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머무는 밤
현동경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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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디로 여행을 떠난 것일까?

분명 '여행 에세이'라고 들었는데, 전혀 '여행 에세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디를 여행하는지 여행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정보도, 묘사도 없는 '여행 에세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행 에세이는 처음 만나봅니다. 

분명 그녀는 낯선 땅을 걷고 있고,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녀가 진짜 여행을 떠난 곳은 어떤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공간, 밤이라는 시간 속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기억 속에, 밤이라는 시간 속에 머물며 찾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한 저마다의 방법이 있는데, 이 책 <기억이 머무는 밤>이 여행 에세이인 것은, 그녀의 기억을 붙드는 그녀만의 기억법이 바로 여행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젠가부터 떠나왔을 때 바쁘게 움직이는 것보다 어딘가를 응시하며 사색하고 그림을 그려 가며 노래에 기억을 담고 냄새에 추억을 담아 오래 보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구태여 만들기 시작했다"(119).

그녀의 여행은 그렇게 기억의 창고가 되었습니다. 






결국엔 일상을 그대로 짊어지고 떠난 여행(27)

<기억이 머무는 밤>은

도시에 살고 도시에 살고 싶지만,
여행 중에는 도시에 가는 일이 그리 달갑지 않은 여행자의,
무거운 도시와 거대한 자연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유난히 신발이 빨리 닳는,
두 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자의, 
낡은 신발에 먼지와 함께 묻어온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쓰는 건 좋아하지만
읽는 건 좋아하지 않는 여행자의,
밤의 감성을 담은 일기장 같은 책입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찍을 수 있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매일 같은 장면을 반복해 담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하는 여행자의,
빛바랜 사진 같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진첩 같은 책입니다. 


세상만큼이나
스스로에게 관심이 없는 여행자의,
자신을 위한 작은 위로 같은 책입니다.

뒷모습을 좋아하는 여행자가
자신의 뒷모습을 스스로 더듬어 본 이야기입니다.

서로 책을 바꿔 읽기 위해,
종이책을 좋아하는 여행자가 
교환을 목적으로 종이 위에 써 내려간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눈이 떠질 때 눈을 뜬다는 여행자가
어디든 바라보고 싶은 대로 바라보고
여행 에세이입니다.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가 
할 거라고는 생각밖에 없을 때 했던 생각을 써 내려간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이 놀러 오는 걸 좋아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던 외로운 여행자가의 
자신의 은밀한 외로움을
고백하는 이야기입니다. 

"기껏 채워 놓은 일상을 비워 내기 위해" 여행을 떠났으나
"결국 그렇게 일상을 그대로 짊어지고" 떠나는 바람에
언제나 고되었던 여행길의 기록입니다. 



부모님을 대신하여 저자를 키워준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
별거 아닌 우연의 연속이 나를 들뜨게 하는 그런 날(58).
별거 아닌 우연의 연속을 기대하게 하는 날 
열정을 강요 당하다가
대충 사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에 
배낭 메고 먼 길 따나 온 한국인들의 마지막 대화가 끝끝내 한숨일 수밖에 없는 이유(43)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는 버릇이 없다는 속설이 있다(49)
나는 거꾸로 알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맡에서 자란 아이들은 예의가 있다. 
그녀가 가진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슬프지만 아름답고, 아프지만 따뜻한,
그녀가 흘리는 후회의 눈물, 후회의 기억에 나도 울다.


"시간 위에 시간이 덮여 갈수록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변해 간다"(84).

<기억이 머무는 밤>은 세상만큼이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서, 변해 가면서도 변해가는 것을 모르고,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다고 믿는 당신에게,
"누군가의 능력은 부러워하면서 내가 뭘 잘하는지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타인의 일에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위로는 없"(91)는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입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나의 기억이 소환되는 순간, 그리하여 그녀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겹쳐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당신은 괜찮다고 믿어왔던 것들을 의심하고, 정말 괜찮은지 질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밤에는 읽지 않도록 합시다. 밤의 감성은 위험하니까요. 밤에 감성이 잘 못 터지면 오히려 자신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마흔일곱 번째 밤           시간

목적지가 없으니 길을 찾을 필요가 없다.
길을 찾지 않으니 길을 잃을 이유가 없다.
길을 잃지 않으니 조급해 할 이유가 없었고
조급해 하지 않으니
그제야 시간이 곁에 머무르기 시작했다(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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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노트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이야기
조웅연 지음, 청공(이성은) 그림 / 더도어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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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이야기, 엔딩 노트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자가 써나가는 인생 이야기도 시간과 함께 쌓여가고 있지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또 살아냅니다. 돌아보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도 있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이야기도 있고,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한 순간들도 있지만, 그런 고비가 없었다면 우리 이야기가 얼마나 밋밋할까 하는 어른스러운(?), 아니면 작가스러운(?) 생각도 해봅니다.


<엔딩 노트>는 그렇게 "살아온 날들"과 "살아가고 있는 날들"을 돌이켜보며 "살아갈 날들"을 그려보는 나만의 다이어리입니다. 질문에 답하며 조용히 노트를 채워갈 때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마법과 같은 책이기도 합니다. 빈 칸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에 따라, 아직 누구도 만나보지 못했고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의 결망이 내가 소망하는 해피엔딩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신중하고도, 정성스럽게 대답할 일입니다. 이 다이어리의 제목이 <엔딩 노트>인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지 않나요? ^^


 


 




"당신의 이름을 알려줄래요?"

"이름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도 알려줘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고 하면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시작이 특히 막막하고 어렵게 느껴질 텐데요, <엔딩 노트>의 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자기소개로 시작하거든요.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이 단순한 질문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 것은, 다음과 같은 한 줄 문장에 가슴이 울컥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누군가 고민해서 만든 소중한 이름이에요"(10). 참 따뜻한 노트지요? ^^


이렇게 따뜻하게 나를 마주하게 해주는 <엔딩 노트>라니,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내 별명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별로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특별한 관심사나 취미는 무엇인지, 나의 슈퍼 히어로는 누구인지,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은 언제인지, 왜 그렇게 많이 울었는지, 가장 실컷 웃었던 날은 언제인지, 무엇이 그리 즐거웠는지, 살면서 가장 승부욕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는지, 뭐 이런 시시콜콜한 걸 묻는 <엔딩 노트>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빈 페이지를 채우기가 망설여지는 건, 또다른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쉽게 쉽게 대답을 하면 후회하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쉽게 쉽게 흘려버린 순간들을 지금 후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엔딩 노트>는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제대로 만나야 한다는 걸, 그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걸, 내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쉬운 질문에도 <엔딩 노트>의 빈 페이지를 성급하게 채울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나도 모르고 있는 나와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낯선 두려움이 방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순간에 웃고, 어떤 순간에 울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며, 어떤 꿈을 꾸어왔는지, 글로 적어놓으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나를 객관화하면 내가 아주 낯설어질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도 <엔딩 노트>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대답이 아니라 질문만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대답이 살아온 날들에 대한 대답이기보다, 살아가는 날들, 그리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대답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 때문인 듯합니다.


<엔딩 노트>는 예쁘고, 따뜻하고, 기발한 다이어리입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나의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로 채워가는 특별한 다이어리지만, 아직은 나만 알고 싶은 비밀 일기장 같은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엔딩 노트>는 유독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책이기도 합니다.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 메시지 안에는 '너를 알고 싶어'라는 또다른 메시지가 숨어 있으니까요. 너를 알고 싶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고백이기도 하니까요. 자서전을 쓰고 싶거나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께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책이고, 생각하게 하는 책이고, 무엇인가 쓸 수 있게 하는 신비로운 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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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포인트 통합교육 - 가정과 함께 하는교회 다음 세대가 자라나는 교회
주경훈 지음 / 두란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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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부모들이 정작 자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87). 

영유아부부터 청소년부에 이르기까지 연령별로, 그리고 학년별로 예배를 드리다 보니 아무리 대형 교회라도 언제나 공간 부족이라는 어려움이 있었고, 공간이 부족하니 늘 쫓기듯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 모임을 위해 장소를 비워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해, 청소년부 담당 목사님이 부서 통폐합이라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충분히 예배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장 큰 저항은 '부모님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예배시간을 늘리느냐"며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이유는 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공부할 시간을 방해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담당목사님은 조용히 물었다고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사랑하는 자녀가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 1시간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 시간 동안 몇 분이나 기도할까요? 그렇게 기도해서 이 어둠고 악한 세상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신앙적 고민이 있는 부모님들, 신앙적 양심이 있는 부모님들은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놓으셨지만, 모든 것을 무시하고 끝끝내 항의하는 부모님들도 많았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교회, '다음 세대'를 위해 고민하지 않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교회는 아무 준비 없이 다음 세대를 세상에, 가상현실에 뺏앗기고 말았고, '다음 세대'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다른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신앙전수의 실패였음을 생각할 때,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원 포인트 통합교육>은 다음 세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현장 목회의 치열한 고민 속에 완성된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교회가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지만, 신앙 교육에 무관심하고 교회 교육을 무시하는 부모님들이 먼저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원 포인트 통합교육>은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할 1차적인 책임이 교회가 아니라, 바로 부모에게 있음을 강하게 일깨우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믿음이 세대를 통해서 확장되길 원하신다"(66).

<원 포인트 통합교육>은 'why', 즉 '왜 교육하는가'를 묻고 또 물으며 그 답을 찾기 위해 신경기 6장의 쉐마 말씀, 즉 하나님의 교육원론으로 다시 돌아가 얻은 결과물입니다. 성경에서 발견한 교육은 '가정이 주도하는 교육'이고, 가정이 주도하는 교육을 이루기 위한 교육 방법이 '원 포인트 통합교육'인 것입니다. 

<원 포인트 통합교육>의 시작은 교육의 중심을 이동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 교육의 제일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원 포인트 통합교육>의 중심은 교실 중심에서 가정 중심으로(어디에서 교육할 것인가), 교사 중심에서 부모 중심으로(누가 교육할 것인가), 지식 중심으로 관계 중심(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바로 하나의 말씀으로 교육 내용을 통합하는 '원 포인트 통합교육'인 것입니다.

<원 포인트 통합교육>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해 두신 네 가지 때"(133)가 있다는 통찰이었습니다. 그 네 가지 때는 집에 앉았을 때, 길을 갈 때, 누어 있을 때, 일어날 때입니다. 오륜교회에 여기에 주목하여 교육 전략을 세웠는데, 그 전략이 매우 탁월합니다. 혹시 <원 포인트 통합교육>이 우리 교회의 목회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역자들일지라도  오륜교회의 이 네 가지 때 교육 전략만큼은 꼭 배워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원 포인트 통합교육>은 그 동안 교회학교 교육이 왜 실패했는지, 어쩌다 다음 세대가 교회를 지루해하고 교회 교육을 무시하게 되었는지를 뼈 아프게 깨닫게 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성격적 대안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성공한 전략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교육이란 다른 사람의 것을 쉽게 내 것으로 따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철학'이 중요하고, '방향'이 중요한 것이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교육 현장에 있는 '책임자' 모두가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지 않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교육이기도 합니다.

이름이 <원 포인트 통합교육>이고, 많이 배우기보다 적게 가르치더라도 더 많이 행할 수 있는 교육을 목표로 "모든 교육을 단순화"시켰다고 말하지만, 오륜교회의 사역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쉽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원 포인트 통합교육>은 반드시 "교회와 가정"이 공통된 사명으로 하나를 이루어야만 시도할 수 있습니다. <원 포인트 통합교육>은 반드시 교회와 부모가 함께 읽고 고민해야 할 책입니다. 교회마다 '하나의 말씀으로 세대를 통합'하는 움직임이 유행처럼 나타나고 있기도 하지만,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바랐는지, 아니면 더디더라도 말씀 안에 제대로 뿌리 내리기를 바랐는지는 열매가 말해줄 것입니다. 이 책 덕분에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덕분에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제대로 그 줄기를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힌트를 얻었을 뿐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이 고민 속에 답이 있다는 확신 속에 기쁨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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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 예배라면 - 변화를 위한 믿음 업그레이드
이동현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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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90).

시편 기자는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라고 노래합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이 잘못된 길을 가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두려운 미래를 예고하시지만 말씀을 보내시는 이유는 그들을 죽이고자 함이 아니라, 다시 살리고자 하심입니다. 말씀을 듣고 돌이키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이 마지막 예배라면>을 통해 아모스 선지자에게 주셨던 말씀을 다시 외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를 향해 아모스의 말씀을 다시 보내신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은 "처녀 같은 모습으로 참 좋은 시절"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잘 나가는 때요, 모든 것이 풍족"한 시절이었습니다(142). 그러나 아모스 선지를 통해 선포된 말씀은 두려움과 공포, 슬픔으로 통곡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미 여러 가지 복을 받은 사람들이요, 더 큰 복을 받아야 할 믿음의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축복해주시는 대신"(163) 왜 화를 선언하시며 탄식하셨을까요? 무엇이 하나님의 탄식을 불러오게 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인데 왜 하나님은 그들의 어려움을 보고도 돕지 않고 그냥 지나가실 것이라 하실까요? 이 질문 속에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탄식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예배라면>은 잘 나가는 이스라엘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이유는 하나라고 잘라 말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요, 본질은 예배인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세속적인 것에 양보하는 것"(86)으로 그들의 예배가 타락하기 시작했다고 고발합니다. 

"아모스 시대 사람들은 오늘 잘 나가는 것만 자랑하고 흥청거릴 줄만 알았지 내일을 볼 줄 몰랐다"(155).

하나님을 잊어버리니 자신이 주인이 되고, 예배가 타락하니 종교적 열심만 남고, 하나님과의 바르지 못하니 인간관계도 파괴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모스 시대의 교인들은 힘없는 자를 밟고 부당한 수입을 취했습니다. 의인을 학대하고 뇌물을 받으며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잘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암 2:6). "내 작은 욕심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생존이 달려 있는 티끌만 한 재산을 탐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이라면 남의 인생을 탈진하게 만들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84-85).  뿐만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니 부모의 음란죄가 대물림되는 악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86). 부모가 자식에게 삶으로 죄를 가르치고 죄를 물려준 것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하나님의 탄식을 불러오게 한 것입니까? 개역한글은 보다 날카롭게 '시온에서 교만한 자'를 '시온에서 안일한 자'로 해석합니다. 이는 그들이 교회 생활을 무사안일하게 하고, 고난 없는 영광과 수고와 희생이 없는 형통을 구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삶은 비전 없는 삶이었습니다. 교회 생활은 평안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일한 것과는 구별됩니다. 하나님이 탄식할 만큼 싫어하는 것이 시온에서 안일한 자입니다. 교회의 위기가 와도 마음에 부담이 없고, 교회가 어려워도 아픔이 없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전도하지 못해도 안일한 사람을 하나님은 주목하여 보십니다"(164).

총신대 박용규 교수님은 한 책을 통해 "한국 교회에 지금처럼 40년 넘게 부흥이 임하지 않았던 적도 없다"고 탄식했습니다. 부흥을 잃어버린 채 교회에 병적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한국 교회는 무사안일하기만 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능력을 상실하고, 허무한 것들을 기뻐하고, 이기적인 쾌락과 사치를 추구하며 이웃은 돌아보지 않는 메마른 삶을 살면서도 신앙적인 위기의식이 없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예배라면>은 이러한 한국 교회를 향해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정직하게 회개하고, 모든 것을 다 벗어버리고 다시 말씀 앞으로, 예배 앞으로, 사명 앞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절박하게 외칩니다. 교회 건물만 밟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까지 나아오라고 촉구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예배라면 어찌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한 아모스의 외침이 이 시대를 향한 마지막 경고요, 마지막 은혜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 말씀이 들려지는 은혜가 한국 교회 안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 5:1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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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처치 - 창조적 사역을 위한 교회 갱신 모델
이상훈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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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역사는 지속적인 갱신운동 속에서 발생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사라 할 수 있다. 교회가 타락하거나 연약해질 때마다 하나님은 갱신운동을 일으키셨고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통해 열방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들어가는 말 中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지난해(2017), 유난히 한국 교회의 위기를 말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이렇다 할 대안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았습니다. 창조적 사역을 위한 교회 갱신 모델 <리뉴처치>(Renew church)를 읽으며, 이 책이 그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회의 실존은 언제나 위기적 상황과 함께해 왔다"(75)는 사실과 함께, "우리는 본질에 기초한 진정한 선교적 공동체가 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선교도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121)고 주장하는 <리뉴처치>는 북미의 선교적 교회들에 주목합니다. 이 책은 북미의 선교적 교회들을 탐방하고 그들의 새롭고 참신한 창조적 사역을 소개하는 탐방 보고서입니다. 북미의 교회들이 선교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에 주목한 <리뉴처치>는, 위기의 돌파구는 바로 위기 속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선교의 하나님이시라면 보냄 받은 존재로 교회 공동체는 본질상 선교적이어야 한다'(107).

 

한국 교회가 병들어 있다는 사실은 교인뿐 아니라, 이제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리뉴처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병들어 가는 가장 확실한 증상은 우리의 가슴에 잃어버린 자를 향한 열망이 식어질 때다"(75). 이제 지역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리뉴처치>는 무엇이 선교적 교회인지를 잘 설명합니다. 선교적 교회는 "어떻게 성오들을 세상으로부터 불러 모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에서 어떻게 다시 세상으로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교회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바로 선교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성육신적이며 상황화된 사역"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적극적으로 품는 교회를 말합니다(111-114).


북미의 선교적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사역 중 하나는, 자신의 삶 속에 잃어버린 영혼을 적극 초청하여 아예 그들과 함께 사는 선교적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아예 자신의 삶을 나눌 수 있는 것은, 교회가 무엇이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 자신을 '선교적 제자'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무엇이냐'에 대한 적극적인 대답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삶을 통한 제자도'라고 부릅니다. 




"진정한 갱신운동은 자신을 살피되 성경적 가치와 원리에 초점을 맞추고 지속적으로 복음으로 돌아가는 운동이어야 한다"(71). 

<리뉴처치>는 교회 갱신 모델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북미의 선교적 교회들을 통해 이 책이 진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갱신과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나 방법론(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 즉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탐구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갱신이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추구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100개의 교회를 개척하면 3년 안에 90개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는다"(201)고 하는데, 저는 그 살벌한 현장(?)에 뛰어든 개척교회 사역자입니다. <리뉴처치>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구체적인 사역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리뉴처치>는 구체적인 사역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와 방향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여기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강하게 일깨웁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독서토론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우리의 관심과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사역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이러한 질문을 해보길 바란다. 


"과연 나의 삶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교회 공동체의 관심과 목적은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가?"(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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