그것을 안겨줄 때"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one>은 성급한 실천강령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차분하고 깊이 있는 통찰로 인도합니다. 





감정적으로 불안한 현대인에게 무엇보다 결핍되어 있는 것은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성찰의 힘'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보았던 명언과 응원가가 이 책 한 권에 다 들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가장 짜임새 있게 들어 있습니다. "넌 특별해", "넌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믿어"라는 외침이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도록, 생각이 생각으로 그치지 않도록, 많은 연구를 한 흔적이 보입니다. 생각해보게 하고, 직접 글로 써보게 하고, 그림으로 그려보게 하면서 생각하는 재미까지 더했습니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열심히 따라한다면 나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되고, 생각이 보다 선명해지며, 구체적인 꿈과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원one>은 혼자 읽기보다 소그룹으로 모여서 함께 읽고 나누면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눌 때, 보다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고,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요. 


<원one>은 누구에게 선물해도 좋을 책입니다.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삶의 의미와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책이 예쁘고 구성이 재밌습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인생설계도처럼 비밀스러운 일기처럼 책의 빈 여백을 채워가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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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사 사고력 퍼즐 - IQ 148을 위한 IQ 148을 위한 멘사 퍼즐
필립 카터.켄 러셀.존 브렘너 지음, 멘사코리아 감수 / 보누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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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사 사고력 퍼즐>은 추석 연휴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책입니다. 우리집이 큰집이라 명절 동안은 외출금지, 여행금지입니다.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인사를 드리고, 상을 차리고, 상을 치우는 것이 일이에요. 손님들이 오시니 TV 시청도 어렵고, 상을 차리거나 상을 치우는 시간 이외에는 방에 얌전히 앉아 있는 답니다. 그동안은 명절 연휴 때마다 추리소설 같은 소설을 준비했는데, 읽다가 자꾸 끊기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추석 명절에는 고급지게 지적 유희도 즐기고, 두뇌 트레이닝도 할겸 <멘사 사고력 퍼즐>과 함께 알차게 보내볼 작정입니다. 



멘사란 '탁자'를 뜻하는 라틴어로, 지능지수 2% 이내(IQ 148 이상)의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천재들의 모임이다. 1946년 영국에서 창설되어 현재 100개국 이상에 11만여 명의 회원이 있다.

<멘사 사고력 퍼즐>은 영국멘사 핵심 멤버들이 고안한 퍼즐입니다. 영국멘사 퍼즐 그룹 소속의 퍼즐 작가(필립 카터), 멘사 종합잡지 <영국멘사>의 퍼즐 부분 책임 편집자(켄 러셀), 두뇌와 창의력 계발에 효과적인 퍼즐 제작자(좀 브렘너)가 참여하였고, 영국, 미국, 일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20만 부를 돌파한 퍼즐계의 최강자입니다. 특별히 이번 <멘사 사고력 퍼즐>은 "수학과 논리의 모든 영역을 꿰뚫었다"고 자부합니다. 


"논리의 핵심을 이루는 주요 영역은 수리논리, 언어논리, 시각논리이다. 이 세 영역을 꿰뚫고 있으면 논리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것을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멘사 사고력 퍼즐>은 바로 그런 의도에서 기획된 책이다"(5). 






t    w    t    f    s   ?

물음표에 들어갈 알파벳은 무엇일까? 이 퀴즈는 이 책에 수록된 퍼즐 중에서도 낮은 난이도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이처럼 <멘사 사고력 퍼즐>에는 직관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도 상당수 등장합니다. 퍼즐 계발자 3인방은 "어떤 문제는 시간과 공을 들여 체계적으로 풀어야 하고, 어떤 문제는 거의 직관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체계적인 직관과 분석", 이 두 가지가 수학과 논리에 접근하는 핵심이라고 하는데, 직관적인 문제는 답을 알면 너무 쉬운 문제인데(답을 알면 맥이 빠지는 문제도 더러 있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답을 알기 전까지는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 책을 받은지 2주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혼자 힘으로 가볍게 푼 문제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퀴즈 34번 정도입니다. <멘사 사고력 퍼즐>은 멘사 퍼즐 중에서도 꽤 난이도가 높아 보입니다(개인적으로 더욱!) 사실 가장 어려운 건, '집중'하는 것입니다. 쉽게 정답을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를 눌러 참아야 하고(참기 힘들다면 정답지를 뜯어내어 따로 보관하는 것도 방법), 끝까지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집중력'에 취약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달아질 정도입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하고, 첨단 과학이 나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문명에 사는데도, 우리의 두뇌가 좀 더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저뿐일까요? 스마트한 세상에서 우리 뇌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비판적 사고, 논리적인 성찰을 하기도 전에 빛의 속도로 쏟아지는 정보가 너무 많은 탓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몸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두뇌도 단련을 하면 얼마든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아니,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두뇌 훈련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치매 환자, '유리 멘탈'이라는 신조어 등이 우리의 정신력, 사고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요?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름 결심한 것이 있는데, 요즘 그 결심이 허물어지며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열어 쓸데 없는 정보를 흡수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멘사 사고력 퍼즐>은 이런 습관을 고치고,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한 저만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지금 저에게 이 책은 퍼즐을 풀기 위한 두뇌싸움이 아니라, 어려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문제풀이에 집중하는 '집중력'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색다른 취미나 건전한 놀이, 두뇌 계발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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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해부학 - 누구도 말하지 못한 자살 유혹의 역사
포브스 윈슬로 지음, 유지훈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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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권리인가, 범죄인가?



최근, 서로 모르는 남녀 4명이 안산의 한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끔찍한 뉴스를 접했습니다. 온라인 등을 통해 만났다는데, 세 명은 경제적인 사정을 비관해서, 한 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이런 선택을 했다고 합니다. 남의 일이라고 방관할 수만은 없는 것이, 그것이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상처가 되기 때문이고, 또 그런 행위가 가진 모방성과 전염성 때문입니다. 


그들이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만났다는 것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그런 끔찍한 선택을 '부추기'는 꼴이며, 모방이 가능하다는 것이 더 큰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도 이를 잘 알고 여러 모로 방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고자 책 제목을 입력했더니, 자동으로 "생명은 소중합니다! 지금, 희망을 클릭하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전화상담, 온·오프라인 상담 센터와 연결되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 안에 들어 있는 단어를 '살자'로 바꿔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목의 단어가 검색되지 않도록 막아놓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살자'를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데, 그게 잘못인가?"라고 반문합니다. 그런 선택도 권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권리일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이 책은 이런 물음에 답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영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입니다. 이 책은 "영미권 최초로 '살자'문제를 종합 분석한 책"이라는 데 가치와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저자가 의학 박사 학위를 딴 것은 1849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자료와 통찰(지식)은 1800년대 것이라는 말입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이 책은 흥미로운 통찰들로 가득합니다. 어디선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역사와 고전를 사례로 '살자'는 용기의 증거이며, 피살은 불명예라는 인식이 존재했음을 살핍니다. 고대부터 영웅다운 자결이라는 관습(?) 같은 것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또 "죽음이 영원한 잠이나 행복의 세계로 가는 길이라고 배운 사람이라면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14)고 지적하는데, 생명을 경시하는 교육이 그러한 관습(?)에 한몫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한 행동을 옹호하는 가르침이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스토아철학의 교리를 꼽습니다. "종교를 존중하고 신을 숭앙하던 로마 공화정 시대에는 '살자'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 제국 시대에 그리스 철학이 들어오고 사회적으로 부패가 심해지자, '살자'라는 범죄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이 퍼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스토아철학은 생명의 주인은 자신이고 생명의 결정권자 또한 자신뿐이므로,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에피쿠로스학파도 같은 교리를 전파했다"(48). 또 하나 문명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나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97).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권리인가, 범죄인가를 묻는다면, 이 책은 범죄라고 대답합니다. "인간의 범죄행위 중에서 '살자'만큼 뇌리에 큰 충격을 주고 분노를 일으킬 만한 것은 없다"(60). 그것은 '범법행위', '매우 천박하며', '치욕스러운 범죄'라 서슴없이 말합니다. 단지 형량을 정할 수 없어(범죄자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라) '죄'로서 규정할 수 없을 뿐이라는 것입니다(60-62). "내 몸을 내 멋대로 한다는데, 그게 잘못인가" 흔히 주장되는 이런 논리는 "어불성설인데다 무례하기까지 하다"(64)는 게 저자의 통찰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웃과 사회에 상처가 되기 떄문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아무리 큰 불행이 닥쳐도 삶에서 이웃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67)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인간이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를 통계학적으로 살펴봅니다. 물론 1800년대 통계입니다. 예를 들면, 실연의 상처, 빈곤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도 알다시피 실연의 상처, 빈곤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이보다 병들거나 무력해진 육신, 정신적 혼란, 절제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 가책 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통찰을 종합해보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병'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모방과 전염성인데, 오히려 그런 점에 예방과 치유가 가능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모두 1700-1800년대 자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목적이 아니라면, 1800년대의 자료들이 여전히 유의미할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리고 시대적인 한계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약화된 장 기능도 '살자' 충동에 한몫한다고 봅니다. 소화 장애나 담즙 분비 장애가 정신에 영향을 주는데(172), 적절할 때 장을 비우는 것이 '살자' 충동을 억제한다는 설도 있다(180)고 전합니다. 또 이런 흥미로운 주장도 있습니다. "환자가 '살자' 충동을 느낀다면 전문의는 대뇌에 울혈이 있는지, 두뇌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적지는 않은지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사혈도 자살 충동을 억제하는 데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76). 현대의학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답할지 궁금합니다. 이외에도 이 책의 통찰이 논문이나 논술과 같이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글이 아니라, 에세이처럼 읽힌다는 것도 다소 아쉽습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좀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저자는 희망이 없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목숨이 붙어 있어야 희망도 있는 법이라고 역설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은 한줄기 희망마저 송두리째 낚아채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88)이라는 걸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책에 인용된 존 밀턴의 말처럼, 최대한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요,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헛되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라는 말처럼, 생명을 경시여기는 것, 그것도 내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 그것이 가장 최악의 범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자살을 '살자'로 바꿔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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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코의 날
미코 림미넨 지음, 박여명 옮김 / 리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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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누가 됐든 대화가 하고 싶었다"(365).


퇴근하는 전철 안, 모두가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을 때, 누군가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 별 내용도 없이 전화를 끊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별 내용도 없는 통화를 계속한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통화의 소음. 친구가 많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고, 외로운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퇴근해 들어오면서, TV 앞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인사를 한다. 드라마가 재밌나 하는 생각보다 심심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는 그렇게 외로움에 익숙해져간다. 서로의 외로움을 위로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건, 내 외로움을 들키기 싫기 때문일까, 타인의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까.


여기 흘러넘치는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외로움에 뛰어들게 된 엉뚱한 여인이 있다. 누군가는 이 여인은 사기꾼, 미친년, 바보, 정신병자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단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점잖은 그녀가 '가짜 시장 연구 조사원'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정말이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건,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전화가 갑자기 끊기거나 대화가 중단되었을 때 찾아오는 침묵. 그 침묵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바로 그 감정. 한순간 이 세상에 나만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그 고독의 감정. 오늘은 특히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366).




"정신없는 소동 후에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나는 일개 침입자일 뿐인데. 최선의 경우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겠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밖으로 내쫓기면 그만인"(35-36).


이름 '이르마'. 나이 50세. 거주지 핀란드 외곽(하카니에미)에 혼자 살고 있음. 하는 일 없음. 가족관계 가끔 통화하는 아들이 한 명 있음. 그녀가 '가짜 시장 연구 조사원' 행세를 하게 된 것은 사실 작은 실수 때문이었다. 중고 시장 게시판에서 쪽지를 보고 '케라바'까지 공짜 화분을 받으러 갔을 뿐이고,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집의 초인종을 눌렀고 엉뚱한 집에 들어가 엉뚱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잠시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을 뿐이고, 무단 침입자라는 고백을 하기기 쉽지 않아 여론조사를 나온 조사원이라고 둘러댔을 뿐이다.


그렇게 시작된 거짓말.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아주 잠깐이면 된다고", 이렇게 시작하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이르마'는 평범한 가정집을 방문하기 시작한다. 사기를 치거나 장난을 치려는 건 아니었다. "그러다 나는 내가 벌써 그 짧은 시간 안에 세 번째로 모르는 사람의 집을 방문했으며, 닫힌 문을 응시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오, 주여, 그렇다. 얼어났다. 또다시 일어났다. 내가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며 낯선 사람들을 방문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 내가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 나은, 더 행복한, 더 편안한, 그게 무엇이 됐든, 이전의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말이다"(69).


가짜 시장 연구 조사원 행세가 즐거웠던 것도 아니었다. 자기 자신도 이런 기이한 행적을 벌이고 다니는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도감과 공포가 동시에 나를 덮쳤다. 한편으로는 앉는 순간 편안함을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상황을 이끌어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애초에 나는 이 집 초인종을 누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집 주방에 들어와 있다. 이 꼴을 하고서. 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171). 그럼에도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망상, 고통 그런 것에 시달릴수록, 자기도 모르게 케라바에 이끌렸고, 쳐음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이르야'가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이르야와 대화하고 싶었을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다시 온 이유가 뭔가요?"(107)


<빨간 코의 날>은 불길하고 우울한 소동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블랙코미디 같은 소설이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시 책의 표지로 돌아가, 이 소설이 '2004년 핀란드 '올해의 젊은 작가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며, 핀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는 '핀란디아상' 최고 작품상 수상작(2010)이며, '유럽 6개국 이상 출간 베스트셀러'라는 이력을 몇 번씩이나 되새겨야 했다. 미안하게도 내겐 너무 재미 없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존재의 불안과 불확실성, 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날카롭게 그려냈다고 하기에는 주인공 '이르마'에게 심할 정도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계속 되는 실수와 사건이 흥미롭기보다 짜증스러웠다고나 할까. 독자로서 나의 독서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내겐 재미가 없었다. 




"빨간 코의 날이 뭔지 아세요?"(203)


그럼에도, 이 책이 내게 남긴 강렬한 인상 가운데 하나는, 너무도 요란하고 소음 가득한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게 이 세상은 너무도 조용한 세계라는 것이다. "이렇게 고요하면 모든 것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어요"(174)라는 어느 노인의 고백처럼, 요란한 세상 한가운데서 혼자만 침묵에 둘러싸인 일상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가 그토록 의미 없는 대화, 쓸데없는 대화에 매달리는 것도 어디서나 나를 덮쳐올 수 있는 조용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 모르겠다.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 하지만 함께 앉아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178-179).


감기와 사랑만 감출 수 없는 건 아니라서, 외로운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을 알아보는데도 우리는 왜 서로의 외로움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것일까. 작은 실수와 소동으로 시작된 만남이지만, 이르마와 이르야 사이에는 편안한 자매처럼 서로의 문제를 털어놓고 공감을 나누며 우정 비슷한 감정이 싹텄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평범했고, 조용했고, 느렸고,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진심을 다해 웃을 수 있었던 이르마와 이르야처럼 우리는 왜 서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일까.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르야처럼 '공포심'을 극복하고, '침입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은 <빨간 코의 날>이다. 작가는 '빨간 코의 날'이 어떤 날인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침내 그날, 빨간 코의 날이 찾아왔다. 내 코는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고, 아침부터 라디오에서는 시끄럽게 빨간 코의 날을 홍보하고 있었다. ... 들어보니 빨간 코의 날은 광대 코 가면을 쓰고 일종의 선행을 하는 그런 날인 것 같았다"(208). 작가는 우리에게 '광대 코 가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르야처럼 낯선 집 대문에 부딪혀 고통스러운 코를 부여잡고 비틀거릴지라도, 남을 돕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외로울수록 외로움 안으로 깊이 파고드는 습성을 가진 우리이기에, 구원은 외부로부터 와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필요로 한다. 황당하지만, 다소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빨간 광대 코 가면을 쓴 침입자 '이르마'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인터넷을 싫어하는 것은 단순히 나 자신이 멍청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들의 말마따나, 'www'로 시작되는 인터넷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껏 인류가 만들어낸 공간 가운데 이토록 작고 외로운 곳이 또 있을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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